남단에서

참사가 일어 날 때마다 기억 나는 '징조'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18.12.15
1. 돌발적인 참사는 없다.
한 나라가 내려 앉고, 한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며, 한 인생이 다시 일어 서기 어려울 정도로 끝장이 난다면 참사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참사는 돌발적이기 때문에 막지를 못한다고 생각한다. 미리 보면서 당할 리는 없다는 것이 평소 우리 생각이다. 미리 봤으나 막을 힘이 없다면 피하기라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럴까?

대규모 참사는 어떤 종류이든지 먼저 여러 가지 요인이 쌓인다. 그리고 마지막에 불꽃이 던져 진다. 건조한 날씨가 끝없이 계속되고, 메마른 잎이 끝없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상태에, 바람이 계속해서 불어 사방의 마른 가지들이 부대낀다. 이제 산불이 날 수 있는 요인이 다 모였다. 이제 산불이 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남북이 공산주의 자본주의로 쪼개졌고, 김일성의 야욕은 충천하며, 미국은 에치선 라인을 긋고 일본으로 병력을 빼 나가며, 중공은 내전에서 승리하고, 남한은 철 없이 중구난방이다. 이제 명령만 내리면 3일에 서울이고 30일이면 한반도는 끝장이 난다. 참사란 알고 보면 다 이런 식이다. 미국은 진주만의 참화 때문에 지금은 10겹 100겹으로 살피며 참화의 요소가 한 곳으로 모이는지 살펴 본다. 우리는 10가지 100가지 요소가 다 쌓인 화약더미 위에서 불꽃놀이를 한다. 참사의 이치를 몰라서 생기는 일이다. 한 번 겪으면 학습이 되어 다음을 준비하면 무조건 발전한다. 매번 겪어도 학습이 되지 않으면 할 수가 없다.

현재 우리 나라의 국가적 상황을 보면 임진왜란이나 구한말이나 6.25 직전의 상황이다. 참화가 일어 날 수 있는 모든 요소는 전부 다 쌓여 있다. 이제 불꽃만 하나 툭 던져 넣으면 세계 최고 명품이 된 이 나라는 좌파가 그토록 원하던 대로 폭망으로 끝장난다. 폭망의 순간만 보면 참화는 어느 날 갑자기 던져 진 불꽃 하나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면밀히 분석해 보면 폭망의 그 참화를 향해 오래 전부터 수도 없이 많은 요인들이 차곡차곡 쌓여 간 결과일 뿐이다. 필연이다. 하나님의 예정의 세계가 세상 모든 일을 그렇게 운영하신다


2. 하나님의 인도 방향
하나님은 전지와 전능이시다. 원하는 대로 하신다. 세상을 어떻게 운영하실까? 하나님은 필연으로 운영하시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운영해 오셨다. 이렇게 정확하게 나가게 되면 우리는 공식이라 법칙이라 진리라고 한다. 그렇다면 갑작스런 참화, 폭망이라는 불행조차 우리는 말씀을 살펴 준비하면 어떤 상황도 대비가 가능하다. 정말일까?

눅12:54에서 갑작스런 폭우가 갑작스러워 보이지만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볼 수 있게 함으로 대비할 기회를 주신다.
마24:3에서는 세상 종말조차 '무슨 징조가' 있다 하시고 10가지 이상의 조짐들을 일일이 열거해 놓았다.


3. 총공회 노선의 필연과 앞날
1979년 7월에 총공회는 서부교회 주일학교라는 이름으로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에 그 의미를 알렸다.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라는 이름은 그야말로 세상식의 자극적 표현일 뿐이다. 그 이름 뒤에 숨어 있는 요소들은 사도행전 2장의 오늘 재편이었다. 한도 없이 설명을 해야 하나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거의 다 안다고 생각하고 이 글에서는 생략한다.

백 목사님의 순교는 돌발이었는가? 실제 돌발 사건이었다. 어느 암살자가 예배 도중에 뛰어 올라 바로 끝을 내 버렸다. 이후 서부교회도 총공회도 그리고 그 모든 교인들도 태평양 한가운데서 폭풍을 만나 난파선 밖으로 내던져 진 상황이다. 어느 날 갑자기였는가? 아니다. 필연이었다. 1959년의 고신 제명이 필연이었듯이, 1966년에 총공회로 모인 즉시 백영익 목사님은 딴 길을 걷는다. 이후 김석준 목사님이 독자 노선으로 돌아 선다. 1979년의 신도범 목사님과 1980년대 장렬 송용조 목사님으로 이어 진다. 어린 교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닥친 날벼락이었다. 한결같이 백 목사님 사후를 승계할 그 생전의 2인자들이었다. 공회 내 최고의 핵심이, 이 노선에서 어떻게 외부로 방향을 바꿀 수 있을까? 그러나 리브가 뱃속에는 2명이 있었고 때가 되면 2명으로 출산하면서 하나는 에서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그 것이 신앙이며 그 것이 야곱을 통해 오늘까지 내려 오는 우리의 계통을 벼리고 연단하여 제대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필연적 역사다. 그리고 다시 뒤져 보면 분열과 제명과 분쟁 같은 모든 참화는 예고 된 일정이었다. 대체로 너무 늦었기 때문에 오히려 의아할 정도다.


4. 저작권 문제의 필연성
백 목사님 생전 1982년에 시작 된 목회연구소의 첫 해에 직원이 된 분이 평생 말하는 일화가 있다. 중간반 반사들이 오전 회의를 마치고 계단을 따라 내려 오는 길목에 연구소의 전신인 서부교회 편집실이 있었다. 30여명이었던 그 분들은 훗날 '나는 백 목사님의 부목'이었다고 평생을 자부한다. 백 목사님은 평생 몇 명의 교인이든 그 전부를 하나하나 당신의 후계자로 길렀다. 그래서 중간반 반사들의 그 말은 틀리지 않는다. 침례교 출신의 교인이 김 목사님의 생전 마지막 어느 시점에 그 교회를 방문하자 '아십니까? 제가 바로 백 목사님의 후계자 김춘도 목사입니다.'라고. 백 목사님 사후 30년의 교권 싸움에 예배 시간조차 없이 살았던 시절이 대부분이었던 분이다. 서부교회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다고 했다. 그런데 서영호 목사님의 강단 아래 엎드려 예배를 드리고 개척교회에 필요한 후원을 받고 자기 발로 나갔다.

그렇다면 인간적으로도, 도의적으로도, 자기 약속으로도, 그리고 4층 식구들의 결의에 의해서도 모든 면에서 실패다. 실패라면 그 동안 죄를 지었다고 말이라도 해야 그 밑에 다른 사람들에게 바른 길을 안내하지 않겠는가? 30년을 끌고 간 그 영은, 그렇게 잘 놓아 주지 않는다. 시인 없이 갔다. 아쉽다. 그런데 마지막 가는 길에 백 목사님의 설교는 그 아들 백도영 박사님의 개인 사유재산이라며 모든 조처에 최선을 다했다. 그 분의 노력 때문에 서부교회를 비롯해서 각 교회의 핵심들이 확인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 확인서가 신사참배는 국가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백영희 설교 자료 일체는 전부 백영희 개인 재산이다. 따라서 그 자녀만이 소유자다. 이 목적을 위해 그 목적 달성에 필요한 글에 도장을 찍었다.

1992년에 양성원 소송을 하면서 부산공회 모든 목회자들이 전부 교학실 당시 직원의 전화를 받고 인감을 보냈다. 그리고는 소송은 반대라 한다. 사람의 목을 쳐 놓고 살인은 하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 초등학교 1학년의 독해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데 세계최고인 공회의 교훈에 대해서는 전문가라 한다. 참화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5. 돌이켜 보면
백순희 사모님이 건강하고 부공1을 제대로 관리할 때였다면 저작권 문제는 애초 시작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2033년에 100세가 될 때까지 철옹성 같을 줄 알았던 사모님이 2012년에 무너 졌다. 그리고 도장을 내놓았다. 이 것이 저작권 참화의 제1요소이다. 두 번째로는 백명희 사모님의 와해였다. 서부교회 4층을 중심으로 결사대 수백 명과 함께 핵심 30명과 함께 재림 때까지 변치 않는다 하신 분이다. 실제 그럴 분이다. 그런데 내부 핵심이 차례로 다 떠나 버렸다. 1명 정도 남은 듯했다. 조직이 붕괴되자 평생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자던 분이 형제밖에 없다면서 언니와 함께 백도영 박사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 가족을 아는 사람은 서로의 성향이 너무 달라 그렇게 될 리는 절대 없다고들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어 버렸다. 세 번째로는 백도광 장로님의 공백이다. 120세까지 건강할 것으로 봤다. 특히 그 분의 지적 능력은 초인적이다. 그런데 2010년경 갑자기 가족끼리 뭉치자고 앞장을 섰고 가족들을 다 불러 모은 즉시 자신의 역할을 중단했다. 병환으로 보인다. 이 바람에 7명의 자녀 전체가 백 목사님 사후 30년만에 하나가 되었다. 실제로는 가족들의 평생에 이런 기회는 이 때뿐이다.

연구소가 저작권 문제가 생길 리가 없는 첫째 이유로 늘 7인의 자녀분들은 그 실력과 성향이 각각 군왕이 될 분들이어서 누구 1인에게 맡기는 상황은 없다고 단정을 해왔다. 연구소는 백 목사님 생전에는 배우기만 했고 목사님의 순교 그 순간부터 공회 내의 만사를 오판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특히 노선에 관련 된 중요한 것은 오판이 없었다 할 정도였다. 그 중에 가장 자신했던 것이 7남매의 단결은 없다 따라서 저작권 문제는 실제적으로 현실화 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백 목사님의 설교를 읽거나 전하면 범죄가 되어 교도소에 간다는 이런 참화가 현실이 되는 상황은 돌발인가? 지금 4가지 서로 다른 요인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있다. 저작권에 불꽃을 던지나 여전히 습기 때문에 폭발이 지연 되던 2016년, 송종섭 목사님이 설교 직후 심장마비로 바로 가셨다. 이 분은 가족들이 똘똘 뭉쳐 자신에게 협조를 구했다는 말씀을 연구소에 전하며 꼭 필요하면 증언에 나서겠다 약속한 분이다. 이 분이 증인으로 나서면 가족 7인이 다 뭉쳐도 헛일이다. 송 목사님은 총공회의 현황이나 각종 교리 문제를 두고는 연구소와 극단으로 대치를 했음에도 연구소의 진실과 사명만은 믿어 왔고 모든 지원에 항상 전력했던 분이다. 1997년 이진헌 목사님과 나뉜 후 1998년부터 송종섭 목사님은 우리 연구소의 실질적인 후원회장이었다.

송종섭 목사님이 돌아 가신 것이 다섯 째 요인이지만, 여전히 여섯째 요인이 될 수 있는 이진헌 목사님은 법정에서 된 대로 이야기를 하시겠다고 증언을 약속해 주셨다. 이도영 목사님이 돌아 가시기 직전이다. 1998년에 서로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에 이 분의 증언은 송 목사님 못지 않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철회를 하셨다. 일곱째로 김응도 목사님 여덟째로 류차연 목사님, 아홉째로 배종일 목사님.... 법정에 나와서 '백영희 목사님은 사유재산이 없는 분! 그 설교는 이미 공회 것!'이라고 한 마디만 한다면 바로 모든 것이 끝낼 수 있는 인물이 많다. 부산연구소의 최후 위원인 박영태 장로님, 행정실장 이탁원 목사님, 서영호 담임이야 제3자니 기대한 적은 없다. 최소한 20개의 요소 중 1개만 움직여도 된다. 백 목사님의 설교가 자녀의 개인 재산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그렇게 쉽다. 그 분의 평생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단 1개의 요소도 빠지지 않고 전부 불꽃을 기다리고 모였을까?

아직은 공개하지 못할 요소는 더 많다. 그러나 연구소 내부 요인도 외부 요인만큼이나 결정적이었다. 2013년의 민사 1심과 2심은 '이런 소송은 해서도 안 되고, 할 것도 없다'는 논조로 상대를 할 때 서류 몇 가지만 제출하면 되는데, 너무 쉽고 너무 우습다며 서류를 맡은 실무자들이 실실 웃다가 제출일을 놓쳐 버렸다. 자살골을 먹은 것이다. 그런 과정을 살피려면 이 것도 20가지는 될 만큼 따질 일들이 많다. 언젠가 다 밝혀 질 것이다. 백서로 발표를 할 생각이다. 총공회 내 최대 참사는 백 목사님의 순교가 아니라 저작권 박탈이다. 백 목사님이 더 계셨다면 우리가 더 배우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얼러 길러 ㅎㄹㅈㅅ들만 되었을 것이다. 연구소 우리부터. 실력 있는 부모로부터 받는 혜택은 한도 없다. 그런데 대개 그 혜택은 자녀를 무능하게 만든다. 그래서 마지막에 따져 보면 부모를 잘 만나나 못 만나나 같다. 공평의 원리다. 그런데 우리는 기어코 좋은 부모 좋은 스승을 만나고자 한다. 신앙의 세계만은 한 번의 길이 영원을 결정하기 때문에 놀아도 옳은 길에서 놀고, 굴러도 바른 길에서 구르고자 한다. 도둑놈이 되어도 개신교회에서 되고 싶다. 세계적 성자가 된다 해도 천주교에서 되는 것은 싫다. 꼬리가 되어도 공회에서 되고 싶다. 머리가 되어도 타 교단에서는 모셔 간다 해도 가고 싶지 않다. 신앙의 세계란, 길이 이렇게 중요하다. 소속이 중요하다. 생명이다.



최근, 쌓일 대로 쌓인 국내외의 모든 요소들이 불꽃만 튀면 바로 참화가 되어 생지옥이 될 듯하다.
최근, 아버지 설교가 아들의 개인 재산이라는 말이 총공회 내에서 찍 소리 하는 사람도 없이 결판이 날 직전이다.


참화는 돌발적으로 일어 나는 듯하다.
그러나 살펴 보면 수도 없는 요인들이 철저하게 쌓이고 준비 된 끝에 발생한다.
그 중간에 어느 하나라도 고리를 끊거나 막아서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지나 간다.
어떻게 이 노선 이 교훈의 역사적 이 보배가 이렇게 참화로 끝이 날 수 있는가?


전도서 9장
14절, 곧 어떤 작고 인구가 많지 않은 (총공회)에 큰 임금이 와서 에워싸고 큰 흉벽을 쌓고 (저작권을) 치고자 할 때에
15절, 그 성읍 가운데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 지혜로 그 성읍을 (2018년 1월 8일까지) 건진 것이라
그러나 이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16절,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혜가 힘보다 낫다마는 가난한 (연구소)의 지혜가 (다른 공회들로부터) 멸시를 받고
그 (애터지며 호소하던) 말이 신청되지 아니한다 하였노라
17절, 종용히 들리는 (연구소가 전한) 지혜자의 말이 (작은 성읍에 황제노릇하는) 우매자의 어른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18절, 지혜가 병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가치를 모르니 더 이상 맡기지 않게 되면) 한 죄인이 많은 선을 패궤케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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