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복음의 첫 문이 열릴 때마다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18.12.11
1. 한국의 교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어느 교회든지 신앙이 있는 분들은 전도를 열심히 했고, 전도만은 열심히 전도하는 분들에게 전도되는 열매가 있었다. 천국의빛을 모르고 흑암 속에 살다가 빛을 봤으니 전도라는 것은 교회의 부탁에 앞서 본능적으로 하게 되는 분야이다. 도둑이 교회를 다니면 주로 도둑님들을 데려 왔고, 주먹이 회개하면 그 교회는 갑자기 덩치들이 눈에 띄게 된다. 어쩌다 돈 많은 집에 부인이 교회를 출발하면 그 교회에는 어느 날 경제가 넘쳐 버린다. 연예인 1명이 교회를 다니게 되면서 서울 어느 교회는 마치 연예인 교회처럼 되어 당황스러웠다는 말도 있다.

1990년대가 되면서
전국의 교회들이 이전까지 하도 전도를 많이 해 놓았기 때문에 사실 새로운 전도는 엄청 줄어 드는 모습이었다. 그대신 우리 교회가 이렇게 좋고 저렇게 좋다 하여 취향에 따라 교회를 옮기는 현상이 뚜렷했고 이 시점에 초대형교회들이 등장한다. 80년대 이전의 대형교회는 불신자 중심이었다면 90년대부터는 확실하게 교회를 이동하며 한 쪽에 쏠리는 현상이 주가 된다. 이런 문제를 두고 좌파들은 교회의 재벌화라고 무조건 죄악시하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긍정적 발전적인 면도 많다. 쉽게 비판할 수는 없다.


2. 공회의 교회
(1) 백영희 목사님 생전
공회는 거의 모든 세월을 통해 기본적으로 늘 불신자 전도가 기본이었다. 공회는 원칙에 충실하다 보니 다른 교회를 다녀 본 분들에게는 교회 모습으로서는 최악에 속한다. 공회는 무조건 과거를 반복하는 천주교가 아니다. 신앙이 있기 때문에 모두가 포기하는 신앙의 근본을 지켜 낸다. 바로 그 신앙의 열심 때문에 다른 교회를 다니는 분들보다 안 믿는 분들을 전도하는 것이 당연했고 불신자 전도율은 어느 교회와 비교해도 탁월하게 높다. 참으로 좋은 면이다. 이단들은 불신자 전도 대신에 꼭 교회를 다니는 교인을 상대한다. 이 것이 이단의 증거 중 하나다. 정상적인 교회는 안 믿는 사람을 전도한다. 다른 교회를 다니는 분들은 그 교회에 맡겨 진 형제다. 그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길러 간다.

그런데 맡겨 진 형제들을 그 교회가 너무 엉뚱하게 지도를 하게 되면 믿는 길에 대한 문제가 생긴다. 이런 경우 공회 교회와 비교하거나 접하는 분들은, 믿고 천국 가는 것은 당연하나 자기의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공회로 신앙의 노선을 바꾸는 경우가 있다. 보통 교회를 옮기는 경우는 비신앙적인 원인이 대부분이다. 공회 교회도 그런 교인이 있다. 그런데 공회 교회로 옮기는 교인의 경우는 신앙적인 문제, 그 것도 아주 심각한 신앙적인 문제 때문에 이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믿기만 믿으면 같은 줄 알았으나 어떻게 믿느냐는 것에 따라 천국의 영원한 자기의 실력과 모습은 너무 달라지기 때문이다.

백 목사님 생전 공회 교회는 목사님 돌아 가시는 순간까지도 늘 이단 시비 때문에 교계에서 늘 위험하거나 이상한 곳으로 분류가 되었다. 그래서 공회 교회로 오는 분들은 다른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이동하는 그런 이유는 없다 할 정도였다. 그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공회 교회를 찾는 분들은 제대로 된 교회, 정말 자기의 평생을 바꿀 이유를 봤을 때였다. 이런 분이 1명 생기면 그 분은 주변에 많은 사람을 안내했다. 이런 문제가 생기면 교회는 자신을 돌아 보고 더 나은 교회가 되면 원인적으로 해결이 되나, 공회를 이단이라고 비판을 해서 가는 길을 막는 것이 효율적이라 생각했다. 실제 물어 보면 왜 이단인지 말을 하지 못하면서 그렇게 했던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아마 다 그렇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2) 백 목사님 사후
백 목사님 한 분이 걸어 간 길, 그 뒤를 따르는 교회와 교인들이 많아 져서 총공회가 형성 되었다. 이 점은 백 목사님이 돌아 가시는 경우 총공회의 약화나 심지어 해체를 각오할 문제가 된다. 백 목사님은 영생이 아니라 우리와 같이 잠깐 살다 가는 1명의 교인이기 때문이다. 실제 백 목사님 장례 후 공회는 5곳으로 어떤 때는 6곳으로 분열이 되었다. 또 모든 교회들이 거의 다 크게 약화 되었다. 이런 분위기를 미리 알았거나 실제 그런 진행을 겪게 되자 공회는 크게 두 길을 놓고 열띤 논쟁에 들어 간다. 실제로는 멱살을 잡고 싸웠지만 그 모습을 주먹다짐을 했다고 해도 맞고 그렇게 치열하게 논쟁을 했다 해도 맞지 싶다.

일반 교계의 모습과 내용을 본떠 그렇게 되어야 생존을 할 수 있다는 쪽이 백태영 목사님의 대구공회다. 지금 대구공회는 그 속에서 그런 주장을 반대하고 과거 모습도 필요하다는 쪽이다. 한 편으로 공회는 공회의 노선과 교훈을 지켜 내야 할 시대적 사명이 있고 이 사명은 백 목사님의 생전과 사후로 나뉠 수 없고 달라 질 것도 없다는 쪽이다. 지금 부산공회의 대세가 그렇다. 그런데 이 노선을 백 목사님 사후에도 지켜 내야 한다면, 백 목사님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백 목사님 생전에 마련 된 공회의 교훈과 노선을 확인하고 연구하고 또 그대로 살면서 외부에 소개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회의 역사성과 사명을 특별하다는 것은 다 알면서 그렇게 하지를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모를 일이다.


백 목사님 생전과 비교하면 그 사후는 인터넷 때문에 공회를 잘 소개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백 목사님 생전처럼 외부에서 공회로 들어 와 신앙 생활을 하는 분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처음 들어 온 분들은 이미 지난 날에 이 노선을 모르고 살면서 가깝게 형성된 분들이 많기 때문에 주변에 이 길을 전할 분들이 많다. 그러나 이미 오래 된 분들은 이 길에 중요성을 더 잘 알지만 이미 자기 주변에 과거 그렇게 노력을 해 왔기 때문에 이제 더 소개할 여지가 없다. 이 글을 적는 본인도 과거 주변의 많은 분들을 모시고 올 수 있었다. 그런데 초기에 그렇게 한 뒤에 본인부터 이 노선 안에서만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이제는 이 노선을 모르는 사람과는 알고 지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이 노선을 새로 알게 되는 분들이 자기 주변에 이 길을 안내하고 이로 인해 많은 분들이 이 곳을 향해 눈과 귀와 발을 움직이는 모습을 볼 때 부럽다. 그런데 저런 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일시만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때다. 주실 때 받으면 한 없이 주신다. 훗날도 가능하다 생각하고 지금 주저하면 나중에는 아무리 노력하고 싶어도 기회를 주지 않으신다.


왜 지난 날 기회를 주실, 바로 그 때에 노력하지 않았던가?
그런 후회가 없도록, 우리는 우리의 모든 면에서 늘 깨어 충성해야 하겠다는 마음 때문에 적어 본다.

오늘도 백영희 목사님의 자녀 중에 한 분이 광주고등검찰청에다 '백영희 설교는 그 자녀의 개인재산이다. 장천룡이라는 인간이 백영희 설교를 전할 때 이름만 빌려 줬다 해도 공범이다. 처벌을 하라.' 이런 취지로 다시 고소를 했다. 이미 경찰과 검찰이 조사를 수없이 한 끝에 이영인 1명만 그런 짓을 했고 불신자 기준에는 죄인이지만 이영인이 백영희 설교를 전하는 반인륜적 반복음적 반교회적 반기독교적 범죄를 할 때 이영인이 장천룡 이름을 예사로 사용을 했는데 그 이름을 썼다 해도 이영인과 장천룡의 관계로 볼 때 이영인이 때려 죽일 죄인이지 장천룡은 처벌할 그런 공범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무죄라, 이런 취지로 순천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해 버렸다. 그런데 백 목사님의 자녀는 순천검찰이 조사와 판단을 잘못했다. 장천룡이도 같은 죄인이다. 이렇게 불같이 이의를 제기하고 다시 고소를 하자 광주고등검찰에서 '장천룡, 너도 와 봐다. 다시 조사를 해 봐야 하겠다'는 통고가 왔다.


이 것이 무슨 일인고?
이 것이 소위 예배당이라는 곳에서 생겨도 되는 일인고?
소위 세계 최고라는 총공회 안에서 일어 나도 되는 일인고?
이 것이 백영희 목사님의 직계 자녀로서 선친을 위해 가장 옳고 바른 일만 한다는 분들이 해도 되는 일인고?

이런 일이 오늘도 진행 중이지만 대구공회에서는 옛날에 다 끝이 난 일이 아닌가?
지금은 모든 문제가 다 정리 되었다던데?
만의 하나 그런 일이 지금도 있다면 그 것은 두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니 총공회 목사나 공회가 개입하면 사생활 간섭이다....
이런 논리를 과연 목사가, 과연 공회 목사가, 과연 공회의 중심 목사가 그 입에 담아도 되는 말인가?



잠30:18에서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 서넛'이 있다 했는데
①공중에 날아 다니는 독수리의 자취
②반석 위로 기어다니는 뱀의 자취
③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
④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
라고 예를 들었다. 이렇게 서너 가지를 예로 적시한 다음에 한 가지를 더했다.

'음녀의 자취도 그러하니라 그가 먹고 그 입을 씻음 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치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총공회를 입에 담은 사람이, 공회를 전한다면서 목사 이름을 가진 사람이, 이 노선은 특별한 사명이 있다고 주장한 입이
만일 돈 문제로 둘이 싸우는 것이라는 식으로 말을 하면서 나는 상관 없는 일이라 하면 '음녀의 자취'에 들어 가지 않을까. 신앙의 지조가 있고는 입에 담을 수가 없지 않을까!

다른 분들의 의견을 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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