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이도영 목사님

작성자
ylee
작성일
2018.11.29
이도영 목사님께서 돌아 가셨다.
연구소 우리들과 맺어 주신 이야기를 되짚어 보며 오늘 이후의 우리 신앙에 도움을 받고 싶다.

1952년생, 67세의 비교적 이른 나이다. 이 연구소와 관계가 참으로 많고 깊다. 연구소의 대부분 목회자들과 어린 시절에 신앙의 선배로 함께 했다. 외부로는 최근까지 부공2에서 최후의 동지로 함께 한 분들이 많다. 그러나 역사나 내면적으로 보면 이 목사님은 부공3의 이 연구소 초기 인물이다. 늘 우리와 깊은 연락을 가졌고, 제일 마지막으로는 2017년에 2가지 업무로 최선을 다해 도와 주신 분이다. 이 곳을 운영하는 회원과 이 곳을 방문하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분들이 계신다면 그 분의 충성을 감사하면 좋겠다. 현재 총공회는 일제 말기의 독립운동 때와 같아서 마음껏 발표하지 못해 아쉽다.



(집안 내력)
이도영 목사님의 부친은 거창 창동교회 이준원 장로님이다. 이 장로님의 조부가 '산곡의 백합화 - 순교자 변판원' 29쪽의 '원기동교회'를 설립했다. 1909년에 교회를 설립했으니 전국 공회 교회 중에 설립연도가 제일 오래 됐다. 개명교회가 한국교회사적으로는 1905년에 설립됐지만 공회사로서는 교회가 없어지고 백 목사님이 1939년에 새로 개척하고 개명교회라 했다고 본다. 1931년에 이도영 목사님의 할머니가 봉산교회를 개척하는 이영인 목사 어른들을 전도한다. 밥 한 그릇이 예수 믿는 복으로 알고 출발했다. 그 봉산교인들이 거창읍으로 이동하며 창동교회를 세웠고 그들 자녀들이 다시 부산의 서부교회로 가서 이 노선의 노선과 교훈을 전담하는 연구소의 주력이 된다. 연구소에 추가되는 중요 인물들은 모두 이들과 특별한 관계다.

그래서 연구소 핵심 직원들은 대대로 이도영 목사님과 그 집안을 대할 때 '밥 한 그릇에 천국을 전해 준' 그 은혜를 잊지 못한다. 이 목사님의 형제들은 창동교회를 함께 거친 뒤 현재 창천교회의 주력 교인들이다. 이 목사님은 1971년경 서부교회로 가서 주력 청년이 되었고 가끔 창동교회를 다녀 가게 되면 온 교회의 분위기를 바꿔 놓을 만큼 신앙의 역량이 탁월했다. 대학을 졸업했고 안양의 안산교회에 교인이었으나 부인이 이진헌 목사님의 이인수 따님이어서 목회 출발은 늘 준비 된 상태였다. 이진헌 목사님은 '나와 교회로부터 밥을 먹는 값으로 너희는 모두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는 일방적 언약을 시행하는 분이다. 강제하지는 못하지만 첫 따님은 순종적이어서 늘 준비였을 것이다. 삼봉산 칼바위의 이 쪽이 봉산교회, 저 쪽이 원기동교회, 맞은 편 작은 산을 넘으면 개명교회다.

공회사를 아는 사람들은 연구소의 갈릴리 출신을 봉산교회로 잡는다. 백 목사님의 신앙 출발 때부터 직접 지도를 받으면서 변판원 선생님의 순교 신앙의 흐름과 삼봉산 칼바위의 기도 신앙을 기본 바탕으로 주신 이유는 연구소의 활동이 지식 탐구이므로 사전에 가장 험한 현실이 필요했다. 참고로 개명 출신들은 이 노선과 교훈을 지켜 내는 일에 나선 분이 전혀 없다. 오히려 이 노선과 교훈을 저작권 등으로 단절하는 주력이 되어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 언젠가 '공회사의 지역 요인'을 연구하면 가장 중요하게 떠오를 문제다.


(연구소와 관계)
1987년 8월 15일, 백 목사님의 후계자 서영준 목사님이 사고로 돌아 갑니다. 백 목사님의 사후가 임박했고 후계자가 없는 상황에서, 연구소는 서부교회 주일학교 장영목 총무와 특수반 이치영 부장, 연구소 이민영 소장이 백 목사님 사후의 이 노선을 지켜 내기로 19일경 약속합니다. 89년 8월의 백 목사님 장례식을 시작으로 향후 1년간 공회의 원래를 지켜 내는 부산공회 중심은 이 날의 약속대로 진행 되었습니다.

이 약속이 진행 되는 과정에 광양의 공회 교회가 대구공회에 서게 되자 일부 교인이 부산공회로 개척을 하기 위해 이영인 목사를 찾아 오게 되고, 안양에 교인으로 계셨던 이도영 목사님이 당시 교인이었으나 공회의 제일 선배가 될 분이고 신앙의 연륜과 실력은 앞서 있는 분이어서 1990년 바로 광양시청 부근에 개척을 합니다. 초기에 경제의 어려움도 있고 또 설교를 전념하기 위해 연구소는 설교록을 편찬하는 기본 자료와 함께 별도의 수고비를 지출합니다. 단기간에 교회는 크게 부흥을 하게 되고, 공회로부터 받던 지원을 끊고 자립을 원하게 되자 경제에 밝은 교인이 반대를 하면서 이 목사님은 추가 갈등을 피하기 위해 교회를 떠납니다. 이진헌 목사님은 어떤 이유든지 첫 교회를 떠난 사유를 경험으로 생각하여 서울의 하계동교회로 불렀고 오늘 돌아 가실 때까지 처음에는 부목으로 뒤에는 담임 목회자로 세워 충성하게 했습니다.

이진헌 목사님 밑에서 목회를 하려면 목회자는 김현봉 목사님과 백영희 목사님을 합해 놓은 정도로 어렵습니다. 충성이 지나쳐 일찍 돌아 가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순직일 듯합니다. 1990년 9월부터 연구소는 이진헌 이도영 이민영 이영인 이치영 이신영 장영목 목사님들이 당시 목사 조사 일반 교인의 입장으로 함께 모여 부산공회는 절대로 희망이 없으니 우리가 중심을 잡고 나간다고 앿혹을 했습니다. 서로 성씨가 다른데도 우연의 일치로 '이'라는 성씨와 '영'이라는 이름자가 공통이 되어 외부에서는 전부가 한 가족으로 보나, 이진헌 이도영 이영인의 3인은 전혀 집안이 다릅니다. '이' 노선을 '영'원토록! 이런 정신으로 나가라고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1990년대가 끝나는 시점에 부산공회는 부공1의 백순희 사모님과 서부교회 중간반 4층의 백명희 사모님이 결별하면서 부산공회의 교권이 비게 되고, 이 틈을 재빨리 포착하여 김 목사님들이 서영호 목사님과 김효순 권사님이라는 비공회 인물을 중심에 두고 '목사 안수'를 끈으로 삼아 부산공회를 재편해 버립니다. 마치 박근혜 정권이 문제는 많아도 설마 좌파로 정권이 넘어 갈 정도는 아니었으나 박 정권 내부의 무한 투쟁이 벌어 지면서 좌파 정권에게 상을 차려 바친 꼴이 된 것처럼 됩니다. 부공2는 이 것을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라 하는데 그 섭리는 부공2를 불행하게 버리는 섭리인데 정권을 잡았으니 세상처럼 복의 섭리로 봅니다.

이진헌 목사님은 이 와중에 1998년, 부산연구소와 신풍연구소의 관계가 끝날 때 이민영 목사님의 입장이 애매하자 부산연구소에 서고, 신풍연구소는 오늘까지 내려 왔으며 이후 이진헌 목사님은 부공2에 속하고 오늘까지 내려 옵니다. 이도영 목사님은 목회의 스승으로 이진헌 목사님과 반하는 길은 걷지 않았으나 그 중심은 마지막까지 우리와 함께 했습니다. 오늘도 모든 공회에는 이런 분들이 적지 않고, 이 곳의 저력은 온 몸을 드러 낸 곳이 평소 부공3으로 표시할 뿐이며 내면으로는 이 곳에 늘 마음을 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신앙은 개별성이 있고 공회는 조직화에 나서지 않기 때문에 볼 수 없는 이런 공회를 참 공회로 생각하고 왔습니다.



많은 글로 소개하고 짚어 봐야 할 분이나 이 정도로 일단 가신 분의 장례 기간을 보냅니다.
이 목사님의 장점 중에 장점은 늘 사람이 많이 따른다는 점입니다. 주일학교 반사 때부터 개척 때까지 그 분이 가는 곳은 불신자가 믿기로 작정을 하고 또 믿는 분들이 그 분을 따라 모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아 주는 분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로 출발하면 교회는 크게 잘 부흥될 것으로 봤고 실제 그러했습니다. 이진헌 목사님께 들어 간 뒤에는 이진헌 목사님의 목회 방향 때문에 부흥보다는 극단적인 절제와 충성으로 자신을 도야하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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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09 17:38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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