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산헤립이 요구한 은 300, 금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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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작성일
2018.11.16
(히스기야와 오늘 세상 형편)
지금까지 공회 내에 알려 진 소식을 가지고 히스기야의 결정을 살펴 본다. 앗수르가 침공하자 히스기야는 돈으로 교회를 지켜 보려 했다. 그런데 줘서 아니되는 성전의 문에 입힌 금까지 주고서도 해결을 하지 못했다. 줄 필요도 없고 줘서 안 되는 것을 주고라도 당장의 평화를 원했으나 돈도 잃고 평화도 잃었다. 요즘 우리 사회에 벌어 지는 북핵 논쟁과도 묘하게 맞아 떨어 진다. 북한을 돈으로 달래면 해결이 된다는 쪽이 있다. 아예 힘으로 막아야 한다는 쪽이 있다. 이 문제를 더 거론하면 법원에서 개입하여 화를 낼 것 같다. 세상과 다툴 일은 아니고 또 이 정도 글이면 다 알아 들을 것이니 그냥 넘어 간다.


(평화를 팔러 온 앗수르)
열왕기하 18장에서 히스기야는 최악의 아버지 아하스를 이어 왕이 되자 나라의 잘못된 죄를 전부 정리를 해 버린다. 그리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순종한다. 하나님은 이런 히스기야의 앞을 열어 주신다. 대하 29장에서는 이 과정을 아주 상세히 설명하고 왕하 18장에서는 단 몇 줄로 줄인다. 기록을 줄인 왕하 18장과 세밀히 적은 대하 29장 이하를 비교해 보면 한 곳에서만 봐서 잘 알 수 없는 내용들이 명확해 진다.

히스기야가 출발부터 제대로 정리해 버리고 생사를 걸고 출발을 한 모습은 완성이 아니라 자라 가는 과정이었다. 하나님께서 중간고사를 치르듯이 앗수르 대왕 산헤립을 불러 대군을 몰아 왔다. 먼저 10개 지파의 북쪽 이스라엘을 다 쓸어 버리고 이제 2개 지파의 유다를 향했다. 예루살렘을 향해 오는 소식을 듣자 히스기야는 라기스로 사람을 보내고 앗수르에게 대든 것을 자복하고 용서를 구한다. 산헤립은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요구한다.

돈으로 평화를 사라는 것이다. 불신자들도 세상은 '힘'이라고 한다. 친구나 사회 내에서는 힘을 좀 감추고 산다. 힘을 가진 쪽에서 자기가 편하고 싶어 칼을 칼집에 넣는다. 심지어 칼집조차 보이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집안인 국가들의 세계인 국제 관계에서는 없는 힘도 있는 것처럼 과장을 하면서 과시를 한다. 실제 생활이 편하고 보기 좋게 하려면 힘을 기르는 한편 그 힘을 과시한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국제관계는 힘의 세계라 한다. 그리고 돈으로 평화를 사는 것은 사자와의 평화협상이라고 한다. 조용히 죽느냐 죽기를 각오하고 도망을 가느냐 둘 중에 하나다. 도망을 가면 살 수 있으나 협상을 하면 다 죽는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모신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렸지만 앗수르 왕과 비교할 때 자기 하나님은 힘이 없다고 봤다. 그래서 랍사게가 요구하는 대로 은과 금을 내줬다. 앗수르에게 평화를 구입한 것이다.


(매매가 금지 된 거래)
히스기야가 일반 세금에서 돈을 모아서 평화를 구입한 것이면 이 것은 교회 문제가 아니라 국제관계다. 평화를 돈으로 살 수는 없으나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우선 시간을 벌고 방어에 나설 수 있다. 작전상 줄 수도 있다. 그런데 앗수르가 요구한 금액은 성전의 문짝에 금까지 벗겨 줘야 한다. 이 것은 작전상 응하고 싶다 해도 내어 줄 수가 없는 문제다. 성전은 왕이 손을 댈 수가 없는 곳이다. 히스기야는 왕궁의 보물도 내어 줬다. 이 것은 명확하지는 않으나 성경이 굳이 왕궁 곳간까지 털어 줬다고 한 것은 그냥 넘어 갈 수 없다. 구약의 왕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직책이니 성전은 제사장으로 왕궁은 제사장이 해결해 놓은 백성을 책임 지는 목회의 핵심이다. 구원 운동에 사용해야 할 것으로 앗수르에게 내어 줄 수 있느냐. 애매한 면이 있지만 안 된다고 해석해도 될 만한 부분이다. 어쨌든 '성전'이 표시 된 이상 이 매매는 금과 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성전까지 털어서 줘야 하기 때문에 줄 수가 없다.

히스기야는 금지 된 거래를 했다. 그리고 평화를 사지도 못했다. 헛일만 한 것이다. 백영희 설교는 자녀들의 사유 재산이라 한다. 그들의 말이 맞다면 이 곳이 도적질을 하니 죄를 그만 짓고 옳은 사람이 되라는 요구다. 그렇다면 저작권 고소는 그 형태가 교회 소송이라는 부끄러운 일이나 그 내용은 복음 운동이다. 바로 그 정신으로 고소하고 있을 것이다. 그 정신이 없다면 그렇다고 말이라도 할 듯하다. 그런데 백영희 설교를 개인 재산이라 주장하면 죄가 된다는 입장에 있다면 저작권으로 고소하는 일은 앗수르의 공격과 같다. 둘 중에 이 글은 후자 입장에서 이어 나간다.


(목사의 설교를 두고 시비가 있다면)
백 목사님은 그렇게 살지 않았으나 자녀는 부친과 다를 수 있다. 저작권이라는 세상 법으로 교회 안에 복음을 묶어 놓았다. 돈을 요구했다면 부친의 수고비라 생각하고 또 자녀의 상실감과 박탈감을 고려해서 있는 돈을 다 주고라도 살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요구하는 것이 교회가 내어 줄 수 없는 성전의 문에 입힌 금을 포함한다면 이 것은 무조건 거절할 수밖에 없다. 만일 총공회장을 시켜 달라거나, 교회 인사권을 요구하거나, 교리를 해석할 권리를 달라거나, 사경회의 강사를 시켜 달라 거나, 교단 운영권을 요구하게 된다면 이는 거래를 시작할 수도 없다. 어떤 구체적인 것을 요구하지 않고 그냥 한 마디로 줄여서 부친이 서부교회와 총공회 전체를 지도했듯이 만일 그런 지도권을 암시했다면 우리는 '교권'을 요구했다고 표현할 수 있다. 만일 교권을 주면 저작권을 허락하겠다고 한다면 응할 수 있을까? 줄 수가 없다. 그런데도 묘하다. 교권을 실제 요구했다면, 그리고 '교권'은 그렇게 넘여 주는 것이 아니라고 거절을 했다면. 그 다음부터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교권을 두고 서로 싸운다'라면서 둘을 함께 비판할 것이다. 누가 머리가 되느냐를 가지고 싸웠다는 뜻이다. 요구를 하는 쪽이 자살을 할 테니 허락을 해 달라는 말도 되지 않는 요구를 했다고 치고, 내가 어떻게 당신의 자살을 허락할 수 있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이렇게 우리는 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우스꽝스런 대화를 제3자가 요약을 하면 '자살 문제로 둘이 싸운다'고 해 버린다. 그렇게 되면 자살을 허락할 수 없다는 나의 입장은 마치 상대방에게 자살을 어느 정도 하게 만든 사람처럼 남에게 인식 될 수가 있다.

설교도 개인 것이라고 고소가 들어 오면 양보하면 된다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이면 쉽다. 저작권으로 얻는 수입과 회장이 되어 얻는 이익을 견주어 남는 장사를 하면 된다. 교회는? 그럴 수 없다. 줄 수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먼저 따져 봐야 한다.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남는 장사를 하면 된다. 줄 수 없는 것이면 처음부터 계산을 하지 않는다.

설교가 개인 재산이라는 문제를 두고 논란이 생기자 연구소를 운영하던 핵심들은 우선 둘로 의견이 나뉜다. 줄 수 있으니 주자는 쪽이 있었다. 심지어 가질 것도 없으니 주자는 주장을 했다. 더 나아가 주지 않는다고 내부에서 화를 내며 줄 수 없다는 쪽의 교인들의 주택과 개인 묘소까지 고발을 해버리며 압박하는 일에 힘을 모아 주고 있다. 정말일까? 그 어느 날 밝혀 지겠지만 이 글은 히스기야의 자세와 결과를 가지고 오늘 우리의 형편과 결정을 참고하고자 한다. 총공회 내의 가장 많은 교회들과 인재들이 모인 대구공회측과 부산공회측은 얼마든지 내 줄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다는 아니겠지만 거의 다 그렇다. 실제 마음이 그런지 겁이 나서 나서지 못하게 되자 목사의 양심에 찔려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인지 애매하다. 하여튼 저작권으로 고소하는 분들과 고소 당하는 연구소측을 두고 표현하기를 '둘이 싸우는 개인 문제'라고 한다. 그렇다면 줄 수 있는 것을 주지 않으려 서로 싸운다는 것이다. 불신자라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할 문제를 가지고 공회 내에서 저작권을 개인 재산으로 요구하는 것을 응하지 못하겠다는데 응하지 못한다는 사람을 지금 '줄 수 있는 것을 가지고 괜히 싸우고 있다'고 도매금으로 매장을 하고 있다. 직접 전화를 해서 '둘이 싸운다는데 그 것은 3자 문제니 내가 알 바는 없고, 그런데 설교록 좀 달라'고 한다. 이 사람이 유치원생인가? 소위 진리를 가르치는 시대의 선지자라는 사람이!


(히스기야의 훗날)
히스기야는 16절에서 은 300과 금 30 달란트를 준다. 그런데 17절에서 앗수르는 그 돈을 받기만 하고 그 다음 예루살렘을 향해 그대로 진격을 해버린다. 괜히 준 것이다. 총공회 모든 목사님들은 은 300과 금 30을 주면 돌아 가지 않겠느냐는 쪽이다. 이 연구소 관련자들은 줄 수 있는 것을 달라 한다면 벌써 줬을 것이라 한다. 백영희 설교 자료의 값은 가진 것을 다 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 뭐든지 주겠다 했다.

히스기야가 성전의 문에 입힌 금이라도 내어 줄 수 있을까? 앗수르의 공격으로부터 무고한 백성과 교회를 지키기 위해. 내어 줘야 한다는 쪽도 있다. 연구소 측은 힘이 없어 뺏기는 것은 몰라도 성전의 금은 스스로 내어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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