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논리 싸움에서 지면 행위 싸움은 볼 것도 없다. - '1인 예배 허용'이라는 표현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1.01.14
최근 방역 사태를 두고 교계의 제일 보수적이면서도 개혁적인 곳을 자처하는 언론에 나온 글을 인용한다.


(보수 언론의 반박)
... ‘신앙의 자유’에 관한 문제이다, ‘예배의 자유’에 관한 문제이다.
실제로 방역단계가 3단계로 격상되면 현재 진행 중인 온라인예배도 불가능해질 수 있다.
정부 방역지침에 따르면 3단계가 되었을 때 유독 종교단체에 한해서 1인 영상만 가능하다고 정해놓았다.  
영상 촬영부터 출연까지 혼자 하라? 사실상 온라인예배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정부의 지침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면 소위 비대면예배도 포기해야 할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이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정부의 3단계 조처란 '교회가 실시간 예배를 방송하기 위해 예배당에 1인만 출입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 언론의 반박 논리는 '1인이 어떻게 촬영부터 출연까지 혼자 할 수 있느냐? 온라인 예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 상황을 보면)
지금 실시간 장비는 목사 1명이 강단에 서면 나머지 촬영과 온라인 송출은 원격으로 가능하다.
심지어 휴대폰으로도 요즘 1인 동영상 송출을 실시간으로 내 보낼 수 있다. 기술적 문제는 없다.
그렇다면 '방역 3단계가 예배당의 출입을 1인으로 제한한다면 예배 송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논리는 이해할 수 없다.
원격 설비가 없는 교회는 화면의 질이 떨어 지고 또 설비가 충분해도 찬양이나 다른 사람의 순서를 빼는 불편을 말해야 한다.



(반박에 아쉬운 것은)
1인 예배를 허용한다는 말은 예배당 출입의 전면 금지라고 말을 바꾸어 정부를 논박해야 한다.
민법에 부부는 앞으로 2인 부부를 허용하지 않고 1인 부부만 허용하겠다고 한다면 이는 '허용'이 아니라 '금지'다.
1인 부부가 있는가? 인 부부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면 금지로 들리니까 1인 부부만 허락한다며 '허용'을 내세운 것이다.

코로나 감염 때문에 사람의 접촉을 전면 금지하려면 대한민국의 모든 건물에 1인만 있으라고 조처하면 된다.
더 확실하게 통제를 하려면 대한민국 국토에 1인만 있고 나머지를 전부 해외로 보내면 대한민국의 방역은 100% 가능하다.
예배당에 2인까지를 허용한다면 제한이 극심하지만 일단 '허용'은 허용이다.
예배당에 1인만 허용한다는 말은 출입 금지라는 뜻이다.

출입을 금지하는 이유가 건축물의 붕괴 때문이라면 1인 출입도 금지할 수 있다.
접촉 때문에 출입을 금지할 때는 1인 출입은 전면 출입 금지에 해당한다. 2인 출입부터가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 된다.
마치 비대면 예배를 허용한다는 말은 한국 교계의 예배는 전폐 시킨다는 말이다. 금지인데 '허용'으로 포장한 것이다.
조삼모사란 바로 이 때 사용하는 말이다.

'아침 3개 저녁 4개 = 아침 4개 저녁 3개'

하루 8개를 하루 7개로 줄이는데 아침만 1개를 줄여 3개를 주고 저녁에는 예전처럼 4개 그대로 준다!
이렇게 당장 손해 볼 말을 던진다. 원숭이들의 반발을 노리고 미끼를 던진 것이다. 난리가 나자 순서를 바꾸고 끝을 냈다.
원숭이들은 4개에 만족하고 집단 시위가 성공을 했다고 행복해 한다.
주인은 사료는 원하는 대로 줄이고 원숭이 마음을 편하게 하여 사료 1개 준 것 이상으로 화가 나서 감량 되는 것은 막았다.


귀신과 좌파와 바이러스와 기독교 내 진보나 자유주의 신앙가들의 공통점은 건설을 할 줄 모른다.
오로지 남이 쌓아 놓은 것을 빼 먹을 줄만 안다. 마지막에 다 털어 먹고 나면 또 털어 먹을 곳을 찾아 나선다.

세상의 우파와 오늘의 보수 세력은 도둑ㄴ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훔치는 수고라도 한다.
세상의 좌파와 교회의 귀신은 훔치는 수고조차 하지 않는다. 양심적이어서? 아니다. 훔쳐 온 것만 빼 먹고 훔친 것을 욕한다.
우파와 보수 세력은 도둑질하던 방향만 바꾸면 바른 방향으로 건설을 할 수 있다. 또 어느 정도 배가 부르면 도둑질은 멈춘다.
귀신과 좌파와 사회주의와 교회 내의 진보란 방향을 바꾸어도 건설이 없다. 박멸의 대상이지 교화의 대상이 아니다.
애초부터 남을 욕해서 남의 것을 갈취해서 먹고 사는 한 가지만 할 줄 알기 때문이다. 역사가 그렇지 않은가?


비록 타락한 세상이라 해도
자연 계시의 이치에 맞게 사는 것이 우파와 오늘의 보수다. 역사의 보수는 여기서 빼야 한다.
사자는 맹수성을 가질 때 사자답다. 토끼는 초식일 때 토끼답다. 이 것을 자연 계시의 이치에 맞는 우파라고 표현한다.
토끼가 풀이 불쌍해서 육식을 하고, 사자가 토끼를 아낀다며 초식으로 돌아 서면 광우병처럼 재앙이 몰려 온다.
죄악의 세상에 해결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님이 세상을 정리하는 그 날까지 세상은 세상다운 것이 그래도 낫다.

인체에 바이러스와
교회에 진보적 자유주의 신학과
우리 사회에 사회주의 좌측의 운동이라는 것은

무조건 빼 버리면 인체와 교회와 우리 사회가 각각 자기 수준에서는 나아 지지 않을까?
이 곳에 방문하는 이들은 한국 교회의 보수 우파 중에서도 가장 골수에 가까울 사람이거나 그런 성향을 원한다고 본다.
그런데 세상 정치 문제만 나오면 갑자기 자기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가룟 유다라도 옹호를 하는 모습을 본다.

유다가 마지막 주님을 팔러 나갈 때 왜 주님이 떡을 먹여 주었나? 주님의 사회적 책임이 있다? 그런 식이다.
유다가 배가 터져 죽을 때 주님은 원수를 사랑함으로 그를 무병 장수하게 하지 않았다며 보수 신앙을 비판한다.
논리를 이렇게 하고 나오려면 종교를 없애려 했던 막스 레닌을 따라 가고 지금 평양으로 가면 맞을 듯하다.
전체 6

  • 2021-01-16 12:08
    마녀 사냥처럼 일곱 머리 열뿔 짐승의 표적이 될 수도 있는데 제가 괜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80년대 서부교회 사경회를 인도하실 때 백목사님이 들으시다가 급하게 중단시키신 것처럼 목회 차원의 말 한마디가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가다가 혹시나 대적의 깊은 속 은밀한 비밀을 드러나게 하여 안위가 위태해지실까 두렵습니다 순생을 넘어 순교를 허락하시는 과정이라면 말리는 제가 역적 베드로가 되겠지만,

    사회적으로 민감하게 이슈화되고 있는 부분은 한번 정도 숨을 고르고 묵히고 익힌 다음 이목의 관심과 집중이 사그라들 때쯤 돌리고 돌려 요한계시록의 상징처럼 우회하여 거론되면 어떨까 조심스럽게 의견을 고합니다 주제 넘고 외람된 의견일 수도 있겠지만 만에 하나 욥기에서의 음흉한 사단의 역사처럼 하나님의 종을 잃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엔 자라가고 종을 통해 은혜 받고 배워야 될 제 신앙길이 너무나도 멀고 아직은 험난합니다.

    • 2021-01-16 20:33
      잘 새기겠습니다. 계시록의 상징이 그냥 상징이 아니고 또 백 목사님이 생전에 강하게 설명한 적도 있지만 매번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현재 그렇게 되는 것을 보셨다면 다른 분의 목격이 당사자의 암산보다는 더 객관적일 것입니다.

  • 2021-01-17 04:29
    참으로 죄송스럽고 송구합니다.

    사도행전 21:10-14절 말씀처럼 교인 입장에서는 착각일 수 있으나 사지로 끌려드는 현실이라면 당연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할 수 밖에 없고 목회자 입장에서는 주님이 주신 사명이 있으니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선지자의 외침이 잠자는 신앙을 깨워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는 있겠지만 제게는 제 신앙이 먼저입니다 1989년 주일 새벽 백목사님을 데려가신 것처럼 또 다시 주의 종을 데려가신다면 저는 부모님 장례 치르고 더욱 철이 들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주의 종을 통해 배우고 익히고 책망 받고 지도 받아야 것들이 너무나도, 너무나도 많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공회 지도자 한 사람의 생명에 수백, 수천, 수만의 목숨이 달려 있나이다 부디 후일을 도모하소서.

    忠臣忠言諫言

  • 2021-01-17 19:37
    신5:32에 따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하겠는데

    5.18 배후를 세세하게 설명하려는 순간 당시 목사님은 이명교 사찰을 통해 쪽지를 전달하고 중단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백 목사님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더 극단적인 표현이 많았습니다. 어쨌든 89년 1월의 사경회에서 너무 심하지 않게 했음은 사실입니다.

    89년 1월의 사경회 강사는 그 일 직후에 백 목사님께 문익환의 평양 방문을 중심으로 너무 강하게 설교를 하는 것은 세례 요한처럼 세상 일에 간섭하다 허무하게 죽는 결과가 나온다면 자제를 부탁합니다. 목사님은 '나는 세례 요한과 경우가 다르다'고 했습니다.

    전체 방향은 어렵지 않은데 지금이 바로 돌들이라도 소리를 지를 때인가, 지금은 잠잠할 때인가?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니다. 그래서 너무 과하다 하는 분들의 부탁이 진심을 담았을 때는 조심을 하고 있고, 또 모두가 고용하게 거룩하게 잠이 들어 교계는 물론 공회까지 모듬으로 사자 입 속에 들어 갈 때는 참았던 말을 합니다. 영안 밝은 시대의 종이 계실 때는 참 쉬웠는데...

  • 2021-01-18 03:35
    선견지명이 없어 탄식입니다.

    현재 돌아가는 세상 사건 중, 과거 5.18처럼 뒤에 배후를 지목하게 되고 이것이 반복되면 죽음을 각오하는 순교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은 필연으로 보여집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과 백목사님의 순교의 경우가 다르듯이 어떤 사람은 목회직을 포기해라는 말을 들어야 정신을 차리고 어떤 자는 목회를 해야 현재의 부족함을 보충하고 과거의 과오를 고칠 수 있기에, 사람마다 사람에 따라 지도하는 방식과 방법을 달리 해야 하듯 (예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골프할 때 땅, 지면의 상태에 따라 여러 다양한 아이언을 돌아가며 연장?을 다루듯...) 앞선 분을 모시고 있는 저로서는 담당님의 글 속에는 아슬아슬한 살얼음판의 표현들이 느껴집니다.


    제가 오판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예레미야 같은 바벨론 포로를 종용하는 눈물의 호소이신지 아니면 세례 요한처럼 백목사님 표현을 빌리자면 쓸데없이 나선 개죽음인지 저로서는 모르겠습니다.(고전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며칠 전 설교하실 때와 마찬가지로 저도 같은 심정입니다. 저주를 받으라는 말이 아니라 저주를 받지 말고 화를 피하라는 표현인 것처럼) 전자면 다행이지만 만에 하나, 혹여 후자이면 어쩌나? 발발 동동 구릅니다. 백목사님 생전에 세례 요한의 죽음 설교 직후 여러 반응들을 보아 많은 교인들이 착각했던 것처럼 기우일 수도 있는데 선지자의 거침없는 외침이라 하더라도 때와 기한만 고려했을 때 지금이 맞는지?


    지금으로서는 담당님의 나이로 보나! 부공3 교인들 성장세로 보나! 청년들 결혼 추진을 보나! 여러모로 볼 때 해야 할 일들이 첩첩산중, 담당님이 관여하지 않고서는 해결 안되는 일들이, 더 건설적인 일들이 너무나도 많아 보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가 담당님의 장중을 붙들고 계심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이 말 안하면 혹자는 우상화한다 오해할까 하여 사도 바울의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것을 자랑한 것처럼 부득불 사족을 붙입니다. 결론적으로 남은 어린 양떼들을 위해 남단글을 적는 집중력의 관심을 조금만 다른 곳으로 돌려 후일을 도모하심이 어떨런지 간언을 올린 것인데... 노파심에 기도하다 몇자 적는다는 것이 글이 길어지고 악에서 발원된 자기 중심적인 글이 되어 안방까지 들어가서 이불을 들쑤신 것 같은 무거운 마음이 들어 월권이 된 것이 분명합니다. 소인의 무례함을 용서하소서.

  • 2021-01-18 13:14
    지금 서부교회가 초보적인 대처에 계속 실패하는 이유는
    1. 생명에 대한 수고가 없거나 2. 이 노선에 대한 애착이 없어 발생하고 있습니다.

    생명에 대한 수고가 없다는 것은 한 사람을 서부교회 교인으로 만들기 위해 정말 땀 흘리고 목숨까지 다 바친 사람은 지금 교인 중에는 거의 없거나 먼먼 옛날 일이 되어 현재 교인들과의 관계가 그런 상황이라는 뜻이고, 몇 분은 전도를 했고 교인의 애착은 있는데 노선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습니다. 세상과 신학의 두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 기르는 생모가 이 아이의 살아 갈 앞 날까지 염려하게 되면 아무리 무식해도 지혜가 발동하면서 이런 사태에 대처가 가능해 집니다.

    서부교회의 분열 과정에 세계적 초대형 교회가 국내 지방 도시의 중소형으로 내려 앉기까지 현재 교회 안에 있는 분들은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분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최고위에 있는 핵심들은 자기의 근무지와 월급 문제가 나오면 발끈했고 교회가 두 동강 세 동강이 나면서 난파선으로부터 튀쳐 나가거나 튕겨 나가는 수 많은 사람들은 보면서 '뭔 일인고?' '저 사람이 움직이면 나의 이해관계가 어찌될꼬?' 이 정도였습니다.

    솔로몬이 아이 둘에게 반반씩 나누라며 칼을 드는 순간을 현재 서부교회 지도부 정도라면 대부분이 산 아이가 두 동강 날 때는 멀뚱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제 죽은 제 아들 두 동강 낸다니까 전국이 보는 앞에서 모성애를 제대로 보이고 있습니다. 이 장면만 보면 한국 교회의 최고 빛이 되는 순간이고, 이 사건 앞에 다른 일들을 아는 분들이 볼 때는 '값한다...'라며 중얼 거릴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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