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교회의 제도 변경에 따른 문제점 - 가정교회, 목장 목회를 중심으로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0.12.15
출처 : 문답 게시판 5129번, 2020.12.11.
제목 : 가정교회 목장모임운용의 장단점



<발제>

10여년 훨씬 전부터 가정교회라는 시스템으로 교파를 초월하여 목장모임을 갖는 교회들이 많이지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교회별로 배우기 위해 전국단위로 세미나도 정기적으로 개최,참석하며 교파를 떠나 다같이 모여 배우고 각자 교회에 도입하여 가정교회로 전환하는 교회들이 있는걸로 압니다.

가정교회의 세축(예배,삶공부,목장)사역이 톱니바퀴처럼 잘 굴러가면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한다고 믿고,평신도 위주로 리더를 키워나갑니다.

공회의 경우 구역에 해당 되는 교회 내 모임을 조직하고 식사 친교의 기회를 따로 가지게 됩니다.
교회의 예배 중심으로 운영되는 공회 교회와 비교할 때 장단점을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내>

10여년 훨씬 전부터 가정교회 시스템 교파 초월 목장모임 교회
전국단위 세미나 정기적 개최 참석 가정교회 전환 교회들
가정교회 세 축 (예배, 삶공부, 목장) 사역이 톱니바퀴처럼 교회 건강 성장 평신도 리더 양성
공회 구역처럼 교회 내 모임 조직, 식사 친교, 예배 중심 공회와 때 장단점감사하겠습니다.

(제도와 운영)
세상이든 교회든 인간 세계의 제도라는 것은 어떤 제도든지 제도 자체에는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공회의 제도는 교회사의 모든 제도를 검토하고 나온 것이라 탁월한 것은 사실이나 이 역시 또 하나의 제도입니다.
제도가 아주 불편해도 운영을 잘하면 괜찮고 아주 좋은 제도라도 운영을 잘못하면 불편한 제도보다 못하게 됩니다.
만일 더 나은 제도를 가지고 운영까지 잘한다면 비록 세상에 살고 있으나 하늘 나라를 짐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가정교회)
가정교회라는 운영법이 한 때 한국교회에 대세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전성기에 비해서 좀 덜한 듯합니다.
한 때 학생신앙운동, 교회연합운동, 개교회운동, 다락방, 셀운동, 이슬비, 제자훈련 등이 교계를 뒤흔들었습니다.
초기에는 한 운동 한 제도가 지나가면 새 운동이 대신했으나 최근에는 지나 간 수 많은 것이 섞여 있는 듯합니다.
가정교회가 10여년 전 유행하자 주요 신학자들이 교회를 허문다며 정죄하기도 했으나 괜한 비판으로 보입니다.
가정교회만이 부흥의 전부는 아니며 또한 침체된 교회를 깨우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어떤 제도도 기존 제도의 한계 때문에 보완책으로 나옵니다. 기존 제도가 좋은데 다른 시도를 할 리가 없습니다.
마찬 가지로 가정교회도 현재로는 효율적일 수 있으나 이 제도 역시 변할 수 있고 변하면 좋을 수도 있겠습니다.


(구역 제도)
지금은 변형이 되어 초기 모습을 유지하는 교회가 거의 없지만 한국 교회는 역사적으로 구역제도가 있었습니다. 구역제도는 2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한 지역 가정들을 단위로 묶고, 둘째는 금요일 저녁에 모였습니다. 선교 초기 교인들은 주변의 불신 사회에서 고초가 많았습니다. 생활 거리의 교인들이 서로 돕고 살폈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에 구역 별로 가정을 돌며 예배와 음식과 신앙 형편을 세세히 살피며 서로 도울 수 있었습니다.

(공회의 구역 제도)
① 지역 대신 신앙 관계의 구역
공회는 다른 교회처럼 구역 제도를 가졌다가 1950년대부터 이름만 같지 그 내용과 운영은 아주 달라 졌습니다. 백 목사님은 거창의 시골에서 목회를 시작했고 자연 부락이 서로 멀어 부락 단위가 되는 지역적 구역 제도를 유지했으나, 1952년에 부산의 중심에 있는 서부교회에 부임하면서 도시 교인은 이사가 잦고 생활거리가 겹쳤기 때문에 전도와 신앙의 지도 관계를 단위로 구역을 편성했습니다.

전도는 집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어려운 분들이 많아 교회를 출석한 후에도 이사가 잦았고, 또 전도를 처음 받은 사람은 자기를 전도한 교인에게 신앙의 지도를 받고 자라 가는 것이 모든 면에서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지역 별 구역 제도가 되면 이사 가는 교인이 다른 구역으로 바뀌면서 그 교인과 구역장과 구역 식구 사이가 마치 남의 가정에 입양 된 것처럼 원만하지 못하게 되어 겉 모습은 별 문제가 없어 보이나 신앙의 내면에 발전적 손해가 많음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주일학교 제도가 다른 교회는 세상 학교 식 편제와 운용이지만 서부교회는 한 번 맡으면 끝까지 책임 지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운영하는 것과 같습니다. 공회의 구역은 이름만 구역이지 그 내용은 지리적 지역적 공간적 구역이 아니라 신앙적 내면적 지도적 구역입니다.

② 금요일 저녁의 가정 별 모임
지역 별 구역 제도는 생활 거리에 있는 교인들이 평소 얼굴을 보고 평소 서로 살피는 점이 어린 신앙을 기르는 데 유익합니다. 또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한 구역의 교인들이 각 가정에 돌아 가면서 모여 구역장이 예배를 인도하고 예배 후에는 식사나 다과를 하면서 서로를 살핍니다. 특별히 방문한 가정의 식구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그 가정을 살피게 됩니다. 좋은 뜻으로 시작했고 많은 유익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한국 가정의 당시 분위기로 볼 때 한 가족이 3끼 밥 먹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찾아 오는 손님에게 먹을 것을 내놓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유교의 예절 때문에 구역 예배로 모이는 가정으로 정해 지면 경제적 부담이 됩니다. 지금이야 중고생들도 부담을 갖지 않을 다과지만 당시 빵 한 조각에 음료수 한 잔이라는 것은 그 가정이 한 달 내내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할 형편이었고 대부분 가정은 1년에 한 번도 가족이 빵 집에 앉지 못했습니다. 구역 제도의 구역 별 가정 예배가 그 좋고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정말 신앙의 지도가 필요하고 가정이 딱하여 함께 기도를 해 드릴 집은 손님을 맞는 것이 경제 손실이 컸고, 첫 신앙의 가정들은 당시 그 집안에 제일 천대 받고 눈치 보던 며느리였기 때문에 어른들은 물론 남편의 눈치까지 봐야 했습니다. 오늘의 경제로는 상상하지 못하고 최근 탈북자들을 통해 듣는 북한의 최근 가정과 경제 형편이 당시와 비슷했습니다.

교계적으로 자리 잡은 교회의 유능한 교인들은 구역 제도를 통해 주일과 예배 시간을 피해 가정 별로 주변 교인들이 모이면 다양하게 친교를 하면서 교회 발전과 교인의 신앙에 유익이 되었지만 부자 동네는 부자 교인으로 뭉쳐 지고, 가난한 동네는 교회 내에서 늘 최하층 교인으로 남게 되는 문제가 생기면서 구역 제도는 겉으로 교회의 발전을 가져 오면서 내적으로는 심각하게 교회의 내부 문제를 양산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내의 이런 점은 교단적으로는 교회 사이의 문제로 확대 되면서 현재 한국 교회의 양적 성장 속에 함께 자라 온 내부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공회는 1970년에 접어 들면서 구역 별로 가정을 방문하고 예배와 다과 모임을 갖던 구역예배를 금요일 저녁 예배당에 모두 모여 수요일 저녁 예배처럼 출발을 시켰습니다. 주일학교를 세상 학교의 학년 반별 1년 담임제에서 전도하는 선생님을 기준으로 졸업 때까지 가정의 자녀처럼 이어 지게 했던 것과 같은 대 전환이었습니다.

(교계의 구역 제도 역사)공회는 한국 교회의 초기 선교 과정에 전도를 받고 그 속에서 자라 왔습니다. 자라 가면서 옳은 것은 유지했고 발전 시켰으며, 한국 교회의 문제점이 발견 되면 그 때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어 왔습니다. 신학 대신 성경을 강조했고, 지역 별 구역 제도를 전도와 신앙의 지도 계통의 구역 제도로 바꾸었으며, 금요일 저녁의 각 가정에 모이는 모임을 예배당에 모여 교인 전체의 정식 예배로 변경했습니다. 목사 장로가 결정하던 당회를 구역장 전체가 결정하는 권찰회 중심으로 변경하는 등이 공회의 노력입니다.

한 편으로 교계의 구역 제도는 197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모두 좋아 지면서 각 가정 별로 주변 교인을 모시고 다과나 간단하게 식사를 나누는 정도는 오히려 반기게 되었습니다. 공회는 앞으로 더 큰 모순에 빠질 것이라고 1970년에 변경한 교인 가정 별 모임을 교계는 10여년 20여년을 더 지속하면서 가정 별 모임으로 교인의 신앙과 교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각각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경제가 좋아 지고 교통 편이 좋아 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번에는 이 경제와 산업 사회의 발전 과정에 출퇴근 길이 더욱 길어 지고 과거 가난해도 외부 활동을 하지 않던 저소득 가정조차 직장이 생기면서 이제는 없어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 또는 직장의 근무 조건 때문에 구역 예배 참석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더하여 이전에는 모두가 가난했고 가끔 부자가 있다 해도 별 차이가 없었는데 교인 사이의 격차가 눈에 띄게 달라 지기 시작했고 이 시점부터 이제 주거 지역이 과거처럼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로만 나뉘지 않고 한 동네 안에 신도시, 재개발, 신규 아파트 입주와 같은 문제가 되면 한 집에 차이 나는 식구들이 갑자기 한 식구가 되고 한 자리에 앉는 것이 불편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방교회처럼 교회의 초기 역사부터 한 교회의 교인 전체가 한 식구처럼 모이는 것을 본질로 출발한 교회는 이런 이동과 사회적 변화나 격차가 큰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 예배당에 모이면서 교회의 조직 차원에 익숙했던 보통 교회들은 이런 충격을 이겨 내기 어려워 졌습니다. 1980년대까지는 그래도 곳곳의 교회들이 구역제도의 예전 모습을 어느 정도 이어 가고 있었으나 결국 도시 교회들부터 금요일 저녁에 예배당에 함께 모여 기도하는 ‘금요 철야 기도회’가 구역 별 예배를 대신하게 되었고, ‘철야’는 순복음 교회의 기도 운동이 식어 가면서 함께 빠져 버리며 ‘금요 기도회’나 ‘금요 성경공부’ 또는 ‘금요 구역장 모임’ 등등으로 분산 되고 변해 지면서 과거 금요일 저녁의 구역 예배는 어느 순간에 다 없어 지는 듯했습니다.

내려 오던 한국 교회의 ‘구역 제도’가 시대의 이런저런 풍랑에 깨어 지게 되면서 대안이 나타 나기 시작합니다. 전국의 교회들이 별별 시도를 하게 되는데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를 전도한 미국 교회가 사회의 발전에 따라 먼저 시도했던 제도들을 미국 상황을 파악하던 교회들부터 한국에 수입하게 됩니다. 미제라고 친미파가 되거나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교회의 복음은 그 첫 전도부터 미국 선교사들 덕분입니다. 문제는 미국의 사회 발전에 따라 미국 교회가 시도했던 모든 종류의 운동들, 특히 한 교회 내의 교인들을 관리하는 구역제도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변형 되고 대치가 되는지, 그리고 그 내용과 결과가 어떤지를 잘 파악을 하고 좋은 것은 수입하고 문제가 있는 부분은 조심을 했어야 하는데, 우리 한국 사람들의 특성 우리 나라와 사회가 그렇듯이 미국 것은 무조건 수입을 했고 한 교회가 시작을 하면 전국이 유행을 따랐습니다.

(한국 교회의 진행 과정)초기 선교의 일제 때 한국의 모든 교회는 전부 미국식이었습니다. 해방 후 한국 교회는 모두 미군정 체제의 구호 단체였다 할 정도였습니다. 1970년대부터 한국 사회가 미국의 산업 사회를 닮아 갈 때 한국 교회는 그 모습이 일제히 그러 했습니다. 1980년대부터 선진화 된 한국 교회는 복제를 했다 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영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고 번역을 하기도 하여 국내만 아는 분들은 잘 모르기도 하고 자기 교회 목사님만 가진 비법인 줄 알기도 했지만 미국에서 시도 되지 않은 것은 없다 할 정도입니다.

우선 1970년대를 휩쓴 것은 빌리그래햄 목사의 엑스폴로 전도 부흥 운동이었습니다. 이는 교회 이상의 초교파 운동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운동의 하부 조직이 교파 내부로 교회 내부로 들어오면서 한국의 교회는 목회자의 지도를 받고 각 구역 별로 움직여 왔는데 엑스폴로 운동의 파장은 한 교회 내에 구역 단위로 내려 가지 않고 연령 별 계층 별이라는 별도의 파장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비슷한 시기에 CCC라는 대학교 선교회라는 운동이 복음 전도 운동의 이름과 대학교 캠퍼스 내의 신앙 운동으로 전국 교회를 휩쓸었는데 대학생이 있는 교회들의 대학생들은 외부적으로는 각 교회의 청년부 대학부에 속해 있지만 그들의 실제 시간과 전심은 CCC에 속하여 자기 교회와 자기 구역에서 벗어 날 정도였습니다. 엑스폴로와 CCC가 초대형 운동으로 전국 교회를 움직이게 되자 이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전국이나 지방 단위 조직과 운동들이 생겨 났고 이 것은 한 교회 내의 구역 제도를 나이 많은 원로나 중진 교인들의 사랑방 모임으로 밀어 내고 있었습니다.

질문하신 ‘목장’은 비슷한 시기에 유행한 ‘제자’운동과 사실 어떤 면이 다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셀 운동이 먼저 지나 간 것으로 기억합니다. 셀이란 세포입니다. 몇몇 교인이 작은 세포로 모여 전체 한 몸을 이루자는 것인데 사실 ‘세포’ 조직이란 공산주의자들이 1백 년 전에 자본주의 서구 사회 내에서 그들의 생존과 확대와 목적 달성에 먼저 사용이 되었습니다. 70년대에 이런 단어를 사용했다면 군사정권이 의심을 했을 일입니다. 이 모든 운동들은 교회가 잘 발전이 될 때는 도입 되지 않습니다. 교회의 발전이 멈추고 뭔가 돌파구가 필요할 때가 되면 전국의 교회가 생존과 발전을 위해 별별 시도를 하게 되고, 그 중에서 제일 성공한 방법은 주변에 소문이 나면서 배우는 교회들이 생기고 그 중에 인정을 받게 된 방법은 전국 교회로 퍼져 나갔습니다.

(안타까운 면)
① 너무 지나 친 점놀기만 하던 아이가 갑자기 도서관에만 가서 살면 부모로서는 자라 가는 과정에 좋은 일이라고 환영합니다. 그런데 도서관에 너무 치중하면 가족과 건강과 친구 관계가 문제가 됩니다. 일장일단을 봐야 합니다. 학창 시절에 공부에 매진하다 평생 가족이나 건강을 잃을 정도가 되는 데까지는 가지 않도록 조절을 했어야 합니다. 엑스폴로 전도 운동이 한국 교회의 보수 교단의 신앙 몰락을 가져 왔고, CCC 운동 등이 한국 교회의 교회 단위의 가정적 분위기의 헤체를 가져 왔습니다. 그 운동들이 불신자를 전도하고 대학가에 내다 버릴 청년들의 신앙을 붙잡아 준 장점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와 교단을 너무 쉽게 생각하게 되자 마치 남녀의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다 남편과 아이를 포기하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 떠나는 현상이 예사롭게 될 때 이 것을 불륜이나 가정 파괴라고 하면 적페가 되는가? 물론 부모의 강제로 결혼하는 상황은 현재 불가능합니다. 가정을 가질 때는 두 사람의 사랑을 가장 중심에 두어야 하나 가정을 가진 뒤에도 서로가 새로운 사랑을 노래하며 항상 떠돌고 유목민처럼 살아야 할까?

② 너무 기술교회가 된 점
회사야 전통을 버리더라도 돈만 벌면 되고, 학원이야 입시 실적만 좋다면 강사든 과목이든 과정이든 교육 방법론이든 언제라도 바꿀 수 있습니다. 교회도 교인만 일시 많이 모을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이든 상관이 없을까?

미국을 중심으로 별별 방법이 시도 되었고 그 중에 괜찮은 방법은 기독교 언론과 교계의 조직망을 통해 수도 없이 소개 되었습니다. 세상의 유행가조차 부르기 싫으면 부르지를 않을 뿐이지 흘러 간 노래라도 그 노래를 부른다면 가사는 그대로 사용을 하는데 찬송가를 20년에 한 번씩 바꾸면서 곡의 가감이 아니라 가사를 모조리 손을 대고 있습니다. 심지어 성경조차 앞에 번역에 불편과 부족이 있다면서 계속 바꾸고 있습니다. 번역이란, 그 자체가 완성이 없습니다. 구 번역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을 각주로 달아 참고하는 정도라도 되는데 세상 유행가보다 더 유행을 따라 바꾸는 그 변화 그 변덕 그 변질이 걱정입니다.

어떤 부흥, 어떤 전도, 어떤 은혜스럽다는 방법이 있다 해도 지나 놓고 보면 그렇게 많이 다르지도 않고 본질적으로는 비슷한데도 굳이 이름을 새로 짓고 새로운 느낌으로 새롭게 다가 서다가 그 것이 반복되면서 지루해 지게 되면 또 바꾸고, 또 바꾸고, 또 바꾸는 과정에 교회가 바꾸지 말아야 할 신앙의 본질까지 쉽게 바꾸게 되지 않았을까? ‘목장’ 목회의 장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교회가 그냥 앉아 있다가 없어 지는 것보다는 ‘목장’이든 목장 이상을 노력해서라도 살아 보려는 노력을 지지합니다. 그런데 크게 다르지도 않고 과거에 다 있어 왔던 것인데 굳이 이름도 모든 것도 그렇게 통째로 바꾸어야 할까?

(목장 목회의 경우)가정교회, 목장교회 등의 이름을 넓은 의미로 보겠습니다. 도심에 있던 사무실 형 예배당을 시골로 옮겨 전원교회가 또 유행하고 있습니다. 교회 내 교인들은 그룹 별로 목장형 가정식 모임을 갖는다면 주일의 예배당을 시골 분위기 속에서 유지하자는 것도 비슷해 보입니다. 이런 교회의 특징은 새벽예배는 아예 포기한 듯 보입니다. 생활 거리가 아니니까. 또한 대다수 교인들이 직장이나 학교를 다닌다면 모두 밤 예배도 포기한 듯 보입니다. 한 주간 세상 속에 살다가 주말에 교회로 모여 전원 파티를 한다는 것은 예배당을 생활 속에서 여가 방문으로 바꾼 것이 아닐까?

목장목회 가정식 구역의 운영은 사교적이거나 사교적인 성향으로 발전이 될 수 있는 교인들에게는 아주 좋겠지만, 체질이 바뀌지 않을 사람에게는 아주 바늘 방석이 될 것 같습니다. 원래 신앙이란 주님 앞에 죄송한 것이 많고 주님 앞에 배울 것이 많아서 교인들이 소곤소곤 대화하는 것은 어려워야 정상입니다. 중들이 대웅전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깔깔 대고 있으면 이 것은 불자들의 교제가 아니라 불상 앞에 모독입니다. 불상보다 주님이 더 두려워야 하지 않을까? 돌 부처 앞에 인생을 생각하며 묵상에 잠기는 시간보다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 내 속에 별별 세상을 향한 마음을 잡아 못을 박기 위해 노력하는 내면이 더 깊어야 하지 않을까?

유치원은 깔깔 대며 함께 먹고 놀고 친구가 좋아서 하루 해가 방금 지나 가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 시절의 친구가 늘 그리워야 좋을 듯합니다. 그런데 인문고 3학년도 그렇게 되어야 할까? 삼성 반도체 연구원의 기술 개발실도 그렇게 되어야 할까? 교회가 침묵만 있다가 잠이 들어도 탈이고, 그 잠을 깨운다고 교회가 발랄해도 교회답지는 않을 듯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 하기 때문에 요즘 교인들을 불러 들이고 신앙으로 도움이 된다고 말을 하는데, 그 요즘 사람을 따라 간다면 교회가 교인을 불러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교인의 세상 방식을 뒤 따라 가며 반주를 해 주고 장단을 맞추게 되어 교회의 본질 자체를 잃은 것이 아닐까?

문제는 요즘 교인들을 위해 그렇게 분위기를 조성해 주면서 붙드는 것은 일단 좋은데, 그 교인들의 분위기가 또 바뀌면 그 때 가서 또 바뀔 것인가? 세상은 세상에 사는 교인들을 끝 없이 세상 방식으로 이끌고 가고, 교인들은 교회의 운영 방식을 끌고 가고, 교회의 운영 방식은 신학교의 교재와 교리를 끌고 가게 되면 세상이 주동이 되고 신앙은 그 뒤를 따르는 종이 되어 버리는데, 이렇게 된다 해도 교인의 얼굴이 밝아 지고 교회에 회원이 많아 진다면 교회를 부흥했다 할 것인가? 아니면 교회가 속화 타락이 되었다고 할 것인가?

제도를 바꾸기 전에, 꼭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가? 기존 제도를 잘 운용하면 되지 않을까?제도를 바꾸지 않고 안 된다 해도 이 제도가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그리고 제도를 바꾸어서라도 가야 할 때 제도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바꾸지 말아야 할 신앙까지 끊임 없이 바꾸면서 가장 본질적인 신앙의 내면에 하나님과 진리가 우리를 끌고 고쳐 가는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따라 바뀐 나의 취향을 따라 하나님과 진리가 끌려 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점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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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교회는 정치적 저항, 서부교회는 순수 신앙적 고수 (6)
5468 | 담당 | 2021.01.10
담당 2021.01.10 0 350
5488
'서부교회의 예배당 폐쇄'를 보며
5488 | 담당 | 2021.01.12
담당 2021.01.12 0 239
6000
서부교회의 예배당 앞에 마당 폐쇄는 자진 폐쇄가 아닌가? 이미지
6000 | 담당 | 2021.01.19
담당 2021.01.19 0 270
9180
타 공회 타 교회 '예배'를 5년간 짓밟은 서부교회의 이중적 행동
9180 | 부공3 | 2021.01.25
부공3 2021.01.25 0 225
5491
예상 되는 위험성 때문에 '사전 조처'했던 과거 - 공회들의 지난 날
5491 | 담당 | 2021.01.13
담당 2021.01.13 0 157
5500
논리 싸움에서 지면 행위 싸움은 볼 것도 없다. - '1인 예배 허용'이라는 표현 (6)
5500 | 담당 | 2021.01.14
담당 2021.01.14 0 265
5928
대형교회와 소형교회를 농간하고, 교계는 그대로 당하고.. (2)
5928 | 담당 | 2021.01.17
담당 2021.01.17 0 189
5426
2020년 한 해를 돌아 본다. 감사만 가득하다.
5426 | 담당 | 2020.12.30
담당 2020.12.30 0 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