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잠과 꿈으로 본 자기 내면, 기능의 성화..

작성자
담당0
작성일
2020.11.14
(공회 목회자의 일상)
공회 목회자는 인근 산에 1평 짜리 기도실을 마련하고 전도 심방 외의 시간은 그 곳에 있다.
요즘 전국 어느 산이라도 개발 되지 않은 곳이 없어 차라리 예배당 한 쪽에서 그렇게 자기를 관리하는 분들이 많다.
나는 연구소 업무 때문에 목사님 생전부터 교회 사무실에서 평생을 보냈다. 사명으로는 보람이 있었고 목회자로는 빈약했다.

2016년부터 강단에서 새벽 예배 후 9시 10시 11시까지 무릎꿇고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하면서 공회 목회자의 뒤끝에 섰다.
김태희 목사님은 70년대부터 평생 그렇게 했다. 30여년 전 대구 송림교회를 개척한 직후의 목사님을 뵈었을 참 부러웠었다.
꿈 같은 날을 보내던 어느 날 나는 뇌경색을 2년에 3번 겹쳐 겪었고 이제 교회에 짐이 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를 매일 한다.
교회에 짐 되지 않기 위해 이제 건강 관리를 시작했다. 매일 아침 1시간 실내에서 소리 없이 혼자 운동을 한다. 매사 조심한다.


바로 이 시점부터 나는 새벽 설교가 끝나면 1시간 후에 강단 옆의 사무실로 옮겨 자세를 자유롭게 한다.
몸이 좋지 않을 때는 따뜻하게 바닥을 데운 다음 누워서 성경을 듣는다. 이미 백 독을 한 상태여서 듣는 것도 또 다른 은혜다.

오늘 아침 처음으로 귀한 경험을 했다.
누가복음 11장을 듣고 있었다.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 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는 말씀이
그렇게 강하게 잘 머리에 들어 오고 있었다. 그런 직후 백 목사님을 만났다. 주변에 4명이 함께 했다. 나는 질문을 종종 했었다.
평소 마음 속에 둔 질문을 드렸다. '신인양성일위의 주님 안에 절대 완전자 신성이 어떻게 피조물인 인성과 일위일 수 있는지'
신성과 인성의 동행이라면 몰라도 한 분이 된다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느냐고 여쭸다.

목사님은 성경을 가져 오라 했다. 그리고 읽기 시작했다. 너무 또렷하게 그리고 좋은 속도로 읽고 있었다.
그 본문에 답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1장 2장 3장을 계속 읽어 나가시는데 성경을 보지 않고 읽고 계셨다.
목사님은 성경을 다 외운 분이다. 그렇다 해도 이렇게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무한정 암송하는 정도는 아니다.

목사님은 너무도 깨끗한 음성으로 맑게 읽어 나가고 있어 혹시 내 질문을 잊어셨는지 물어 볼 분위기는 아니다.
그런데 계속 읽고 계시는 성경은 내가 암송은 못해도 읽는 것을 들으면 거의 그 표현까지 확인이 가능한 곳이다.
목사님이 이렇게까지 성경을 완전 암송을 하고 계셨던가, 그리고 내 질문의 답은 하지 않고 이렇게 성경만 계속 읽으시는가?
이런 저런 마음이 드는 가운데 예수님의 마지막 부분이 나오고 부활과 이후의 기록이 나온다. 이제 승천만 났았는데...

이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이렇게 마쳤다.
눅23장에는 주님의 죽음이 나오고 24장에는 부활 후의 기록이 나온다.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나는 감정을 누르지 못했다.
성경의 한 말씀말씀이 너무 명확했고 정확했고 이런 이어 지는 낭독이 잠깐이 아니라 장시간 계속 되면서 은혜까지 넘쳤다.
목사님께 질문한 내용은 안내를 받지 못했다. 24장 53절까지 명확하게 잘 끝이 난 후 잠인 줄 알게 되었다.


집에서 잘 때는 가끔 설교를 한다. 설교를 하면서 평소 깨어 있으며 성경을 연구할 때도 깨닫지 못하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이렇게 명확하게, 그리고 이렇게 성경의 표현 하나하나를 일일이 확인하며 은혜를 받은 적은 없다.
백 목사님께 배우지 않았더라면 나는 '비몽사몽 중에 계시'를 봤다고 자랑하고 다녔을 듯하다. 이런 경우는 의의 본능이다.

평소 성경을 읽어 뒀고, 그 말씀이 내 머리 속에 깔려 있는 분량이 바로 나의 지식, 나의 기억에 본능화가 되어 있다.
이 상태에서 성경 읽기를 듣게 되면 내 정신이 약해 질 때라도 또는 다른 것으로 혼란스러워 정신을 집중하지 못한다 해도
이미 깔아 놓은 것이 내 속에 강하게 기다리는 상태이므로 외부에서 비슷한 자극만 줘도 내 속에 깔린 성경은 활성화가 된다.
예배당의 새벽 예배, 강단의 기도, 그리고 옆에 사무실로 옮겨 누운 상태, 이 시간과 이 장소는 내 상태를 말씀 가까이 묶었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도 모르는 말씀적인 환경이 형성 되었고 내 속에 평소 심어 뒀거나 저장한 자료들이 나섰다.
그리고 일반 사람과 같고 오늘 세상 환경에서 끼들고 찌들고 섞여 버린 별별 것을 예배당이라는 환경이 확실히 제압했다.


믿는 사람이 처음 믿을 때는 중생의 첫 순간에 주어 지는 첫 사랑이 솟구치며 따질 것도 없이 큰 은혜 가운데 혼자 취하여 산다.
믿는 사람이 제대로 믿어 나가야 할 시점에는 연단이 필요하여 주님은 우리를 수 없는 안팎의 현실로 흔들며 만들어 간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동안 쌓아 둔 신앙의 분량이 자기 통제가 느슨해 지고 풀어 질 때 자기를 주도하며 나서게 된다.
내가 일찍 더 열심히 믿었더라면 이런 일은 훨씬 강하게 일찍 나타 났을 것이다.
이 글을 적는 것은 혼자 가졌던 경험을 이 글의 경험과 비교해 보면 여러 면에서 참고가 될 듯하다.

이 것이 건설구원의 기능 성화 과정이며 내면이다.
신학교의 책과 강의와 연구만 가지고는 접근 할 수 없는 분야다.
아무리 무식해도 신앙의 사람이란 현실에서 실행을 해 본 사람만 받는 흰돌이 있고 남은 알 수 없는 역사가 거기에 있다.

공회의 목회자로서 나보다 먼저 걸어 간 선배들은 이런 경험을 일찍, 아주 일찍 체험할 수밖에 없는 여건을 가진 것이 복이다.
나는 이런 복은 이제야 가져 봤다. 그대신 나는 그 선배들이 자기들만 가지고 남에게 전하지 않은 것을 전하는 복은 가져 봤다.
한 사람은 이렇고 한 사람은 저럴 수 있다. 이 말을 가지고 죄 짓는 핑계로 삼을 수도 있고 의를 향한 소망에 사용할 수도 있다.
건설구원의 기능 성화면. 그 단면을 보는 경험은 수도 없이 많다. 그 중에 하나 이런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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