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길을 배운 사람, 따라만 나선 사람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0.11.11
백 목사님은 수 많은 세월을 통해 설교를 할 때 '길'을 그토록 반복했다. '道'라는 단어를 설명한 적이 많다.
설교에서 '도리'를 배워라, '길'을 배워라, '이치'를 알아야 한다. 원리만 파악하면 자기 현실은 주님과 혼자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백 목사님이 너무 유명하다 보니 2가지 유형의 후학들이 생겨 났다.
'길'을 제대로 배운 사람과 '길'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배운 후의 유형은 뚜렷하게 나뉘게 된다.

첫째는
백 목사님은 그토록 노력했고 강조한 대로 '길'을 배운 사람들이 있었다. 백영익 신도범 장렬 송용조와 같은 인물이다.
배우기 어려운 도는 선생들이 열심히 가르친다. 가르쳐 봐야 배워서 딴 일을 못한다. 스승의 수준이 높게 보일 뿐이다.
백영희는 배우기 어려운 도를 배우지 않았다. 그런 도를 알지도 않았다. 가장 쉽게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누구에게든지 가장 쉽게 가르쳤다. 그래서 백영희 설교 시간에는 주일학생들이 신학자들과 함께 앉는 것이 예사였다.
쉽게 시작했으니 주일학생들도 앉아서 함께 배울 수 있었고 쉽게 시작한 것에 높은 도가 녹아 있어 신학자들도 열심히 배웠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백영희는 자기 자료와 자기 깨달음과 자기 비법과 자기만 가졌던 그 높고 높은 도를 무제한으로 전해 줬다.
비법이란 가르치는 사람들의 최종 통치법이기 때문에 내어 주지 않는다. 여러 면을 고려해서 공개하는 선이 있고 대상이 있다.
백영희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거나 이단으로 정죄할 인간에게까지 가리지 않고 자기 전부를 늘, 평생, 조건 없이 가르쳤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남보다 잘 배우는 사람, 특히 그냥 베낄 줄만 아는 사람이 아니라 도를 터득하는 사람들은 빠르게 자랐다.
몇 달 배우면 백영희의 전부를 섭렵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보통 몇 년은 배워야 제대로 배운다. 그리고 파악이 되면 떠나게 된다.
떠난다는 말을 기분 나쁘게 적으면 탈퇴다. 더 나쁘게 적으면 배신이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보면 배웠으면 졸업을 해야 한다.
6년을 배운 뒤에도 초등학교에 남는 경우는 거의 없다. 3년을 더 배우면 고등학교로 진학을 한다. 정상이며 당연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백영익 김석준 신도범 장렬 송용조 목사님과 같은 분들은 대단히 우수한 후학들이었다. 단숨에 배우고 독립했다.

둘째로,
평생을 배워도 늘 그 시간에 배운 것이 전부고 평소 배운 것을 연결하지 못하여 '도'를 깨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백영희의 세계가 너무 높고 위대하지만 도리를 배우지 못하는 이들은 백영희 자료를 가지고 무조건 베끼고 반복만 했다.
심지어 죽는 날까지 그 설교만 반복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깊어도 계속 퍼쓰면 바닥이 나는데 백영희 자료는 그렇지 않았다.
자기가 직접 깨닫고 가르치는 것보다 모든 면에서 탁월하게 좋으면 베끼는 것이 좋다. 몰래 그러지 말고 떳떳히 펴놓으면 된다.
그래서 공회 관련 목회자와 교인들의 설교나 교회 행정은 천주교가 주문을 외우듯이 마치 수천 년 그렇게 할 것처럼 해 왔다.

이들 중에 새로 깨닫는 자기 발전이 있지만 그것은 너무 미약하고, 백영희 자료가 너무 탁월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이들이 있다.
너무 맛 있는 조리법이 있는데 자기나 먹을까 식구도 꺼려 할 새로운 조리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물며 설교니까..
아주 가끔 그런 이들도 있다. 그런 이들의 수준을 비교해 보면 자기 조리로서도 꽤 성공할 듯한데 고전을 지켜 내는 이가 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은 평생 지어 주는 밥을 먹고도 자기가 직접 밥을 짓는 것은 할 줄도 모르고 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다.
백영희의 세계가 너무 훌륭해서 손을 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을 한다. 속으로는 도리를 몰라서 응용을 못하는 사람들이다.
간혹 응용을 했다고 하는 좋은 요리를 두고 새 요리법을 소개하는데 강아지나 먹지 사람이 먹을 수는 없는 경우도 생긴다.

1998년, 연구소가 게시판을 적극적으로 운영하면서
중국에 어느 선교사는 몇 번 들어 와서 살핀 뒤에 이 연구소를 극찬하며 시대의 빛이라고 칭송한 적이 있다.
이 연구소에서 안수를 받지 못하면 목사를 하지 않겠다 하여 대단히 큰 사건을 일으킨 분이다.
그런데 이 분은 학습력이 대단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연구소와 수준이 비슷해 졌고 곧 이어 추월을 했던 모양이다.
침례교가 이단인데 지켜만 본다며 연구소를 비판했던 적이 있다. 백영희 신앙노선은 침례교를 이단이라고 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건설구원의 교리란 이단이라는 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분과 맞지 않으면 아무나 이단이라고 하다가 마침내 이 곳을 이단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 곳에서 안수를 받은 자기는 이단에게 안수를 받은 목사직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 곳은 처음부터 바뀐 적이 없다.

또 서울에 그 유명한 어떤 교인은 대학을 다닐 때부터 자기 교회 목사를 지도한 분이다.
주일은 초대교회부터 지키지 않았다 하며 주일을 지키는 것은 잘못 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분도 너무 우수하여 잠깐 이 곳을 익힌 다음에 이 곳에 글을 적기 시작하자 글의 임자를 찾기 어려울 만큼 완벽했다.
대단히 우수하니 속성이다. 그런데 도리를 배워 도리를 알았기 때문에 이제 자기 사업을 시작해야 했다.

도리를 배우는 사람은 자기 길을 가게 되고, 도리를 끝까지 배울 줄 모르는 이들은 단순 반복에 베끼기만 한다.
그런데 도리를 배운 사람들은 정말 한 걸음 더 자라 가는 방향으로 앞 서 가면 너무 훌륭해 지는데 대개는 곁길로 간다.
이런 이들에게 돌을 던지며 배신이니 딴 길이니 비판하는 이들은 도리 자체를 배우지 못하고 평생 기계적으로 반복한다.

도리를 배우고 도리를 깨쳐서 더 나은 도리로 이 곳을 가르쳐 줄 시대의 스승, 또는 다음 시대의 지도자를 애타게 찾아 본다.
바로 이런 자세 때문에 연구소는 어떤 자료도 좋은 것이나 필요할 만한 것이 있으면 무조건 무제한 공개를 내 놓고 본다.
꼭 같은 자료를 가지고도 이 곳은 이 곳 수준까지만 본다. 만일 사무엘과 같은 영안의 사람이 본다면 어려도 더 깊게 볼 수 있다.
이 곳이 드린 자료로 이 곳보다 나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다면 이 곳은 그에게 누구보다 앞에 가서 정중히 배울 것이다.

이 곳은 여러 면으로 못 났다. 못 났기 때문에 자존심이란 가질 것도 없고 가질 만한 자존심도 없다.
바로 이 못난 단점 때문에 더 배울 것이 있을 때 배우기를 주저하는 자존심에 걸려 막히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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