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영감은 저작권 개념이 맞다. 진리는 될 수가 없다.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0.11.08
(진리)
어떤 사람에게도 예외가 없을 때 '진리'라고 한다. 성경의 말씀과 그 말씀에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진리다.
이 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이단이나 비성경적이다. 그렇게 된 것은 교회가 아니고 기독교가 아니고 구원 바깥이 된다.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는 마5:18, 이것들 외에 더하고 제하지 말라는 계22:18~19은 말씀과 진리다.

(영감)
성령의 감동을 '영감'이라 한다. 성경 기록만 영감인 줄 아나 그 성경을 오늘 우리에게 깨닫게 하는 것도 영감이다.
성경과 진리는 시대와 환경과 사람이 달라도 항상 같아야 하지만 성령의 감동은 모든 사람에게 항상 따로 역사 한다.
중생된 모든 사람 안에서 직접 그 사람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역사가 있다 하신 요일2:27의 기름부음이 바로 성령이다.

(저작권)
그렇다면 성경과 진리를 전하면서 토씨 하나라도 뺄 수 없다. 그대로 옮겨야 한다. 이 복사는 저작권을 주장하면 귀신이다.
반대로 성령의 감동은 한 사람의 매 현실마다 다 다르다. 영감의 인도를 옮기면 이는 표절이다. 도적질이다. 가능하지도 않다.

어느 목사 어느 교인의 어떤 설교라도 그 설교에서 성경의 '진리'를 가르치는 부분은 토씨 하나라도 달리 전하면 죄가 된다.
이 말은, 어떤 설교라도 성경을 바르게 가르친 진리적 설교 내용은 누구라도 그대로 옮겨야 하고 토씨 하나도 바꾸면 안 된다.
삼위일체, 신인양성일위, 신구약 66권, 예수님의 대속을 가르치면서 토씨 하나를 손 대다가 역사에 이단이 무수하게 나왔다.
오늘 삼위일체가 이단이고 사위일체가 성경적이라고 진리적 확정이 된 교회가 있다면 그 표현은 무조건 따라 가야 하고
그 표현을 확정하기 위해 표현 된 모든 설명도 마찬 가지다. 함부로 토씨를 손대면 진리 자체가 비틀어 질 수가 있다.

그러나 성령은 오늘도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오셔서 각자에게 오늘 매 현실에서 해야 할 일을 감화 감동 시켜 주신다.
성경과 진리라는 교리는 같지만 그 성경 그 진리 그 교리로 실제 살아 가는 매 현실은 그 누구 것도 배껴서 아니 된다.
현실을 각자에게 만들어 주신 분이 성령이며 그 현실에서 각자를 다르게 인도하는 분이 성령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영감을 배끼면 세상이 말하는 저작권 위법이 되고 그렇게 훔치고 배낀다고 자기에게 도움이 될 수도 없다.

(백영희 설교록의 사용)
비록 자녀들은 일제히 부인하고 있지만 부친 백영희는 제자들에게 공회 안에서 설교를 배우는 사람은 설교록을 읽게 했다.
성경을 어떻게 진리로 가르치는지 또 성경의 진리를 어떤 현실에 어떤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감으로 가르치는지 배우게 했다.
배우면서 자라고 익히게 되며 점점 자라게 되면 설교록에 있는 진리는 당연히 바꿀 수 없으나 전하는 내용은 달라야 한다.

여기서, 백영희는 자기 설교를 토씨 하나도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고 설교록 서문에 적고 있다.
백영희가 적은 이 서문은 현재 백도광 장남과 백도영 막내가 연구소 직원에게 서로 자신이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한다.
백 목사님은 중요한 것을 추진할 때 한 사람 이상에게 건네 주고 비교하면서 기르기도 하고 장점을 취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두 분의 말이 다 맞다고 본다. 단 두 분이 마치 자기가 작성한 그대로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동의하지 않는다.
백 목사님이 평생 남의 것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승인하는 경우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생각과 판단의 깊이는 너무 깊었다.

백영희가 원했던 설교록 사용은
설교를 시작하고 배워야 할 사람에게는 설교록을 그대로 읽게 했다.
꼭 같이 읽으면 모두가 같지 않겠는가? 우리의 생각은 그러했다.
그런데 그 설교를 깨달은 정도와 실행한 정도에 따라 꼭 같은 백영희 설교를 읽어도 듣는 교인에게 전해지는 역사가 달랐다.
어떤 목사는 설교록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읽었는데 왜 설교를 못했다고 책망하느냐며 항의를 한 분도 있다.
그 분에게 알고 읽는 것, 모르고 그냥 읽는 것, 설교록을 깨닫고 실행을 실제 해 보고 읽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다르다 했다.

백영희의 저작권은 이렇다.
이런 백영희와 백영희 저작권론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버리는 것은 대한민국 민법적 권리자의 자유다.
구약 유대교의 처형법으로 예수님을 처형하는 것은 유대인의 자유며 권리며 승리다. 빌라도 헤롯까지 모두 후원해 줬다.
그러나 그 자유와 그 권리를 행사한 그 뒤가 문제였다. 이스라엘의 유대인에게 주어 진 구원의 계통은 이후 밖으로 나갔다.

따라서 1989년 8월 27일의 장례식 후
백영희와 그 노선의 이전과 이후가 많은 면에서 달라 졌고 이전의 촛대가 이후 옮겨 진 사례와 종류가 많지만
백영희 설교록의 전달을 두고는 무제한 무조건 전달을 끝까지 실행한 곳은 이 연구소뿐이므로 이 연구소는 이 교훈의 촛대다.
동시에 2018년 1월에 법원을 통해 세상 나라가 백영희 설교의 성경적이고 진리적이며 교리적인 부분까지 처벌하게 만든 순간
자녀들의 저작권 고소로 인해 자녀들은 이 노선의 교훈 나라를 기준으로 본다면 스스로 이 노선의 교훈 선에서 벗어 났다.

자녀들이 고소를 할 때 연구소 이 곳 외에는 모두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폭동을 사주했든지, 동조했든지, 방관했다.
5명까지 헤아리기 어려운 이들만 이 곳 밖에서도 그들이 옳다 하지 않았고 십자가 처형에 동참을 했다.
역사적으로 진리 박해를 했거나 진리 박해에 편을 든 이들은 고라나 그 무리에 속하여 이 땅에 자신을 묻었다.
역사적으로 진리 박해 때 진리로 핍박을 받거나 그들 편에 든 쪽은 그 사건 이후 다시 시작 되는 구원 계통에 중심에 섰다.

오늘은 숨어서 이 글을 읽고 있을 것이나
읽으면서 이미 읽는 자기의 양심이 자기의 2018년까지 행동을 향해 외치는 비명을 듣고 있을 것이다.
가룟 유다는 비록 예수님을 팔았으나 배라도 터져 죽었다. 나머지는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그들이 가룟 유다보다 더 심각하다.
가룟 유다는 회개를 잡고 돌아 서면 될 수 있었다. 자살 때문에 회개의 기회조차 버렸다.

오늘 이 글을 숨어서 읽으며 자기 양심 때문에 불편한 분들,
이 글을 향해 돌을 던지면서까지 자기 합리화에 나서면 가룟 유다보다 더한 사람이 된다.
이름을 모두 적어 놓고 싶다. 그렇게 되면 돌아 서기 어려워 질 듯하다. 읽으며 각자 자기가 자기를 돌려 세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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