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해방 전에 본 반세기 후 '중립국'의 의미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0.11.03
이미 오랜 세월 거론이 된 이야기다.
1945년 8월의 해방 4개월 전에 백영희는 '8월 해방' '남북 분단' '북한 암흑' '남한 자유' '미국 영향의 신앙 탈선' '남북의 중립국'을 미리 봤다. 모든 것이 순서대로 이루어 졌고 그가 사망하던 1989년 8월까지 '중립국'이란 상황은 허무해 보였다. 그러나 1990년부터 소련이 망하고 동구가 차례로 망했다. 중국까지 자본주의로 전환 되었고 북한은 빈깡통이 되었다. 그리고 1998년 김대중 정권이 시작 되면서 남북은 내용적으로 중립국이 되었다. 국제법의 문서상 기록은 여전히 과거와 같으나 내용적으로 보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남북은 좌우로 움직이고 있다.
여기까지는 이미 연구소가 20여 년을 설명해 왔다. 이 번 11월의 양성원 기간에 다른 내용으로 연구가 진행 되는 중 '현재 한반도의 중립'이란 어떤 의미일까? 자연스럽게 도출이 되었다. 처음 나온 정리다. 이럴 때는 단정을 조금 미루고 잠정안으로 둔다. 내면으로는 확정이나 우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늘 단정을 조금 유보해 본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며 여러 연구가 진행되면 자연스럽게 도출이 된다. 그 때 우리는 단정해 왔다. 1989년 이후 30년 넘게 우리가 걸어 온 길이다.
한미동맹의 조약이 있고 미군이 한국에 대규모로 주둔하는 점에서 해방 후의 남북 대결은 외면상 유지 되는 듯하나 우리는 1998년 이후부터 이미 미국 소련, 중국 일본의 4강과 국교를 수립했다. 또 남한 정부 내의 주류가 평양과 중국에 목을 빼고 지지하며 미국과 일본을 마음껏 유린했다. 법적 이혼까지는 가지 않았으나 이 집 아줌마가 옆 집 아저씨를 대놓고 지지하고 밤낮 없이 그 집 안방을 드나 들고 있다. 이 정도면 부부 모습은 허울이고 내용적으로 보면 옆 집과 이 집의 아저씨를 넘나 들고 있다. 이 정도면 중립이 맞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의 눈으로 이 문제를 본다. 해방 전까지 한국 교회는 일본의 탄압 속에서 숨을 죽이고 연단을 받았다. 해방 후 오늘까지 우리는 유사 이래 신앙의 번영을 마음껏 누렸다. 해방 전은 좌측으로 끝까지 갔고 해방 후는 우측으로 끝까지 가 봤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교회의 탄압도 현재는 없으니 연단도 없고, 동시에 현재 우리는 교회의 더 이상 발전도 없다. 좌로 우로 크게 한 번씩 요동친 한반도의 신앙 정세가 지금은 중앙에 있다고 보인다. 중립의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어떤 상태인가? 지금을 신앙의 탄압으로 본다면 강단에서 설교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촘촘한 법망의 창끝이 들어 오고 있다. 급기야 코로나를 핑계로 일제와 6.25 점령기에도 없었던 예배당 폐쇄가 내려 졌다. 동시에 오늘도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번영을 감사하는 길은 활짝 열려 있다. 좌로 우로 크게 한 번씩 움직인 균형추가 현재는 좌우의 중간에서 연단과 번영을 함께 누릴 수도 있고 함께 벗을 수도 있다고 보인다.
한반도라고 하면 북쪽도 포함해야 한다. 북쪽은 그 동안 교인이 1명도 없다고 생각했다. 간간히 지하 교회라는 이야기를 들어 왔으나 실체를 확인할 수도 없고 믿기도 어려웠다. 수령님 절대 주의로 어릴 때부터 세뇌 된 곳이다. 그런데 탈북자들을 통해 쏟아지는 자료와 중국과 북한 사이의 광범위한 국경을 통해 오가는 과정에 이미 북한 깊숙히 신앙이 구한말처럼 들어 가고 있다. 북한의 통제가 느슨해 지며 북한 안에서 외부를 접하는 소식과 자료는 넘쳐 난다. 밖으로 표시를 내지 못할 뿐이지 믿을 사람은 믿을 길이 열려 버렸다. 경험상 또 현재 상황으로 볼 때 북한이 철통같이 막아 온 담은 이제 뚫려 버렸다. 겉으로는 일제 하의 신사참배처럼 탄압을 받으나 내적으로는 확실하게 변했다. 남한은 겉으로 절대 자유지만 속으로는 북한의 신앙화처럼 남한의 신앙 탄압도 이미 깊숙히 시작이 되었다.
주님 오실 때는 너무 가깝고
이 나라에서 이 신앙으로 살아 가는 우리에게는 해방 전의 어두운 시절과 해방 후의 광명의 시기로 크게 요동 친 균형추가 지금 중간을 가리키면서 해방 전과 후의 상황이 남과 북에 동시에 전개가 되고 있다. '중립국으로의 통일'을 1945년 8월 15일 이전 4개월에 이미 언급했던 내용 중 마지막 부분을 가리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다.
이 글은 짐작이지만 짐작 이상일 듯하다.
1945년 8월의 해방 4개월 전에 백영희는 '8월 해방' '남북 분단' '북한 암흑' '남한 자유' '미국 영향의 신앙 탈선' '남북의 중립국'을 미리 봤다. 모든 것이 순서대로 이루어 졌고 그가 사망하던 1989년 8월까지 '중립국'이란 상황은 허무해 보였다. 그러나 1990년부터 소련이 망하고 동구가 차례로 망했다. 중국까지 자본주의로 전환 되었고 북한은 빈깡통이 되었다. 그리고 1998년 김대중 정권이 시작 되면서 남북은 내용적으로 중립국이 되었다. 국제법의 문서상 기록은 여전히 과거와 같으나 내용적으로 보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남북은 좌우로 움직이고 있다.
여기까지는 이미 연구소가 20여 년을 설명해 왔다. 이 번 11월의 양성원 기간에 다른 내용으로 연구가 진행 되는 중 '현재 한반도의 중립'이란 어떤 의미일까? 자연스럽게 도출이 되었다. 처음 나온 정리다. 이럴 때는 단정을 조금 미루고 잠정안으로 둔다. 내면으로는 확정이나 우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늘 단정을 조금 유보해 본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며 여러 연구가 진행되면 자연스럽게 도출이 된다. 그 때 우리는 단정해 왔다. 1989년 이후 30년 넘게 우리가 걸어 온 길이다.
한미동맹의 조약이 있고 미군이 한국에 대규모로 주둔하는 점에서 해방 후의 남북 대결은 외면상 유지 되는 듯하나 우리는 1998년 이후부터 이미 미국 소련, 중국 일본의 4강과 국교를 수립했다. 또 남한 정부 내의 주류가 평양과 중국에 목을 빼고 지지하며 미국과 일본을 마음껏 유린했다. 법적 이혼까지는 가지 않았으나 이 집 아줌마가 옆 집 아저씨를 대놓고 지지하고 밤낮 없이 그 집 안방을 드나 들고 있다. 이 정도면 부부 모습은 허울이고 내용적으로 보면 옆 집과 이 집의 아저씨를 넘나 들고 있다. 이 정도면 중립이 맞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의 눈으로 이 문제를 본다. 해방 전까지 한국 교회는 일본의 탄압 속에서 숨을 죽이고 연단을 받았다. 해방 후 오늘까지 우리는 유사 이래 신앙의 번영을 마음껏 누렸다. 해방 전은 좌측으로 끝까지 갔고 해방 후는 우측으로 끝까지 가 봤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교회의 탄압도 현재는 없으니 연단도 없고, 동시에 현재 우리는 교회의 더 이상 발전도 없다. 좌로 우로 크게 한 번씩 요동친 한반도의 신앙 정세가 지금은 중앙에 있다고 보인다. 중립의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어떤 상태인가? 지금을 신앙의 탄압으로 본다면 강단에서 설교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촘촘한 법망의 창끝이 들어 오고 있다. 급기야 코로나를 핑계로 일제와 6.25 점령기에도 없었던 예배당 폐쇄가 내려 졌다. 동시에 오늘도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번영을 감사하는 길은 활짝 열려 있다. 좌로 우로 크게 한 번씩 움직인 균형추가 현재는 좌우의 중간에서 연단과 번영을 함께 누릴 수도 있고 함께 벗을 수도 있다고 보인다.
한반도라고 하면 북쪽도 포함해야 한다. 북쪽은 그 동안 교인이 1명도 없다고 생각했다. 간간히 지하 교회라는 이야기를 들어 왔으나 실체를 확인할 수도 없고 믿기도 어려웠다. 수령님 절대 주의로 어릴 때부터 세뇌 된 곳이다. 그런데 탈북자들을 통해 쏟아지는 자료와 중국과 북한 사이의 광범위한 국경을 통해 오가는 과정에 이미 북한 깊숙히 신앙이 구한말처럼 들어 가고 있다. 북한의 통제가 느슨해 지며 북한 안에서 외부를 접하는 소식과 자료는 넘쳐 난다. 밖으로 표시를 내지 못할 뿐이지 믿을 사람은 믿을 길이 열려 버렸다. 경험상 또 현재 상황으로 볼 때 북한이 철통같이 막아 온 담은 이제 뚫려 버렸다. 겉으로는 일제 하의 신사참배처럼 탄압을 받으나 내적으로는 확실하게 변했다. 남한은 겉으로 절대 자유지만 속으로는 북한의 신앙화처럼 남한의 신앙 탄압도 이미 깊숙히 시작이 되었다.
주님 오실 때는 너무 가깝고
이 나라에서 이 신앙으로 살아 가는 우리에게는 해방 전의 어두운 시절과 해방 후의 광명의 시기로 크게 요동 친 균형추가 지금 중간을 가리키면서 해방 전과 후의 상황이 남과 북에 동시에 전개가 되고 있다. '중립국으로의 통일'을 1945년 8월 15일 이전 4개월에 이미 언급했던 내용 중 마지막 부분을 가리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다.
이 글은 짐작이지만 짐작 이상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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