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믿고자 하는 사람들, 믿으려는 사람들 - 여호와증인을 중심으로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0.10.17
(여호와증인의 장례)
공회가 모두 아는 공회 제일 핵심 가정의 식구 절반은 공회에 평생을 바치고, 나머지 절반은 여호와증인에 평생을 바치고 있다. 부모 중 한 분은 25년 전쯤 돌아 가셨고 공회 장례를 치렀다. 한 분은 이 번에 돌아 가셨다. 수십 년을 서울에서 여호와증인 자녀들과 살았고 자신도 충실한 여호와증인이다. 당연히 여호와증인이 원하는 대로 장례가 진행 되었다. 공회 교인에게 여호와증인의 장례를 지켜 보며 현장에서 본 그대로 전해 달라고 했다. 교계의 소식은 변색이 극심하여 생생하게 듣고자 했다.

코로나 여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장례가 아주 간소하다 한다. 영정 사진에 꽃도 없고 상복도 없고 눈물도 없다 한다. 낙원에 가서 소망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함께 모인 적은 한 번도 없고 모두 영상으로 집회를 대체했다고 한다. 입관 예배도 없고 발인 예배도 없다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임종 다음 날 한 번 정도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돌아 가신 분의 출생과 결혼과 신앙의 일대기를 간략히 소개하고 설교 찬송으로 30분 정도의 시간을 갖는다는 연락이 왔다.

(통일교)
5년 전쯤 교인이 관계 된 교통 사고가 있었다. 중과실이 겹쳐 구속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피해자 가정의 장례식장에는 국내 통일교에서 문선명 행사에 최다 동원 기록을 가진 시도 단위 최고 책임자가 가족 대표였고 또 조문을 온 인물 중에는 현재 사법기관의 최고 실권을 가진 인물이 있었다. 야밤에 올 수 없는 거리를 감안하면 그냥 아는 정도가 아니다. 우리는 공회 신앙이 명확하다. 우리와 가장 반대 쪽에 있는 인물들이 피해자 측인데 모두가 적극 도와 주셨고 극적으로 좋게 마무리가 되었다. 나는 통일교 책임자와 따로 만났다. 그는 문선명을 나는 백영희를 소개했다. 언젠가 이 신앙이 그를 흔들 것으로 기대한다. 그럴 여지는 있어 보였다. 사법기관장인 그 인물은 여러 사람을 통해 내면을 읽을 수 있었다. 좋은 사람인데 아직 겉돌고 있었다. 그가 공회 교인을 좋게 살피려 했다면 그는 하나님의 별도 배려가 있을 것으로 봤다. 그리고 지금 3년째 그의 이름은 사법기관의 중심에서 늘 볼 수 있다. 복음을 돕는 자, 복을 받으라! 복음을 훼방한 자, 저주를 받으라! 전자는 우리가 말할 수 있고 후자는 우리가 마음을 가질 수도 없다. 그런데 그렇게 되도록 하나님이 몰아 간다.

통일교 책임자와의 대화를 여호와증인에 이어 적고 싶다. 그는 통일교 내 이력이 화려했다. 문선명의 국내 대표적 행사에 최대 동원한 실적이 있으면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된다. 그런데 그는 너무 진실했다. 대우를 생각하지 않고 뛰었다. 그런데 진실만 있고 야망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되면 숨은 공로자로 살아야 한다. 시도 단위 책임자까지는 되었으나 중앙의 최고위직까지는 가지 못했다. 야망과 정치력은 함께 가는 법이다. 너무 순수한 인물을 통일교가 중앙 요직에 앉혀 놓으면 통일교 자체가 어느 날 뿌리가 뽑힐 수 있다. 이 인물에게 지방 최고지만 맡긴 것을 보면서 통일교의 경영은 북한처럼 일반의 예상보다 길게 가는 비법으로 봤다.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사람의 눈과 귀와 머리에는 보고 싶은 것도 들어 오고 보기 싫은 것도 들어 온다. 들어 온 것을 정리하는 것은 마음이다. 보이고 들리는 것을 누가 정리하느냐? 공산주의자는 망할 것만 추린다. 그래서 결국 망한다. 자본주의자는 흥할 것만 추린다. 그래서 흥한다. 그 결과 공산주의자는 일찍 망한다. 철이 없어 그렇다. 자본주의자들은 타락한 세상의 본질을 바로 꿰뚫어 본 자들이다. 그래서 오래 간다. 그러나 너무 많이 쌓아 뒀다가 치어 죽는다.

여호와의증인들은 순수한 이들이다. 통일교도들은 영악한 이들이다. 처음에는 모두가 순수하다. 그러나 세월 속에도 여호와증인들은 순수함을 유지한다. 통일교들은 조기에 밑천이 드러났다. 목적을 두고 사업을 했다. 여호와증인은 19세기 중반에 출발을 하면서 당시 제일 잘 믿는 사람들 중에서 인간적으로 순수함을 가진 이들로 형성이 되었다. 그들의 내면이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여호와증인들은 모든 면에서 순수하다. 교도소를 가면서도 총이라는 것은 험하다고 잡지 않는다. 통일교는 초기에 공산당을 때려 잡는 데 앞 장을 섰다. 뒤에 세상이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화합을 앞에 세웠다. 북한에 투자를 제일 먼저 하면서 치고 나갔다. 경영에 뛰어 났지만 종교의 근본인 순수성을 찾기는 어렵다. 사실은 없다. 그런데 교주로 올라갈수록 원래부터 없었거나 초기에 없애 버렸다. 밑으로 내려 올수록 통일교의 실체를 알아 차리는 데 시간이 걸렸고 내면을 직시했을 때는 이미 오랜 세월을 거기에 익어 져 버렸기 때문에 다른 길을 가기가 어려워 진다. 뻔히 알면서 하던 도둑질을 한다는 말처럼 된다.

여호와증인들은? 이들은 처음부터 순수했기 때문에 오래 가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성경이 보여 주는 것을 그대로 보려 하지 않았고, 성경 안에서 그들이 보고 싶은 것만 뽑아서 재구성을 했다. 그런데 너무 순수하다 보니 오래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인간의 순수함만 가지고 세월을 이길 수는 없다. 세월 속에 그들의 문제가 드러 나기 시작했다. 그 때마다 전국의 문제점을 취합하고, 세계 본부는 세계적으로 해당 되는 문제점을 취합하여 대응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진화를 했고 어떤 환경에도 대처를 했다. 그러는 사이에 여호와증인의 19세기 문건과 20세기 문건과 21세기의 문건은 미세하게 변해 나가면서 다른 것이 되어 버렸다. 이 번의 장례식을 통해 여호와증인의 현재 21세기 서울의 제일 중심에 평생 모든 것을 바쳐 산 가정의 단면을 통해 그들의 말 하나 행동 하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보고자 했다.


사자를 꾸준히 관찰해 보면 맹수다. 어릴 때는 강아지처럼 귀엽다. 그런데 소년이 되면 달라 진다. 청년이 되면 길러 준 주인도 찢어 먹어 버린다. 고양이는 아무리 못 돼 먹어도 주인을 해치지는 않는다. 사납기는 해도 맹수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자와 고양이의 차이는 잘 안다. 그런데 어느 한 사람을 새로 만날 때, 어느 한 운동을 새로 접할 때, 어느 한 세력을 처음 접할 때 이들의 내면을 파악하면 그 인물, 그 단체, 그 운동의 앞 날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고양이 같은 집단이면 애교를 부리거나 훔쳐 먹거나 나쁜 짓은 해도 그 정도에서 전부다. 본질이 사자라면 이 인물 이 단체 이 운동은 어느 순간 힘이 충분하다고 판단하면 갑자기 맹수로 돌변한다. 그 때 놀란다면 정체를 오판한 것이다. 사자의 잘못이 아니라 오판한 주인의 잘못이다. 동물은 정체를 밝히기 쉽다. 수의사에게 물어 보면 된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 단체의 정체, 운동의 본질은 수의사도 의사도 생물학자도 밝혀 내기 어렵다. 이럴 때 우리는 동물행동학을 참고하면 된다. 아침과 저녁과 어릴 때와 자랄 때, 또 이럴 때와 저럴 때를 계속 지켜 보며 비교하고 궤적을 그려 보면 어린 맹수인가 장성한 고양이인가 파악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여호와증인, 안식교...)
이들의 특징은 사람들이 좋다. 어떤 면으로든지 괜찮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19세기 과학의 발전을 겪으며 천국과 영의 세계에 대하여 과학적으로는 의심을 품게 된다. 신앙도 있고 사람도 좋고 모든 면에서 우수한데 비과학적이거나 폭력적인 것은 용납할 없는 이들이다. 이런 이들이 자연스럽게 그들이 가진 소원, 희망, 꿈을 향해 출발을 했다. 여호와증인과 성경을 놓고 토씨를 따지며 변론을 시작하면 끝이 없다. 그들을 눌러 이긴다면 그들 뒤에 간부급이 나온다. 그 간부급을 이기면 그들은 일단 발을 뺀 다음 위로 보고를 해서 한국 지휘부가 한국적 상황에 대처한다. 교회의 모든 면을 파악하면서 여호와증인을 변호하기 위한 우수 집단이 내놓는 답은 그들이 이길 수 없으면 최소한 빠져 나갈 논리는 낼 수가 있다. 한국 내에서 해결을 못하면 세계 본부가 해답을 제시한다. 문제는 그들의 그런 답변을 역사적으로 꿰어 보면 궤적이 나온다. 여호와증인은 좋은 사람들이 성경을 가지고 그들이 꿈을 꾸는 지상 낙원에 모든 것을 맞춰 놓았다.

신앙이란, 내가 믿기 싫고 내게 체질적으로 맞지 않은 것이라도 믿고 따라야 한다. 과학자가 과학으로 맞지 않아도 성경이 그렇다면 자기 과학을 꺾을 수 있을 때 신앙이라 한다. 과학자가 자기 과학 내에서만 믿고 자기 과학에 맞도록 성경을 읽고 자기 신앙을 체계화 하면 그 때부터 그의 신앙은 신앙의 간판 아래 형성 된 그 사람의 과학이다.


북한은 1945년에 소련을 등에 업은 순수 공산당들이 정권을 잡았다. 공산주의는 민족주의나 개인주의를 공산주의의 원수인 자본주의처럼 싸운다. 그래서 1945년 이후에 이북에는 레닌 스탈린 사진이 곳곳에 걸렸다. 그런데 북한 공산당의 주도권을 쥔 김일성은 우수한 사람이고 초기 공산주의자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철 없는 맹탕임을 빨리 알아 차렸다. 그래서 공산주의의 원래 철학을 지켜 세계 공산주의는 하나라고 계속 주장하다 보면 북한 내 공산당에서 자기 위치는 급격히 축소 되고 자기가 숙청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훤하게 읽히고 있었다. 김일성은 소련의 북한 점령에 필요한 일시 수단이었고, 북한 내에는 김일성을 능가하는 인물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정정당당하게 공산주의식으로 순수하게 운영하면 김일성이 오래 버티기는 어렵다.

이런 면을 일찍 간파했기 때문에 북한은 세계 공산주의의 상식을 조금 비틀어 한국적 공산주의를 슬그머니 끼워 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식 공산주의를 강조하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는 이미 공산주의가 아니다. 사람을 잡아 먹는 고양이는 이미 고양이가 아니라 사자나 호랑이다. 사람을 잡아 먹지 못하는 사자나 호랑이는 고양이인 것과 같은 이치다. 날지 못하는 비행기는 차량이고, 하늘을 나는 차는 이미 비행기다. 그런데도 하늘을 날지 않는 비행기라면서 치켜 세운다고 수천 만 명이 뒤를 따라 다니며 감탄을 한다면 이들은 유치원에나 다닐 사람들이다. 수준이 그러니 현재 북한이 저 모양이다.


여호와의증인들은 멋 모르고 초기에 자기들의 성향, 즉 과학적인 좋은 사람들의 합리적인 성경 해석은 그들의 희망 사항으로만 두면 되는데 그 희망 사항이 실제 구현 될 실체로 봤다. 태양이 서쪽에서 뜨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그 생각을 꿈에 그린 것으로 끝내면 아무리 탈이 없는데 구현을 해 보려고 나서는 순간 동서남북을 바꾸든지 하늘에 차양을 치려 하든지 설쳐야 하는데 이루어 질 수는 없다. 해 보고 안 되면 그 다음부터는 말을 바꾸기 시작한다. 평양처럼 처음에는 영원무궁한 절대 진리가 공산주의라고 했다가 그 다음에는 한국에 맞는 공산주의라야 정말 우리 것이라고 했다가 그 다음에는 영도자 김 씨의 전제라야만 우리 식으로 공산주의의 이상이 온다고 했다가 그 다음에는 백두산에서 태어 난 김정일이 마무리를 해야 한다고 하다가 이제는 일제 김정은이 결론을 낸다고 말을 하는 상황이다. 이 정도에 이르게 되면 국제 공산주의가 조선 공산주의와 생사 대결을 해야 하고 심지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우리 식 공산주의가 일제 공산주의와 생사 대결을 해야 하는데, 몇 바퀴가 돌아 갔는지도 모를 이런 말도 되지 않는 논리에 남한의 집권 세력들까지 그 말이 맞다면 저렇게 난리를 부리고 남한의 80%까지 사안에 따라 추종을 하고 있으니 한 편의 거대한 유치원 연극 판이 벌어 지고 있다.


여호와의증인, 안식교... 이 분들의 특징은 사람들이 좋고 과학적이며 현실적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종교를 믿지 않아도 세상을 착하게 좋게 합리적으로 살 분들이다. 그런 속성 그런 체질을 선천적으로 가진 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였다. 종교성이 정말 강한 이들은 그들 사이에 태어 나서 자랐던 끌려 들어 갔던 마지막에는 그 곳에 있지 못하게 되어 있다. 마치 남한 내에 애국심이 있고 이웃이 잘 살기를 바라는 순진무구한 이들은 남한 좌파가 될 수밖에 없고 종북이 되어 수령님 은덕에 살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처럼. 그런데 이들이 수뇌부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순간 바로 모든 꿈은 깨어 진다. 이렇게 깨어 지는 순간에 정말 양심이 있으면 전향을 한다. 그 순간에 자기 인생을 부정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는 사람은 총공회 내의 최고 양심가 신앙아 지성인인데도 여전히 구시렁거린다. 할 말이 없어 입을 닫겠는가? 이 말 저 말을 자꾸 해 댄다. 왜 그럴까? 내면을 아직 보지 못했거나 아니면 자존심 때문이다.


(우리를 보고 싶다.)
여호와증인을 평하고 싶어 적겠는가? 우리를 보고자 한다.
대구공회 사람들은 합리적이지 않다. 그런데 합리적이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1989년의 백영희 장례는 그들에게 그런 식으로 모일 기회를 제공했다. 장례 직후에 벌어 진 여러 충돌을 통해 공회 내에 감춰 진 내면들이 전부 정체를 드러 냈다. 합리적인 사람들은 목사님 생전에 탈퇴를 했다. 백영익 신도범 장렬 목사님들은 그런 면에서 일가를 이룬 훌륭한 분들이다. 김철수 목사님도 그런 분이다. 그러나 김 목사님과 비슷한 시기에 탈퇴한 다른 분들은 합리적인 듯 했으나 내막은 달랐다. 김철수 목사님은 그들이 같은 성향인 줄 알았는데 뒤에 보니 아니었다고 술회를 했다. 바로 보신 것이다.

목사님 생전에 탈퇴를 하지 않았던 분들은 합리적이기를 원하나 합리적이지를 못하다 보니 공회 안에 있었다. 그러나 목사님이 돌아 가시고 공회를 목사님 생전에 탈퇴를 하든지 공회를 개조 해 버리고 싶은 이들이 사건을 일으키니 이 상황이 뭔지도 모르고 평소 자기 속에 두고 있던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소원을 이룰 기회인 줄 알고 대구공회에 소속을 뒀다. 물론 다는 아니다. 남북의 분단과 전쟁 중에서 대부분은 자기 체질을 따라 남과 북으로 갔지만 더러 기회를 놓친 이들도 있는 것과 같다.

부산공회2의 인물들 중에 적지 않은 이들이 바로 대구공회에 남았어야 했다. 반대로 부공2 안에는 부공1에 있어야 할 이들도 있다. 이런 이유로 복잡해 지는 것이다. 1차 방정식은 아무나 쉽게 푼다. 2차 3차 방정식이 되고 제곱 방정식으로 발전하게 되면 나는 설명을 들어도 풀지 못한다. 이해도 어렵다. 그러나 공회적으로 또는 사회 문화적으로 복잡해 지는 것은 아무리 복잡해 져도 나는 비교적 쉽게 이해하고 문제도 푼다. 하나님이 주신 장단점이 다르기 때문일 듯하다.


(답장)
여호와증인이 가족 중에 있어 여호와증인 식으로 장례를 치르는 과정을 전부 지켜 봐야 했던 공회의 식구에게 보낸 글이다.

'여호와의증인과 모든 이단과 심지어 정통의 교단들도 그 교훈과 노선은 시대를 따라 변화해 나갑니다. 진화가 된다는 말인데,
진화라는 것은 세상에 적응하는 처세술이니 종교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입니다. 그렇다 해도 꾸준히 논리 개발과 적응을 통해 살아 남기 위해 그렇게 합니다. 고신 통합 통일교 어떤 단체라도 그들의 언행으로 살피려면 그 면에 역사 전문을 하지 않으면 문제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시간과 정력을 아끼기 위해 우리는 기본적으로 숲을 보면 그 속은 굳이 보지 않아도 됩니다. 여호와증인의 과거 언행을 짚으려면 한도 없고, 지금 겪는 일을 보면 여호와증인의 전체 방향을 느낄 수 있으면 그들 속에 처음 출발할 때 그리고 그들 내면에 묻어 둔 실체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적응과 진화로 변모를 해도 실체를 알 수 있고 또 예측이 가능합니다. 여호와증인,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이며 어떤 사람인지?'

장례 기간에 이 과제를 풀어 보도록 부탁을 했다.
이 과제를 통해 우리에게 각자 접하게 한 주변 인물과 우리가 속하고 접하는 교회와 교단과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환경을 현실로 만들어 주신 주님 때문에 우리는 오늘 세상을 이렇게 살피면 파악이 될 듯하다.


이 사람의 정체가 무엇인가? 이 운동 이 단체의 정체가 무엇인가? 이 것을 알면 이들의 지난 날을 전부 이해할 수 있고 이들이 앞으로 행동할 일을 다 알 수가 있다. 정체를 알기 어려우면 그들이 드러 낸 행동들을 하나 둘이 아니라 많이 모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정체를 알고 나면 이제 다 알 수가 있다. 어떤 행동은 그 행동 하나를 통해 정체가 바로 드러 나는 경우도 있다. 백영희 설교의 70년대를 주로 근거로 삼아 적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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