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19) -1, 평생 돌아 봐도, 매일의 생활을 하면서도 늘 감사한 일을 적어 본다.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20.10.16
(먼저 언급 된 이야기)
이 글은 '남단/1355번, B. 사후 30년을 돌아 보며 - 연구소의 역사적 고찰, 2019.09.29'의 답글로 올려 진 '2451번, (19) 아버지께 배운 '경제 내핍'과 '백영희 자녀 교육' 2019.10.26'에 있던 내용의 다음 부분에서 이어 진다. 1984년에 미국 Covenant 신학교 공부를 위해 St. Louis 대학에서 5월부터 여름 학기에 있었던 일이었다.

'5천 달러를 가지고 도착하자 최재현 목사님이 장로님으로서 나를 맡아서 안내했다. 공부가 치열할 것이니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미국 학생들처럼 잘 먹어야 견딘다며 2개월의 식비를 지출하자 했다. 11주의 방학 과정을 위해 2500달러를 지출했다. 호텔식 방에서 식사는 대략 아침에 $1.5, 점심에 $4, 저녁은 $5 정도로 기억이 된다. 그 돈으로 먹는 식탁은 내가 구경도 할 수 없는 호화판이었다. 이미 돈을 지출했다. 2개월은 평생에 다시 구경하지 못할 식사만 했다. 그리고 2개월 식사가 끝나는 날 나는 주변에 있는 맥도날드 햄버거 집으로 가서 가장 작은 50센트 햄버거를 아침에 1개, 점심에 2개, 저녁에 3개로 계산해서 한꺼번에 샀다. 그리고 Covenant로 옮길 때까지 한 달을 한 끼도 바꾸지 않고 그렇게 끝냈다. 그 때 $1이 650원쯤 할 때다. 그리고 신학교로 간 다음에는 빵 사이에 양배추 익힌 것을 넣고 잼을 바른 샌드위치를 만들고 아침에 하나, 점심에 둘, 저녁에 세 개를 먹으며 2년을 하루도 빠짐 없이 그렇게 했다. 요즘 우리 나라로 말하면 라면만 2년 먹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잊지 못할 백도충 집사님의 배려)
지금 우리 나라는 시골까지 모든 사람이 한 주간에 한 번 정도 대형 마트에 가서 한 주간에 필요한 식품을 구입한다. 어느 날 이 나라의 모든 생활이 천지개벽을 한 것이다. 주변 골목 시장에 늘어 놓은 야채나 생선을 사고 오가는 길에 가게들을 들러 가게마다 따로 진열하는 몇 가지를 구입하던 것이 불과 어제 같았는데 2000년경이 되면서 어느 날 전국은 초대형 마트에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한 자리에 가장 좋은 상태로 진열이 되었다. 쳐다만 봐도 구경거리다. 나는 1984년 미국에 갔을 때 이미 이런 대변혁을 겪었다.

나는 백 목사님 7남매 자녀 모두로부터 그 분들이 평생 한 식탁에 앉는 가족 외에는 같은 형제에게도 베풀지 않았던 배려를 다 받았다. 나의 평생에 자랑이고 감사며 그런 사실은 최근 나를 수 없는 전과범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다. 그 건 그 것이고, 이 건 이 것이다. 7남매의 형편에 따라 더 가깝고 더 조심하던 시기는 각각 다르다. 7명 개인 별로 어느 누구도 생각하기 어려울 배려를 굳이 적으려면 이야기는 끝이 없다. 그런데 목회나 교회나 공회의 업무를 떠나 매일의 생활 속에서 항상 기억하며 늘 감사하고 있는 일을 적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 훗날 나와 관계 된 이들에게 이 기록이 전해 질 때를 예상하며 메모를 해 본다.


7남매 중에 백도광 백순희 백은희 백도영 백명희 다섯 분과의 관계는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개인적이면서 공회에 중요한 일들이 그득하다. 백도진 백도충 두 분과의 공회적인 일은 그 분들이 기억하지 못할 몇 순간만 있었다. 또한 생활 속의 추억은 그 분들이 이 글을 읽으면 대략 기억을 할 정도의 평범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두 분 중에 백도충 집사님의 배려만을 적는다. 백도진 집사님과의 추억은 따로 적을 일이 있다. 감사한 분들의 소중한 추억들은 내 평생에 깊고 짙게 배어 있다.


(1984년의 세인트루이스 신학생 시절)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파 본 시절은 없다. 나는 꼭 배가 고프면 쓰레기 통을 뒤져서라도 먹을 수 있고 또 내가 살아 온 시절에 가끔 배가 고플 일이 생긴다면 어디라도 뒤지면 먹을 것이 있었다. 주변의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배가 고프던 시절은 있었다.

1984년, 세인트루이스에는 교회가 10개 정도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한 번은 누가 세세히 헤아려 보니 놀랍게도 20여개라 했다. 교회로 파악이 될 정도는 10여개였고 가족 단위로 모이기 때문에 교회로 파악이 되지 않던 곳이 10여 곳이 더 있었다. 이 교회들이 훗날 여러 형태로 발전도 했고 없어 지기도 했다. 이 시기에 나처럼 정규 신학생은 어느 한인 교회라도 가면 1주일에 1회 가르칠 기회를 주면서 월 200 달러 정도를 준다. 공회 외의 교 회는 몇 명의 학생이라도 최대한 팀을 많이 나눈다. 교회의 조직화 체계화라는 이름 때문이다. 유치부 소년부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 등으로 최대한 나누고 한 팀을 맡으면 주일을 중심으로 매주 맡은 팀만 한 번 인도한다. 설교를 30분 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20분이면 넘친다. 그 교회 예배를 참석하는 신학생도 있고 맡은 시간만 가르치고 오기도 한다. 부부가 한 파트씩 맡으면 신학생은 어린 아이 한 둘을 데리고 3끼 먹고 공부를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미국 생활에 간단한 아르바이트는 요즘 우리 나라처럼 이미 생활화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부인들이 한인 마트나 청소를 하면서 말도 배우고 돈도 벌기 위해 대체로 바깥 활동을 한다. 미국인에 비할 정도는 아니나 한국 학생 우리가 볼 때는 여유로운 미국 생활을 한다. 당시 국내 어지간한 부자가 부럽지 않았다. 나처럼 혼자 공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껴야 했던 시절)
최근 맥도날드 햄버거에서 파는 제일 싼 것이 2300원이다. 아침에 1개, 점심에 2개, 저녁에 3개로 8월 한 달을 계속 먹었다. 개당 49센터로 기억하지만 편리하게 평소 50센트라고 말한다. 최저임금이 당시 3.5달러에 환율이 달러 당 650원 정도다. 우유 1갤런이 3.78리터에 1.8달러로 기억한다. 1984년 9월에 신학교로 입학을 하면서 기숙사 생활을 했다. 20여명이 5평 정도 되는 식당을 함께 사용했다. 대부분 자취가 된다. 경제가 괜찮은 학생들은 바로 옆에 있던 대형 병원의 직원용 식당을 이용했다. 나는 신학교로 옮긴 다음부터는 맥도날드 햄버거조차 비싼 것을 알았다. 샌드위치로만 2년을 살았다. 식빵 한 봉이 30센트 정도에 얇은 조각이 약 20개 정도였다. 3 ~ 4봉을 사고, 양배추 하나를 사서 통째로 삶아 놓고 냉장고에 넣었다가 아침에 샌드위치 1개, 점심에 2개, 저녁에 3개다. 미리 만들어 뒀다. 식빵 조각에는 딸기나 포도 잼을 바르고 한 쪽에는 마가린을 바른다. 한 병에 보통 50센트였다. 샌드위치에 들어 가는 고기는 햄이다. 얇게 썰어 한두 조각 넣으면 전부다.

미국 학생들은 경이롭게 쳐다 봤고 한국에서 노동에 막 장사를 하다 온 나로서는 호화판 식사였다. 다만 한 가지만 2년을 3끼 매일 먹는 것이 문제였을 것이나 공회의 체질에 밴 나로서는 입에 들어 가는 열량만 문제지 음식의 종류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2년간 김치를 먹어 본 적이 없다. 평생 먹지 않는다. 된장은 있으면 먹고 없다고 찾지는 않는다. 미국 학생들도 그들의 조상 때와 달리 빵은 식탁에서 한 조각 얹는 정도다. 나는 167cm에 52kg 정도며 만 2년을 이렇게 먹고도 한 번 아파 본 기억이 없다.

당시 내가 주변 다른 학생과 비교하면서 원망을 하거나 힘들게 생각을 하려 했다면 끝도 없었을 것이다. 나보다 선배들은 더 고생을 했겠지만 나처럼 먹고도 견뎌 본 이야기를 들어 보지는 못했다. 그 때는 장학금이나 주변의 도움이 있었다. 나는 한국이 이미 잘 살게 되었다는 정보 때문에 한국 학생에 대한 특혜는 전부 끊어 졌을 때였다.


(백도충 집사님의 보살핌)
백 집사님은 깐깐한 성품이다. 그러나 마음은 따뜻했다. 부인 집사님은 안팎으로 다 따뜻했다. 그 분들은 매주 토요일 저녁이 되면 기숙사로 나를 찾았다. 그리고 쇼핑백 하나를 때로는 둘을 주셨다. 2년간 거의 빠짐이 없었다. 나의 주식은 앞에서 설명한 샌드위치뿐이었다. 그런데 쇼핑백에는 바나나와 햄이 있었다. 나의 식단을 고려한 것이다. 나는 제일 싼 마트를 찾아 다녔다. 집사님의 쇼핑 백은 좋은 마트였다. 내가 개인적으로는 단 한 번도 들러 본 적이 없었던 마트다. 나는 평생 '2년간 빵만 먹은' 이야기를 한다. 그 때마다 백 집사님이 매주 주신 마트 쇼핑 봉투를 잊지 못한다. 지금도 내게는 그런 선물이 들어 올 때가 있다. 거의 대부분은 물리 친다. 교인들이 부담을 가질까 싶어 그렇다. 나는 세상 물정을 보기 위해서라도 마트를 꼬박꼬박 찾는다. 그 때마다 집사님의 매주 선물을 잊지 못한다. 지금은 몸무게 57kg를 넘기지 않기 위해 하루 몇십 번씩 체중을 재면서 과일 하나도 절제한다. 그 때는 없어서 못 먹지 기회만 되면 남 보기 민망하게 먹었다. 나는 조심을 한다고 했을 것이나 지금 생각해 보면 기본적으로 결핍 상태에서 표시가 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매주 점심은 예배당에서, 저녁은 목사님의 4남매 집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 주일의 점심은 간편하게 먹지만 저녁은 만찬이 된다. 나는 이 때 한 주간에 필요한 것을 다 먹었지 싶다. 이 것이 바탕에 깔리는데 기숙사 학생들은 가족들이 나를 챙기는 내막을 모르고 2년간 오로지 아침 점심 저녁을 빵에 잼을 바르고 햄 한 조각에 양 배추 한 잎이 전부인 줄 알았다. 나 역시 어렵게 먹을 때를 표현할 때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더 자세히 말을 할 기회가 있을 때는 집사님의 매주 식료품 한 아름을 빼놓은 적은 없다.


지금 나는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나는 지금 자가용을 가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그 흔한 중고차 하나도 가져 본 적이 없다. 나는 지금 먹고 싶은 것은 원 없이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음식, 어떤 식사 자리, 어떤 선물을 봐도 늘 84년에서 86년까지의 매주 집사님의 방문을 잊어 본 적이 없다. 마트에 가면 물품들을 눈에 담는다. 어떤 물건들이 어떤 가격으로 나왔는지. 그렇게 한 번 보면 내가 섞여 살지 못하는 오늘 세상의 각 가정과 모든 이들의 마음을 많이 들여다 볼 수가 있다. 그 때마다 집사님의 쇼핑 선물을 기억한다. 그 어떻게 형언을 할 수가 없다. 지금 누가 나에게 마트 하나를 통째로 준다 해도 그 한 아름의 식품과 비교할 수는 없다.

집사님의 두 아이들 중 하나는 젖먹이였고 하나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이었다. 뒤에 둘 다 하바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 둘다 30대니 미국의 정상급에서 훌륭하게 잘 살고 있을 인물이다. 미국의 고교 전체 수학 대회 1등을 했다는 말도 들었다. 일일이 손을 꼽을 수 없는 장점을 가진 이들이다. 나로서는 그 부모님이 매주 나를 보러 올 때 아이들이 늘 함께 했다. 나는 그런 가정의 보살핌을 받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평생 자랑스럽다. 백 목사님 때문에 그 분들은 나를 살폈다. 그래서 백 목사님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감사를 하려면 나는 끝이 없다. 나의 어려운 생활을 적기 위해서가 아니라 목사님에 관련 된 이야기를 통해 이 노선을 좋아 하는 분들에게 참고를 부탁하며 적는다. 그 시절을 가지고 내가 악감을 품고 가족들을 비판하려고 적는다면 아마 백 목사님에 대하여 제기 된 모든 비판을 뛰어 넘을 수 있다. 후자는 귀신의 선악과 보게 하는 눈이다. 세인트루이스에서 가족들을 겪은 분들치고 가족들을 비판하지 않는 이들을 보지 못했다. 나는 그 분들에게 감사할 것뿐이다. 그 분들에게 혹독한 점이 있었다면 바로 그 연단 때문에 나는 오늘의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 것마저 감사할 뿐이다.

이 글을 적어야 할 무슨 사정이 좀 있었다.
전체 0

전체 260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
이용 안내문
공지 | 담당 | 2018.04.11 | 추천 0 | 조회 1275
담당 2018.04.11 0 1275
5020
믿고자 하는 사람들, 믿으려는 사람들 - 여호와증인을 중심으로
5020 | 담당 | 2020.10.17
담당 2020.10.17 0 110
5019
(19) -1, 평생 돌아 봐도, 매일의 생활을 하면서도 늘 감사한 일을 적어 본다.
5019 | 서기 | 2020.10.16
서기 2020.10.16 0 104
5004
서부교회 교인들에게 '시가행렬' '궐기대회'를 참석하라 했던 역사
5004 | 담당 | 2020.10.13
담당 2020.10.13 0 157
4993
백영희에 대한 '종단적 연구' - 결혼 제도를 중심으로
4993 | 담당 | 2020.10.07
담당 2020.10.07 0 120
4982
설교록의 출간과 전파, 그리고 그 그림자
4982 | 담당 | 2020.10.03
담당 2020.10.03 0 151
4974
희귀한 현상 - 미국의 저력을 중심으로
4974 | 담당 | 2020.09.27
담당 2020.09.27 0 141
4965
오늘의 이성 범죄, 그 진행 과정을 살펴 본다.
4965 | 담당 | 2020.09.25
담당 2020.09.25 0 164
4954
예수님을 오늘 '법정'에 다시 세운다면 전과 몇 범이 될까?
4954 | 담당 | 2020.09.22
담당 2020.09.22 0 113
4945
세상의 부정 부패를 향한 공회식 자세 - 경찰의 뇌물 사례를 중심으로
4945 | 담당 | 2020.09.20
담당 2020.09.20 0 94
4911
예배당 고수와 예배 고수 - 교인의 좌석 문제를 중심으로 (1)
4911 | 담당 | 2020.09.12
담당 2020.09.12 0 235
4939
예배당이 아니라 예배를 고수한다면 (1)
4939 | 담당 | 2020.09.19
담당 2020.09.19 0 114
4941
비밀글 공회의 수장들, 다시 돌아 본다.
4941 | 담당 | 2020.09.19
담당 2020.09.19 0 7
4946
총독부와 담판을 벌인 당시 총회 지도부, 오늘도 꼭 그 모습 그대로... (2)
4946 | 담당 | 2020.09.20
담당 2020.09.20 0 126
4863
한 번씩 드러 내는 주님, 드러 나는 교회들 - 공회를 중심으로 (5)
4863 | 담당 | 2020.08.31
담당 2020.08.31 0 336
4877
좌파가 지지한 '여호와증인의 신앙자유 판별법' - 코로나에 적용하면 맞다. (1)
4877 | 담당 | 2020.09.03
담당 2020.09.03 0 258
4884
모두가 궁금했던 '부산 서부교회'의 현황 (7)
4884 | 담당 | 2020.09.06
담당 2020.09.06 0 420
4887
썩는 양식을 위해 영생의 양식을 버리라는 교계 지도자, 거짓 선지자가 아닌가?
4887 | 담당 | 2020.09.07
담당 2020.09.07 0 234
4859
역사에 경험하지 못한 세상, 초대교회로부터 변해 본 적이 없는 교회
4859 | 담당 | 2020.08.30
담당 2020.08.30 0 181
4830
평화시 이권, 환란에 십자가 - 총공회 '대표'를 중심으로
4830 | 담당 | 2020.08.26
담당 2020.08.26 0 183
4826
예배당 폐쇄 - 정부인가, 교회의 책임인가?
4826 | 담당C | 2020.08.26
담당C 2020.08.26 0 201
4784
세상에게 감동을 주라는 것은 '귀신의 덪'
4784 | 담당 | 2020.08.23
담당 2020.08.23 0 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