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예배당 고수와 예배 고수 - 교인의 좌석 문제를 중심으로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0.09.12
(예배당 고수와 예배 고수의 차이)

한국에 10여만 교회, 국가가 예배를 막으면 모두가 막히는데 그래도 버티는 데까지 버텨 보는 교회들이 더러 있어 반가운 마음이다. 그 중에 몇몇 교회는 끝까지 버티고 있어 더욱 감사한 마음이다. 끝까지 버티는 교회에게 이왕 고난 중에 더 큰 복을 받도록 이런 문제점을 생각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이 곳을 방문하는 분들은 대부분 끝까지 버틴다고 생각한다. 주관에 빠져 자기는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객관적으로 바른 진리의 바른 방법으로 잘 대처하고 있는지 다음 문제를 살펴 보면 좋겠다.

 

세상이 교회의 예배만을 표적으로 삼아 방역을 핑계로 삼고 예배당 출입을 막고 있다. 방역 문제로 막는다면 맞서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교회는 교회의 예배당 예배를 포기했고, 현재 방역 문제로 막는 상황은 예배를 포기할 문제가 아니라는 교회는 예배당 예배를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예배당 예배를 고수하는 교회도 예외 없이 예배를 드릴 때 교인의 앉는 거리는 지키고 있다. 지키고 있다는 것을 강조까지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제기 된다. 예배당을 출입하며 좌석도 식사도 전부 과거처럼 고수하는 교회는 이 글에 상관이 없다.

 

(예배당 문만 들어 가면 예배 고수일까?)

서부교회는 본당 2층에만 3미터 장의자가 400개 정도로 기억이 된다. 출석 교인이 600명에서 1,000명이라면 방역 거리를 지키면서 모두 앉을 수 있다. 그런데 공회의 다른 교회는 2층 본당에 자리가 찼기 때문에 1층으로 옮긴다고 한다. 평소에는 2층에만 앉았던 교회다. 방역 지침 때문에 1층으로 일부 교인이 움직였다면, 방역 때문에 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데 별도 장소를 사용하는 것이 된다. 방역 지침에 예배당 출입이 막히지 않으려면 평소 예배의 모습과 진행도 막히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듯하다. 예배 때 사용하는 공간, 예배의 순서 진행 일체를 두고 방역 당국이 개입하는 것은 모두 무시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다.

 

만일 예배당 대문을 통과하는 교회가 방역 당국 때문에 평소처럼 본당에 모두 앉지를 못해서 부속 건물을 사용한다면 예배당 고수는 된다 해도 예배 고수가 되지는 않을 듯 하다. 방역 당국이 교회의 예배만 탄압하고 나서는 이유는 다른 교회들의 통성 기도와 방언과 찬양 율동이 공회와 달라서 침이 튀고 교인들이 손을 잡고 어울리다 보니 전파가 잘 된다는 것이 교회만 막는 이유다. 이런 교회는 방언을 하고 율동을 하고 교인끼리 어울려 허물없이 나눠 먹는 것이 교회의 예배며 사랑이며 신앙의 본질이다. 그런데 예배당 출입은 고수하면서 평소 교회가 예배와 신앙의 본질로 여기던 이런 일들을 전부 하지 않고 예배당에 출입만 고수하면 예배 고수가 될까?

 

예배당 문을 통과하는 것으로 예배 고수라고 본다면, 예배 드리는 장소와 방법은 방역 지침 때문에 예배의 진행을 고수하지 못하는 것은 예배 고수와 상관이 없다면 예배당을 지키는 것이지 예배를 지키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예배인가 예배당인가? 우리는 예배와 예배당을 함께 고수한다. 예배당을 포함하는 이유는 예배당이 예배에 너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구약의 성전 위치와 건축물과 시설은 제사에 본질이지만, 신약의 예배당은 예배에 너무 필요하고 좋고 유익하지만 그렇다고 예배에 본질에 들어 가지는 않는다. 예배당을 고수하는 것일까, 예배를 고수하는 것일까? 예배 고수를 위해 예배당을 막는데도 출입하고 있다면 예배를 드리는 본당을 평소처럼 채우기 위해 어떤 교회는 교인의 좌석 거리도 양보하지 않아야 하고, 공회는 그런 곳이 드물지만 타 교회는 방언과 율동과 식사도 뒤섞어야 한다.

 

 

(부공3, 연구소 관련 교회들은)

부공3 교회는 2006년경 실시간 예배를 정식 예배로 인정할 것인지 의논이 있었다. 의논할 것도 없이 인정을 했다. 1989년의 재독 문제로 총공회가 대구공회와 부산공회로 분리 될 때 이미 다 검토했던 내용이다. 2006년경 부공3 교회는 원거리 교인을 위해 실시간 예배를 제공하기 위해 정식으로 의논을 했고 1개 교회가 먼저 장비를 갖추고 그렇게 했다. 예배당에 앉아 있어도 예배를 드리지 않는 교인이 있다. 원거리에서 실시간을 통해 예배를 참석하는데도 예배를 드리는 교인도 있다. 공회의 신앙과 노선에서는 이런 문제는 애초부터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평소에도 예배당 예배를 원칙으로 삼으면서 출산이나 원거리 교인의 경우 실시간 예배를 시행했다. 실시간 예배를 인정하면 교회와 예배 생활이 흐트러진다는데 부공3은 이로 인해 오히려 예배당 예배가 더 강했졌지 후퇴하지 않았다. 그리고 방역 문제를 두고 예배당의 거리 문제가 되면 부속 건물을 이용하고, 부속 건물이 불가능하면 예배당 마당에 차량 안을 부속건물로 삼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 방역 당국 때문에 예배의 정의와 진행을 바꾼 것이 아니라 부공3은 원래 그러했다. 그런데 2006년경 실시간 예배를 구체적으로 거론하게 되자 먼저 실시하는 교회에 제일 신앙이 있다고 알려 진 교인이 출석 예배가 아니면 예배가 아니라며 반대를 했다. 현재 그 분은 부공2 교회에 있다. 현재 그 교회에서 그 원칙을 지키고 있는지 모르겠다.

 

항상 말은 쉽다. 행동이 어렵다. 말을 강하게 하는 것은 더욱 쉽다. 자기에게 닥치면 그런 사람일수록 더 빨리 달라 진다. 내가 훗날 신앙을 후퇴하기 위해 미리 남에게 피할 길을 주자는 것이 아니다. 남이 겪을 때 혹독하게 가르친 사람일수록 자기에게 같은 일이 닥치면 갑자기 그렇게 너그러워 진다. 어린 신앙이 자기 수준에서 자라 가는 과정이라는 것이 있다. 어리니 후퇴하고 주저 앉고 타협을 한다. 그 모습을 볼 때 이런 일을 통해 앞으로 자라 가는 경험이 되고 장래 환란을 준비할 때 좋은 기회가 된다고 보면 좋겠다. 혹독함이란 자기에게 향할 때 좋은 것이다.  지금 방역 문제로 예배당의 출석 예배를 고수하는 교회는 누가 뭐라 해도 좋은 교회다. 10만을 헤아리는 전국 교회에 몇 손 꼽을 복이 내려 지고 있다. 그렇다 해도 그 교회에게 앞 날을 위해 하나를 더 생각하시는지 질문하고 싶다. 예배당 출입을 고수하려면 예배당 내의 거리 때문에 평소와 시설 사용이 달라 질 때는 어떻게 할지, 미리 살피고 그 원칙에 따라 대처하면 진리를 고수하는 것이 되나, 그렇지 않게 되면 큰 것을 이기고 작은 것을 놓치다가 큰 것까지 잃게 된다. 재건교회와 서부교회 4층과 부공1과4가 그런 곳이다.

 

 

 

(참고로)
공회의 예배 외형의 원칙은 '정한 시간, 정한 장소'다. 그래서 교회가 예배 장소와 시간을 정하면 죽어도 계속한다. 공회는 전쟁 중에도 장례든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는 이어 간다. 전쟁 중에도 이어 가는 이유는 군인은 총을 들고 육체의 생사를 걸고, 교회는 신앙의 생사를 걸고 예배를 지키기 때문이다. 장례는 일정을 조절하면 된다. 주일과 예배를 피해서 진행하면 되는데 유교식 또는 한국의 미신식 3일장을 성경의 말씀처럼 고수하는 것은 신앙의 상식에도 맞지 않다.

주일 날 자기 집에 화재가 나면 예배 시간을 결석하고 소방을 하며 예배당으로 오다가 교통사고가 나면 부상에 따라 병원 응급실로 갈 수도 있다. 생존이나 비상적인 사고는 눅13:15에서 안식일에 일이 금지가 되어 있어도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 물을 먹이는 것은 허락했고, 눅14:5에서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에도 생존을 위한 구출 처리는 한다. 현재 국가적 방역 사태는 우물에 빠진 생명을 구해 내는 정도가 아니라 건강 증진 운동으로 보이는 교회는 예배당 예배를 고수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교회는 현재 방역 상황을 생사의 비상 상황으로 보지 않지만 국가가 생사 문제로 대처하면서 예배당 출입을 막는다면 각 교회는 국가에게 하나님이 맡긴 통제권을 어느 선에서 인정할 것인가? 이 문제는  각 교회가 결정할 일이다.

 

연구소 입장은 전쟁 중에 총알이 날아 다니는 상황에서는 예배당으로 가는 그 사람이 자기 생명만 포기하면 남에게는 피해가 되지 않으니 전투 현장에서 예배당으로 가는 것은 각 교인의 신앙에 따라 자유할 문제로 본다. 그러나 자기 집이 불에 타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예배 때문에 불을 꺼지 않고 교회로 갈 때 그 화재가 옆집으로 번질 수 있다면 이 것은 예배를 드리러 갈 자유가 없다고 본다. 현재 방역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전염이 될 수 있는 문제가 걸려 있다. 세상이 교회를 탄압하려고 예배를 막고 나서는 속마음은 뻔하지만 전염병을 내세우며 교회 출입을 막는 것에 대하여 교회가 힘으로 맞설 수는 없다고 본다. 힘으로 막는 것이 어느 단계인가? 경찰이 방패를 들고 막는데 뚫고 들어 가는 것은 안 된다고 본다. 그렇게 하기 전에 공무원이 통고를 먼저 하게 되어 있다. 그 통고서까지는 무시할 것인가, 그 통고서부터 힘으로 막는 것으로 볼 것인가? 그 것은 교회 별로 판단할 문제로 본다.

 

 

(공회의 재독 논쟁)

1989.8.27. 백 목사님 순교 직후 '재독' 예배가 문제 될 때

백태영 목사님은 죽은 사람의 얼굴을 보면 사람이 미친다며 열변을 토했다. 이 논리는 가족 중 1명이 제공했고 대구공회는 광우병 소동으로 광화문에 나와서 펑펑 울던 사람들처럼 대구공회 교인들을 몰아 갔다. 쉽게 말하면 사실을 살피는 지성, 사실들을 놓고 정리하는 이성, 지성과 이성을 묻어 버리고 감성으로 사람들을 몰아 갔다. 당시 연구소는 재독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신약의 예배는 구약과 다르며, 공회의 예배를 정의했다. 많은 면에서 교계와 차원이 다르듯이 신령한 면을 중심으로 냉정하게 평소 공회의 상식으로 설명했다. 당시 대구공회는 일제히 교계의 일반론을 인용하며 '살아 있는 사람이 직접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평생 공회에서 배워도 돌아 서면 놀랍게도 다 잊어 버리는지, 알면서 싸움을 이기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것인지 지금도 혼란스럽다.

 

(신앙의 기본 방향)

공회는 모든 성경에 사용 된 단어를 성경으로 정의를 내린다. 교계는 성경의 단어를 불신자 국어 영어 심지어 원어 사전을 가지고 훑어 내려 온다. 서로가 가는 길이 다를 수밖에 없고 서로의 수준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공회는 기독교의 사랑을 요일4:10의 해석에 따라 '구원'의 사랑만 사랑으로 단정하고 시작한다. 남녀의 정욕 사랑, 사회적 구제는 불교도 있다고 생각한다. 공회는 '살인'을 요일3:15에 따라 '미움'부터 살인으로 본다. 살인 여부를 두고 마음 속에 형제 구원에 대한 포기를 미움으로 보고 살인으로 보며 투쟁한다. 교계처럼 기독교는 사랑이기 때문에 원수의 처형을 구명하는 운동에는 별 관심이 없다. 손양원을 두고 공회는 무신론자를 전도하여 교인 만드려고 구명했다고 생각하고, 교계는 연쇄 살인범을 용서하여 우리 사회에 풀어 놓자고 난리다.

 
전체 1

  • 2020-09-13 20:07
    교회 운영을 세상이 할 수 있는가?
    소방법 도로교통법 건축법처럼 방역법이 예배당의 시설은 간여할 수 있다. 교회가 이 부분을 두고 맞설 수는 없다.

    예배의 내용과 방법을 세상이 간여할 수 있는가?
    세상이 소방과 사고 방지와 방역 때문에 예배의 내용과 방법을 막고 나서면 그 것은 국가의 권리다.
    그런데 이렇게 막을 때 교회는 교회가 정한 예배의 내용과 방법을 사용한다.
    둘이 충돌을 하면? 세상의 칼을 상대로 교회는 칼을 들지 않는다. 세상의 칼에 베여진다. 베여도 교회는 한다.

    방역 때문에 예배를 하지 말라, 교인을 절반 깎아 내라?
    교회가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다면 그 것은 그 교회의 자유다.
    교회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하지 않고 진행한다. 그러다 끌려 나가면? 끌려 나간 곳에서 선다.
    그 곳에서 예배를 드린다. 밀면 밀린다. 밀리는 데까지 밀리지 밀리는 그 이상으로 후퇴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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