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교회를 향한 칼을 단단히 벼리고, 그 중심에서 86 무리

작성자
담당B
작성일
2020.07.25
6.25 이후 70년의 세월 속에 오늘처럼 한국의 정부와 사회와 언론이 총동원 되어 교회에 칼을 겨눈 적은 없었다.
과거 교회를 향해 떠들 때는 그렇게 떠들어 봐야 강아지 짖는 것처럼 시끄럽고 귀찮을 일이지 물려 죽을 일은 아니라고 봤다.
요즘은 교회를 향해 그냥 째려 보며 낮은 목소리로 으르릉 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살기가 느껴 진다. 현재 교회를 노리는 칼의 성질과 방향과 칼을 쥔 쪽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한 순간에 요절을 낼 모든 면을 다 갖춘 듯하다. 그 칼을 쥔 이들의 20대 시절부터 오늘까지 40여 년을 잠깐 돌아 본다. 교회를 향한 칼을 벼리고 벼러 온 이들이다. 이들에게 올려다 보지 못할 위대한 스승의 위치를 가지고 그들을 근엄하게 질책하면서 그들을 오늘의 그들로 길러 낸 이들이 4.19 때 20대 학생으로 활동한 이들이다. 족보를 살피면 지금 칼을 벼리는 이들의 속에 들어 있는 세계를 살피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운동권 원조라 하면 4.19 세대일 듯하다.
공회 최 중심 최고 교회 목사님이 4.19 의거 최핵심 몇 명 중에 들어 간다. 그 때 정신을 가지고 백 목사님 면전에서 백 목사님이 기독교는 민주주의가 딱 싫다 할 때 '아니오! 기독교는 민주주의요!'라고 외치며 1960년의 4.19 항거 기백을 꺾지 않았음을 보여 줬다. 지금 그 분은 매2년 투표제도를 없애고 30년을 독재하고 있다. 4.19의거 동지들이 60세 65세 70세를 거치며 전부 현직에서 물러 났지만 83세인 현재도 종신 독재 체계를 만들었다. 그 분은 하나님의 뜻이라 하는데 내가 볼 때는 모택동 김일성 등이 지지층을 결집 시켜 제도와 법을 넘어 서서 집권하는 방법으로 군중끼리 패싸움을 하게 하고 우선 유리한 상황에서 적대층을 제거하게 되면 이 때 감정이 지속 되며 싸웠던 상대가 싫어서라도 종신토록 자기를 지지하게 만드는 세상의 흔하디 흔한 방법을 사용했다 보이고 결과적으로 투표 없는 종신제를 혼자 누리기 때문에 그의 평생 주장을 믿지 않는다.

운동권의 두 번째 원조는 유신 반대 세대일 듯하다.
3선 개헌 반대가 1969년에 먼저 있었지만 1972년 유신이 그 절정이고 그 앞뒤의 반대 운동을 유신 반대 세대라고 한다. 지금 정치권의 최고위직이나 원로들에게 해당한다. 공회 내의 지도급 인사들 중에는 암약했거나 오해를 받을 정도의 인물들이 의외로 많다. 그 분까지! 라고 할 정도지만 언론이나 그 운동권의 대표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생략한다. 적어도 이 시기에 울분을 1987년 6.29 때 화려하게 앞에 서거나 중심에 선 이들이 있다. 6.29민주화 운동은 전 대통령에 대한 반대 운동이라고 넓게 잡고 싶다. 요즘 우리 사회의 사법 입법 행정부는 물론 사회 거의 대부분을 완전히 실무 또는 실권적으로 장악한 이들이 이 세대들이다. 86세대라고 하는가 보다. 60년대 출생하고 80년대 운동권에 있던 이들. 그런데 50년대 출생하고 80년대 운동권을 뒤에서 지도한 이들도 있다. 이들은 86세대의 배후라 하겠다.



나는 서부교회에서 1986년부터 고교 3학년을 졸업하고 곧 대학에 진학할 학생들 또는 이미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 좌파 운동권에게 의식화가 되지 않도록 미리 예방을 하고 또 돌려 세우도록 직책을 받았다. 나밖에 없었다. 서부교회 고3 졸업생은 매년 수백 명이다. 주일학교를 졸업하고 중간반으로 올라 가는 학생이 1천명을 넘는다. 고교를 졸업하는 수백 명, 내 기억에 2백여 명 정도가 매년 강의를 들어야 하는 절박한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고3까지 20여 년 가까이 오로지 우리 나라만 좋고 정권은 무조건 옳고 민주화는 나쁜 것이며 북한을 쓸어 없애는 것만 민족의 살 길이라고 배웠다. 이들이 졸업을 하고 대학으로 올라 가거나 직장을 잡게 되면 이들을 하숙집 자취방 기숙사로 찾아 가서 실은 북한에는 우리보다 지하철이 먼저 있어서 더 발전을 했고 무상 치료 무상 교육의 지상낙원으로 가르친다. 대개 1주일 속닥 거리고 나면 20년 배우고 알던 지식을 버리고 의식화가 된다. 서부교회 출신들은 전사로 나가는 경우는 없을 정도다. 그러나 속으로 그 동안 잘못 알았다며 인생관이 흔들리면서 신앙과 교회에 대한 인식의 밑바탕이 흔들려 어지러움을 느끼는 정도는 된다. 이런 의식화 과정에 겪은 충격과 함께 대학 생활의 환경 변화가 겹치며 일부는 운동권 때문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당시의 일반 대학생으로 신앙이 내려 앉고 일부는 최소한 겉으로 별 바뀐 표시 없이 학생 시절을 보낸다. 확실한 것은 그런 대학 시절을 신앙에 좋은 기회로 삼고 고교까지 20여년 묶여 있던 어린 신앙이 물 만난 고기처럼 창공을 나르는 독수리처럼 날아 오르는 경우는? 거의 거의 없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백 목사님은 1989년 돌아 가실 때까지 생의 최후 순간에 가졌던 마지막 '목회자로서의 현장 과제'가 말세 이런 환경에서 학생을 어떻게 신앙으로 붙들 수 있을까였다.




나는 서부교회에서 독특하게 맡고 있던 직책 때문에 학생들로부터, 또는 학생을 지도하는 학부모나 선생님들로부터, 또는 부산시 서구에 위치한 교회였기 때문에 당시 광주보다 야당 기질이 더 강했던 김영삼 총재를 좋아한 순수 교인들로부터, 심지어 6.29 선언을 이끌어 내며 한국 사회를 진정한 민주화 사회로 출발을 시켰던 부산의 당시 대학교 운동권 간부들로부터 '왜 대학생들의 순수한 민주화 일념을 비판하는지' 종종 대화할 때가 있었다.

그들에게 나는 나의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의 이력을 이야기 하며 그 시절에 직접 내가 보고 거친 인물들을 이야기 하면 상대방들은 대개 입을 다문다. 그들이 이상으로 생각하고 목표치로 둔 세계를 나는 그들처럼 멀리서 듣고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일침을 꼭 하나 찔러 놓는다. '대학교 총학생회는 일당 독재다. 야당이 없다. 선거가 끝나면 회장 혼자 입법 사법 행정 모두를 다 독식한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학생회비를 불법으로 무단으로 거둔다. 그 돈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며 얼마나 부패가 많은지는 말하지 않겠다' 이 말까지 하면 그들은 나를 더 이상 정치 문제로 대화하지는 않는다. 많지는 않으나 양심적인 사람들은 뒤에 와서 학생회의 내부 이야기를 한다. 독재정권과 모든 면에서 꼭 같다고.

요즘 운동권 출신으로 정권을 잡은 이들이 우리 사회 모든 면에서 일제히 치부를 드러 내고 있다. 이 때 꼭 나오는 변명은 완전무결이 없기 때문에 어쩌다 인간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접촉 사고나 우발 사고라 한다. 그들이 투쟁하며 싸웠던 독재 정권들 또는 그들의 반대편이 했던 말이다. 그 때 이들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했다. 그 하나를 봐서 반대측 속은 정화조 통이라고 끝장을 향해 투쟁해 왔다. 나는 운동권의 최근 추문들을 보면서 80년대, 그 때 이미 도를 넘었던 이들인데 어떻게 오늘까지 저렇게 잘 감추고 왔는지 그 변장술에 놀랄 따름이다. 좌파는 사실 역사적 출발부터 오늘까지 그들의 정체성과 그들의 단 1가지 최고 실력이 바로 '변장'이며 '위장'이다. 군중이 모두 당할 정도로. 이 것을 나는 모순과 조삼모사라는 단어로 늘 주변에 쉽게 설명을 한다.

1960년 4.19가 터지자 당시 진보 계열에서 손꼽는 당을 만들고 정권을 도모한 분, 장면 정권 하에 핵심 장관 자리를 31세 나이에 제안 받은 분, 60년대 초반의 여야가 대치 정국이 되면 양당 대표를 불러 정국을 다시 돌아 가게 했던 인물... 소개를 하자면 끝이 없다. 그 분은 1961년 5.16이 터지면 진보 좌파로 지목 받던 우리 사회 주요 인물들을 군사정권이 전부 잡아 들일 때 김대중 당시 의원과 교도소 같은 방에 있었고 탄압 받는 급이 김 의원보다 훨씬 높았다. 나는 그 분과 오랜 세월 함께 했다. 그 분은 나를 가족처럼 대했고 서부교회와 공회의 앞날을 내게 기대한다는 뜻도 늘 반복했다. 빈 말 하는 급 낮은 분이 아니다. 그 분을 통해 4.19 때 우리 사회 지도부의 인식과 활동을 내밀하게 접할 수 있었다. 그 분에게 1987년의 6.29 이후를 함께 평가할 기회가 있었다. 그 분은 이제야 제 자리를 잡는다 했다. 그 분에게 86세대 운동권의 교내 상황을 딱 한 마디 해 드렸다. 그 분은 이후 다시는 그들에 대한 호평을 입에 내지 않았다. 오히려 입장이 180도 달라 졌다. 당시 내가 그 분께 드린 내용은 운동권 지도부의 남녀 문제였다. 그 분은 학생들이 옳은 일을 하려다 보면 폭력이나 돈 문제처럼 방법론이란 너그럽게 이해하는 분이었다. 남녀 문제를 거론하자, 그 분은 이미 한 쪽으로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나를 통해 맞춰 보며 바로 입장을 전환했다. 그 분은 평생에 '박정희!'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 이름 뒤에 한 맺힌 증오를 담았다. 그 이후는 운동권을 향해 그 증오적 표현을 옮겼다.

최근 그들의 이성 문제가 계속 된다.
나는 그들의 이성 문제가 이제야 계속이 되니 최근에만 있었던 일이 아닌데 왜 최근에만 말이 나오고 있는가?
그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천주교와 불교는
결혼을 금지 시켰다. 천주교와 불교의 현장이 날이 새파랗게 서 있을 때는 신부와 중들에게 여성을 통째로 던져 줘도 '사탄아! 물러 가라!' 하면서 발로 걷어 찬다. 굳이 던져 넣어 볼 것도 없고 또 실제 그러는지 조사할 것도 없다. 그런데 불교와 천주교가 원래의 입장을 슬슬 없애고 신식으로 분위기를 맞춘다면, 그렇다면 수도원이나 성당이나 불당을 찾아 갈 것도 없이 그 주변은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하면 거의 맞을 듯하다. 교회인들 다르지 않다. 어느 집단이든지 그 출발의 각오가 서슬 퍼렇게 날이 서 있으면 인간적 실수는 있으나 고약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상 철학 도덕 인권을 외치는 집단이 상대방과 만나 식사도 함께 하고 악수도 나누며 어울리기 시작하면 그 속에는 그들이 투쟁한 원수들과 이미 같아 졌을 것이고 그 선에서 조금 더 진행이 되면 그들이 투쟁한 원수들보다 더 심각하게 나쁘게 된다. 가속도의 법칙 때문이다. 종교는 더욱 그렇다고 본다. 중과 신부와 목사가 한 자리 앉아서 사진을 찍고 함께 무슨 사업을 하자는 정도가 되면 이미 종교를 포기한 정도가 아니라 그 사회의 가장 더러운 일들은 그들 속에 있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종교 중에 기독교, 기독교 중에 공회의 노선은 더욱 그럴 것이다. 가장 강한 교리와 노선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곳이 추력을 잃거나 방향을 잘못 잡으면 그 파탄은 더욱 심각해 진다고 본다. 인간은 완전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조심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렇게까지 조심하는 것은 더욱 심하지 않을까 하는 그 이상을 조심해야 겨우 구색을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조금만 느슨해 지면 조금 편한 상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높이 올라 간 만큼 많이 떨어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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