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F. (47) 공회의 '학위 반대' 정서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0.06.28
* 자유와 속박, 해 아래 새 것이 없다.

세상이 발달 되면서 규제가 너무 많아 진다. 헤아릴 수가 없다. 자격증이 너무 많다. 예전에는 그냥 하면 되는데 지금은 잘 알아 보지 않고 했다가는 수도 없는 규제에 걸려 불법자가 된다. 봉건 사회가 현대 사회로 발전을 하면서 처음에는 자유 세상이 되는 줄 알았는데, 끝 없이 계속 될 것 같았던 자유가 이제는 끝 없이 구속이 되고 있다. 태어 나면서 신분에 구속 되는 노예 사회는 없어 졌고, 자기 실력으로 벗어 날 수 없는 농노의 경제 구속은 없어 졌다. 그런데 전염병 때문에 아동의 인권 때문에 사회의 안정을 위해 불가피하게 제재를 만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노예 봉건 사회와 비교해도 더욱 심각할 상황이다. 고대 사회는 교통과 통신의 제약 때문에 마음을 먹으면 탈출이 가능하나 지금은 실시간으로 발걸음을 재고 있다.

* 공회는 자격증에 구속 되지 않았다.

공회에는 고유한 모습들이 많다. 백 목사님부터 법적으로 보면 초등 졸업장조차 없다. 평생 어떤 자격증이나 학위나 졸업장도 없었다. 고신 졸업장이 하나 있다 하지만 정규 학교로 인정 받은 것은 아주 먼 뒷날이었다. 신앙과 실력은 출중한데 졸업장이 없다고 무시를 당하니까 목사님은 자격증 졸업장 학위만 가진다고 실제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라면서 자격증들을 비판했다. 그 말을 듣는 교인들이 무식하고 단순하다 보니 자격증이 무슨 죄나 되는 것처럼 여긴다. 공회의 원래 분위기에서는 대학 과정을 거쳤거나 영어를 잘 하거나 학적으로 괜찮은 사람이 있으면 아주 타락한 사람으로 보는 경향까지 있었다. 음주가 위험한 일이지만 음주가 바로 사망 사고로 이어 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음주는 운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또 사람에 따라 다른 사람의 위험 정도가 자기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공회는 오늘도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아도 목회에 지장이 없다. 학위나 자격증이 있으면 오늘도 주변에서 우려를 사게 되어 불리하다. 문제는 공회 전체가 건정하면 그렇지만 공회 전체가 속화로 기울어 지게 되면 반대 현상이 일어 난다. 특별한 자격증은 목회자나 신앙 생활에 뭔가 유리한 것처럼 된다. 현재 부공3과 이 연구소는 백 목사님의 생전의 원칙을 확실히 지키고 있다. 일반 교인은 몰라도 지도자들의 사고방식만은 아직도 과거 그대로다. 세상 것은 가질수록 신앙에 틀림 없이 불리하다는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돈이든 자격증이든 어떤 것이라도 가질 수밖에 없으나 가능하다면 최대한 피하려 한다.

* 연구소의 학위 이야기

연구소라는 이름을 백 목사님 생전에 붙여 놓았다. 원래 이름을 이렇게 잘 하지 않는 분이다. 오히려 뭐든지 좀 줄이는 분이다. 그런데 장남 백도광 장로님이 서부교회의 존재가 교계에 알려 져 버렸기 때문에 과거처럼 고요히 숨어 있을 수 없으니 간단한 표시를 통해 외부의 불필요한 오해를 막자고 건의를 했다. 그래서 서부교회 '행정실' '편집실', 교단적으로는 '총공회' '위원회' '교학실장' '행정실장'이라는 직책과 조직이 생겼다. 이름은 걸맞게 되었으나 내용적으로 보면 역시 공회 분위기가 지켜 졌다. 이런 분위기를 알고, 이런 연원을 가진 연구소는 대략의 이름과 조직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용은 고대 사회 그대로다.

이런 날 때문에 백 목사님은 1983년에 연구소 직원 1명을 해외 유학을 보냈다. 백 목사님이 필요하여 정식으로 유학만을 위해 파송한 경우는 이 1명이 전부다. 나머지는 미국에 있는 공회 교회의 목회자가 필요해서 보내면서 이왕 가게 되었으니 신학과정을 밟도록 한 적은 있다. 방청 수준이 되지 않으나 그냥 다녀 왔다. 나머지는 모두 본인들이 해외 유학을 원하여 추진했고 목사님은 이왕 가게 된다니까 공회 위해 사용되도록 하라고 한 정도였다. 그러나 연구소 직원은 명확하게 서부교회와 공회와 연구소의 필요 때문에 보냈다. 자격증을 그토록 싫어 한 분이 그렇게 작정을 하고 보낼 때는 이유가 있다. 그런데 이런 내면은 확인이 어렵다. 겉으로 보면 자격증이란 객관적 입증이다. 그래서 연구소에 질문이 많다.  연구소가 공회의 유일한 외부 활동 기관이 되다 보니까 공회 안팎에서 학위 때문에 자꾸 질문이 이어 진다. 여기에 관련 내용을 한 번 적어서 앞으로 반복 되는 질문은 이 곳을 안내하려고 적는다.

<한국 교회의 학위>

한국 교회는 미국 위주의 선교사들이 시작을 시켰기 때문에 처음부터 아주 엄하게 미국식 학위나 자격증 개념이 적용 되었다. 해방 후에도 거창군 함양군 합천군이라는 3개 지역에 수십 개 교회 중 목사는 주남선 1명뿐이었다. 선교사들이 미국 수준의 신학교를 운영하면서 학사관리와 졸업 자격을 엄하게 시행했기 때문이다. 1950년 직전까지 이런 분위기가 유지 되었고, 오늘 2000년대와 비교해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미국 선교사들은 자격증 관리를 철저히 했다. 일제 때와 6.25 전쟁 전까지의 한국 교회 '목사'는 2000년대 오늘의 '목사'와 비교하면 외부적인 노력으로 보면 10배 이상으로 까다로웠다. 여기에 신앙의 내면까지를 겪어 보며 인정을 했기 때문에 100배 이상 까다로웠다고 할 수 있다. 오늘도 국내 정상급 몇몇 신학교는 적어도 외부 노력으로 보면 10배 차이까지는 나지 않고 그냥 몇 배라고 하고 싶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 신학교와 비교하면 여전히 10배 차이라는 표현을 철회하고 싶지 않다. 내면적인 신앙 기준으로 본다면 국내 정상급 신학교 학생들의 거의 대부분은 아마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신학교에서는 입학조차 하기 어려웠을 듯하다.

문제는, 이렇게 소수 정예를 선발하고 교육하여 목사로 임명을 했기 때문에 '목사'가 된다는 것은 요즘 판사가 되는 듯이 기독교 내에서는 목사 이름이 참으로 위대했다. 주남선 손양원처럼 그렇게 통과한 후에 목사 이름을 가진 후 목사 이름에 걸맞는 이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선교사들의 목사 제조 방식 때문에 목사는 힘들게 되었으나 목사적인 신앙을 여전히 유지했을까? 아니었다. 목사 제조 방식 때문에 목사 자격증 취득 과정에 신앙의 뜨거움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이런 목사 제도와 목사직의 효력 때문에 한국교회의 모든 목회 지망생에게는 '목사' 자격증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 모두가 따고 싶어 안달을 나게 만들었다.

1950년의 전쟁이 끝 나고, 한국의 사회와 함께 한국의 교회는 본격적으로 자력 운영 시대가 열렸다. 가장 먼저 발생한 일은 무수한 교단들이 생기게 되었다. 우리가 누군가? 한국인이다. 급하다. 남의 말을 듣고 생각할 틈을 갖지 않는다. 그리고 너도나도 5백 년 유교사회의 분위기에 젖어 벼슬 하나씩을 해야 한다. 선교사들이 물러 간 자리에 한국 지도자들이 그 자리를 꿰차게 되자 총회장 1개로 충분할 교단이 총회장 2 자리를 만들기 위해 교단을 쪼개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공식적으로 300여개? 실제로는 500여개가 넘을 것이다. 그리고 이 갯수만큼 신학교들이 생겨났다. 그 신학교에는 학생 몇 명을 앉혀 놓고 신학교 총장 학장 교수들이 수도 없이 양산이 되었다. 이 정도니 '목사' 자격증은 이제 제대로 된 양산 체제로 들어 선다. 어느 날 목사가 대량 생산이 되어 지금 우리 주변에 독서 지도사나 사회 복지사나 운전면허증만큼 목사 자격증이 넘치고 있다.

목사는 기본적으로 석사 과정이다. 석사 학위를 받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교수는 박사 학위를 가져야 한다. 한 급이 높아야 한 급 밑에 학위를 배출할 수 있다는 원칙 때문이다. 돈만 주면 무더기로 발행해 준다. 공회 어떤 목사는 목사 취득을 받을 때 목사 안수회를 자기가 구성을 했다. 그 목사가 그렇게 하기 전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건설 현장을 다녔는데 어느 날 세탁소 운영에 전념하며 어떤 학교를 다닌다는 말이 없었는데 갑자기 2년만에 대학 졸업장을 들고 학사가 되었고 그 다음에 석박사 과정을 2년 정도에 마치고 Ph.D로 행세를 했다. 그가 석박사를 했다는 학교는 주소조차 확인이 되지 않는다. 80년대 미국에서 벌어 진 일이었다. 당시 일반 교계는 이런 일이 흔했다. 혹자는 이런 학위를 사기라고 한다. 이 곳은 미국의 교육과 사회 체계를 알기 때문에 전혀 이의하지 않는다. 다만 학교 연락처와 주소만은 공개해야 한다고 본다. 또 논문을 제출했다니까 박사 학위 논문은 공개를 해야 한다고 본다. 그 논문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 수준인지 아니면 10만원 주면 옆에서 배껴 주는 것인지는 관심이 없다. 미국이란, 시골 10명 교회에서 신학교도 만들 수 있고 박사를 몇백 명을 만들어도 탓하지 않는다. 그 것이 미국의 자유로움이다. 문제는 미국을 모르고 한국식으로 미국을 평가하는 한국의 못난 사람들이 무식해서 발생하는 일이다. 주변에 어떤 분이 방금 소개한 그 분이 중학교만 졸업했다면서 미국에서 학위를 따는 방법을 물어 볼 때 '시카고 한인 출판사에 물어 보면 박사 학위를 인쇄기에 걸고 대량 생산을 해 줄 것이니 그 쪽으로 알아 보라'고 한 적이 있다는 말을 해서 들었다. 그렇게 대량 생산을 했는데도 실제 불법이 아닌 경우가 있다. 한국은 비인가 학교는 불법이다. 교육법 체계가 그렇다. 미국의 비인가 학교는 비인가라는 단어에만 갇힌다. 비인가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이유는, 한국의 대학법령에는 이 법에 의하지 않고는 대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미국은 그런 제한이 없다. 한국에는 학원법도 있다. 과외법도 있다. 학원법에 의하지 않고 학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그 자체가 불법이다. 미국은 그렇게 구구절절이 제한을 하지 않다 보니까 school이든 seminary든 쉽게 붙인다. 이 것이 한국어로 번역을 하면 '신학대학원'이라고 적을 수 있다. '신학교'라고 적어도 된다. '신학학원'이라고 적어도 된다. 그렇다면 보기 좋게 적을 것이다.

국내에서 대학을 나왔다면 그 대학이 어느 수준의 어느 과정이며 적법 불법이 바로 나온다. 빠져 나갈 도리가 없다. 연구소가 운영하는 신학교는 '양성원'이다. 신학교도 아니며 신학대학도 아니며 신학대학원도 아니다. 타 교단의 신학대학원 과정이라고는 할 수 있다. 목사 안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과 내용과 과정을 보면 타 교단의 평신도 성경 공부 과외 과정일 수도 있다. 어떤 과목은 국내 최정상급 신학대학원의 박사 과정보다 훨씬 어렵다. 교리와 성경에 관해서는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처음부터 이름에 '학원' '학교' '대학' '학위'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한국에서도 문제가 없다. 그런데 양성원 과정을 졸업하고 미국의 신학교로 입학을 하려 한다면 그 때 우리 양성원은 미국식 표현에 따라 맞춰 준다. '총공회 seminary' 즉, 미국의 신학대학원이다. 우리의 국내 사용과 미주 사용은 맞다. 타 교단의 국내 사용과 미주 사용은 거의 사기 수준이다. 한국의 신학대학원과 동등이 아니라 미국에서 한국에 있는 양성원 수준으로 공부한 사람은 국내 표현으로 바꿀 때 '미국 어느 성경 그룹 모임'으로 적어야 할 학위가 무수하다. 실은 양성원의 10분의 1은 커녕 100분의 1도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연구소의 직원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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