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소수 정예의 함정, 주교로 본 경험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0.06.27
서부교회 주교 부장 출신의 목회자가 1994년에 백 목사님 전기를 준비하는 과정에 은퇴 교사 한 분과 나눈 이야기가 연구소에는 전해 지고 있다. 당시 시골 학교는 한 반에 10여 명을 겨우 넘기고 있을 때다. 대화하는 분들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정원이 60명이었다. 김영삼 정권이 한창 진행 중이고 전국의 교육 주제는 '정원 줄이기'였다.

한 반에 60명 앉혀 놓고 가르칠 때와 지금처럼 정원이 절반으로 줄어 든 상황, 이렇게 시골은 4분의 1로 줄어 든 상황을 놓고 현장에서 가르칠 때 교사로서 느낌을 물었다. 질문을 하자 은퇴 교사는 바로 첫 마디가 툭 던져 졌다. '힘이 나지 않지요.'

 

바로 이 것이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부흥 과정에 수도 없이 던져 지던 질문에 대한 공회의 답변이었다. 보통 교육에는 질이 중요하다 한다. 경험이 없는 이론이 대세를 잡을 때 생기는 폐단이다. 지금 큰 교회는 무조건 나쁜 원수가 되고 큰 교회를 고의로 쪼개고 잘라서 작게만 만들면 의인이 되는 시대다. 세상은 그렇게 하라고 부추기고 기독교 내부의 진보 좌파들은 내응을 하고 바람을 잡는다. 심지어 대형교회를 일군 이들이 마침내 그렇게 하는 것이 의인이 되는 줄 알고 인간이 의도적으로 교회 쪼개기에 나서고 있다. 귀신도 참 별별 귀신이 다 있다. 자기 집 자녀를 여러 집에 입양을 보내면 인권 함양인가, 아동 유린인가? 자기 새끼는 친 부모가 길러야 한다고 필사적으로 아듬고 가면서 가정보다 더 가정적이라야 하는 교회는 인위적으로 쪼개고 나누기를 함부로 한다. 자기의 인체 안에 장기도 너무 많으니 좀 잘라 내 버리지! 하기야 그렇게 하고 있다. 하나님 주신 현실 때문에 순종해서가 아니라 귀신에 씌여 광란이다.

 

공회의 주일학교는 그 숫적 성공 뒤에 실증적 뒷받침이 하나 있었다. 장사는 많이 벌면 성공이다. 정치는 지지 숫자만 많으면 만사 성공이다. 교회는 숫자가 많아도 신앙의 질이 따라 가지 않으면 부실이다. 종교기 때문이다.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부흥에는 빠짐 없이 따라 다니는 우려가 있었다. 가르치는 질적인 교육이 희생 되지 않느냐는 지적이었다. 다행스럽게, 지적은 끊임이 없었으나 설명 하나로 항상 우려로 끝이 났고 더 이상의 시비는 없었다. 전국에서 서부교회를 방문한 10년 이상의 수천 개가 넘는 초교파적인 현장 방문의 결과 때문이었다. 서부교회의 숫적 부흥은 질적인 부실을 문제 삼을 수 없다. 그러니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렇게 결론이 났었다.

 

교회에 교인이 적으면 목사의 충성도는 낮아 지게 되어 있다. 처음에는 힘을 써 보지만 결국 그렇게 된다. 교회에 교인이 많으면 목사의 충성도는 높아 지게 되어 있다. 남이 붙여 준 식구가 아니라 자기가 노력해서 얻은 결실의 경우는 틀림 없이 그렇게 된다.

학교의 정원을 현재 대도시 30명에 시골은 5명 소리가 예사로 나온다. 시골의 정원을 30명으로 통폐합해 버리고, 도시는 50명 이상으로 맞추면 비로소 교육이 될 것이다. 왜 되는지, 아이를 많이 낳아 본 사람들과 인간적인 사람은 느낄 것이고, 아이를 낳아 보지 않은 사람과 비인격적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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