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의인의 자손에게는 왜 세상 복만 내려 가는가?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0.06.17
복음은 유대인에게 주어 졌다. 구약의 교회를 지켜 낸 의인들은 모두 유대인이다. 유대인은 예수님을 거부했으나 세상 복은 넘치고 있다. 오늘 한국 교회까지 복음은 전해 준 중간의 기독교 선진국들, 그들은 왜 세상 복만 받고 복음의 생명성은 포기를 했을까? 오늘 미국의 세계 제패는 참으로 눈부실 뿐이다. 청교도의 후손으로 그들이 세상 복은 차고 넘치도록 받았다. 그런데 그들 속에 의인의 이야기를 듣기는 참 어렵다.

 

한국 교회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적지 않은 의인들을 모시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묻는다. 왜 의인들의 후손들은 세상 복만 받고 신앙의 복을 이어 가지 못하는가? 주기철 주남선 손양원 이인재 백영희... 우리는 그들로부터 신앙의 계통을 이어  가는 가족이 한 분이라도 계신지 듣고 싶다. 이 분들을 잘 아는 분과 마주 앉아 함께 그 자녀들을 손꼽아 본 적이 있다.

 

의인의 자녀는 걸식하는 법이 없다는 말씀에 따라 세상적으로는 모두 복을 받았다. 더러 그렇지 않아 보이는 분들도 있지만 사정을 들어 보면 하나님은 충분히 기회를 주셨다. 본인들이 쏟아 버려 그렇다. 확실한 것은 의인의 그 신앙을 이어 가는 분은 없다. 왜 없을까? 공평한 하나님께서 의인의 혈통이 아니라도 의인의 신앙의 계통에 있는 이들에게 기회를 고루 주시는 운영법으로 보인다. 유대인이  작정하고 기독교를 믿는다면 우리가 그들 근처에나 가겠는가? 미국이 그 저력으로 기독교의 본질에 주력한다면 어느 정도가 되겠는가? 한국의 의인들의 자녀들이 부모들의 신앙을 그대로 이어  가려고 설친다면  누가 그들과 비교가 되겠는가? 여러 형편을 통해 한국의 의인들의 집안을 접할 일은 많았다. 공통적인 것은, 이들이 마음의 자세와 방향만 잡는다면 어떤 후학들도 실력이나 자질로 볼 때 그들을 따라 잡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그 자녀분들이 모두 스스로 의인인 부모의 길을 포기하거나 다른 길을 가니 의인들이 남기고 간 자리는 공석이 되고, 그 공석의 가치를 모르니 그 자리는 대개 오랜 세월 비어 있었다.

 

주기철의 후임도, 손양원의 후임도, 주남선의 후임도... 강단의 좌석은 새로 부임한 분들이 앉았었지만 그 신앙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앉는 것이 아니니 신앙의 신령한 후임 좌석은 항상 공석이다.

 

가깝게,

왜 백영희 자손들은 단 1명도 의인인 그 부친의 자리에 앉지 않을까?

아버지는 강단에서 헛말을 한 적이 없다. 아버지가 고소를 반대했으니 나도 반대한다!

이렇게 말하는 자녀가 있다면 그가 백영의 후손이다. 호적의 자녀 중에 1명도 그런 인물이 없다면 백영희 후임은 공석이다. 고소 반대를 주장하는 이가 100명이면 그 건으로는 후임이 100명이다. 교리로, 기능구원으로, 목회 정신으로, 예배와 찬송의 본질로, 그 설교를 전하는 사명으로... 수 많은 면으로 그를 따르며 그를 대신 하는 오늘의 백영희가 될 수 있다. 100가지 면을 두고 1인이 90가지를 따르고 있다면 그는 90% 백영희 후임이다. 백영희는 후임을 정하지 않고 갔다. 그래서 이 노선 모든 이들은 그의 후임이 될 수 있다. 모두가 마다 하면  공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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