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백영희 목사님이 이 길을 버려도 나는 이 길을 간다! - 이진헌, 1972년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0.06.14
1972년 봄,

이진헌 목사님은 1971년 늦게 거창 창동교회를 부임하고 1972년 봄에 경북 청도읍교회로 갔다. 당시 6개월을 목회했다. 그 분의 설교는 비록 6개월이나 수 많은 명언을 남겼다. 그 분의 설교는 한 줄 한 줄이 명언이었다. 전국의 목회자가 백영희 설교를 꼭 같이 받아 적고 기도실에 올라 가서 기도하고 연구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리고 강단에서 최대한 그대로 설교를 한다. 그런데 이진헌 목사님 설교에는 유독 명언이 많다. 그 말은 깊이 새김에 있어 특별했다는 뜻이다.

어느 날, 설교 시간에 '백영희 목사님이 총공회 이 노선 이 교훈을 버리는 일이 생긴다면...' 이런 말씀을 두세 번을 반복했다. 교인들이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만일'이라는 조건을 조심스럽게 여러 번 반복을 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이 길을 버리지 않겠다.'고 했다. 자기 확신에 자기 교훈이 되었고 자기 진리가 되었다는 뜻이다. 요4장에서 사마리아 수가 동네의 우물 가 여인이 28절에서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 가서 그리스도를 소개했다. 마을 사람들이 몰려 왔다. 39절에서 마을 사람들은 여자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다. 그런데 2일을 예수님께 배우고 42절이 되면 이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여자의 말 때문이 아니라 직접 듣고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 말을 할 시점부터는 이제 이 여자가 '내가 알고 보니 예수는 실제 옳지 않더라'고 자세를 바꾼다 해도 마을 사람들이 돌아 서지 않을 것이다. 않아야 맞다.

이진헌 목사님은 이 노선과 교훈을 이 목사님에게 가르친 백영희 목사님이 잘못 전했다고 돌아 서고 다른 길을 가도 이 길을 가며 이 교훈을 전하겠다고 했다. 백 목사님은 1989년 8월 27일까지 변치 않고 가르치고 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8년이 지나던 1997년경 나는 이진헌 목사님과 서로 가는 길을 달리 했다. 물론 서로 원래 옳다고 한 이 노선의 길을 걸어 간다고 할 듯하다. 그런데 이진헌 목사님과 내가 나뉜 이유는 부산의 목회연구소, 백순희 책임자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은가 틀렸는가 문제였다. 이 목사님은 아들의 주장에 섰다. 백순희 이민영 이진헌으로 엮이거나 아니면 신임을 두고 가는 길이 하나가 생겼고, 그 반대편에는 내가 섰다.

1998년 신풍에 사이트가 개설되면서 나는 양쪽의 옳고 그름은 이미 드러 났다고 봤다. 이후의 양측의 걸음을 통해서도 길은 드러 났다고 생각한다. 백영희 목사님이 스스로 자기 가르친 길을 버려도 나는 이 길을 버리지 않겠다고 말을 한, 이진헌 목사님마저 이 길을 버린다 해도 나는 이진헌 목사님이 나를 가르친 그 명언에 따라 1972년의 이진헌 주장을 오늘도 걸어 가고 있다. 그런데 나를 이 길에 세워 놓은 이 목사님은 현재 어떻게 하고 계신지, 이제 구순이 넘은 분이나 건강은 아직도 나보다 나을 듯하다. 이 목사님의 연세와 건강 때문에 이 글을 적는 것이 아니라 이제 충분히 열매가 드러 났을 시간이다. 그렇다면 내가 선택한 길이 잘못이면 내가 그 분께 가서 1997년의 제 판단은 틀렸다고 돌아 서야 양심에 맞을 듯하다. 만일 이 목사님이 1997년에 선택한 길에 문제가 있다면 1972년 창동교회에서 선포한 자기 설교에 붙들려 돌아 서야 옳다고 본다.

나는 아직도 이진헌 목사님이 돌아 가시기 전에 부공3으로 돌아 오고 당신이 가르치거나 소개하거나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모든 교회들과 교인들을 이 곳에 모셔 놓을 그릇으로 보고 있다. 오늘의 나를 만든 분이다. 그 분의 그런 몇몇 명언에 붙들려 나는 오늘도 남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내가 소개한 이 노선과 이 교훈이 옳다면 내가 이 자리에서 돌아서서 이 길을 비판해도 나를 불쌍히 여기고 내가 소개한 이 길을 붙들고 나가시라!

 

 

'백영희 목사님이 이 노선 이 교훈을 버린다 해도....'

 

나는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으로 봤다. 그런데 그 분이 돌아 가신 뒤에 그런 일이 실제 발생을 해 버렸다. 그 자녀들이 백영희 노선의 이름과 백영희가 가르친 설교는 자녀들만의 사유재산이라며 그 길을 막아 버렸다. 타 교단의 길은 교훈 따로 길 따로가 가능하다. 장로교인데 감리교 설교를 하고, 침례교로 설교하고 장로교로 운영해도 된다. 공회는 처음부터 교훈과 노선으로 형성이 되었다. 그래서 교훈이 다르고 노선이 다르면 간판과 주소와 조직을 유지해도 이미 다른 단체가 된다.

백영희는 생전에 자녀들이 자신의 설교와 입장을 떠나 불신 세상의 민법으로 백영희의 신앙 노선과 교훈을 막도록 조처를 했어야 하는데 하지 않았고, 자녀들은 권리를 행사 해 버렸다. 자녀들의 행위는 부모의 책임이다. 백영희가 그렇게 가르쳤다. 소아는 자기고, 대아는 자기의 활동 범위까지를 포함한다고 한다. 그는 평생 책임의 범위를 항상 최대치로 잡고 조심했고 가르쳤고 제자들에게도 책임을 그렇게 물었다. 실적도 그런 식으로 평가를 했다. 그렇다면 사후에 자녀들이 조처를 취했지만 실제로는 시공을 초월한 신앙의 세계에서는 백영희는 자신이 가르친 노선과 교훈을 떠났다.

 

나는 백영희가 스스로 버린 길을 지금도 가고 있다.

이진헌 목사님에게 배웠다. 나를 이렇게 가르쳤으며 그 분은 아직 연세가 많아도 건강하시다. 너무 늦게 돌아 서면 그 것도 문제가 된다. 그 분답지 않은 일이다. 부공2 서영호 목사님 측에 서신 것은 그 분답지 않다. 그 분의 정체성은 단호하다. 면도칼이다. 대충 이해 관계 때문에 그 입장을 어중간하게 가지지 않는다. 1997년에 나는 그 분의 입장이 갑자기 공의로운 판단보다 혈육에 끌리는 느낌이 들었다. 혈육을 잘 이끌어서 이 길에 세우기 위함인가, 아니면 아예 따라 가는 출발인가? 이제는 돌아 서셔야 할 때다. 그 분 밑에 충신이 있으면 업고 모시고 오시면 된다. 내가 그 분에게 배운 방법이다.
전체 0

전체 222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
이용 안내문
담당 | 2018.04.11 | 추천 0 | 조회 1103
담당 2018.04.11 0 1103
3561
New 방역 기회로 교회를 탄압하는 정권, 당해도 될 만한 교회
담당 | 2020.07.12 | 추천 0 | 조회 59
담당 2020.07.12 0 59
3562
New 신앙의 핵심 이익과 신앙의 파생 이득
담당 | 2020.07.12 | 추천 0 | 조회 50
담당 2020.07.12 0 50
3556
G. 세상 경험, 자연 계시적 체험
담당 | 2020.07.10 | 추천 0 | 조회 66
담당 2020.07.10 0 66
3557
(52) 못난, 시끄러운, 참으로 좀 곤란한 우리들
담당 | 2020.07.10 | 추천 0 | 조회 108
담당 2020.07.10 0 108
3486
F. (47) 공회의 '학위 반대' 정서
담당 | 2020.06.28 | 추천 0 | 조회 184
담당 2020.06.28 0 184
3513
(48) 백영희의 '실질주의'
담당 | 2020.07.01 | 추천 0 | 조회 115
담당 2020.07.01 0 115
3529
(49)유학의 내면과 역사 (1)
담당 | 2020.07.03 | 추천 0 | 조회 114
담당 2020.07.03 0 114
3535
(50) 공회 청년의 유학은 탈북민의 남한 정착과 같았다.
담당 | 2020.07.05 | 추천 0 | 조회 101
담당 2020.07.05 0 101
3546
(51)신학 공부의 실체, 그 함정과 허상
담당 | 2020.07.07 | 추천 0 | 조회 96
담당 2020.07.07 0 96
3481
소수 정예의 함정, 주교로 본 경험
담당 | 2020.06.27 | 추천 0 | 조회 118
담당 2020.06.27 0 118
3474
87년부터 시작 된 서부교회 '고3 졸업생'에 대한 사회 교육 (1)
담당 | 2020.06.25 | 추천 0 | 조회 167
담당 2020.06.25 0 167
3439
의인의 자손에게는 왜 세상 복만 내려 가는가?
담당 | 2020.06.17 | 추천 0 | 조회 156
담당 2020.06.17 0 156
3426
백영희 목사님이 이 길을 버려도 나는 이 길을 간다! - 이진헌, 1972년
담당 | 2020.06.14 | 추천 0 | 조회 204
담당 2020.06.14 0 204
3413
오늘이 불안한 이유, 백영희 예언의 끝자락에서
담당 | 2020.06.11 | 추천 0 | 조회 189
담당 2020.06.11 0 189
3402
사욕 (1)
교인 | 2020.06.07 | 추천 0 | 조회 226
교인 2020.06.07 0 226
3388
코로나가 바꾼 새시대論, 공회의 시각은?
담당 | 2020.06.02 | 추천 0 | 조회 199
담당 2020.06.02 0 199
3425
교회가 자초한 '세상의 교회 개입' (2)
담당 | 2020.06.14 | 추천 0 | 조회 190
담당 2020.06.14 0 190
3378
홍콩을 통해 본 남한 교회의 내일 (7)
담당 | 2020.05.30 | 추천 0 | 조회 226
담당 2020.05.30 0 226
3352
실패한 도둑이 성공한 도둑을 비판한다? - 신천지와 교계 관계
담당 | 2020.05.24 | 추천 0 | 조회 206
담당 2020.05.24 0 206
3366
친일파가 친일파를 욕하고? - 선전선동의 악습 (1)
담당 | 2020.05.27 | 추천 0 | 조회 158
담당 2020.05.27 0 158
3350
한국 선교 역사의 양면 (1) : 선교는 좁게, 복음을 널찍하게.
담당 | 2020.05.23 | 추천 0 | 조회 168
담당 2020.05.23 0 168
3371
한국 선교 역사의 양면 (2) : 분열된 선교사들과 선교지 분할
담당 | 2020.05.28 | 추천 0 | 조회 92
담당 2020.05.28 0 92
3377
한국 선교 역사의 양면 (3) : 왜 흑인 선교사는 단 1명도 없었는가?
담당 | 2020.05.30 | 추천 0 | 조회 118
담당 2020.05.30 0 118
3325
집회의 계시록 공부를 거치며
담당 | 2020.05.16 | 추천 0 | 조회 196
담당 2020.05.16 0 196
3317
재난구호금, 공회의 지혜 (6)
회원 | 2020.05.15 | 추천 0 | 조회 306
회원 2020.05.15 0 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