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한국 선교 역사의 양면 (1) : 선교는 좁게, 복음을 널찍하게.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0.05.23
최근 한국 사회가 한국의 제대로 된 교회를 박해하는 것이 너무 극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국이 한국 교회를 지켜 주는 일면이 있어 어리둥절하다. 미국은 한국을 선교했다. 수천 년 귀신에 붙들린 우리를 출애굽 시켰다. 그런데 한국 교회가 제대로 잘 출발하자 한국 교회를 아주 몹쓸 교회로 만든 것도 역시 미국 교회다. 이제는 한국 교회가 국가적 박해를 받고 그 존립조차 염려할 상황이 되자 이 번에는 다시 미국이 한국의 종교 자유를 지켜 보며 견제를 하고 있어 한국 교회가 조금 숨을 쉴 틈을 얻고 있다. 이런 변화 현상 때문에 한국의 선교 역사를 살펴 보며 오늘에 참고하려 한다.

한국이 신앙 0점일 때 미국은 신앙 100점이었다. 미국이 한국을 선교하고 한국을 끌어 올린 것은 필연이다. 그런데 한국이 선교를 잘 받아 신앙이 60점을 넘고 80점에 이르게 될 때 미국은 80점으로 내려 오고 60점이나 되었다. 이렇게 되자 60점짜리 미국 신앙이 80점짜리 한국 신앙을 60점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두 교회는 앞서고 뒷서며 미국이 60점에서 40점으로, 한국은 뒤를 이어 60점 이하로 막 내려 오는 시점에 최근 한국의 정권은 한국의 신앙을 0점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조처와 움직임이 있었다. 이렇게 되자 미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한국 정권에서 중국식 삼자교회를 만들 생각을 포기하라고 여러 발표와 조처를 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있는 국가 차원에서 그대로 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선명해 보인다.

선교한 미국 교회는 우리의 선생이다. 우리는 제자가 맞다. 세월 속에 제자가 선생보다 나아 질 수 있다. 그러나 제자가 선생보다 나아진다 해도 얼마나 가겠는가? 그 선생도 과거에 잘 나가다가 방심하다 뒤쳐진 것이다. 앞서고 뒷서는 미국과 한국의 신앙 관계를 살펴 볼 때다. 과거는 우리 현실이 아니어서 그러지 않았으나 오늘은 미국과 한국 교회는 현실로 묶여 버렸다.



(차별 없던 선교)
한국의 1호 의사 박서양은 백정의 아들이었다. 미국 북장로교 무어 선교사는 백정 마을에 학당을 세웠다. 1894년 백정 아버지가 전염병으로 죽을 상황에서 무어는 에비슨 의료 선교사를 통해 살려 냈는데 이 인물은 고종의 주치의였다. 황제를 직접 치료하는 의사가 백정을 직접 만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던 시절이다. 무어 목사님은 그 아버지 백정을 승동교회에 전도했고 1895년에 세례를 받았다. 백정이 교회를 출석하자 양반 교인들이 교회 출석을 거부했다. 6명이 먼저 단체 행동에 나섰다. 백정교회로 소문이 나자 교인수는 줄어 들었고 곧 이어 타협안이 제시 되었다. 백정은 예배당 뒷쪽에 별도 자리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무어 목사님은 거절했다.

이런 일화는 한국의 전국 교회에 흔하고 흔하다. 남녀의 차별 양반 상민의 신분 차별이 국가의 기본 질서였으나 선교사들은 학교 병원은 물론 교회의 운영에서도 거침 없이 한국 사회가 만들어 둔 모든 차별을 철폐하고 오직 주님 앞에 한 형제로 복음을 전했다. 이 효과가 불신 사회인 한국을 오늘 세계 최고의 나라로 만드는 발판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신앙의 세계로 봐도 어떤 장애나 고난을 헤치고 선교지에서 첫 길을 개척한 노고며 훌륭한 일이다.

이런 선교자들의 무차별 전도와 복음운동 때문에 한국 사회는 수천 년의 미신 사회로부터 출애굽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 남자보다 여자가 앞에 섰고 중심이 되어 오늘까지도 교회는 여반이 주력이다. 그리고 천민과 서민들 속에서 한국 교회의 무수한 보석들이 쏟아 져 나왔다. 한국의 우리 조상들은 서로 남녀를 차별하고 양반 상민을 차별하며 지도층들은 당파에 문벌로 분열이 되어 자멸 외에 길이 없어 보였다. 선교사들은 세계적인 대국에서 국제 사회와 역사 발전을 넓게 보는 안목을 가졌고 복음 운동만이 이들의 구원 줄이라 알고 험한 곳에 왔기 때문에 처음부터 조선인들의 분열과 내분을 고질병으로 생각했고 또 복음의 기본 원리로 봐도 조선인의 단결하지 못하는 습성은 고쳐 놓아야 할 중병으로 인식했다.

이런 선교사들의 기본 인식이 선교 초기에 한국 교회를 바르게 출발하게 했다면 해방 후에 신사참배 문제가 제기 되자 선교사들은 통크게 모든 문제를 덮고 하나 되어 나가도록 지도했고 그 결과 선교사들은 한부선 선교사처럼 고신에 일하는 이들을 매촌파로 비판하며 대부분 고신의 반대측에 서게 되고 그 흐름은 결국 한국 교회를 WCC 성향으로 나가게 만들어 버린다. 미국이라는 대륙 출신이라 그럴까? 세계 역사를 알기 때문에 시야가 넓고 그릇이 컸기 때문일까?


(그 선교사들의 다른 면)
한국을 선교하고 오늘로 길러 놓은 면은 세상 끝날까지 감사하고 천국에서도 영원히 감사할 면이다. 한국 내부가 수천 년 공연히 가르고 소모전을 하다 주저 않은 상황을 복음으로 전부 치료한 것은 고맙기 그지 없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완전은 아니며 그들로 인해 한국 교회가 입은 피해가 일부 있다면 이런 면은 살펴야 우리가 더욱 온전해 진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1861-65에 발생했다. 전쟁이 끝나면서 노예해방이 되었다 하나 1964년에 이르러서야 존슨 대통령이 민권법에 서명함으로 흑인 차별이 법적으로 모든 생활에 적용이 되었고 1955년까지는 시내버스의 좌석조차 흑인 좌석을 분리 시켰고, 1958년 나사와 같은 국가 기관에 흑인 화장실을 따로 둔 정도였다. 당연히 남부가 심하고 북부는 덜했다. 전체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들의 연령과 그들의 미국 내 자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어 선교사는 1860년생이다. 초기 선교사들의 출생은 거의 다 같다. 모두가 남북전쟁의 전투 현장을 직접 기억하지는 못하나 흑인들이 한국의 백정과 비교도 못할 극단적 노예 상태로 얼마나 처참한 인생을 살았는지를 두고는 오늘 우리처럼 들어 아는 정도가 아니라 눈으로 직접 보고 자란 세대다. 한국의 교회사는 그를 두고 '천민의 벗' '백정 해방의 선구자' 등으로 온갖 미사여구가 쏟아진다. 그 모든 말은 다 사실이며 다 복음이다. 이를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분이 미국에서 신분 차별을 위해 선교를 했는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또는 그를 파송한 북장로교의 기본 성향이 왜 노예 해방을 주장했는지를 폭 넓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선교사들의 고국에서 걸어 온 생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고국에서 노예 해방이나 여성 차별에 운동을 했던 이들이면 한국 선교사로 올 리가 없다. 우선 신분 철폐를 주장하는 진보 인물에게는 복음의 정말 순수한 일을 외면하는 공통적인 내재적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은 그들이 인간이 되기 어려운 한계선이다. 겉은 남을 위하는 듯하고 속으로는 더욱 무서운 자기 중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두번 째는 선교사들이 세계 문화 발전사에 마지막 노예제도라 할 만한 그들 고향에서 노예 철폐를 위해 활동을 했다면 한국 교회에서 그들을 소개할 때 특별한 이력으로 소개가 되었을 것인데 아직 초기 선교사들의 미국이나 고국에서 그런 활동을 들어 보지 못했다. 이 글을 읽고 그런 자료를 제공해 주면 몇몇 예외적인 인물들은 늘 따로 살필 기회가 되겠다.


(한국의 백정과 미국의 흑인)
한국의 백정이 겪은 이야기를 미국 흑인들에게 들려 주면 웃고 넘어 갈 듯하다. 그런 흑인에 대한 문제점이 미국 사회에 넘치던 시절, 한국에 선교를 온 분들이 미국 내에 흑인들에게 치료와 학교와 구제를 통해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을 하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인도를 받아 한국에 왔을까? 복음은 그 동기와 오늘에 이르는 과정이 깨끗하지 않은데도 엉뚱하게 하나님께서 뒤에 고쳐 쓰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래서 과거가 잘못 되었으니 오늘은 무조건 비판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회개라는 갑작스런 방향 전환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교파보다 공회는 선교사들에 대한 감사가 넘친다. 그래서 마치 친미파로 오해 받고 미국이면 무조건 맹신한다고 비판을 받을 정도다. 실제는 그렇지 않다. 그냥 객관적으로 봤을 뿐이다. 감사는 감사하고, 단점은 아쉬워 하며 그 단점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잘 배워서 장점으로 만들고 싶을 뿐이다. 어느 한 선교사가 아니라 당시 선교사들 전체를 하나로 두고 볼 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20세기 이후 세계 교회의 중심에 두려고 시대적 차원에서 집단 파송한 특별 인재들이다. 다만 그들의 과거가 그들이 이후 이룬 결과와 비교할 때 처음부터 위대했거나 성자였거나 흠도 점도 없는 분들이라는 것은 아니다. 왜 그들 고향에서는 흑인에 대한 차별이 그토록 심할 때 예사로 생각하고 평범한 일상의 현상으로만 봤느냐는 것이다. 한국에 와서 본 백정의 차별과 한국인들의 내분은 남의 나라에 와서 미개한 사람들의 남의 일로 보니까 복음과 공의적인 시각이 쉽게 나오지 않았을까?

왜 한국에 왔던 초기 선교사들 중에는 흑인 목사님이 단 1명도 없는가?
나는 미국의 청교도 건국부터 한국 선교에 이르기까지 미국 찬양론자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이 글을 외부에 적어 본다. 왜 한국에 왔던 미국 선교사 중에는 흑인 목사님이 단 1명도 없는가? 있는데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까, 있는데도 내가 우연히 보지 못했을까? 그런데 왜 선교사들은 한국에 오자 말자 모든 차별을 거침 없이 철폐했을까? 우리에게는 복 위에 복이 되었고 복이 제대로 복 되게 했으니 감사할 것뿐이다. 그런데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우리도 이런 문제를 살펴 봐야 하기 때문이다. 목사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교인에게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식이 된다면 목사는 이 문제를 심각히 연구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한국에 온 선교사들 중에서 제일 독실한 그룹이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다. 그런데 왜 그들이 지도한 곳에는 신사참배 반대의 결실이 없는가? 그리고 왜 그들은 해방 후에 신사참배 문제를 두고 그냥 덮고 지나 가도록 그렇게 활동을 했는가? 그리고 그들은 왜 그들 구역이 훗날 WCC가 되도록 했는가?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면 왜 그들이 지나 간 자리는 다 그러한가? 그리고 그들이 주력했던 지역은 왜 오늘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 전체를 통해 정통 신앙을 뿌리 뽑으려는 세력의 중심이 되어 있는가?
전체 0

전체 222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
이용 안내문
담당 | 2018.04.11 | 추천 0 | 조회 1104
담당 2018.04.11 0 1104
3561
New 방역 기회로 교회를 탄압하는 정권, 당해도 될 만한 교회
담당 | 2020.07.12 | 추천 0 | 조회 65
담당 2020.07.12 0 65
3562
New 신앙의 핵심 이익과 신앙의 파생 이득
담당 | 2020.07.12 | 추천 0 | 조회 54
담당 2020.07.12 0 54
3556
G. 세상 경험, 자연 계시적 체험
담당 | 2020.07.10 | 추천 0 | 조회 67
담당 2020.07.10 0 67
3557
(52) 못난, 시끄러운, 참으로 좀 곤란한 우리들
담당 | 2020.07.10 | 추천 0 | 조회 109
담당 2020.07.10 0 109
3486
F. (47) 공회의 '학위 반대' 정서
담당 | 2020.06.28 | 추천 0 | 조회 186
담당 2020.06.28 0 186
3513
(48) 백영희의 '실질주의'
담당 | 2020.07.01 | 추천 0 | 조회 115
담당 2020.07.01 0 115
3529
(49)유학의 내면과 역사 (1)
담당 | 2020.07.03 | 추천 0 | 조회 114
담당 2020.07.03 0 114
3535
(50) 공회 청년의 유학은 탈북민의 남한 정착과 같았다.
담당 | 2020.07.05 | 추천 0 | 조회 101
담당 2020.07.05 0 101
3546
(51)신학 공부의 실체, 그 함정과 허상
담당 | 2020.07.07 | 추천 0 | 조회 96
담당 2020.07.07 0 96
3481
소수 정예의 함정, 주교로 본 경험
담당 | 2020.06.27 | 추천 0 | 조회 119
담당 2020.06.27 0 119
3474
87년부터 시작 된 서부교회 '고3 졸업생'에 대한 사회 교육 (1)
담당 | 2020.06.25 | 추천 0 | 조회 168
담당 2020.06.25 0 168
3439
의인의 자손에게는 왜 세상 복만 내려 가는가?
담당 | 2020.06.17 | 추천 0 | 조회 157
담당 2020.06.17 0 157
3426
백영희 목사님이 이 길을 버려도 나는 이 길을 간다! - 이진헌, 1972년
담당 | 2020.06.14 | 추천 0 | 조회 204
담당 2020.06.14 0 204
3413
오늘이 불안한 이유, 백영희 예언의 끝자락에서
담당 | 2020.06.11 | 추천 0 | 조회 189
담당 2020.06.11 0 189
3402
사욕 (1)
교인 | 2020.06.07 | 추천 0 | 조회 226
교인 2020.06.07 0 226
3388
코로나가 바꾼 새시대論, 공회의 시각은?
담당 | 2020.06.02 | 추천 0 | 조회 199
담당 2020.06.02 0 199
3425
교회가 자초한 '세상의 교회 개입' (2)
담당 | 2020.06.14 | 추천 0 | 조회 191
담당 2020.06.14 0 191
3378
홍콩을 통해 본 남한 교회의 내일 (7)
담당 | 2020.05.30 | 추천 0 | 조회 226
담당 2020.05.30 0 226
3352
실패한 도둑이 성공한 도둑을 비판한다? - 신천지와 교계 관계
담당 | 2020.05.24 | 추천 0 | 조회 207
담당 2020.05.24 0 207
3366
친일파가 친일파를 욕하고? - 선전선동의 악습 (1)
담당 | 2020.05.27 | 추천 0 | 조회 158
담당 2020.05.27 0 158
3350
한국 선교 역사의 양면 (1) : 선교는 좁게, 복음을 널찍하게.
담당 | 2020.05.23 | 추천 0 | 조회 169
담당 2020.05.23 0 169
3371
한국 선교 역사의 양면 (2) : 분열된 선교사들과 선교지 분할
담당 | 2020.05.28 | 추천 0 | 조회 92
담당 2020.05.28 0 92
3377
한국 선교 역사의 양면 (3) : 왜 흑인 선교사는 단 1명도 없었는가?
담당 | 2020.05.30 | 추천 0 | 조회 118
담당 2020.05.30 0 118
3325
집회의 계시록 공부를 거치며
담당 | 2020.05.16 | 추천 0 | 조회 197
담당 2020.05.16 0 197
3317
재난구호금, 공회의 지혜 (6)
회원 | 2020.05.15 | 추천 0 | 조회 307
회원 2020.05.15 0 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