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이 노선의 다음 세대들을 보는 감사...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20.03.11
(국가의 전환점, 공회의 전환점)
1987년 6.29선언이 발표 될 때 이 나라는 적화 당할 위기였다. 평양이 지상낙원이라고 굳게 믿고 평양 중심의 통일을 위해 이 나라 지성인들이 총 진군을 했다. 바로 그 시점에 공회는 통째로 내려 앉을 상황이었다. 두 달이 채 되지 않던 8.15에 백 목사님이 발표했던 마지막 후계자 서영준 목사님이 급사했다. 최근에 백영희 후계자를 자처하며 공회들과 전국 교회를 방문하는 분은 짝퉁이다. 교회는 '짝퉁'이라는 천박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나 그 분이 외부에 그런 표현을 동원하면서 다른 분들을 비판하고 있어 사용해 본다. 서영준 이후 공회는 백 목사님의 후계자를 발견할 수 없었고 오늘까지도 공회적 지도자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공회의 지도자가 아니라 공회의 다음 지도자를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다. 6.29선언, 8.15 서영준 별세, 그리고 다음 달인 87년 9월부터 공회 내 최고 실력자들과 대형교회들이 연이어 탈퇴를 했다. 당시 공회 내 분위기는 양심도 있고 실력도 있으면 탈퇴를 하고, 양심과 실력 중에 하나라도 빠진 이들은 조금 더 기다리면 백 목사님이 돌아 가실 것이니 그 때 기회를 보는 것이 낫다는 잠복 세력이었다. 백 목사님은 직접 3분의 2는 나갈 사람들이니 양심껏 지금 나가라고 공석에서 촉구를 했다. 1989년 8월 27일 백 목사님이 돌아 가신 뒤, 정확하게 3분의 2가 백영희 노선을 수정하게 된다.

나는 송종섭 목사님이 수정 노선에 중심일 것으로 봤다. 그런데 부산공회 핵심으로 남았다. 그래서 그 분을 지금도 극히 존경한다. 나는 그 분과 교리나 노선의 방법론은 너무 다르다. 그러나 양심과 양식과 목적은 거의 같다. 몇몇 목사님은 부산공회에 설 것이라고 봤지만 수정 노선의 핵심에 선 분들이 있다. 당시는 의문이었다. 지금은 이해가 된다. 백 목사님의 예측은 틀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나의 예측은 가끔 맞는다. 맞지 않는 것도 있다. 그래서 나는 늘 조심스럽다.

(다음 세대를 위한 인도)
나는 87.6.29. 그 날까지 공회의 행정이라는 세계를 몰랐다. 그냥 서부교회나 공회에 열심을 가졌던 많은 청년들 중에 하나였다.
공회에 쏟아 져 내리던 참담한 사건들이 연이어 쏟아 질 때, 공회로서는 극단적인 불행들, 공회의 앞 날이 없을 것으로 공회의 안팎 모두가 짐작할 만한 일들이 발생했다. 나는 바로 그 시점에 목사님께 일일이 지도를 받으며 현장을 다녔다. 나는 모세 옆에서 모세의 손에 물이나 붓는 소년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일들을 겪으면서 노선의 핵심이 되는 교훈을 지켜 내는 행정을 알게 되었다. 공회식, 백영희식 행정을 배웠다.

이런 과정이 막 끝이 나자 목사님이 돌아 가셨다. 89년 8월 27일. 장례 첫 날부터 공회를 뿌리 뽑을 바람이 불어 닥쳤다.
이미 2년을 통해 이런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내가 되었다. 비록 바빴지만 모든 것을 정리하고 오늘까지 나 할 일을 하고 있다.

(세월은 어느 덧 30년이 지났다.)
지금 세월을 손꼽아 보니 한 세대가 정확하게 지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80년대 후반에 당한 일들을 당하고 있다.
2014년, 백영희 설교는 개인의 사유 재산이라는 고소가 시작 되었다.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사건들이 쓰나미처럼 밀려 왔다. 2015년, 한참 막아도 힘이 들 때 공회 내에는 갑자기 백영희 설교는 자녀만의 것이 맞다며 출간의 주력들이 총 궐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 8백여 건이 넘는 고소 고발이 전국과 예배당들과 불신자 주거지까지 설쳤고 공회 안에는 광우병 소동이 벌어졌다.

세상에!
공회를 이단이라 할 때는 숨 소리도 내지 않던 이들이!
백태영 서영호라는 총공회 이탈 세력들 밑에서는 숨도 쉬지 못하고 벌벌 떨며 쥐구멍에 가 있던 이들이!
이런 인물들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고 지혜가 나오고 목숨 걸고 투쟁한다는 진리 운동? 종교 개혁!
온갖 활동들이 봇물을 쏟으며 나오기 시작했다. 헤롯과 빌라도가 혈맹이 되어 대구기도원을 초토화까지 해 버리고.....

이런 상황을 접하며
나는 이미 1987년에 백 목사님의 생전의 공회 사건들을 상대했었고
나는 이미 1989년의 백 목사님 장례와 이후 공회들의 분쟁을 겪어 봤고
나는 이미 1997년의 부산 연구소 고소 고발 사건들을 전부 거쳐 봤기 때문에 이 번 2014년 이후의 일은 그냥 업무 중 일부다. 아무리 못났지만 백 목사님께 직접 배운 사람이며 그 분의 최종 순간까지 가장 가깝게 모든 면을 모신 사람이 이런 정도의 일을 일로 생각하겠는가?

87년의 탈퇴 사건들은 지금 생각해 보니 백 목사님 사후를 위해 나를 훈련 시킨 일들이었다.
89년의 백 목사님 장례식은 내가 백 목사님의 생전을 마지막으로 처리할 수 있던 사명이었다.
97년의 부산 연구소가 고소했던 사건들은 나와 우리가 독자적으로 이 노선을 전하라는 사명의 시작이었다.
2014년의 사건은 백영희 설교록을 접어 두고 새 시대를 향해 깨닫고 시대를 감당할 말씀을 찾으면 된다.
그런데 2014년의 민사 사건으로 끝이 나도 되는데 형사까지 덧붙이고 공회 내의 내응 세력이 저렇게 광분하는 것은 의아했다.

(이제, 이후를 위해 준비하는 인물들)
최근의 수 많은 사건들이 나를 위한 훈련이라면 이렇게까지 몰아 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야 모든 것이 확실해 졌다. 비록 영안이 어두워 빨리 깨닫지는 못하나 시간이 좀 지나면 열매로 나무를 구별하는 정도는 된다. 형사 고발이 시작 되는 2015년부터 공회 내에는 다음 세대를 감당할 20대들이 내게 불어 닥친 일들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사건의 제목조차 잊고 산다. 모든 것은 20대들이 30대로 넘어 가면서 전부 다 처리를 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연습을 하고 싶어도 해서 안 되고 할 수도 없는 교회 분쟁을 겪어 보고 있다. 이런 경험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쓰실 일이 있는 사람에게만 허용하는 특별한 기회다. 만나 40년은 광야 교회 외에는 6천년 교회 역사에 그 어느 교회에게도 주신 일이 없다. 그 것은 각 교회나 신앙의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어 진 기회이다. 받는 사람에게만 해당이 되는 것이다.

교회 분쟁을 통해 자기 야욕을 달성하고자 하는 이들은 천하에 교회 분쟁은 널려 있다. 없으면 만들면 된다.
그런데 바른 편에 서서 끝까지 바른 노선을 지키며 이런 경험을 가지려 한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면 받을 수 있고
사람이 스스로 만들 수 없고 겪을 수 없다.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이란 신약에 단 1회 주신 기회였다.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고 만들어서 가질 수 없다.

백 목사님 생전인 87년의 경험이 89년 장례식과 이후에 사용 될런지 사실 모르고 당시를 지냈다. 지내 놓고 보니 알게 되었다.
2014년의 수 많은 분쟁들을 발생 시킨 분들의 해당 사건만을 두고는 내가 옳다 그들은 틀렸다는 식으로 나는 말을 한다. 그러나 넓게 보면 그 분들 때문에 이 노선은 2020년대 이후 이 노선의 앞 날을 다시 이어 갈 많은 일꾼들을 알게 되었다. 지금 10여 명은 되는 것같다. 87년의 경우 나는 나 하나라고 생각했다. 2020년, 이 노선에는 10여 명이 있다. 좀 넓히면 수십 명이다. 2014년 이후 연구소와 공회는 설교록 출간과 공회 내부의 여러 손실을 겪었다. 그 것을 다 합한 것과 비교도 못할 큰 인물들의 큰 경험들을 가지게 되었다.

(만사, 그저 감사할 뿐이다.)
2014년 이후 이 곳을 고발 고소한 분들, 그 주변에 도운 분들, 물심양면으로 곳곳에서 최선을 다한 모든 분들.
그 분들의 내심과 내막은 내가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이 노선에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결과적으로 고마움은 한도 없이 많다.
수백 건의 고소나 고발을 하신 분들에게, 인간적으로는 여생을 다 바쳐 수천 건을 해 주시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수백 건으로 흔든다고 흔들어 진다면 그 것이 무슨 진리겠으며 생명 운동이겠는가? 천하를 뿌리 뽑고 지나 가는 태풍조차 생명을 가진 풀 한 포끼는 연단을 통해 그 태풍을 하나님의 귀한 기관적 은혜로 받는다.

나는 87년 당시 목사님께 공회 행정을 배웠다. 그리고 사후에는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까지 나쁜 일이 이렇게까지 좋은 일도 된다. 우리의 만사를 이렇게 인도하신다. 알아서 만사를 적절하게 배합하신다.

2014년, 그리고 2015년, 수백 건의 고소를 시작했다.
사건의 초기는 나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2세대가 드러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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