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35) 간간히 비추며 인도하신 순간들, 능력의 체험이라 하고 싶다.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0.01.26
많은 글에서 나의 부족한 면을 많이 적었다. 겉치레가 아니라고 읽었다면 바로 적었을 것이고,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해도 더 적을 마음은 없다. 공회의 역사를 적어 내 평생 소개하는 이 노선의 역사를 살필 힌트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나와 같은 편이면 넘친다고 이해할 것이고 나와 다른 편이면 더 적는다고 그들이 마음을 돌릴 리는 없다. 경험이 그렇다. 될 사람은 몇 마디면 된다. 나머지는 덧붙이기다. 덧붙이기는 여간 붙여도 남루해지지 나아지기 어렵다. 가끔 구석구석 복 되게 사용하는 분도 있다. 나와 다른 편이면 나의 X-ray 사진을 공개해도 수백 건의 고소장으로 비판한 이들처럼 악용만 할 것이다.

아무리 부끄러운 일들이 많았을지라도 난들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를 좋게 받았던 적이 없었을까? 여러 번 있었다. 그 것이 더해 져야 이 노선의 일반 교인에게 소망이 될 것 같다. 나는 공회의 밑바닥 수준에서 공회의 제일 높은 곳에 현재 앉아 있다. 적어도 나의 위치와 입장은 그렇다. 그렇다면 공회의 현재 어떤 수준 낮은 교인도 나만큼은 될 수 있고 공회의 일반 교인은 현재 나보다 더 복 된 사람이 될 수 있겠다. 백 목사님의 모든 자녀가 전국의 총공회 모든 교회와 교역자와 교인 중에 나 하나만을 딱 찍어 '백영희 설교록 전파 혐의'로 고소했다. 뒤집어 보면 나 외에는 실제 전하는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역시 나를 잡고 나니 곳곳에 사이트는 알아서 없어 졌고 아직도 남아 있는 곳은 이미 고소측에 붙어 버려 봐 주는 것이다. 일제 말기에 교회가 운영이 되고 목회자가 강단에 선 교회는 총독부에게 이미 붙어 버렸다는 증거였다.

<신앙의 첫 체험>

중학교 3학년, 1972년 10월로 기억 되는 어느 토요일에 학교는 1박 2일로 가을소풍을 갔다. 1, 2학년은 주변을 가고 3학년만 졸업 기념으로 1박 일정으로 100리길 거리의 경북 대덕에 청암사로 갔다. 이 곳은 천년 고찰이며 넓은 방이 많아 수백 명이 숙박을 할 수 있다. 토요일 출발하고 일요일에 돌아 온다. 나는 신앙이 없었고 주일은 습관일 뿐이었다. 문제는 그 습관은 내게 의외의 신앙으로 다가 왔다. 가정의 분위기 때문에 주일을 지켜 왔을 뿐인데 처음으로 나의 문제가 되었다. 내가 입학한 초등학교는 기독교 학교인데 1964년에 개교회를 하고 1회인 내가 중학교를 갈 때 중학교를 신설하여 고등학교까지 이어 지게 한다는 것이 학교의 계획이었으나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이  3선을 위해 개헌을 추진할 때 거창고등학생들을 부추겨 데모를 시켰다는 이유로 중학교 승인이 10여년 늦어 졌고 나는 중학교 3년을 공립학교를 거쳤다.

일반 학교여서 토요일과 일요일을 묶어 1박 2일 일정을 잡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문제는 주일 문제가 걸린 것이다. 60명, 6개반, 총 360명인데 믿는 학생이 많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주남선 목사님의 거창읍교회 교세는 강했다. 나는 내심으로 거창교회가 교세도 컸고 학생도 많으니 주일을 지킬 것이고 나 하나는 그들 틈에 섞여 빠져 나갈 것으로 기대를 했다. 그런데 주일을 끼고 가는 행사에 아무도 가지 못한다고 나서는 학생이 없었다. 나는 토요일에 결석해 버리면 그만이라고 혼자 마음 먹고 있었다.

소풍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 오자 3학년 6반의 반장이면서 초등학교를 함께 나온 천광신 친구가 내게 '너 주일 지키지'라고 당연한 듯 물었다. 반가웠다. 개인적으로 가깝지만 그는 고려파고 나는 공회 학생이라 서로 신앙 이야기를 할 일은 없었다. 그냥 친했을 뿐이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을 했던 천세욱 훗날 목사님의 아들이다. 혼자 빠지는 것보다 반장인 친구가 함께 빠지게 된다니 든든했다. 나는 '내일 학교 결석할 거야'라고 말하자 그 친구는 대뜸 '토요일은 주일이 아니니까 가자. 그리고 도착하자 말자 돌아 와버리자. 주일만 결석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한 것이다. 듣고 보니 그 결정이 맞다. 평생을 돌아 보며 그때를 염두에 두고 나는 어중간한 신앙인에게는 처음부터 거절하라 하지만 신앙이 좀 있는 사람에게는 갈 데까지 가고, 최종적으로 더 갈 수 없는 선에서 끊는 것이 신앙이라고 지도한다. 그 친구는 나보다 앞서 있었다. 그 때만 해도 그 친구의 아버지가 공회 출신으로 위천교회의 국기배례를 백 목사님 지도로 승리한 분인 줄 몰랐다. 백 목사님의 방식, 그 친구는 백 목사님의 지도 지침에 따르고 있었고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 아버지가 백 목사님께 배운 영향이다. 그 친구의 말대로 하자니 하나 마음에 걸린다. 100리 길을 차로 가고, 산으로 등산을 한 다음에 절에 도착을 한 다음에 오려다가 만일 차편이나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 곳에 붙들리지 않을까... 그러나 친구는 용감했고 단호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담임 선생님에게 말을 했다고 한다. 걱정은 되지만 그 친구가 끄는 상황이어서 나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나와 그 친구는 같은 6반이었다.

다음 날, 소풍 차량  6대는 학생들을 꽉꽉 채우고 그 험한 비포장 산길을 달렸다. 학생들을 강하게 기른다는 교육 방침 때문에 산길을 많이 걷는 곳을 정했다고 한다. 거창에서 오른 쪽으로 가조를 넘어 가면 해인사다. 멀어서 잘 가지 못한다. 이름만 유명하다. 거창에서 갈 만한 사찰은 청암사, 이 곳이다. 산길을 걸어 가면서 반장인 친구는 다른 때는 덩치 큰 친구들과 함께 가는데 이 번 길에는 나와 갔다. 점심 때쯤 절에 도착을 했다. 산을 타고 오느라고 모두들 지쳤고 또 처음 와 본 사찰이라 모두들 어리둥절한 상태라 옛날 시장터와 같았다. 6반의 담임은 학년 주임이었다. 나와 친구는 절에 도착을 하자 말자 바로 선생님을 찾았다. 우리는 주일 때문에 바로 내려 가겠다고 말씀을 드려야 했다. 온 길의 거리와 시간을 생각하면 서둘러야 했다.

둘이서 선생님을 찾으니 선생님은 전체 통솔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친구가 선생님에게 '영인이 하고 저는 주일 때문에 지금 내려 가겠습니다.'라고 씩씩하게 말을 했다. 선생님은 얼굴을 확 찌푸리며 '여기가 어딘 데 돌아 가? 안 돼!' 버럭 고함을 질렀다. 순간 우리는 당황스러웠다. 이 산속에서 강제로 잡으면 다른 수가 없다. 친구는 다시 선생님에게 '그래도 저희들 가야 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너희 둘 다 따라와!' 그리고 저 쪽으로 가 버렸다. 당시는 학생을 마음껏 패던 때였다. 주일은 커녕 이제 엄청 맞을 순간이었다. 친구도 걱정이 되는 눈치다. 그래도 둘은 때리면 맞고, 가겠다는 말을 할 자세였다.

절의 저 쪽으로 돌아 가자 아무도 없다. 화풀이까지 하려고 작정을 하고 데려 왔다고 생각을 했다. 태어 나서 신앙 때문에 처음으로 맞아 보는 것이고, 그 매는 쉽게 끝나지 않을 분위기였다. 그 친구는 교회에서 별별 이름을 가지고 활동을 열심히 했고 나는 그냥 부모님 때문에 다니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환경이 되고 보니 전교생 중에 2명 밖에 없는 신앙인이 된 셈이다. 뭔가 좀 내가 신앙이 있다고 느끼는 순간...

'택시를 태워 줄 테니, 아무도 몰래 가라!'

알고 보니, 학생들 몰래 교장 교감 서무주임 3학년 주임 4명의 간부는 택시를 타고 절까지 왔던 것이다. 학생들과 일반 교사들은 전부 일반 도로에 내려 신길로 훈련을 시켰고 연세가 많기 때문에 4명이 택시를 타고 온 것은 이해가 된다. 그렇게 높은 곳에 택시가 들어 오도록 뒤로 길을 만들어 둔 것도 신기했고 그 길은 멀고도 멀었다. 둘은 눈이 둥그레졌다. 일반적으로 보면 아무렇지 않은 일이나 당시 친구와 나의 수준에서는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살아 나온 느낌을 그려 볼 수 있었다.

택시 기사에게 선생님은 지금 가야 할 학생이니 태워 가라고 부탁을 했다. 둘은 난생 처음 택시를 타 봤다. 그 택시는 막 신식 승용차로 출고가 되었고 거창군에 5대가 들어 왔으며 지나 가는 것을 가끔 구경이나 할 수 있었지 타 볼 일은 없었다. 그 날 친구와 나는 거창까지 오는 100리길, 아마 돌아 내려 왔으니 120리 길이지 않았을까? 너무 기뻤고 너무 은혜로워 하늘을 나는 기분으로 왔다. 그 날 돌아 오는 차편에서 둘은 평생 서로를 잊지 못할 신앙의 동지로 신앙의 첫 경험을 나누며 왔다. 그 친구와는 10년에 한 번, 20년에 한 번, 아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4번 정도 만난 듯하다. 최근 만나지 못한 것은 근 20여년이 되지 않았을까. 그래도 그 친구 마음 속에는 평생 나를 그 중심에 두고 있을 듯하다. 나 역시 그 날의 기억은  내 마음 한 가운데 둬야 하는데

1997년에 나는 위천교회 주일학교를 책으로 출판하게 되면서 그 부친 천세욱 목사님에게 집안과 위천교회와 백 목사님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역사적 체험을 건져 보면 기억과 당시의 느낌을 가져 오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천 목사님은 당시의 의미를 그 때는 물론 오늘의 입장에서 파악하고 있었고, 또한 당시 어려움을 겪는 현장의 고통과 함께 그 고통을 가하는 박해자는 물론 그 위에 있는 최상층의 심리와 그 사건의 총체적 의미까지를 읽어 내는 특이한 분이었다. 위천교회 주일학교 국기배례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 친구와 중3 때 주일 문제로 소풍을 갔다 중간에 돌아 올 때 친구가 절까지는 토요일이니 가고, 그 곳에서 돌아 오는 것이 결석에도 잡히지 않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신앙의 길이라는 것이 그 친구의 아버지의 신앙이고, 그 것이 백 목사님의 지도 방식이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었다.

철없던 시절, 모두에게 골치만 아프게 하던 공회의 어느 구석에 있던 아이였지만 나는 그 날 이후 환란을 직접 겪을 때 기본적으로 가지게 되는 환경, 심리, 과정을 제대로 한 번 구경을 하게 되었다. 전교생 중에 그 신앙 좋은 많은 친구들이 전부 다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따라 갔을까? 그리고 그 때 1명이라도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그 친구가 나보다 한 걸음 앞에 나간다면 그 뒤에 있는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 날 그 친구는 나의 목회자였고 나는 그 친구 뒤를 따라 간 교인일 뿐이다.

이 날의 경험 때문에 이후로는 나에게 더 큰 여러 환란이 와도 나는 더 이상 남을 기대어 뒤를 따르지 않아도 되었다. 그 날의 한 번으로 내가 얻은 것은 참으로 많았다. 최근의 수백 건 고소를 당하면서 나는 내가 제일 앞에 서고 나만 당하는 상황을 전혀 슬프게 생각하거나 이로 인해 물러 서거나 약해 지지 않는다. 그리고 큰 환란이나 작은 환란이나 그 성격과 과정과 결말은 진리의 세계에서 동일하다. 신앙 없는 내게 어느 날 준비도 없이 닥쳤고, 나는 습관의 신앙인데도 주일을 지켰으며, 내가 대처하려는 것은 2급이었으나 친구 때문에 1급 수준에서 대처했고 그 친구 뒤에 숨어 나는 함께 하늘을 날아 올랐다. 그 날의 많은 대화, 그 친구도 지금까지 기억하겠지?

그 친구는 이후 ROTC로 해병대 대위를 거쳐 고려신학대학원에서 목사가 되고 안동의 고신 교회를 거쳐 영국에서 교회사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서울에서 목회를 한다. 신학 강의를 한다는 이야기도 듣고 있다. 그 형제들은 고신에서도 잘 알려 진 인물들이다. 위에 한 분은 김덕보 목사님,대전의 KAIST 바로 앞에 고신 교회를 맡고 있었고 스우스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분이다. 중학교의 인연은 1980년대가 되면서 이제 그 부친 천세욱 목사님이 내게 양성원에서 강의를 듣는 학생으로 바뀌었고, 1991년 3월에는 나와 함께 그 부친이 목사 안수를 받는다.

그 친구의 동생들도 나와 친형제처럼 가깝게 연락한다.

그들은 고신에 있지만 그들은 백영희 신앙 노선의 의미를 안다. 그 노선에서 나의 이름을 그들은 최고인 줄 안다. 그 부친 때문에, 그 모친 때문에. 나는 그 친구 뒤에서 그 친구 덕에 신앙의 구경을 한 번 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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