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33) 공회의 굉장한 인재들, 그 어릴 때와 훗날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0.01.12
어릴 때부터 신앙의 사람으로 돋보이는 경우는 드물다. 철없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런데 공회에는 그런 인물들이 가끔 있다.

 

영남중학교 중학생 하나는 쉬는 시간에 반마다 다니며 전도를 했다. 참 유명했다. 그런데 그 후로는 그 학생의 이름을 들을 수 없다. 세례 요한이 되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초등학교 3학년이 1986년 내 옆에 앉아 백 목사님의 필기를 받아 적었다. 나는 약자와 흐림체를 통해 설교를 대부분 받아 적었고 대학 노트는 빽빽했다. 지금도 내 손가락에는 그 때의 굳은 살이 말씀을 향한 당시를 말해 준다. 그런데 옆에 주일학생은 또박또박 적는데 작은 노트 한 페이지가 보통이다. 글자도 컸고 줄을 잘 띄어 적었기 때문에 몇 자 적지 않았다. 언젠가 이 아이는 나처럼 되겠지만 아직은 젖먹이와 어른의 차이 정도로 생각하며 한참 밑으로 내려다 봤다. 필기에 관한 한. 그런데 한 시간 설교 내도록 숨소리도 내지 않고 또박또박 적는 그 자세만은 기특했다. 어떻게 저 나이에 저렇게 착할까? 훗날 위대한 공회의 인물이 되겠지, 나보다 열 배는 낫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때 그 아이의 훗날을 기대했지, 당시의 필기만 놓고 보면 나는 연구소 경력이 5년이고 그 아이는 부산에 있는 공회의 작은 교회 주일학생이었다. 어느 날 아이의 노트를 좀 살펴 보게 되었다. 몇 자 되지 않으니 한 눈에 들어 왔다. 그의 글은 설교 1시간을 정확히 요약해 낸 공과 수준의 필기였다. 온 몸이 저려 왔다. 그리고 숨이 막혔다. 이 아이는 어느 훗날에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를 저 멀리 이미 추월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이 아이는 1987년 8월부터 내 반에 주일학생이 된다. 그 때 나는 서부교회 주일학교 부장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나는 그 아이를 출석부에는 나의 반 학생으로 올려 놓았으나 한 번도 그 아이를 나의 학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신앙의 한 길을 가는 동지였고 얼마 지나면 나를 앞에서 실제 지도할 인물로 미리 알아 봤다. 내가 재주는 없어도 나를 지도할 사람을 알아 볼 눈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 아이가 백 목사님 사후 조금만 잘 버티면 서부교회 담임 목사가 될 것으로 봤다. 나는 백 목사님 장례를 가족 대표로서 총진행을 맡았다. 그리고 장례식이 끝난 이튿날 백 목사님 사무실에서 서부교회 핵심 5명이 모여 후임을 결정할 때 나는 인천의 이재순 목사님을 우선 모시고 대구공회의 분쟁을 수습하면 이진헌 목사님을 모시고 이 아이를 서부교회 후임으로 세울 때까지 부탁하려고 했다. 이 계획에 따라 1989년 9월 첫 주간 월요일 저녁에 총공회 전부와 이재순 목사님 자신도 예측하지 못했던 후임에 이재순 목사님이 결정 되었다. 그리고 1990년 11월 마지막 주일의 시무투표가 끝나고 이재순 목사님의 후임으로 이진헌 목사님이 결정 되었고 그대로 부임을 하는 줄로 알았다. 1989년 3월부터 나는 줄곧 신풍교회에 있었으나 서부교회의 운영은 내 손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멀리 있다 보니 현장 장악은 하지 못했고, 서부교회의 운영을 맡은 분들을 통해서 이루어 졌다. 그 분들에게 이진헌 목사님을 부탁했고, 그 날 저녁에 그렇게 합의를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진헌 목사님의 아들이 아버지가 후임으로 결정 되었다며 자못 흥분한 목소리로 내게 합의 결과를 긴급히 알릴 때 '합의는 놔두고, 합의서 작성했느냐'고 물었다. 분위기가 합의서 작성조차 필요가 없이 확실하게 이진헌 목사님으로 결정이 되었다며 안심하라 했다. 나는 재차 그 아들에게 말했다. 합의서가 아니면 오늘 밤에 바뀔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여기까지! 라고 했다. 그 날 밤 나와 연락을 하면서 서부교회를 운영하던 5명 중 2명이 뒤로 김응도 목사님으로 마음을 바꿨다. 이진헌 목사님이 오면 신풍에 있는 내가 이진헌 목사님의 후임이 되고, 그들은 다시 기회가 없다고 본 것이다. 내가 마음에 둔 그 아이는 입장을 갑자기 바꾼 2명 중 1명의 아들이었다. 나는 나의 속을 뒤집어 보여 줄 수 없다. 그런데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아이의 임자가 나를 믿지 못하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결국 그 2명을 따르는 이들은 전부 흩어 졌다. 그 2명조차 바로 원수가 되었다. 그 2명은 60세 초반에 다 돌아 가셨다. 그 아이는 현재 교회를 다니는지 모르겠다. 최소한 내가 나의 지도자로 모시고, 이 노선 총공회를 이끌 인물이 되도록 내가 헌신을 하고자 했던 그런 신앙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교회 출석조차 확인이 되지 않는 정도다.

 

이 아이가 이 노선의 지도자가 되기 어려운 신앙이 된 후, 나는 이 노선에서 당분간은 이 노선의 지도자가 나오기는 어렵다고 생각을 했다. 나보다 나아야 이 노선의 지도자가 될 터인데 내가 머리 숙여 배울 정도의 인물은 없다. 나보다 고소를 잘 하고 나를 협박하는 것이 탁월한 인물은 있다. 이런 인물에게는 고소금지원칙을 내가 가르쳐야 할 전도 대상이다.

 

나는 이 노선에서 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 나는 이 노선의 지도자가 될 사람을 기다리며, 그가 나타 나면 내가 모아 놓고 정리한 자료를 잘 사용하여 이 노선을 잘 이끌어 달라고 부탁을 하고 나는 그 밑에서 심부름을 잘 할 정도의 수준이다. 지금 내가 철 없던 시절, 그런데 그런 시기를 나보다 아득히 초월하여 신앙 생활을 참으로 반듯하게 하는 아이들을 가끔 본다. 그 때마다 그 아이를 생각해 본다. 현재 상태로는 그런 아이와 나란히 놓을 정도다. 그런데 10년 뒤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10년 뒤에도 바르게 되어 있으려면 그의 가정과 그의 교회가 변수다. 가정과 교회가 그들의 앞을 막고 나선다 해도 그 장벽을 열고 진행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계시록 3장의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다윗의 열쇠를 가진 신앙이 된다.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나는 나를 몰아 세우는 혹독한 환경에서 투쟁하고 살아 남는 면은 강한 편이다. 그런데 나는 다른 사람을 잘 이끌어 좋게 세우는 면은 약하다. 이런 사람은 이런 사람을 지도할 사람을 기다리고 그 지도자가 나타 날 때에 비로소 마음에 평안을 얻고 그를 위해 충성하다 나의 갈 길을 마치는 것이 행복이다. 이런 복을 주실런지?

 

그렇게 될지 그렇게 되지 않을지 알 수 있을까?

잘은 몰라도 역사라는 것은 어느 정도 방향을 알려 준다. 지난 날의 성경 역사, 교회 역사, 공회 역사들을 통해 소망을 해 본다. 현재 상황으로 볼 때는 이들의 앞날이 어렵다. 이들이 넘어 서기에는 너무 주변의 가까운 장벽들이 강하다. 또한 높다. 다윗의 열쇠를 가졌다면 쉽다. 다윗의 열쇠는 공회의 거룩과 진실이라는 해석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면을 제공하는 주변의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서부교회 주일학교 부장인 내가 나의 주일학생을 나의 지도자로 소망을 두고 있는 힘을 다했듯이 그렇게 할 그들 주변에 반사가 있을까? 주변에서 그들을 그렇게 지도할 사람이 있을까? 그런 수준이 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최고는 아니지만 그런 상황이 필요할 때 나를 꺾는 것은 자신이 있다. 사람마다 한두 가지씩 재주는 주시지 않는가? 원래 천출이고 평생 남들에게 비판을 많이 듣는다. 친 가족들조차 나의 교회 앞에 와서 대로가에 프래카드를 걸고 앰프를 틀고 떠든다. 저런 ㄴ이 목사냐! 이런 식으로 비판을 많이 받다 보니 나는 나를 내버려야 할 때 내가 고귀해서 아끼거나 내가 흠이 없어 흠이 나지 않도록 나를 보호해야 할 필요가 별로 없다. 원래 고물이니까. 원래 고장이 났으니까, 원래 쓰레기니까. 그래서 나를 지도할 사람이 비록 어린 아이라 해도 나는 나를 던질 필요가 있으면 바로 던진다. 그런데 이 아이 주변에 이 아이를 위해 자신을 그렇게 쉽게 던질 사람이 있을까? 부모부터 그렇게 되기 어렵다고 보인다. 하물며 주변 사람들이겠는가?

 

 

1981년, 나는 서부교회 맞은편 서대신동에서 최근 나를 고소한 2명과 자취를 한 적이 있다. 그 집의 주인 집 조카가 김에녹이다. 지금은 50세나 될 듯하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쯤이었다. 나는 이 학생과 8월 집회를 함께 가면서 그가 탄 버스에 인솔자였다. 아이에게 집회 때 배운 말씀을 교리적으로 하나씩 물어 가며 질문을 통해 이해도를 살폈다. 이 아이는 이미 총공회 교리 체계를 전부 다 꿰고 있었다. 당시 어떤 질문도 막히는데가 없었다.

이 사람 때문에 나는 나처럼 열심히 뛰어 다니며 줏어 듣고 아는 사람끼리는 노력으로 상대방을 넘어 설 수 있으나, 사람의 노력으로 능가할 수 없도록 하늘에게 은혜를 주는 특별한 인물이 있음을 느꼈다. 나는 그를 늘 지켜 봤다. 구역과 주일학교 중간반의 소속은 달랐으나 나는 그 많은 서부교회 교인들과 학생들 중에서 내가 살던 집에서뿐 아니라 주일학교의 6백개 반들 중에서도 바로 주변에 위치하여 그의 중학교 1학년 때 반사하는 모습을 매주 지켜 볼 수 있었다. 참 부러웠다. 또 존경스러웠다. 당시 백 목사님은 70대였고 오늘 나이로 비교하면 비록 건강하기는 하지만 90대였다. 백 목사님 사후, 나를 지도할 사람일 것이라고 기대를 했다. 구역과 주교 중간반의 소속이 달라 지켜 보는 것 외에 나는 그에게 지나 가며 눈 인사 하는 정도 외에는 해 본 적이 없다. 백 목사님은 직계 상하 외에는 안부도 묻지 않을 만큼 아래 위를 통해 길러 간다.

 

그가 어느 날 미국에 있는 아버지에게 간다고 했다. 중학교 2학년 쯤이었다. 그를 맡은 반사가 김춘도 중간반 부장이 될 중간반사였다. 내가 평소 그 학생을 귀하게 보고 있었기 때문에 김춘도 선생님은 내게 김에녹에 대해 특별히 언급을 했다. 이러고 저래서 가게 되었다고. 이 학생은 미국의 아버지가 불러 가려고 그토록 애를 썼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백 목사님을 떠나 그리로 가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거부를 해 왔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번에는 가게 되었을까? 현재 신앙은 더욱 뜨거운데. 중간반 그 선생님에게 거칠게 소리를 높였다. 한 학생이면서 이 노선의 보배를 맡은 선생님이 학생을 알아 보지 못했다고. 선생님이 단호하게 거절하도록 지도했으면 되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 간 뒤에도 이 학생의 소식은 그 이모를 통해 계속 들었다. 들리는 소식마다 미국의 대륙에서도 들리기 어려운 이야기가 들려 왔다. 이 노선 이 말씀 때문에 다른 교회 가는 것을 거부하고 설교록으로 예배를 혼자 드린다거나 학교 공부보다 성경 읽는 데 주력을 한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백 목사님도 가셨고, 어느 날 그 사람이 하바드 대학 박사 과정을 밟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안에서는 신앙도 엄청 좋고 또 공부도 이렇게 잘하니 대견하다 했다. 나는 혼자 슬펐다. 또 하나의 이 노선을 맡을 시대적 인물은 떠나 간 것이다.

 

나는 늘 내 주변의 아이들을 눈 여겨 본다. 또 새 은혜로 출발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렇다. 일반적으로 모든 목회자나 교인이란 그럴 것이다. 나는 여기 더하여, 이 노선의 지도자가 되어 나를 지도할 사람을 찾고 있다. 그런 인물이 나타 난다면, 나는 적어도 그를 알아 보는 데는 남보다 빠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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