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32) 나는 적어도 의리는 있다. 나는 신앙의 의리를 본 적이 없다.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0.01.11
(나의 현황)

나는 공회의 중간쯤 되는 목회자라고 말을 해 왔다. 그러나 나는 공회에 1%라고 평가 되어 왔다. 그들은 나의 겉모습을 봤고, 나는 나의 실체를 알기 때문에 대충 그렇게 말한다.

 

내가 총공회 전체의 상위 1%가 되는 경력은 공회 출발의 몇 가정이에 속하며 그들 중에 총공회 소속 식구가 제일 많고 오래며 가장 광범위하게 펼쳐 있다는 점, 공회의 본부였던 서부교회에 6형제가 직원이며, 총공회의 최고 핵심 기관인 연구소의 영구직 절반이 형제들이었다. 백 목사님이 생전에 공회의 교리와 노선 연구를 다 맡겼고 직접 유학을 보낸 유일의 인물이다. 백영희 자녀 7가정 14명 자녀 부부와 20명 손주와 직접 얼굴을 대했고 17명을 직접 가르쳤다. 나밖에 없다. 백영희 장례식의 가족 대표였고, 백영희 후임을 결정했으며, 오늘까지 백영희와 총공회와 서부교회에 관련 된 안내는 모두가 감추기에 급급한데 나 혼자 수만 개의 글과 수십 종류로 출간을 했다.

그런데 이 모습은 외부에 드러 난 상황이다. 이런 일은 사실 공회의 일반 목회자들이 다 할 수 있었는데 아무도 하지 않는 바람에 혼자 달려서 혼자 1등을 했다. 그래서 나는 상위 1%다. 그런데 누구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공회 목회자 전체의 중간쯤 간다고 말하는 이유다. 나를 만나 본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저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를 가르치려 드는 이들도 많다. 교인들 중에서도. 나는 그들을 두고 건방지다고 생각해 본 경우는 거의 없다. 나의 수준이 실제 그런 줄 알기 때문이다. 그 때마다 나는 군담을 한다. 진작 내가 할 일을 하지는 않고 이제 와서 투덜거리니 난들 어떻게 하랴? 나의 1등은 나의 죄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달리지 않은 죄 때문이다.

 

(의리를 생각한다.)
나는 의리 문제를 두고는 실제로도 외부적으로도 상위 1%일 듯하다. 함께 약속한 노선을 두고 가다 보면 다른 사람들은 이탈을 한다. 백 목사님 사후 3분의 2가 이탈했다. 나머지 3분의 1도 이탈했다. 백영희 설교에 대한 사명을 두고도 가다 보면 모두 다른 소리를 하고 옆으로 빠진다. 말은 별별 말을 하지만 마지막에는 처음 약속과 달라 진다. 나만 남는다. 어떤 일에도.

나는 어릴 때든 성장 과정이든 신앙의 세계든 의리 문제를 두고는 내가 배신한 기억이 없다. 내가 이탈한 기억이 없다. 나는 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 이순신 13대, 이율곡 14대라는 족보를 늘 듣고 자랐다. 수십 명의 사촌들이 함께 듣고 자란 소리지만 나만 이런 이야기를 귀담아 들은 것같다. 적어도 변심은 하지 않는다. 신앙이 없던 시절도 체질적으로 나는 의리는 지켜 왔다. 이런 의리의 사람이 만일 처음 발을 잘못 디뎠다면 공회와 같은 이런 길은 내가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내가 가장 많이 반대하지 않았을까. 이 것이 의리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이다. 내 생각에 사람이 바꾸어야 할 일이 있다면 변심을 하기는 하되, 변심을 해야 하는 사유를 말하고 미안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돌아 서는 것이 맞다고 본다. 다른 사람은 꼭 같이 가겠다고 말을 해놓고 뒤에 딴 소리를 한다. 내가 의리 문제를 짚는 것은 이런 상황만 말한다.

 

공회 사람들은 공회는 특별하다는 전제로 모였었다. 공회를 모르고 다닌 사람들도 공회의 중심 교인이 되는 상황이 되면 공회의 특별성이라는 것을 모를 수 없는 구조다. 그런데 지금 다른 교회와 무분별하게 하나를 만들어 버리지 않은 곳을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그런 행동들을 보고 딱 하나만 아쉽다. 의리가 없다. 그렇다고 의리를 앞세워 옳은 것을 따르지 않을 수는 없다. 이럴 때는 내가 공회가 특별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특별하지 않더라고 말을 하고 방향을 바꾼다면 의리가 없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생각 없이 그냥 형편 따라 세월 따라 이리저리 바꾸기 때문에 나는 그런 이들의 선택이 옳든 그르든 상관 없이 일단 의리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변심, 배반, 배신...)
나는 백 목사님 생전에도 사후에도 이 노선에 문제점이 있는지 많이 살펴 봤다. 누가 봐도 오해를 할 정도로 뒤졌고 속속들이 들췄다. 소속을 바꿀 정도의 잘못 된 것을 찾아 냈다면 나는 서슴치 않고 떠들고 공개하고 돌아 섰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푯말을 붙여야 하지 않을까? 공회 내의 나의 입장과 역할을 고려한다면 나는 다른 사람과 달리 그렇게 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럴 일이 없었다.

그래서 이 노선과 백영희에 대하여 변심할 일이 없었고, 배반 배신할 일은 아예 없었다. 그런 요소들이 있었다면 공회를 탈퇴한 다른 분들처럼 그런 식으로 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대신 나를 떠나는 사람들은 변심은 해도 배반이나 배신의 방법이 아니라도 김석준 목사님 식으로 독자적인 길을 간다면 참으로 은혜롭고 존경스러울 터인데 그런 인물은 없는 듯하다.

 

나는 이 노선을 한 번 파악하고, 한 번 결심하고, 끝을 보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 때마다 그런 이들을 두고 불신의 족보에라도 의리가 있는 쪽을 붙들었다면 좀 낫지 않았을까 투덜거려 본다. 그런데 내가 속한 족보도 최근에 보니 배신 배반이 쏟아 지는데 지금까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배신과 배반이 극에 달한다. 그래서 족보를 받아도 그 속에서 좋은 점을 잘 추출하는 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평생을 사는 주소는 전남 여수다. 모두들 배신의 지역이라고 했다. 현재 나와 평생을 함께 하는 이들은 덕수 이씨 충무공과 율곡의 핏줄도 부산과 경남의 의리도 아니다. 전남 여수와 그 주변 사람들이다. 내가 와서 이들의 세상 혈통이 바뀌었다면 참 좋겠다. 나는 그런 정도의 능력은 없다. 그대신 이 곳의 별별 사람 중에 의리가 있는 사람들을 모시는 은혜는 받은 듯하다.

 

최근 수백 건의 고소 고발을 수 년간 흔들어 보니

백전노장도, 진리의 투사도, 동지도, 강골도, 경상도 사람도, 거창 사람도 모두 뿌리가 다 뽑혔다. 그러나 내 주변에 신앙의 의리로 이런 파동을 함께 넘으며 함께 가고 있는 사람은 지금 얼른 헤아려도 수백 명이 넘는다. 새해 첫 주일을 성찬으로 진행한다. 세례 성찬은 '각오' '약속' '의리' 문제다. 주님 날 위해 죽었으나 나도 죽기를 각오하고 변치 않겠다는 식이다. 세례의 약속과 성찬은 수도 없이 하지만 허공에 허무하게 흩날려 없어 진다. 이럴 때 경남 합천에서 살다 울산에서 돌아 가신 권사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내 나이 16세, 새댁 때 시댁에 온 날 여자 선교사님이 설교를 할 때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지. 그러나 살며시 눈길을 피하며 들었지. 선교사님 말씀이 예수님이 우리 위해 죽었다는 말을 했지. 내가 그 말을 들을 때 그렇게 좋은 양반이 있나! 나도 저 분을 위해 변치 않고 살아야지 라고 했고 이제 내 나이가 90이라'고 했다.

 

오늘처럼 그 분의 말씀이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사무치면서 감탄이 되고, 부럽고, 본을 받고 싶은 때가 없다. 나는 이 노선에 대해 확인을 일찍 했다. 나는 1991년 2월에 목사 시험의 시취 설교 때 여호수아의 유언을 담았다.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나는 이 말씀을 통해 이 노선에 대한 나의 각오를 했다. 이 것은 최소한 의리 문제다. 나는 이대로 간다. 만일 이 길이 틀려서 소속과 길을 바꿀 때가 있다면 최소한 슬며시 바꾸지는 않는다. 이 길이 이렇게 잘못 되어 나는 이렇게 갑니다, 발표를 하고 나갈 마음이다.

 

(불신자도 아는 의리, 이 자연의 상식)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린다. 땅에서 매면 하늘이 매인다. 불신자는 땅에서 풀 길이 없다. 우리는 세상도 아는 의리조차 없어 우리의 천국을 닫아 버린다. 백 목사님은 대학 노트에 자신의 시들을 앞에서 적어 놓았다. 그런데 그 노트의 제일 뒤에는 앞에 적은 신앙의 시보다 훨씬 많은 분량으로 세상 시들을 적어 놓았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이런 시들을 적어 놓았다. 왜 그랬을까? 1959년에 고신에서 제명 당하던 그 주변의 세월에 적어 놓았었다. 오늘 다시 그 때를 돌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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