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29) 개별 교회의 사경회, 공회의 인재를 실제 길러 내던 기회 (계속2)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19.12.31
(1974년 도평교회 집회)

1974년 12월 30일부터 1975년 1월 3일까지 거창지방의 공회들은 도평교회 집회를 참석했다. 강사는 백영침 목사님. 나는 이 집회에서 비로소 '목회자가 되어 보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나는 목회 출발을 두고 그 첫 자각을 준 집회와 백영침 목사님을 잊지 못한다. 이 집회에서 64장 '세상과 마귀 싸우니'를 처음 배웠다. 오늘까지 나의 애창곡이다. 이 찬송을 할 때마다 그 집회의 당시 분위기 그 은혜 그 강사 그 결심을 기억한다. 46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도 생생하다. 이런 것이 은혜가 아닐까? 가면 갈수록 더 깊어 지는 세계. 더 감사가 넘치는 세계. 이제는 이 찬송의 제목만 떠올려도 그 때와 비교도 못하는 은혜에 젖는다. 유행가는 처음 부를 때 제일 좋고 몇 번 부르면 흘러 간 옛 노래가 되어 흐려 지고 없어 진다.

도평 집회는 12월 마지막 주간에 시작해서 1월 첫 주간으로 걸쳐 있었다. 밤 예배가 없다. 오후 예배를 마치면 마을을 다니며 흩어 져 전도를 한다. 숙소는 교인 집이나 그 주변 방을 빌려 모두 빼곡하게 잔다. 나는 선배 청년들과 상도평 어느 집에 신세를 졌다. 수요일 저녁에 수밤 예배를 드린 기억이 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 온 선배 청년들과 한 이불에 발을 모두 넣고 돌아 앉아 그 날 적은 필기를 잠깐 맞춰 보다가 당시 새찬송가를 사용할 때인데 찬송가를 1장부터 다 부르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손용모 창동교회 선생님과 이용식 도평교회 집사님이 옥신각신 했다. 그러다 불러 보자고 했다. 둘러 앉은 10여명이 다음 날 새벽 4시 30분 예배당으로 갈 때까지 계속 1장씩 불러 나갔다. 반주가 없어도, 무슨 찬송이든 상관하지 않고 그냥 부르며 밤을 샜다. 이 것이 공회식이다. 여기에 화음이고 반주고 박수고 무슨 율동이 필요 없다.

신앙과 교회를 시스템으로 접근하는 분들이 보면 무모하다. 미개하다. 안 될 것 같다. 우리는 그냥 모였고, 그냥 시작했다. 우리끼리 시작했는데 찬송가를 1장부터 계속 부르는 우리의 분위기는 성령이 그 날 직접 인도하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여러 공회 목사가 나왔고 공회 각 교회의 지도자들이 나왔다. 그 때 경험으로 되돌아 보면 내가 모르는 서울, 제천, 대구, 남해, 여수 그 어디에서라도 이런 식으로 주님은 이 노선에 별별 사람을 기르고 계셨다고 느낀다. 이런 경험을 할 때, 나만 이런 경험을 했다며 평생 자기만 반복하는 이들이 있다. 내가 경험을 했을 때 나를 경험하게 한 성령이 다른 곳에서도 그렇게 했겠다고 짐작하면 마음의 폭도 넓어 지고 또 식견의 차원이 좋아 지면서 신앙의 사회성이 좋아지지 않을까.

도평교회에는 당시 아주 연세 많은 남반 노인 어른이 한 분 계셨다. 눈꺼풀이 처져 앞을 보지 못했다. 성냥 한 개피를 부질러 양쪽 눈의 위꺼풀에 기둥처럼 세우고 성경을 읽고 찬송을 드렸다. 노령에도 끝까지 교회로 출석하는 모습을 보며 느끼고 배웠다.

(1975년 1월 봉산집회)

전성수 목사님의 집회가 앞에 도평과 마주쳤는지 봉산과 마주쳤는지 정확히 기억이 없다. 봉산으로 기억을 한다. 자료를 일일이 찾아 보려면 시간이 걸려 이 글의 모든 수치는 항상 따로 맞춰 봐야 한다.

창동교회 전성수 조사님은 합천의 묘산교회에 집회를 인도하러 간다 하시며 창동교회 전 교인들에게 도평으로 가라 했다. 전 목사님의 위대한 점이다. 그 분의 속은 철저히 그렇다. 아무리 아무리 아무리 위대하고 진실하다 해도 정말 딱 급할 때 또는 그 내면 깊은 곳을 파헤쳐 보면 마지막에는 자기 중심이다. 교묘하게 속에는 자기가 들어 있다. 정말 자기가 전혀 없는 분은 전성수, 홍순철, 추순덕, 서영준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다. 나머지는 겪어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모르는 것인지 우리 다 함께 우리 속에는 자기를 묻어 두고 있는지 모르겠다.

봉산교회 집회는 1948년의 역사적인 집회를 이어 삼봉산 집회로 이어 졌었다. 또 6.25 전쟁 때 백영침 목사님은 덕유산으로 끌려 가다가 생환했고 봉산교회와 관련 된 환란의 회고가 많았다. 나는 예배당 옆의 사촌 누님 집에서 집회를 참석했다. 오후 예배가 끝나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방으로 흩어 져 전도를 다녔다.

(1973년 2월 위산교회 집회)
나는 이 집회에서 송용조 목사님에게 공회의 중생 교리와 삼분설과 건설구원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배웠다. 송 목사님은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기 직전이었고 공회 내 학구적 목회자였다. 소련의 과학자들이 유물주의를 주장하기 위해 인간의 뇌를 연구했고 뇌수가 인간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혀 버렸다는 내용을 전했다. 그리고 원자폭탄이 나온 20세기에 마음이 영이라고 생각하면 기독교가 과학에게 삼킨다면서 총공회 교리 절대주의를 외쳤다.

나는 중3을 졸업했고 고1로 진학하기 전이었다. 송용조 목사님은 내가 5세 되던 1962년에 창동교회 제2대 목회자로 오셨던 분이다. 4형제 중 막내인 이신영 목사님의 이름을 지어 주신 분이다. 평생 나를 대할 때는 그 때의 다정함을 잃지 않았다. 내가 유학 시험을 치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을 갈 때는 사직동교회 목사님이었고 나는 그 사택에서 자고 먹었다. 그리고 그 분은 내게 '미국을 가게 되면 백 목사님 자녀들이 그 교회에 모두 있다. 참으로 조심해야 한다'면서 그 분의 목회 목숨을 건 이야기를 했다. 그만큼 나를 믿었고 아꼈던 분이다. 그런 표현은 공회 내에서 바로 그의 목회 활동이 파탄 날 수 있다.

송용조 목사님은 성경과 교리를 지식적으로 펼치며 논리적으로 나를 세뇌한 분이다. 내 평생을 이 노선 공회에 용접을 해 버린 분이다. 그런데 그는 1988년 2월에 공회를 배신하고 나갔다. 그 분은 개혁을 하다가 억울하게 밀려 나갔다고 한다. 내가 보면 배신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분의 88년도 행위는 여러 면으로 이해한다.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고 서울 중심에서 국내 신학계와 보수 정통 교계에서 마음껏 활동을 하려면 공회는 새장이다. 아니, 철장일 것이다. 따라서 날개를 펴고 마음껏 창공을 날아야 하는 분이다. 그렇게 가는 것은 이해를 하나 그 마지막의 모습은 아쉽기 그지 없다. 나는 그 사모님의 따뜻한 눈길을 평생 잊을 수 없다. 내게는 공회 내에 팥쥐 어머니처럼 싸늘하고 신데렐라의 서모처럼 비수를 품고 독이 든 사과를 건네는 많이 이들이 있다. 평생 동지라 생각한 이들과 내 호적에 가장 가까운 이들도 그런 부류들이 많다. 그런데 송용조 목사님 내외분은 내게 고향의 품과 같고 부모님 못지 않는 따뜻함을 느낀다. 88년 그 분들이 나간 뒤에 다시 연락한 적은 없다. 그러나 나로서는 언제 다시 전화를 한다 해도 그 분들과 옛정으로 대화할 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머리에 이 노선 이 교훈을 조각해서 다시 지우지 못하게 해 놓은 분. 묘지의 돌비석에 망치로 정을 때려 한 자씩 글로 새겨 천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게 하신 분. 송용조 목사님은 1973년 2월에 나의 가장 중요한 내면을 만들어 버렸다. 이 것이 공회의 개별 교회 겨울 집회다.

 

(1974년 겨울)
고2 때로 기억이 난다. 학년 전인지 학년 말인지 자료를 봐야 알 수 있다. 거창의 양혜원 교회에 겨울 집회가 있었다. 어머니를 자전거 뒤에 모시고 갔다. 2km 정도니 약 5리쯤 된다. 비교적 평탄한 길이다. 뒤에 타고 계신 어머니께 물었다. '학교에 고려파 친구들이 너희 교단은 모두 백 목사님 친인척으로만 되어 있답니다.' 어머니는 '저것들에게 고려파 목사들은 친인척으로 모두 짜지 않았나 물어 봐라' 그 때 들은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기도와 전도의 사람이다. 정치적이 아니다. 그런데도 알고 계시는 정도였다. 고려파 그들은 신앙 제일주의 노선 절대주의로 가다 보니 그들끼리 결혼을 시켰고 원래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으나 훗날 내부에서 기른 자녀들을 결혼 시키다 보니 인연 지연 혈연으로 뭉쳐 져 버렸다. 이렇게 되자 고려파는 신앙보다 세상 인연이 앞서게 되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들은 당시 말 때문에 평생 이 면을 돌아 본다. 시작은 세상 인연을 초월했으나 이 노선으로 가다 보니 이 노선으로 인연을 만드는 것까지는 옳은데, 그 인연이 또 다른 세상 연줄이 되어 신앙의 다음 단계를 묶어 버리지 않는가? 현재까지 나는 내가 속한 부공3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했다. 그 것이 지난 수 년동안 발생한 사건들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덕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덕이 된다는 자부심이 있다. 백 목사님 사후 목사님의 친인척으로 분규가 생길 때 나는 백 목사님 집안의 서열 1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이 '그 어른이 제자 농사는 궂쳤다'는 말에 대하여 '예수님도 제자 농사는 궂쳤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다. 서로 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철이 없을 때 한 번 보고 들은 것이 당시는 무슨 말인지 몰랐으나 나의 평생을 이렇게 잡아 주며 끝없이 학습을 반복 시키며 돌아 보게 한다. 그래서 5월과 8월의 전국 집회는 공회 노선의 양대 기둥이라 한다면, 공회의 교회 별 집회는 백 목사님의 집회와 비교 할 수 없이 낮은 수준이며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였으나 집의 구석 곳곳을 제대로 세우고 있었다.

 

공회에 나 같은 경험을 모아 본다면 적어도 몇천 명이 각자 몇십 개씩 경험담이 있을 것이고, 수만 개의 이런 자료가 모여 지면 공회는 삐뚤어 질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한 쪽은 경건해서 자기 것을 내놓지 않는다. 대부분은 자기 경험이 졸렬하고 하찮은 것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바로만 모으면 진합태산일 터인데. 목사님은 평생 그렇게 가르쳤다. 진합태산. 그 쉬운 그런 노력을 모으지 않는 우리를 향해 한탄을 해 본다. 정말 겸손하고 경건해서 내놓지 않고 있을까? 남들과 비교가 되면서 인간 보기에  남보다 좀 못하게 보일까 싶은 자존심 때문일까? 나는 거의 다 후자로 본다. 복음 운동조차 자기가 중심에 서고 자기가 올라 가는 조건에서만 헌신이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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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전쟁, 그 모든 향방은 '성전'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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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성전 준비로 본 연구소의 사명
담당 | 2019.08.30 | 추천 0 | 조회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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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지도자의 당대와 후대
담당 | 2019.09.07 | 추천 0 | 조회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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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살롬과 시므이 (1)
담당 | 2019.08.30 | 추천 0 | 조회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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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어느 장관, 공회의 어느 장관 (1)
담당 | 2019.09.18 | 추천 0 | 조회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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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도적질하여 갔다'고 퍼뜨리니 오늘까지..
담당 | 2019.08.24 | 추천 0 | 조회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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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 양심가들의 불장난과 시대의 균형추
담당 | 2019.08.21 | 추천 0 | 조회 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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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좌익이, 정상적 우익으로 - 안병직으로 본 공회 (1)
회원 | 2019.08.25 | 추천 0 | 조회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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