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27) 전국의 공회가 한 가족으로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19.12.10
지금은 짐작하기도 어려울 상황이라 한 번 적어 둔다.
공회는 전국 교회가 한 가족과 같았다. 공회 교회는 다른 교회들과 워낙 특이 하고 비판을 받고 모두가 수군거리니 내부적으로는 저절로 가족이 된다. 그런 외부의 시선이 없어도 공회는 내적으로 신앙의 큰 체험이 없다면 발을 붙이기 어렵다 보니 뜨겁게 하나가 된다. 결혼도 공회는 철저히 다른 교회와 섞이지 않다 보니 전국 교인들이 실제 친인척이 된다. 연애는 당연히 금지 분위기였고, 아는 곳이란 공회 교인들뿐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1. 두 번의 집회
공회 교인이라고 불릴 정도면 5월과 8월의 전국 집회는 기본이다. 각 교회의 유년 장년 전체 참석 숫자를 보면 8월의 경우 그 교회의 주일 오전 장년반 숫자만큼 참석한다. 장년반에 신앙 어린 분들이 좀 빠지고 그 자리를 믿는 가정의 아이들이 채우기 때문이다. 5월은 학교나 직장 때문에 참석이 어렵지만 각 교회의 밤 예배 장년반 출석수 정도가 집회를 참석한다. 이 집회 참석자들은 1960년대 초반까지는 전국에서 불과 수십 명 단위였다. 1970년대가 되면서 수백 명 단위였다. 1980년이 되면서 1천명을 넘기게 된다. 집회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4박 5일에 오로지 예배만 드리나 좁은 골짝에서 물과 불과 장소가 협소하다 보니 전체는 자연스럽게 집회 오지 않은 가족보다 더 가까와 진다. 특히 매 집회에 쏟아 지는 은혜로 하늘의 세계를 접하는 그 순간 옆에 있던 교인, 그 예배를 향해 가는 길과 오는 길에 익힌 얼굴은 따로 말을 하지 않고 타 교회들처럼 '교제'라는 기회를 마련하지 않아도 진하게 가족이 된다. 한 번 딱 봐도 그렇게 될 수 있고 또 5월과 8월로 이어 지며 그리고 10년 단위로 세월이 가면서 가족이 되어 버렸다.


2. 겨울의 집회
5월과 8월의 집회는 대구와 거창에서 전국 교인이 모이지만 겨울이 되면 겨울 방학과 함께 전통적으로 공회 교인들은 제대로 된 직장이 없다 보니 거의 농사나 노동자들이고 70년대까지 겨울철은 농사 짓는 사람과 노동자들에게는 확실하게 쉬는 계절이다. 그래서 각 교회들이 주변 교회들과 일정을 맞춰 가며 개별 교회 단위로 집회를 한다. 대개 한 지방에 한 교회가 집회를 하면 그 주변의 교회들이 함께 모인다. 한 지방에 2개 교회가 집회를 할 때는 기간을 약간 띄운다. 그래서 겨울 한 철에 2회 정도의 주변 교회 집회를 그 지방 주변의 공회 교회들이 모두 함께 한다.

이 때가 되면 숙소는 예배당이 아니라 그 교회의 교인들 가정이 최대한 빈방을 만들고 방마다 누울 공간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채운다. 4박 5일을 그렇게 하고 나면 한 번 개별 교회의 집회로 그 지방의 교인은 밥을 함께 먹는 '식구'가 되고, 밤을 한 집에서 했으니 '가족'이 된다.


3. 목회자의 순회
1988년, 백 목사님의 별세 1년 전에야 공회는 백 목사님 사후를 준비하기 위해 교회 별 목회자 결정은 각 교회가 하도록 된다. 그 전까지는 백 목사님이 1949년부터 1988년까지 전국 교회의 목회자를 결정했다. 1백명 전국의 공회 목회자들은 매 2년 정도에 한 번씩 다른 교회로 이동을 한다. 서울에서 시골로, 개척 교회에서 도시의 큰 교회로, 공회의 이동은 거의 다 파격적이다. 일단 전국을 다 돌게 된다. 그 교역자들 때문에 또한 전국에 교인들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묶인다. 물론 이렇게 묶이는 것은 그 교역자를 좋아하는 분들끼리다. '전국 집회' '개별 집회' 그리고 '교역자'를 통해 자연스럽게 직접 서로 알게 되면서 주변 사람이 간접으로 알게 되니 공회 교회의 교인은 밤 예배까지 출석해야 비로소 교인 행세가 되고 그 교인들끼리는 거의 다 알게 된다.


4. 결혼, 공부
시골 교회들은 중학교나 고등학교부터 인근 도심의 공회 교회에서 출석을 한다. 도심에 공회 교회가 없으면 그 도심으로 공부나 직장 때문에 오가는 이들을 위해 교회를 개척하게 된다. 그리고 공회 교회가 있는 곳으로 학교를 진학하게 되면 교인 집에 방 한 칸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자취가 되든 그 교인 집에서 함께 먹든, 또 비용 지출을 공짜로 하든 약간 인사를 하든 그 것은 각 가정들의 형편에 따라 다 다르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그렇게 이어 진다. 교인 집에 그렇게 신세 질 곳이 없으면 교회의 빈 방, 교회 교역자 아이들과 한 방을 사용하는 것도 흔하다.

전국의 공회 교인들 중에 서울로 공부를 하러 올라 가면 사직동교회 동문교회 청량리교회 3곳에 모인다. 80년대에 잠실동교회가 강남으로 가면서 4곳이 된다. 처음에는 사직동교회로 일단 몰렸고, 다음에는 잠실동교회로 몰렸다. 따로 아는 관계가 있으면 물론 다른 교회들로도 분산은 된다.

공회의 출발지이며 집회 중심지며 가장 많은 교회가 분포한 경남의 거창은 창동교회 외에는 전부 면 단위 시골이다. 중고교 시절을 거창읍에 있는 창동교회를 대개 거친다. 그리고 이들이 대학을 가게 되면 대구 부산 서울이다. 대구로 가면 달산교회 비원교회, 부산으로 가면 거의 다 서부교회, 서울은 앞에서 설명했다. 나는 1975년 11월에 올라 가면서 물어 보지도 않고 당연히 사직동교회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 보니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타 교단과 비교하면 규모는 작지만 내부 교인이 진학과 결혼 때문에 외부로 나가는 경우가 확실히 적다. 그리고 이렇게 움직이면서 전국적으로 결혼을 하게 되고 공회의 전국 교인은 모두 한 식구가 된다.

나의 집은 거창군 전체의 중심인 거창읍 한복판에 있었고 집 바로 옆에는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내가 고향을 떠나던 1966년 20세 되던 때까지 거창군을 떠나려면 거의 다 일단 거창읍으로 와서 다시 시외버스를 갈아 타야 했다. 직행은 면 단위에서 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편은 하루 1편 많아야 2편이다. 따라서 대구 부산 서울처럼 장거리 출타를 하고 시골 본 집으로 들어 가려면 거창읍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공회 교인들은 그냥 자기 집처럼 들어 온다. 짐도 맡기고, 식사도 하고, 그리고 잠도 자고... 그 과정에 공회의 출발지며 중심지 거창을 거친 교인들과 전국의 목회자는 전부 삼촌이거나 이모 고모거나 형님 동생이나 조카가 된다. 그런데 나보다 한 살이라도 많으면 모두가 나를 손주뻘이나 되는 정도로 기억한다. 지금 내 나이 예순을 넘었는데 '00이 그 것이' 이렇게 표현을 한다. 목사라는 성직이 붙으면 교파가 달라도 함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닌데. 그리고 내 밑의 사람들은 한량 없이 후배라도 친구 삼아 말한다. 나는 어릴 때 철 없이 잘못했던 일을 평생 잊지 말도록 이마에 표시를 박아 놓은 주님께 감사한다. 그런 뜻을 잊지 않으려고 나는 친 손주에게도 말을 낮추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이런 어린 시절에 봐 두었던 경험 때문에 나는 공회의 중진을 넘어서고 원로들을 넘어 서고 이미 돌아 가신 1세대 어른들과 비슷한 정도로 공회의 초창기를 기억해 낸다. 몇 살 때인지도 잊었다. 현재 각 공회의 80대 목회자 거의 전부는 내게 한 세대 밑으로 보인다. 공회의 발생과 형성 과정의 역사면에서만 본다면.


5. 고향에서
한 번은 양혜원교회에 집회를 참석하고 집에 돌아 오는 길에 어머니께 물었다. 고신 쪽을 다니는 학교 친구들이 '백파는 전부 백 목사님 친인척이라며?' 라는 말을 여쭸다. 학교에서 그 말을 처음 들었지만 듣고 보니 그랬다. 당시 공회의 서열로 보면 백영희 백영익 신도범 백태영 백영침 이재순이다. 백 목사님의 초기부터 마지막까지. 그런데 형제나 처가나 사돈이다. 듣고 보니 그랬다. 또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친구가 부모나 교회에서 듣고 말할 때는 근거가 있었을 것이니 들으며 순간적으로 전기가 나가 버린 셈이었다.

어머니는 조용한 분이다. 그런데 이 갑작스런 질문에 빙긋이 웃으면서 '고신 자기들도 전부 친인척이면서 남 말 하네...' 하신다. 정말 그러냐고 여쭈니 손을 꼽으며 헤아려 주신다. 고신의 실력자가 한상동 한명동인데 형제다. 신학교수 이근삼 목사님은 조카라는 것을 기억한다. 어떻게 아시는지 궁금했다. 형제처럼 지내던 거창교회 신 장로님의 아들이 한명동 목사님의 사위가 되었다고 하였고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나는 신 장로님 댁에 설날마다 세배를 갔고 그 집 아들이 자형과 가장 친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께 '신앙으로 철저히 나가려다 보니 누구와 결혼하겠는가? 같은 신앙끼리 결혼하고 그런 신앙의 교인은 몇 되지 않으니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들었다. 생각해 보니 명료해 졌다.

창12:1에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한 것은 공회 공과에서 늘 반복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알기 전 세상에서 가졌던 연줄은 하나님을 따라 가는 길에 방해가 되면 끊으라는 것이고, 신앙의 한 길을 가기 위해 신앙의 동지로 따라 나선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였지만 친인척을 떠나라 하신 말씀에 해당이 되지 않았다. 신앙 길에 하나가 되면 신앙의 식구다. 주님을 따르는 순종의 길에 하나면 본토 친척 아비 집으로 원래 알던 이들도 우리에게는 신앙의 식구다. 동향에 친인척이 된다 해도 주님을 따라 가는 길에 손을 잡을 수 없다면 그들은 호적상의 친인척이며 동향일 뿐이다. 신앙을 함께 하는 교인의 사업체를 목사의 동생이 뺏으려 나서는 경우가 있다면, 목사는 동생을 위해 교인의 사업체를 뺏아 줘야 하느나? 그렇다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하신 말씀을 따라 딱 잘라 버려야 한다. 전과 몇 범이 될지라도. 옳은 말을 하고 옳은 행동을 하는데도 왜 전과자가 되나? 그런 동생이 있다면 그 동생의 행위는 잘못 되었기 때문에 목사는 교회에서 '동생이 저를 이용하는데 이런 행동은 틀렸다'고 질타를 해야 한다. 그렇게 표시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교인들은 목사가 슬쩍 동생의 편을 든다고 생각하여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들은 그런 잘못 된 행위에 돕게 되고 또 목사를 반대하는 교인은 속도 모르고 그 것을 빌미로 삼아 민주화 운동에 나서는 죄를 짓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외치는 과정에 '틀렸다'라는 표현을 강조하면 명예훼손이 된다. 지금 서부교회와 총공회의 각 공회들과 심지어 연구소의 과거 직원 출신 목회자들조차 이렇게 교인을 보호하다 명예훼손이 된 목사에게는 십자가의 군병이며 출옥성도라고 격찬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죄인이니 목사직을 내놓으라고 안팎에서 운동들을 한다.


어머니에게 공회 교인들의 가족성과 고신 때부터 공회는 전국 교회가 한 가족처럼 지나게 된 사연을 들은 날부터 이 면으로 교회 내의 가족 관계를 보게 되었다. 주님을 위해 결혼을 하게 되고 신앙이 같기 때문에 동지가 된 친인척은 보배요 은혜요 부러운 것이며, 신앙과 하나님과 교회를 제쳐 두고 친인척 고향으로 하나 되는 것은 불행이요 저주라는 눈으로 공회의 교인과 목회자들의 친인척 고향 동문 관계를 꼭 구별해 본다.


이 글을 적으며 그냥 끝을 내면 좋겠으나 또 한 마디를 붙인다. 나의 자랑인가? 그렇게 보인다. 그런데 왜 그런 자멸 자살적 위험을 가진 글을 발표할까? 혹시 답을 마음에 적어 본 다음에 다음 글에서 내가 제시하는 답으로 맞춰 보며 비교하면 좋겠다.



이 정도에서 글을 내리지 말고 생각부터 해 주시면 좋겠다.







오늘도 교회다운 교회라면 과거만큼 긴밀하지는 못해도 여전히 한 노선의 한 신앙은 전국 어디 있든지 가족과 같게 되어 있다. 그리고 오늘 나의 자녀는 나를 통해 어느 날 신앙이 들고 이 노선에서 나처럼 신앙 생활을 하게 되면, 오늘 철 없이 듣고 보고 겪은 일이 그 속에 신앙의 이력이 되고 역사가 되며 신앙의 뿌리가 된다. 자기 자녀의 신앙 교육에 참고해 달라는 요청이다. 또 불신 가정에서 교회를 출석하는 어린 사람들도 이렇게 한 번 본 것이 훗날 공회를 살리고 그가 맡은 한 교회를 살리는데 크게 작용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 글들은 공회 전체가 아는 대로 공회 최악의 인물이 적었다. 다른 분들은 나보다 낫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보다 공회 역사를 많이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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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공회의 '선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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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1
(6) 모이면 썩고 흩어지면 사는, 진리의 세계
서기 | 2019.09.17 | 추천 0 | 조회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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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
(7) 우리는 못났다. 그러나 자라 가면 된다. (1)
서기 | 2019.09.20 | 추천 0 | 조회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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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백영희 가정의 교육 - 이 노선 우리에게 주신 보석들
서기 | 2019.09.22 | 추천 0 | 조회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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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공회의 결혼 이야기 - 20세에 결혼하고 30세에 아이 4명
서기 | 2019.09.22 | 추천 0 | 조회 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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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나의 총공회 1등 기록들 - 혼자 달리니 민망했다.
서기 | 2019.09.24 | 추천 0 | 조회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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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공회의 감탄할 기록들 – 모두가 가장 평범한 것에서
서기 | 2019.09.27 | 추천 0 | 조회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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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2
변치 않는 사명, 변하는 사명
담당 | 2019.09.07 | 추천 0 | 조회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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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3
다윗의 전쟁, 그 모든 향방은 '성전' 건축
담당 | 2019.09.07 | 추천 0 | 조회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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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7
다윗의 성전 준비로 본 연구소의 사명
담당 | 2019.08.30 | 추천 0 | 조회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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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4
훌륭한 지도자의 당대와 후대
담당 | 2019.09.07 | 추천 0 | 조회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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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6
압살롬과 시므이 (1)
담당 | 2019.08.30 | 추천 0 | 조회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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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6
세상의 어느 장관, 공회의 어느 장관 (1)
담당 | 2019.09.18 | 추천 0 | 조회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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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1
'시체를 도적질하여 갔다'고 퍼뜨리니 오늘까지..
담당 | 2019.08.24 | 추천 0 | 조회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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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이론적 양심가들의 불장난과 시대의 균형추
담당 | 2019.08.21 | 추천 0 | 조회 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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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3
최악의 좌익이, 정상적 우익으로 - 안병직으로 본 공회 (1)
회원 | 2019.08.25 | 추천 0 | 조회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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