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26) 타 교단과 같았던 시절, 총공회의 성장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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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7
백 목사님의 기록은 1980년대 10년 동안 녹음까지 전부 완비 되었으며 전성기였다. 그런데 이 시기 목사님은 70대였다.
백 목사님의 80년대 이전을 모르는 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공회 사람인데도 서로 다르다. 공회의 성장 과정을 모른다.
백 목사님의 80년대 이전을 아는 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타 교단 사람처럼 느껴 진다. 공회의 초기에 붙들렸기 때문이다.

공회는 호주 선교부가 전도한 경남의 거창 지역에서 1930년대 출발했다. 그래서 공회는 호주 교회가 할아버지처럼 친근하다.
공회는 해방 후 신사참배 문제로 고신에서 1959년까지 있었다. 그래서 고신과 일반 장로교는 아버지 밑에 아이 시절과 같다.
공회는 교권 투쟁을 반대하다 1959년에 독자 노선을 세웠다. 독자 노선을 형성하는 데 10여년이 걸렸다. 이 때는 과도기였다.
공회는 1970년대에야 교리 행정 모든 면에서 '이 것이 총공회'라고 보여 줄 수 있었다. 이 때부터 '총공회'는 성인이 되었다.


나의 신앙 첫 기억은 거창 창동교회다. 이 교회는 1959년 고신이 공회를 제거하여 거창읍교회에서 나와 새로 시작했다.
창동교회는 내가 태어 난 거창읍 하동 287번지 마루에서 시작했고 그 마당에 '중앙교회'라는 이름으로 예배당을 마련했으며
교회가 부흥 되면서 현재 위치로 이전했는데 그 곳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양혜원 땅이었다.
우리 가정은 호주 선교사가 전도했고 백 목사님에게 신앙을 배웠고 백 목사님을 따라 공회의 중심 가정이 되었다.
가족 단위로 공회 식구를 헤아리면 제일 많지 않을까? 공회 핵심을 연구소라 한다면 그 설립 1982년부터 늘 제일 많았다.
이렇게 헤아리는 이유는 가끔 다음 이야기를 하면 모두 너무 의아해 한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는 마지막에 덧붙였으면.


(나는 어릴 때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세 살 위의 형은 고신에서 쫓겨 나기 전에 거창읍교회를 어릴 때 다녔기 때문에 거창읍교회 내의 유치원을 다녔다.
내가 유치원을 가야 할 때는 거창읍교회에서 분리가 되었기 때문에 유치원을 다니지 않고 바로 학교에 들어 갔다.
학교 들어 가기 1년 전까지 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교회의 유치반은 학교 입학 1년 전에라야 들어 갈 수 있었다.
공회 교회는 젖먹이도 주일학교 출석에 포함한다. 창동교회는 설립 가정의 아이도 유치원 입학 전까지 교회를 가지 않았다.
유치원 나이가 되자 교회를 다니라 해서 갔다. 유치반부터 초등 6학년까지 남녀바을 나누어 14개반이 학교처럼 있었다.

여름 성경학교가 지금도 기억 난다. 1966년일 듯하다. 성경학교 시간에 '손발 씻기' 위생 교육이 있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 ' 이런 노래도 교회에서 배웠다. 율동도 했고 일반 교단의 공과로 진행을 했다.
1971년 여름까지 창동교회는 타 교단의 공과, 타 교단의 편제, 타 교단의 운영을 정확하게 그대로 했다.
1970년인 듯, 추순덕 서부교회 집사님이 주일학교 강사로 오셨다. 'I will make you a fisher of men' 복음성가를 가르쳐 주셨다.
성경학교 주간의 수요일 밤 예배에는 치마를 입은 추 집사님이 장년반에서 설교를 했다. 누가복음 17장 6절의 '겨자씨'였다.
믿음은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유무가 문제라며 또박또박 가르쳤다. 신용인 조사님 부부가 앞자리에서 배우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나는 집사보다 조사님이 높은 줄 알았다. 그런데 추 집사님에게는 배우는 입장이었다. 아주 깍듯하게 모셨었다.


(서부교회도 주일학교 야외 예배를 갔다.)
1980년 여름성경학교까지도 부산 서부교회는 구덕산 수원지로 야외 예배를 갔다. 걸어서 2km가 채 되지 않는 거리다. 그런데 1만 수천 명의 학생이 걸어서 2-3명씩 짝을 짓고 출발을 하면 첫 반이 수원지에 도착하면 마지막 반은 이제 출발하고, 도착 한 반이 간단히 예배 드리고 쉬고 내려 오려고 보따리를 싸면 마지막 반이 교회에서 이제 막 출발을 한다. 한 여름에 빵 하나 주는데 교회도 각 반의 선생님도 거의 전부 놀아 본 적이 없는 노동자 장사치들이라 데려 갔다 오면 끝이 난다. 잔뜩 기대를 했던 아이들은 녹초가 되어, 다른 교회는 여름 성경학교를 하면 그 이후에 주일 출석률이 몇 주간이라도 올라 가는데 서부교회는 오히려 성경학교 행사 이전 주일보다 내려 간다.

백 목사님은 핵심 반사 몇 명을 지목하고 3층에서 별도 회의를 간단히 했다. 일선의 현장 반사들에게 직접 이유를 듣고자 했다. 반사들은 바로 핵심을 모두 이야기 했다. 숫자가 적은 교회가 아이들을 재미 있게 데리고 놀 수 있다면 성경학교의 야외 행사가 교회 출석에 보탬이 되나 서부교회의 학생 숫자와 행사 진행은 아이들에게 실망만 주고 기진맥진하여 평소 잘 나오던 학생들조차 주저 앉게 한다는 것이다. 대표 발언을 서문행 주일학교 2층 부장 선생님이 했다. 모든 반사가 바로 동의를 했다. 목사님은 주일학교 야외 행사를 바로 중단 시켰다.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 가면 아직은 1층 예배당만 채울 때였다. 여름 성경학교에 '인물전'이 있었다. 손발 씻기를 잘 해서 위생에 주의하라는 내용도 있었다.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 공회인가?
각자 자기가 접해 본 기억 중에 자기 생각에 좋은 것만 쏙 골라 뽑아서 이 것이 공회라고 규정을 한다.
설교도, 행정도, 역사도, 제도까지도 다 그렇다.

백 목사님은 호주 선교부의 전도로 교회를 출발했다. 초기에 개명교회는 성탄절에 연극도 했고 산타 선물도 나누었다.
그러나 세월 속에 선교부의 서양식 교회 운영 중에 신앙의 본질과 먼 것을 자꾸 간추렸다.
고신에 있을 때도 서부교회에 부임한 목사님은 찬양대와 학생회를 폐지하지는 않았으나 세월 속에 저절로 없어 지게 했다.
1950년대 백 목사님의 설교 내용은 박윤선 이인재 목사님과 타이핑 친 것만 가지고 비교하면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런데 1960년대가 되면 아주 다른 모습이 나온다. 70년대가 되면 누가 봐도 다르다.


무엇이 공회인가?
백영희는 어떤 인물인가?
공회와 백영희 신앙 노선의 모습과 내용과 지향점은 무엇인가?


초기와 중간과 마지막을 하나의 흐름으로 보면서
백영희 신앙의 어린 시절, 그래서 장성해 가면서 없애 버렸거나 강화한 부분을 살피고, 그리고 마지막 80년조차 그 때 공회에 주신 현실을 놓고 어떻게 대처를 하며 어떻게 신앙을 형성해 왔는지를 살피지 않으면 공회의 과거 기록을 가지고 서로 엉뚱한 길을 갈 수밖에 없다. 백태영 목사님은 80년대 설교록이 나올 때 '목사님 설교는 60년대 것이 더 은혜로웠다'고 자랑스럽게 과거를 거론하고 있었다. 그 분은 80년대의 공회를 살면서 60년대를 지향했다. 그 다음은 어디를 지향하겠는가? 60년대 이전을 지향하겠지... 공회에서 고신으로, 고신에서 호주 선교부로, 호주 선교부에서 세계 속으로? 실제 그렇게 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이렇게 진행한 것이 잘못 걸어 간 공회를 고쳐 바르게 고친 것인가? 내가 볼 때는 후퇴였다. 후진이었다. 퇴보였다. 유아화였다. 탈선이었다. 이 것을 서울공회와 잠실동교회라고 분석하고자 한다.

1989년, 백 목사님 사후 서부교회 내에서 '재독'을 우상으로 규정하고 나간 남정교회는 나가자 말자 청년회 학생회 남녀 성가대를 조직하고 당시 일반 교회들의 흔한 일들을 시작했다. 서부교회에서 모든 활동이 묶여 있던 청년들과 학생들과 신세대들은 환호를 했다. 남정교회가 은혜롭게 부흥한다는 소식이 서부교회에 쫙 돌았다. 그런데 공회 외부를 원래 알던 이들이 보면 남정교회와 전국의 대구공회 측이 '개혁'을 했다는 내용은 전부 공회가 1960년대까지 정리하지 못하고 여전히 가지고 있던, 출애굽 후에도 여전히 애굽에서 가져 나온 것들과 같았다. 새로울 것은 하나도 없는, 일반 교회들은 이미 몇 년 전 또는 10년 20년에 해 봤던 '달란트 축제' '이슬비 전도' '큐티' '총동원 전도' '방송 설교'... 그 이름들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겠으나 그런 식들이었다. 서부교회 내에서 서부교회만 알고 달려 오던 교인들이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다 보니, 우물 밖에서는 한 물이 가고 두 물이 지난 고물조차 새 것이라며 환호를 했다. 얼마나 가겠는가? 일반 교회들은 그런 기교적 교회 운영법을 하다하다 신물이 나고 지겨운데 성과가 없으니 서부교회를 방문했고 이 노선에 환호를 했는데, 정작 1979년부터 10여년간 전국의 외부 교단들이 서부교회와 공회를 향해 새롭고 정말 교회답고 성경적이라며 몰려 와서 배울 때 방문단을 이끌고 공회와 서부교회와 백영희 신앙 노선을 소개하느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외쳤던 서부교회 청년들, 주력들, 간부들, 공회의 지도자들이 백 목사님 사후에 갑자기 일반 교단의 철 지난 것을 배운다고 몰려 다녔다. 그러면서 공회도 예전에는 고신에 있었다는 근거까지 제시한다.


(개인의 경험)
나는 늘 말하지만 공회 전체의 중간쯤 가는 사람이다. 성장 과정에서는 교인이라는 말조차 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이런 글을 적는다. 나보다 공회의 역사를 훨씬 잘 안다는 각 공회의 원로들 중진들 간부들, 나보다 은혜를 더 많이 받고 신앙의 기적을 많이 체험하여 이 노선에 대해 할 말이 더욱 많다는 분들...

공회는 성문법이 아니라 불문법이라 할 때, 우리는 지난 날 왜 그렇게 처리했으며 왜 그렇게 교회를 운영했는지를 살펴 오늘의 우리 현실에서는 성경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는지 살펴야 공회의 답이 나온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공회는 역사의 정통 교회들과 모든 면에서 꼭 같이 행동을 해도 공회의 범위 내에서 벗어 나지는 않는다. 단, 공회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렇다. 공회는 현재 고신과 일반 여러 교단들과 모든 면에서 꼭 같은 행동을 해도 된다. 그래도 총공회다. 단, 공회의 60년대까지를 두고 보면 그렇다. 그런데 왜 공회가 일제 때를 지나 해방 후에는 달라 지고 50년대아 60년대와 70년대를 각각 다르게 걸어 왔을까?

공회는 늘 변모해 왔다. 적자 생전에서 도태 되지 않으려고 임기응변을 했을까, 그 과정에서 탈선이든 변절이든 가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백 목사님의 변덕 때문일까? 공회는 한 번도 변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늘 변해 왔다. 본질은 변한 적이 없고 갈수록 더 강해 졌고 굳어 졌다. 그리고 바뀐 것은 바뀌지 말아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갈수록 더욱 강하게 굳게 바뀌었다. 최근 나와 평생을 함께 한 이들이 갑자기 다른 공회들과 같아 지는 바람에 모두가 당혹해 한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그리 복잡할 것이 없다. 그들이 다른 공회들이 1989년 이후에 보였던 바로 그런 행동들일 뿐이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공회 안에 있었으나 공회를 모르다 보니 급하면 이익을 위해 교리도 논리도 행동도 다 바꾸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회 내에서 줏어 들은 것은 언제든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정해 놓은 목표를 향해 갖다 붙여 버린다는 것이다.
최근에 거창고의 전영창을 공회의 백영희와 나란히 놓고 비교한 글들을 통해 이런 점을 더욱 실감하고 있다.
세상적으로 그들이 그렇게 했다. 그들을 공회와 그렇게 가깝게 붙여 놓고 볼 수 있게 하신 주님은 우리 공회를 향해 저렇게 되지 말라고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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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우리는 못났다. 그러나 자라 가면 된다. (1)
서기 | 2019.09.20 | 추천 0 | 조회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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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3
(8) 백영희 가정의 교육 - 이 노선 우리에게 주신 보석들
서기 | 2019.09.22 | 추천 0 | 조회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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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공회의 결혼 이야기 - 20세에 결혼하고 30세에 아이 4명
서기 | 2019.09.22 | 추천 0 | 조회 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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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나의 총공회 1등 기록들 - 혼자 달리니 민망했다.
서기 | 2019.09.24 | 추천 0 | 조회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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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공회의 감탄할 기록들 – 모두가 가장 평범한 것에서
서기 | 2019.09.27 | 추천 0 | 조회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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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2
변치 않는 사명, 변하는 사명
담당 | 2019.09.07 | 추천 0 | 조회 184
담당 2019.09.07 0 184
1193
다윗의 전쟁, 그 모든 향방은 '성전' 건축
담당 | 2019.09.07 | 추천 0 | 조회 189
담당 2019.09.07 0 189
1147
다윗의 성전 준비로 본 연구소의 사명
담당 | 2019.08.30 | 추천 0 | 조회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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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4
훌륭한 지도자의 당대와 후대
담당 | 2019.09.07 | 추천 0 | 조회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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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6
압살롬과 시므이 (1)
담당 | 2019.08.30 | 추천 0 | 조회 266
담당 2019.08.30 0 266
1276
세상의 어느 장관, 공회의 어느 장관 (1)
담당 | 2019.09.18 | 추천 0 | 조회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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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도적질하여 갔다'고 퍼뜨리니 오늘까지..
담당 | 2019.08.24 | 추천 0 | 조회 307
담당 2019.08.24 0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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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 양심가들의 불장난과 시대의 균형추
담당 | 2019.08.21 | 추천 0 | 조회 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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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3
최악의 좌익이, 정상적 우익으로 - 안병직으로 본 공회 (1)
회원 | 2019.08.25 | 추천 0 | 조회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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