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25) 전교조가 그린 1964년의 꿈, 그 실패와 실체

작성자
서ㅣ
작성일
2019.11.22
나는 전교조를 만나면 끝 없이 강의를 시작한다. 누구를 만나 이야기를 해도 전교조가 출발하던 때의 어려운 이야기가 나오고 그 때의 이상과 꿈이 나온다. 전교조 1세대는 해직을 당해야 독립운동가처럼 대우를 받는다. 그들에게 해방의 꿈은 결국 거창고를 직접 이야기하든 그 그림을 말한다. 나는 바로 묻는다. '거창고의 실체, 그들의 원래 꿈'을 아느냐고. 그 다음부터는 나는 옛 이야기를 시작하고 듣는 사람은 그의 지위와 경력을 물론하고 침을 삼키며 듣는다.'

1989년, 전교조 교사를 대량 해고할 때 출근을 강행한 교사 때문에 한 교실 한 강단에 2명의 교사가 학생들 앞에 섰고 이 사진은 지금까지 전교조의 투쟁을 상징한다. 사진에 나온 그 교사, 옆에 앉아 함께 공부했다. 그 친구는 고교 때부터 그 학교를 알았지만 나는 초등학교 경력 때문에 친구들보다 9년 세월을 앞으로 간다. 함께 공부를 했으나 내게는 모두 듣기만 한다.

(귀족 학교에 대한 꿈)
거창고는 전국에 손꼽는 시골, 덕유산 산골짝의 가난한 농부 자식들을 가르쳐 이 나라 모두가 부러워 하는 인재들을 양산했다는 것이 대충의 이야기다. 나는 그 학교 출신들에게도 그런 말을 입에 담지도 말라고 한다. 졸업생, 그들이 모르는 이야기다. 1956년에 거창고로 부임한 전영창은 고등학생을 가르치면서 머리가 굵기 전인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점을 절감한다. 그래서 1964년에 샛별초등학교를 만든다. 전영창의 그 꿈에 따라 나는 그 초등학교를 1회로 입학했고 내가 그 고교를 졸업한 지 2개월 후에 그는 별세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의 생전에 첫 시제품이며 내 뒤에는 없다. 나의 개인 경험을 통해 그의 교육 사상과 방법론이 정말 제대로 다 담긴 '이상적 모습'을 소개한다. 주남선 목사님의 아들이 시작했고 운영난으로 인수 받은 거창고에 부임한 전영창은 초기 몇 년은 버려 진 학교를 수습하기에도 바빴다. 1964년에 만든 샛별초는 실제 그의 이상을 담고 그가 만들었다.

* 거창군의 최고 귀족학교
지금의 시골은 텅텅 비어 있지만 내가 샛별초등학교를 입학하던 1964년에는 무작정 상경이 없었고 시골과 도시의 인구수나 경제 격차는 크지 않았다. 내가 1963년에 공립초등학교를 들어 갔을 때는 한 반에 60명 정원이나 60명을 훨씬 넘겼고 앉을 자리가 없는 친구들은 점심 먹고 오후에 등교를 했다. 졸업 때 7개반 580명 정도니 1개반에 8 - 90명이다. 2학년으로 올라 가지 않고 새로 만든 바로 옆의 사립초등학교로 옮기자 1반에 45명이었다. 교실은 호주 선교사들이 사용하던 그림 같은 2층 서양식 주택이었다. 벽난로가 있었고 살창문이 있었다.

한 해 전의 공립학교 때 가방을 메고 온 친구가 10여명이나 될까? 나머지는 보자기에 책을 말아서 남학년은 우측 어깨에서 좌측 허리로, 여학생은 그냥 허리에 바로 메고 왔다. 필통 있는 학생도 몇 없었다. 양말이 없고 신발이 떨어져 한 겨울에 시커먼 발가락이 밖으로 얼어서 나온 친구를 예사로 볼 수 있었다. 양말을 기워 신지 않은 친구는 거의 없었고 친구 중에 하나는 아침을 먹을 수가 없어서 막걸리 공장에서 술을 만들고 버리는 술찌끼를 먹고 왔다. 조금 취한 상태였다. 이상하게 보여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물어 보자 그 가정 이야기를 해 주셨다. 교실 몇 개의 칸을 없애면 강당이 되고 전교에 풍금 1대가 있었다. 졸업할 때까지 피아노를 구경조차 해 보지 않은 친구들이 거의 전부였다. 중학교 1학년 때 이화여대 나온 음악 선생님이 결혼 때문에 부임을 했고 공립중학교 학생들에게 수업 시간에 피아노를 본 사람은 손을 들라고 시켜서 알게 된 통계다.

샛별초는 입학생 전체가 가방을 맸고 양장 교복에 양장 모자를 착용하고 남자 아이들까지 팬티 스타킹을 착용했다. 공립학교는 거지 떼 몰아 놓은 꼴이고 이 곳은 한 눈에 귀족학교였다. 공립학교는 수업료가 없었고 우리는 일반 가정이 포기할 정도의 수업료가 있었다. 2학년 때 벌써 피아노 레슨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다. 또 학교에서 1학년 2학년을 합해서 90여명이 되자 합주단을 만들었다. 피아노 풍금 바이올린... 초등학교 1학년 때 전영창 교장 선생님은 미국에서 직접 제공 받은 환등기로 미국 생활을 보여 주는 시청각 시간을 금요일 수업에 편재 시켰고, 2학년 때는 미국 초등학교 1학년에서 사용하는 영어 교과서를 수입해서 우리를 가르쳤다. F, V, L, R 발음의 차이와 apple 발음을 위해 입과 혀 모양을 배웠다. 교실 위에는 그림과 영어 단어를 매달아 놓았다. 옆에 일반 학교는 4 ~ 5학년이 되면 남녀반을 분리했다. 당시 전국이 다 그러했다. 나는 1학년 때는 한 반에서 옆 줄에 앉았으나 2학년 때부터는 때로 한 책상에 짝을 지어 남녀학생으로 앉으며 때로는 붙였다 뗐다 했다. 1개 학급 45명을 위해 총리 가정에서 영어를 가르친 선생님이 따로 있었고, 음악 교사는 연대 음대를 나온 분이고, 시청각 담당자가 따로 있었다.

전영창은 거창고가 안정을 찾을 때쯤 시작한 샛별초교에 그의 속 마음을 모두 풀어 놓았다. 최고 수준의 귀족 학교였다. 이런 식의 설명을 하자면 한도 없이 길고 많다. 여기에 어디 서민이 있고, 여기에 어디 어려운 가정의 학생이 끼어 들 틈이 있는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시내의 극장을 빌리고 '학예회 발표회'를 개최했다. 거창의 군민들을 상대로 학교 홍보를 제대로 했다. 훗날 전영창은 나는 숫자가 서툴어 돈을 몰라서 그렇지 이런 홍보, 기획, 연출은 자신이 있다고 한 적이 있다. 그렇다. 그는 그런 홍보력으로 미국의 교회로부터 기금을 받아서 학교를 운영했다. 그 덕에 나는 거창 시골에서 평생을 두고 그 어떤 교육을 소개 받아도 내가 겪은 날을 기억해 보면 나는 귀족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고 생각한다. 1984년에 미국을 가서 보니까 내가 받은 교육은 미국의 사립귀족학교를 염두에 둔 것이었고, 1990년대부터 시작 된 우리 나라의 교육 제도가 지향하는 모든 꿈 같은 소리들은 나는 1964년부터 다 겪어 본 것이지 처음 겪는 것은 없다.

* 문제는 결과다.
거창고교는 매를 들고 거침 없이 몰아 세웠다. 남녀 공학 학교의 전교생의 매월 성적은 과목별 점수와 함께 1등에서 180명꼴찌까지 교사 출입구 현관에 나붙는다. 여기에 인권이 어디 있고, 여기에 개성과 자율이 어디 있는가? 한 영어 교사는 단어 시험을 보면 200개, 때로는 300개씩 내 준다. 그리고 틀린 갯수만큼 종아리를 쳤다. 여교사가 10대 후반의 남학생 종아리를 치려니 때리는 팔이 아파서 울면서 쳤다. 앞에 적은 글에서 이 학교의 매는 대부분 사랑의 매라고 했다. 그 대신 인권이나 사랑의 보듬기라는 분위기는 애초부터 끼어 들 틈이 없다. 그 대신 거창고의 박정희식 개발독재는 그 결과가 박정희의 경제 성과처럼 훌륭했다. 박정희의 경제 성장은 세계 최고가 되었고, 거창고의 전영창 성과는 국내 교육의 꽃이 되었다. 그런데 샛별초등학교라는 전영창의 실제 이상향은? 나는 그 성과와 그 인성 교육의 양면이 다 실패라고 생각한다. 1회 45명이 졸업을 할 때 샛별중학교를 설립했어야 하는데 반독재 투쟁에 나서는 바람에 중학교 설립이 거부된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별세 후 김옥길 이화여대 총장이 교육부 장관을 하던 시절 내인가를 했다는 말은 있었다. 김옥길 장관이 물러 난 뒤에 샛별중학교 인가가 나왔으나 이런 교육기관의 승인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보면 김동길 김옥길 형제의 수고가 느껴 진다.

내가 샛별을 1970년에 졸업하고 1973년에 거창고를 입학할 때, 샛별초등학교 45명 중에 거창고로 돌아 온 학생의 숫자는 10명이 되지 않았다. 샛별초의 이상은 거창고로 돌아 와야 한다. 생존율 25% 이하다.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그리고 학습 교육 면으로 회귀율이 이렇게 낮다는 것은 전영창의 꿈은 여지 없이 깨졌다. 그러기 위해 300미터 옆에 있는 공립학교 1학년을 다닌 학생들을 데려 왔는가? 샛별초는 설립 때 정원을 채우기 위해 옆에 있던 공립초등학교 학생 중에 한 살 일찍 들어 간 학생들이 2학년에 올라 가는 것을 다시 데려 와서 1학년에 입학을 시키는 유치 운동까지 했다. 시골이지만 한 해를 일찍 들어 가는 학생들이란 가정 형편과 함께 경제력과 부모의 학습 욕구까지 갖춘 경우다. 여기에 교육적이며 신앙적인 면이 들어 갈 여지가 있을까? 자연을 사랑하고' '아이들을 원만하게 기르며 반칙하지 않고 새치기 하지 않고 나의 성공을 위해 남의 것을 뺏아 오지 않는다. 다른 교육 기관의 다른 교육 과정과 다른 교육 철학을 인정하는 공존 공영이 있는가?

이런 회고가 있다. 샛별초등학교 설립의 주역 가정의 당시 이야기다.

....샛별초등학교 개교 50주년 원고를 청탁받고 생각했습니다.
- 어쩌면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내 인생에서 가장 짧았던 머뭄에 속하지만
내 기억 속에 가장 강렬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단어가
거창, 거창고등학교 그리고 샛별학교라 할 수 있겠다고. -

1963년 나는 거창국민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다음해 선친이 교감 선생님으로 있었던 거창고등학교에
사립국민학교가 만들어졌다는 얘기가 여덟 살 아이인 내 귀에도 들려왔습니다.
어느 날 슬금슬금 거창국민학교 1학년을 마친 아이 몇 명이 학년을 낮추어
샛별국민학교로 옮겨 갔다는 소문이 학교에 퍼졌습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샛별학교에 대한 존재감을 제대로 난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해 여동생 00이가 샛별국민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샛별국민학교와 우리학교가 얼마나 다른 학교인지를 조금씩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난 학교 다니기가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샛별국민학교의 예쁜 교복과 빵모자도 부러웠지만
여름방학이면 선생님과 같이 가는 캠핑은 당시 시골 공립학교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자연 속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한데 어우러져 놀고 공부하고 생활하며 방학을 보내는 일은
딱딱하게만 규정되었던 당시 공립학교 생활에선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 글에서 부러움을 받던 바로 그 학생 중에 1명이다. 이 글을 적은 분은 제주도 지역 사회에서 알려 진 유명 인사다. 이 분과 그 부친의 장점을 소개하려면 끝이 없다. 그래서 이 회고담은 이 글에서 인용할 가치가 있다. 내가 이 학교와 전영창 선생님과 이 글에서 소개한 분의 가정에 신세를 진 것을 다 말하자면 끝도 없다. 그런데 너무 유명하게 그리고 좋게 알려 져 있는데, 나는 윗 글의 홍 선생님이 아니라 거창고와 전영창이라는 이름을 말할 때 그 세계가 휘두른 폭행이나 목표 지상주의에 매진했던 일, 그리고 샛별초를 통해 오늘의 전교조가 품은 이상은 사실과 달라도 너무 다르며 그 것은 너무 왜곡이 되었음을 알면서, 교육과 청소년을 이야기 해야 맞겠다는 이유로 마치 작심하고 비판하는 글처럼 비춰 질 오해에도 불구하고 글을 적는다. 공회의 노선과 이상과 방법론은 절묘하다. 좋다. 맞다. 너무 훌륭하다. 전영창의 것도 그렇다. 박정희의 것도 그렇게 보인다. 그런데 정영창의 세계를 알면서 왜곡한 사람들과 그 세계를 전혀 모르고 엉뚱하게 악용하는 이들, 그들 때문에 이 노선의 청소년과 그 교육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아 곁 길을 가는 우리 식구들 때문에 나의 이야기를 무척 적고 있다. 북한의 공산 독재가 비록 먹고 사는 데는 0점이지만 밤거리가 무섭지 않도록 해 주는 장점은 있다. 남한의 자유 자본주의가 먹고 사는 데는 지상낙원을 만들지만 밤 거리에는 귀신이 무서워 나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무서워 나가지 못하겠고 또 결혼도 가정도 자녀도 육아도 모두 없애 버리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 단점이다. 나는 양쪽의 장단점을 일단 제대로 알고 그리고 나서 어떻게 배합을 할 것이며 또는 각자에게 맞도록 선용을 할 것인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주장이 나와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공산주의를 하면 잘 먹고 잘 산다고 말하는 사람, 자유 자본주의를 하면 일찍 결혼하고 가정이 단단해 지며 출산이 많아 지고 밤 거리가 무섭지 않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 나는 이런 사람의 이런 말은 아예 거짓말이니 듣지 말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 정치 문제가 아니라 아동 청소년이 교육 문제를 두고서.

(귀족 교육으로 실패한 샛별초, 공포 교육으로 성공한 거창고)
폭행과 독선으로 시골의 평범한 학생들을 가지고 전국 최고의 입시 성적을 일군 것이 거창고의 자랑이며 본 모습이다.
사랑과 자율과 개성을 길러 주며 꿈을 마음껏 펼치게 하다가 아동들의 성적도 인격도 신앙도 실패한 것이 샛별초다.

당시 45명 정원의 사립학교란 등록금부터 우선 비쌌다. 일반 학생들은 들어 오고 싶어도 곤란하다. 등록금만 문제가 아니다. 교복이 문제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입는 일반 교복이 아니라 양장식 교복이었다. 중고생의 교복은 아무 옷집에서 맞춰도 되지만 샛별초의 교복, 특히 그 모자는 거창의 양복점 중 1곳에서만 만들 수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입학 때부터 팬티스타킹을 착용했다. 남자 아이인데, 1964년 거창의 이야기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학생 모두가 막 창간 된 소년동아일보를 단체로 매일 구독해서 읽었다. 모두 잘 사는 집이거나 아니면 교육에 모든 것을 기울일 수 있는 집이었다. 잘 나가는 친구들은 5학년 때 연애를 시작했다. 잘 먹고 잘 놀고 공부 외에 모든 것을 자유롭게 활동하게 되자 이성에 눈이 먼저 떨어 졌다. 다른 면인들 크게 다를 것인가? 1970년 중학교로 진학할 때 나는 이 나라 마지막으로 입학 시험을 본 세대다. 우리는 좋은 가정 환경에 특별한 교육을 6년 제대로 받았고, 입시에 관해서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거창고교의 슬하였기 때문에 중학교 입학 성적은 아주 우수할 줄 알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일일이 말하기 죄송할 정도다. 아이들이 마음껏 놀고 공부와 신앙과 인격이 엉망 되려면 샛별 식으로 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다. 아이들에게 마음껏 놀고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것은 훗날 성공한 다음에 평생 누리고 우선 어릴 때 공부할 때는 열심히 하고 만일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어려우면 거창고처럼 사랑으로 그러나 매로 끌고 나가면 좋겠다.

나는 이런 나의 경험 때문에 1989년에 현재 근무지에 온 다음 잘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목회자로서 한계가 있다. 그렇다 해도 그 때 봐 둔 경험 때문에 나는 오늘 이렇게 엉망이 된 세상과 아이들의 세계를 어느 정도 읽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사는 곳에서 내가 지도하는 학생들의 수준으로서는 거의 꿈을 꾸기 어려운 결과를 많이 만들어 봤다. 공부를 시킬 만하고 또 의지가 있고 가정과 형편이 따라 가면 나는 최근이 아니라 전영창 생전의 거창고 방식을 권장한다. 확실히 효과가 있다. 아주 탁월하다. 거기에다 공회식이 깔리면 금상첨화다. 아무리 해 봐야 공부가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학생, 또는 부모가 전교식의 행복한 학창 시절을 노래 부르면 내가 다녔던 샛별초 방식을 소개한다. 내 주변에는 1960년대 당시 그렇게 선진적이던 방식을 오늘에 다시 놓고 봐도 다시 너무 선진적이라 싶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행복을 제공해 준다. 파격적으로. 그까짓 학교? 아예 다니지 말아 버리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학교를 전혀 가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많다.

당시 바로 옆에 학교를 다닌 기억을 적어 본다. '거창고'를 들고 나올 때마다 '당신이 거창고를 아느냐'고 나는 먼저 물어 본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이야기로 끝내지 않는다. 그러면 세상이니까. 나는 백영희를 비교한다. 강하게 할 때는 강한 것이 좋다고 말하면서 강하게 한다. 백영희 설교록에는 독재주의 예찬론이 끝도 없다. 앞으로는 독재를 비판하고 자기는 몰래 뒤로 독재하는 식이 아니다. 정직하다. 또 놔 두고 기다려야 할 때는 그렇게 한다. 공회는 개교회자유주의를 실제 보장하고 있다. 목회자도 교인도 회원 가입 원서조차 없다. 그 것이 있다면 백영희 사후에 생겼다. 공회는 주일학교나 장년반의 지도자와 조직을 철저히 실적 위주로 운영했다. 그렇게 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말을 했다. 앞뒤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전도조차, 자기가 전도한 사람을 자기 구역에 두면 전도할 마음이 생기지만 자기가 전도한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게 되면 주일학교 반사들조차 전도를 하지 않는다. 물론 손양원과 같은 성자는 이런 차원을 넘었지만 일반 목사, 일반 구역장, 일반 교사들이라면 이런 수준이다. 이 노선은 우리가 가야 할 끝 없는 이상과 목표를 안다. 늘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우리의 발과 욕심은 불신자 수준이다. 이 불신자를 하나씩 고쳐 나가는 방법은 천사의 방법이나 꿈에 본 이상적 방법이 아니라 이 불신자들에게 당장, 가장 효과 있는 실적제를 적용한다. 남들이 욕을 하든 말든. 두고 갈 땅의 것에는 실적제를 통해 목숨을 걸고, 가야 할 천국의 것을 두고는 해도 그만 말아도 그만이 아닌가?

전영창, 그는 그의 생전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백영희 방식이었다.
오늘 한국 교회나 사회가 청소년 교육을 두고 말할 때 전영창의 실제는 감추고 자기의 희망을 그려 놓고 그 분이라 한다.
전영창 생전에 그 학교를 거친 이들은 나와 같이 그런 사실을 알지만 학교가 너무 유명해 지는 바람에 슬그머니 자기들의 기억과 진술을 바꾸거나 묻어 버린다. 이 노선, 우리의 청소년들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 나는 전영창의 교육을 참고하면서 공회식으로 나가면 거의 완전하다고 생각한다. 주변의 헛 된 주장에 휩쓸리지 말라는 뜻이다. 교회가 세상 좋아 하는 별별 방식을 전부 들여 놓고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제대로 유지되고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 이 면을 볼 때마다 그 학교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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