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24) 사후 30년을 돌아 보며 - 연구소의 역사적 고찰 (진행 중)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9.11.17
(목적 지향적, 일편단심의 길)
백영희(1910) 전영창(1916) 박정희(1917), 나이 순이다. 모두가 근검절약이 몸에 베인 인물이다. 그들의 목적은 그들이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명감이었다. 그들은 그 목적 달성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편들을 찾았고, 그 방편은 그들이 특출한 인물들인 만큼 일반인이 기겁을 할 파격이었다. 그들의 주변에게 그들은 이단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결과는 너무 위대하여 그들에게 적대적인 모든 이들까지 그 모든 방법을 다시 좋은 눈으로 보게 했고 일반인들은 모두 환호했다.

박정희는 정보 정치, 공포 정치, 탄압 정치를 했으나 개발 독재의 성공으로 지금 남한 내 좌익들만 불평하지 그 좌익들의 우상이 되는 중국과 평양의 공산당들까지 박정희가 부러워 그를 닮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전영창은 10대 학생들에게 성적 지상주의 출세 유일주의를 심었고 이를 위해 폭행을 서슴치 않았으며 결과는 한국 교육의 기적을 창출했다. 사람들이 몰려 왔을 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 2세대들이 학교의 홍보와 설립자에 대한 사랑으로 그의 폭행 독재 정보정지를 감췄다. 백영희는 80세 별세하기 10년 전인 1979년부터 한국 교계의 살아 있는 의인으로 추대가 되었다. 그러나 사랑과 자유가 기독교의 본질이라면 그는 그의 생전 마지막 해인 1989년 3월의 총공회 회의를 통해 일반인이 잘 모르는 비판을 받았다. 총공회 3분의 2라면 절대 다수가 되는데 그들이 백 목사님에게 '행정 간소화'를 정식 안건으로 올렸다. 교회라는 성격 때문에 표시는 순화를 했지만 백 목사님의 정보 정치, 탄압 정치, 목적을 향한 몰아 치기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겠다는 저항이었다.



(전영창의 성공제일주의)
나는 전영창의 별세 3개월 전에 졸업을 했다. 나는 샛별초등학교 1회 졸업생이며 졸업번호가 1번이다. 나는 내 사촌 육촌까지 포함하면 거창고 출신이 24명이고, 샛별초중은 20명이 넘는다. 교계나 일반 사회의 누구와 만나도 거창고의 내용을 살피고 들어 가면 나는 일반 졸업생들이 내 주장을 더 반대하기 어려운 정도의 자료를 제시한다. 전영창 생전에 '직업 십계'를 들어 본 적이 없다. 그 후세대가 만든 것이다. 직업 십계를 가지고 보면 전영창, 그는 실제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그는 평생 제자들에게 직업 십계가 말하는 것처럼 기억 나게 하지 않았다. 출세를 위해 죽도록 공부하라, 포기하지 말라는 인식을 심었다.

Boys, be ambitious. 그는 야망을 품으라는 이 구호를 얼마나 외쳤는지 모른다. 더 좋은 학교, 더 나은 목표를 가리켰다.
男兒立志出鄕關 남아입지 출향관. 근대화 과정의 일본의 어느 중이 남긴 시를 그렇게 읊으며 학생들에게 고향을 떠나 공부에 뜻을 세웠으니 성공을 하지 못하면 죽어도 고향에 돌아 가지 않겠다고 배수진을 치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1주일 2시간, 전교생을 상대로 평생을 외쳤다. 포기하지 말라! 죽도록 공부하라! 출세하라! 학과와 전공이 맞지 않아도 1류 학교로 진학을 시키기 위해 학생들이 원서를 쓸 때 학교장의 직인을 가지고 몰아 갔다. 그의 목적은 물론 일류학교 그 자체에 있지 않았다. 일류 대학을 가야 출세에 유리하고 모두가 인정하는 학벌과 성공을 해야 그 다음에 마음 속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의 사후 그의 2세대들은 그 이상을 마치 실제 그렇게 몰아 간 것처럼 틀었다. 심지어 목회를 지원하며 신학교를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독설을 날렸다. 고1 고2 때는 좋은 학교 가려고 그렇게 노력을 하다가 고3이 되고 성적이 되지 않아서 일반 대학을 못 가게 되면 갑자기 주의 종이 되겠다며 신학교를 가기 때문에 신학을 지원하는 학생들을 곱게 보지 못하겠다고 했다. 실제 국내 최고 보수 정통 신학교로 알려 진 부산의 고려신학교를 만일 졸업생 기준으로 본다면 거창고가 가장 많지 않을까? 아마 학생의 숫자 비율로 보면 분명히 최대일 듯하다. 나의 동창 중에서만 5명이다.

내가 아는 한, 의대를 갈 학생이 초등학교 교사를 지원하여 전영창의 정신을 이어 갔거나 서울대를 갈 학생이 지방을 살리기 위해 지방대를 가는 경우가 없다. 또 일류대나 삼류대가 차이 없다는 평등 정신은 어디에라도 설 자리가 없었다. 전영창의 사후, 거창고가 유명해 지고 나니까 갑자기 강남 좌파들의 말투가 나오기 시작했다. 뒤로는 고액 과외를 시키면서 남들에게는 무슨 공부에 그렇게 매달리느냐, 되는 대로 하면 되지, 그런 식이다. 전영창 시절의 학교와 지금의 학교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마치 총공회가 백영희 생전과 사후가 그렇게 다르듯이 또는 백영희 생전에도 그의 면전과 그의 뒷전에서 모두가 달랐듯이.



(백영희)
백영희의 모든 설교가 토씨 하나까지 남겨 진 것은 1979년부터 10년이다. 단언코 그 내용을 살피면 학생을 많이 출석 시키는 것 하나로 그는 교인의 신앙도 실력도 생활도 모든 것도 다 결론을 냈다. 매주 60명을 출석 시키면 1등 반사다. 어떤 것도 보지 않는다. 45명은 2등, 30명은 3등. 나머지는 등외다. 결혼을 소개할 때도 목회를 보낼 때도 모든 교회 내의 평가는 이 실적으로만 본다. 장년반 역시 1주 4회의 대예배 출석 총점이 전부다. 집회를 갈 때 차량을 배치하는 순서까지 등수로 간다.

중고등학생을 지도하는 3 - 40명 반사는 전부 유급이다. 이들에게는 월급을 줄 때 월 평균 1명 학생이 추가 될 때 1980년대 초반 기준으로 월급에 1000원이 더해 진다. 1명이 빠지면 1000원이 줄어 든다. 이런 실적급은 2019년 오늘 전교조들조차 거부하며 저항하는데 40년 전에 그렇게 적용을 했다. 이보다 더 적극적이며 파격적인 실적급이 있을까? 목회자들의 실력도 부임한 교회의 출석수 증감이 목회자 실력의 잣대였다. 그래서 50여년 전에 벌써 주일 예배의 출석수를 위ㅐ 역전으로 가서 돈을 주고 놀고 있는 사람을 데려 와서 앉히는 상황이 생겼다. 목회자들의 출석 허위 보고는 흔했다.

나는 평생 백영희를 역사 제일의 인물로 교계에 보고했고 그 이유와 근거를 평생 제시했다. 그리고 어떤 비판도 해명하지 못한 경우가 없다. 최근에 백영희 자녀들에게 고소를 당했다고 화풀이로 이런 글을 적는가? 아니다. 나는 그 자녀들이 백영희의 세계를 거의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 대신에 내가 백영희의 진정한 자녀라고 자부한다. 왜 이렇게 표현을 하는가? 그 내용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전영창의 그런 막무가내식 방편론이 그 목적을 위해서뿐 아니라 그 방편 그 방법 자체가 당시의 교육방법론에서 묘수 중의 묘수였는데 이를 모르니 오히려 탄식할 일이고 그 후시대가 그 묘수를 감추고 묻어 버린 것이 거창고의 보배로움을 내버렸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백영희의 이런 목표 지상주의와 강압적 방편이 얼마나 복음운동과 개인의 생활과 인격을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세우는 복음이었는지, 이를 아는 이들은 극찬을 하고 이를 모르는 이들은 세상 좌파식 사고방식으로 비판을 할 뿐이다.



(목적과 당면 처방)
직업 십계? 좋은 길을 버리고 험한 길로 가라?
이 것은 전영창의 당연한 그의 이상. 그의 인생이다. 그는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그가 지도하는 학생들에게 그런 말을 했다가는 남을 위해 살 실력도 없는 인간들이 남의 짐이 되면서 입으로만 떠드는 몽상가를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학생들을 기르는 방법으로 그들에게 우선 강압을 하고 그 속에 소리 없이 훗날의 이상은 2선으로 물려 놓고 있었다. 그는 당장 그 앞에 있는 학생들의 수준을 알았다. 백영희처럼. 이상과 그 이상을 향해 첫 발과 중간에 거쳐 갈 단계를 알았다.

그는 평생 10명이 모여 서로 기도하고 이 나라를 살리자고 했다. 그리고 그 자신은 모든 세상 출세를 버리고 모두가 절대 안 된다는 산골짝으로 갔다. 그러나 자신의 앞에 있는 학생들은 시골의 흔한 수준, 그런데 끌어 보면 될 만한 수준이었다. 그는 매를 들었고, 그는 백선엽처럼 사령관이 총알이 쏟아지는 일선에 섰다. 그리고 외쳤다.

남아 입지 출향관! Boys, Be ambitious.
박태준 포철식이었다. 포철을 성공 시키지 못하면 우리 모두 포항 바다에 빠져 죽자! 박정희 사무라이식이었다.

그리고 그가 죽은 뒤 그의 업적은 그의 꿈이거나 그의 2세대의 선전과 달리 세상 기준, 실적 위주로 대박을 쳤다. 그렇게 되자 갑자기 본질을 바꾸고 감춰 버렸다.

이루는 과정이 순수하다 하여 현실과 맞지 않는 처방을 하게 되어 춘몽에 빠지면 가을의 풍성이 오지 않는다.

전영창은 그렇지 않았다.
박정희도 그렇지 않았다.
백영희는 모든 것을 이미 아는 인물이었다.

이들의 꿈은 한결같이 고귀했다.
다만 박정희는 두고 갈 세상 나라가 잘 먹고 잘 살고 강하게 지켜 내는 것이 전부였다. 박정희는 그 꿈을 이루었다. 잘못 된 것이 있으면 2세대와 후세대가 거천을 잘못해서 그렇다. 박정희는 천국에서 홍포입은 부자처럼 탄식하고 있을 것이다. 천국이 문제였는데 엉뚱한 일만 했다.
전영창은 세상에 빛이 되어 천국으로 인도하고 싶었다. 그런데 세상이 되어 버렸다. 세상 중에서도 고약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의 실적은 묻혀 졌고 잊혀 졌으며 철저히 부정이 되었다. 그리고 이 땅 위에서 교육을 통해 세상과 신앙을 가장 나쁘게 만들어 버리는 표상이 됐다. 천국에서 박정희와 나란히 앉아 너나 나나 실패한 것은 마찬 가지라 할 것이다.
백영희는? 그의 꿈은 순수했고 그의 방법은 절묘했다. 그리고 그의 2세 후세는 아직도 계통을 이어 가고 있다. 이유는? 박정희 전영창보다 훌륭해서가 아니다. 그는 진리에 맞는 길을 걸었고 안내를 했다. 이 것은 그의 육체가 끝나고 그의 가견 업적이 다 무너 져도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시공과 생사 초월의 생명의 능력이다. 이 것을 그는 주력했고 남겼기 때문에 이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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