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20) 축소 시켜 허락하신 '호사스런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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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3
역사의 모든 것을 한 사람이 다 겪어 볼 수는 없다. 일부는 겪게 하시고 나머지는 간접으로 알게 하신다. 눈치가 있으면 하나를 가지고 열을, 그리고 그 열을 가지고 백을 그려 본다. 눈치가 없으면 백을 겪고도 그 속에 하나를 건지지 못한다. 모두가 솔로몬이 되어야 잠언과 전도서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솔로몬 하나를 그런 영광의 세계에 올려 놓은 다음에 우리는 솔로몬을 통해 그런 세계를 간접으로 경험한다. 솔로몬도 에덴동산을 직접 겪지 않았으나 전도서 2장에서 자기 동산을 이상적으로 만들어 놓고 에덴을 그려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이 땅의 아버지를 보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살피는 원리다.

신앙 생활에는 존비귀천이 다 필요하다. 이 노선은 극단적이라 존비귀천조차 극한 경험이 필요하다. 이 글을 통해 각자 자신을 비교해 보면 다소 차이가 있을지라도 각자 나와 같은 경험을 기억할 수 있을 듯하다. 하나님의 공의는 우리에게 기회를 비슷하게 주신다. 다만 기억하고 못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솔로몬만큼은 아니라도 솔로몬을 짐작할 정도로 각자에게 남 다른 경험을 주시고 또 거지 나사로를 짐작할 수 있도록 각자에게 참담함도 주신다. 나의 예를 통해 각자 솔로몬의 좋았던 때를 그려 보면 좋겠다. 또 다시 적어 볼 나의 경험을 통해 둘째 탕자를 그려 보면 좋겠다. 모두를 위해 나를 먼저 적어 본다.



(초등학교 1학년)
1964년 3월에 거창고등학교는 부속 샛별초등학교를 개교했다. 나는 그 학교의 1회 졸업생이며 졸업번호가 1번이다. 3월의 입학식이 있기 한 주간 전일 듯한데 어머니가 입학을 하려면 미리 가 봐야 한다고 했다. 이 때 아동용 빨간 자전거를 타고 갔다. 당시 거창군에는 어른들의 이동용이나 화물용 자전거뿐이었다. 거창 전체에 1대뿐인 아동용 빨간 새 자전거를 타고 호주 선교사들이 지은 서양식 학교 건물 앞에 자전거를 세울 때, 나는 조선 임금의 왕세자가 가마를 탄 기분이었다. 서울 아이들이 보면 우습겠지만 삼성재벌의 외동 아들도 비록 망해 가는 약소국이나 조선의 세자가 누리는 권력의 맛과 후계 암투의 세계는 수 없다. 나는 우물 안에 개구리였으나 그 우물 안에서 겪은 이런 맛과 기억은 훗날 이 교훈을 통해 천국의 무한한 영광을 그려 볼 때 무척 도움이 된다.

자전거를 사 주기 전에 이미 집에는 자가용이 있었다. 군에 1대뿐이었다. 경찰서장이 업무용으로 타는 짚차가 고장 나거나 어디를 가면 경찰의 긴급 출동 때 자가용을 빌리러 왔다. 시골의 우스운 꼴이지만 이런 세계를 겪으며 훗날 신앙이 들면서 하늘 나라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왕노릇을 할 때를 미리 짐작할 때 도움이 되었다. 그 어떤 사람도 자기 주변에서 제일 가는 입장을 가지게 된다. 하다 못해 다리 밑에 거지도 몇 명 중에 대장도 해 보고 세자도 해 본다. 굳이 궁궐의 세자와 왕이 되어야만 천국의 우리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학년에 막 들어 가자 아버지는 세 살 위의 형과 태극도 도장을 보냈다. 국기원이 아직 자리를 잡기 전이던 당시 창무관은 국내 태권도 5대 파벌 중에 하나였다. 지금 태권도는 성인까지 발레나 체조다. 당시는 한 번에 상대를 주저 앉히는 실전 무술로 살벌할 때다. 거창읍에 한 주먹 하는 형들과 아저씨들이 싸우려고 다녔다. 서열이 엄하여 내가 초등 3학년 때 검은 띠를 딴 후로는 시내의 중학교 고등학교를 주름 잡던 싸움패들도 도장에 나오면 내 구령에 따라 움직였다. 나의 집안은 대대로 왜소하다. 덩치 때문에 치이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가 도장을 보낸 것이다. 3년 걸려 초단을 딸 때 서울 본부에서 심사관이 직접 왔고 승단의 자격은 인정을 받았으나 창무관에서는 아직까지 초등학생에게 초단을 승인한 적이 없었다며 서울의 본부가 회의를 한 후에 단증을 내려 보냈다. 60대 초반의 옛날식 태권도 공수도를 거친 이들과 이야기 할 기회가 있으면 나는 이 세계의 대원로들과 바로 통한다. 왜 이런 경험을 주셨을까? 공회 신앙은 '전투 교회' '순생 순교'를 실전으로 가르친다. 고신과 재건을 비롯하여 국내 최고라 일컫는 교단들조차 6.25를 거치며 말로는 순생과 순교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발레나 체조 수준이 되었다.

이제 공회조차 고소자가 협박 통지문을 하나 보내면 죽을까 싶어 얼어 붙는다. 엄살 신앙이 된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 고문과 고형은 자신이 없다. 그러나 단칼에 죽는 순교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또 인권 보호에 시설까지 출종한 현대판 대한민국의 교도소 정도라면 출옥성도가 되는 데 별로 주저함이 없다. 요즘 교도소야 일제나 공산 치하의 감옥에 비교하면 체험학습인데도 고소자가 엄포를 놓으면 동지들조차 다 등을 돌린다. 역사적 고난에는 아직도 자신이 없으나 현재 우리 주변을 기준으로 본다면 나는 출옥성도와 순교도 입에 올리고 있다. 초등학생은 무술 도장에 다니지 않던 시절, 아버지 때문에 마지 못해 다니며 험한 세계를 겪어 본 것이 도움이 되었을까? 나는 실전 무술을 배웠음에도 공부 실력처럼 싸움 실력도 늘 중간 정도다. 그런데 내가 실제 상대할 수 없는 선배나 강한 친구들에게 한참 선배가 되면서 험한 이들이 나를 소문 내는 바람에 정작 나를 아는 상대는 나보다 훨씬 센데도 미리 조심하는 바람에 공연히 덕을 봤다.

강아지를 길러 보면 주인 덕에 이기면 다음에는 더 큰 것을 이긴다. 이 것이 몇 번 반복이 되면 기가 살고 나중에는 실제 잘 싸우는 개가 된다. 천하 없는 맹견도 주인이 이유 없이 몇 번을 패 버리면 ㄸ개가 된다. 사람도 그렇다. 공회는 거창이 출발지며 거창 출신들이 공회의 전국 교회에 목회자든 교인으로 중요한 인물이 많다. 그들이 교회에서 말썽을 부리는 못된 아이라고 할 때 당시로서는 무술 도장이라는 아주 특이한 경력을 갖다 붙이는 바람에 마치 나는 실제 주먹을 쓰는 사람처럼 알려 졌다. 학교도 마치 일류 최고 출신처럼 잘못 알려 졌듯이, 그냥 못된 아이인데 마치 주먹조차 있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공회에는 실제 부산에서 조직에 몸을 담은 목사님들이 있다. 요즘 명예훼손 고소가 잦아서 실명을 사용하지 못해 안타깝다. 벌써 80대가 된 이 목사님과 정 목사님이다. 직접 돌아 다니지는 않았으나 어떤 조폭에게도 밀리지 않는 분으로는 전성수 신용인 송용조 목사님들도 있다. 또 다른 정 목사님이라는 분은 한 주먹도 되지 않는데 자칭 조폭 출신이다. 1987년 6월 교역자회를 엉망으로 만들 때 주먹으로는 펄펄 날던 분들이 백 목사님 앞이고 교회 내의 교역자회라는 분위기 때문에 모두들 간신히 참고 있었다. 내가 그 정이라는 인물을 데려 나가서 45도의 급경사 계단 밑으로 밀쳐 버렸다. 그 정이라는 인물은 입으로 주먹 출신이고, 나는 백 목사님을 놀려 먹는 그에게 비느하스의 심정이었다. 이런 상황은 정상적이지 않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게 된 젊은 사람의 갑작스런 행동일 뿐이다. 그런데 실제 상황은 모르고 나의 옛 이야기를 들은 분들은 공회 제일 망난이를 실제 해치우는 모습을 봤다. 그 이후 공회 안에서 내게 주먹으로 맞상대하려는 이들은 없어 졌다. 이 바람에 백 목사님 사후의 수 많은 충돌이 있을 때마다 나는 힘을 쓸 사안도 아니고 힘을 쓸 정도도 아니지만 혼자서 반대편의 많은 죄인들의 죄를 막는 데 도움이 되었다.

몇 배나 많은 상대를 제압하던 부공1과 부공4의 14명 조폭급 목회자들이 예고 없이 신풍의 내 사무실에 들이 닥쳤다. 14명을 앉혀 놓고 나는 '각목 들고 전국을 휩쓸다가 여기까지 왔네. 오늘 너희들은 내 방에서 한 ㄴ도 나가지 못해!'라고 큰 소리를 쳤다. 그 무서운 14명, 그 중에 제일 두목들이 나를 개인적으로 잘 안다. 그들이 꼼짝하지 못하니 나머지도 꼼짝하지 못하고 내 사무실에 갇혔다. 가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일어 서지를 못했다. 부공4의 현재 지도자 한 분이 당시 제일 설쳤고 지금도 그렇다는데 그 분이 대뜸 하는 소리가 '감금죄로 고소를 하겠다'고 했다. 나는 '14명이 1명에게 감금을 당했다고 고소를 해 봐라. 경찰이 누가 감금 당했다고 하는지' 나는 그들을 손대지 않고 그냥 풀어 줬다. 실제로 그 14명 중 어느 한 명이라도 나와 비슷할 정도지 나보다 약한 사람은 없었다. 이런 것을 분위기라고 한다. 하나님을 모신 신앙은 인간의 덩치와 숫자를 보지 않는다. 그런데 부공1과 4처럼 이미 하나님 없이 각목을 들고 전국을 쫓아 다니는 이들은 분위기에서 제압을 당하면 꼼짝을 못한다. 목사님 생전부터 그들 지도부에게 알려 진 나의 이름은 악명이 높았다. 혼자서 전국을 어떻게 했다는 그런 식이다. 다윗은 실제 능력의 사람이다. 백 목사님은 믿지 않을 때도 그 운동 실력과 실전이 대단했던 분이다. 나는 어릴 때도 도장에서 실제 알아 주는 당대의 승단을 통과했을 때도 그리고 평생 늘 어중간하다.


(교리와 신앙)
내가 깨닫는 성경은 공회의 평균 목회자 실력이면 깨닫는 정도다. 내가 목회하는 정도는 공회 모든 목회자들이 흔히 하는 말로 백 목사님이 신풍교회를 보내고 그만큼 밀어 주는 데 그 정도 못할까 라는 정도가 맞다. 내게 특별한 것이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그런데 왜 백 목사님 사후 30년을 지나면서 나는 '결과적으로 볼 때' 총공회에 하나밖에 없는 위치와 사명을 가지고 있을까? 서부교회가 왜 설교록을 출간하지 않고, 왜 모든 공회들과 도시의 경제력과 인재를 가진 이들이 왜 출간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자료를 늘 공개했고 설교록은 누가 출간해도 출간을 한다고 말만 하면 다 돕겠다고 했다. 그런데 30년을 걸쳐 아무도 하지 않았다.

200개 교회가 출발선에 함께 섰는데 199개 교회가 뛰지를 않고 나만 달렸다. 그렇다면 1등을 하는 것이야 당연하다. 이 노선의 자료와 교훈의 가치가 '세계 제일'이라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 곳이 부공1, 부공2, 부공3, 부공4다. 긜고 대구공회 대부분도 속으로는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런데 시골 교회조차 하는 일을 왜 아무도 하지 않았는가? 수도권의 수산교회가 그렇게 위대하고 그 목사님은 나를 아득히 밑으로 볼 위대한 분이며 그 분은 필생에 이 노선 그대로를 지키며 전한다는데 왜 설교록을 출간도 하지 않고 심지어 출간을 조건으로 내 준 자료를 30여년을 버티며 감추는가? 모두들 이렇게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되어 버렸다. 어떻게 되었는가?

백영희가 너무 유명하고
그 설교가 너무 깊고 유명하다 보니
백영희 설교록을 출간한다는 것은 일개 교회나 일개 목회자, 심지어 일개 공회로서는 감히 나서지도 못한다고 지레 주저 앉아 버렸다. 나는 불신자라도 출간을 할 수 있다고 말해 왔다. 녹음 듣고, 이미 출간한 설교록의 형식을 지키는 것을 누가 하지 못하겠는가? 나는 실제 1988년 백 목사님 생전에 불신자를 연구소의 연구부에 모셔다가 업무를 맡긴 적이 있다. 연구소 관련자들은 다 알 것이다. 나는 불신자조차 만일 백영희 설교를 출간한다는 조건으로 그 자료를 보면 그 설교에 집중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가 바로 포기를 하든지 아니면 바로 목회자가 되겠다고 나설 것이라고 자신을 했다. 그는 다행히 일을 맡았고 그는 서부교회 편에 서서 부공2의 인물이 되고 양성원에 입학까지 했다. 대티고개 분교를 맡아 설교를 했다는 말도 들었다.

사전에 미리 얼고 주저 앉아 버린다. 세상 것은 너무 위대하고 내가 너무 못났다면 그렇게 주저 앉는 것이 맞다.
그런데 복음이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라는 것이 있다. 주실지 주지 않으실지는 모르나 일단 해 보기는 해야 하지 않을까? 갈릴리 바다라면 잘못 되어 죽을 수도 있으나 기독교 2천년 역사에 최고의 설교록이라고 평가하는 이 설교록은 시골 교회 하나라도 해 볼 수 있다. 문제가 생겨 봐야 100만원 정도 손해 보면 된다. 최근에 나를 고소한 인물은 한 번에 수도 없이 출간을 했다고 부풀렸다. 실제로 많이 찍어야 1번에 200권이었다. 뒤에는 50여권을 출간했다. 설교록 전집이 100권이 넘어 서게 되자 둘 데가 없어 '꼭 장서용'을 원하는 분들만 가져 갔다. 1백만원, 많아야 2백만원이면 설교록 한 호를 출간한다. 그런데 지레 겁을 먹은 분들은 한 호에 수천 만원씩이나 들어 가는 줄 안다. 스스로 놀라서 스스로 도망 가고 숨었던 사울의 군대 꼴이었다.


나는 감사한 것이 많다.
무식해서 용감했다. 그러다 보니 설교록에는 틀린 곳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성경 출간을 비교한다. 번역한 한글 성경의 정확도는 어느 정도일까? 번역이라는 과정 자체가 엄청난 오류를 내포한다. 설교록은 그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계속 출간을 하다 보니 나중에는 대한민국의 손꼽는 국어국문학자가 봐도 '참, 잘했다'고 한다. 그렇게 자라 가면 되지 않는가? 해 본 사람은 해 온 사람이 되었고, 혼자 하다 보니 독보적 전문가가 되어 버렸다. 아마 공부를 잘하고 세상을 정상적으로 잘 살았다면 감히 손을 대지 못했을 듯하다. 그냥 좋아 하는 마음을 가진 상태에서 아무도 하지 않으니 해 봤다. 하다 보니까 되었다. 30년을 혼자 출간하고 혼자 연구하고 발표하다 보니 이제는 30년을 한 가지만 계속 한 사람을 능가하는 것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쉽지 않을 듯하다. 이런 결과만을 보면서 그렇게 훌륭하니 했다고 한다. 반대로 알고 반대로 자신을 위안하고 있는 것이다.

2019년 10월 18일에 백영희 목사님의 전체 가족이 '설교는 자녀의 사유재산'이라고 고소를 했고 나는 징역 6개월의 전과자가 되었다. 또 백 목사님의 시에 찬송을 붙여 출간했다 하여 11월 28일에 이제 전과 2범이 된다. 앞에 재판 때문에 뒤에 재판이야 해보나 마나 유죄가 될 것으로 본다. 검사는 징역 1년을 구형해 놓았다. 그렇다면 나는 11월 28일에 앞에 선고 받은 6개월과 뒤에 선고 된 것을 합해서 순천의 서면 교도소에 가게 되지 않을까? 지금 그렇게 된다고 보고 있다. 순천 서면 교도소는 순천의 시민파 조폭의 본부다. 예수님은 좌우에 강도를 두셨다. 그 예수를 믿고 그 예수를 따른다고 서약을 했다. 그렇다면 나도 그런 험한 사이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여기까지는 누구라도 하겠다고 말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아무도 나서지를 않으니 혼자 했고, 혼자 하다 보니 고소자들은 자신들이 피해는 오로지 이영인 1인이라고 지목한 것이다. 내 주변의 3-4명이 현재 전과 3-5개를 준비하고 있다. 이유는 나를 도왔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인간적으로 미안하다. 그런데 내 속으로는 나 때문에 횡재했다고 생각한다. 만일 백영희 노선의 자료와 설교가 박희천 피영민 목사님들처럼 대한민국 최고의 설교 전문가들이 말한 수준, 즉 칼빈에 비교할 정도라면 그 말씀을 전하다가 전과자가 되는 나는 물론 나 때문에 전과자가 되는 3-4명은 기독교회사가 말하는 '출옥성도'의 반열에 올라 가는 것이 아닐까? 세상으로는 파렴치한 종교인이라고 지탄을 받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도 지탄을 받을까?



어릴 때 생각하지도 못하는 우물 안에 왕자 노릇을 했다.
자라면서 꿈에나 그리던 이 노선의 자료와 연구와 출간을 맡게 되었다.
이처럼 전체 공회의 평범한 사람에게 이런 영광이 '주어 졌다.' 공회 모든 분들이 외면하는 바람에.

이제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다시 생각해 보자.
나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자신들에게 주어 지는 사명을 찾아 보면 좋겠다.
설교록 출간을 통해 그 설교를 애타게 기다리는 분들을 위해 전과 한 번쯤 맞을 각오를 하는 것이 공회 목회자들의 자기 서약이 아닌가? 평생 그렇게 설교하지 않았나? 전과자가 된 내가 세상 판결을 무시하고 또 다른 범죄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다. 나의 전과와 투옥의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다른 범죄를 막는 효과다. 그런데 소위 종교인이라고 말하고 살아 온 그대들, 여러분들의 자기 서약과 자기 각오에 의하면 천하 제일의 설교를 전해야 하는데 왜 전하지 않는가? 그대들이 맹세한 그대들의 맹세에 대하여 성경의 신앙 차원에서 질문을 하는 것이다. 백 목사님의 자녀들은 어느 종교 어느 목사의 무슨 소리가 있다 해도 자신들의 세상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 반면에 종교인들은 각자 이 땅 위에 어떤 고난이라도 각오하고 말씀을 전한다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전해야지! 이런 뜻이다. 물론 나는 전과를 받은 이유가 이미 이 땅 위에 수도 없이 백영희 설교 자료를 데이타화 하고 전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나를 처단한 법정조차도 '종교인의 설교란 전해 지는 것을 본질'로 한다는 취지는 짚었다. 바로 그 면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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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공회의 감탄할 기록들 – 모두가 가장 평범한 것에서
서기 | 2019.09.27 | 추천 0 | 조회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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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치 않는 사명, 변하는 사명
담당 | 2019.09.07 | 추천 0 | 조회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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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3
다윗의 전쟁, 그 모든 향방은 '성전' 건축
담당 | 2019.09.07 | 추천 0 | 조회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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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성전 준비로 본 연구소의 사명
담당 | 2019.08.30 | 추천 0 | 조회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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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지도자의 당대와 후대
담당 | 2019.09.07 | 추천 0 | 조회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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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살롬과 시므이 (1)
담당 | 2019.08.30 | 추천 0 | 조회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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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어느 장관, 공회의 어느 장관 (1)
담당 | 2019.09.18 | 추천 0 | 조회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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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도적질하여 갔다'고 퍼뜨리니 오늘까지..
담당 | 2019.08.24 | 추천 0 | 조회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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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 양심가들의 불장난과 시대의 균형추
담당 | 2019.08.21 | 추천 0 | 조회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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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좌익이, 정상적 우익으로 - 안병직으로 본 공회 (1)
회원 | 2019.08.25 | 추천 0 | 조회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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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 생활의 농경식과 이동 생활의 목축식
담당 | 2019.08.21 | 추천 0 | 조회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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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제와 집회
담당 | 2019.08.21 | 추천 0 | 조회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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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셈법, 신앙의 셈법 - 손익을 기준으로
담당 | 2019.08.21 | 추천 0 | 조회 200
담당 2019.08.21 0 200
1113
공회의 '실행'론, 이 노선의 희망
담당 | 2019.08.18 | 추천 0 | 조회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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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후보' 논쟁 - 공회만이 아는 국가적 이야기들 (2)
담당 | 2019.08.17 | 추천 0 | 조회 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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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부공1의 대구 기도원 철거와 집회 탈선 역사 (부공2측 공개 발언) (1)
부공2 | 2019.08.11 | 추천 0 | 조회 15
부공2 2019.08.11 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