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19) 아버지께 배운 '경제 내핍'과 '백영희 자녀 교육'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9.10.26
앞에서 아버지의 단점을 주로 살폈다. 다른 분이라면 아무리 그 인물이 좋지 않아도 그 인물의 장점을 먼저 살피는 것이 공회다. 그런데 자기와 가까와 지면 그 장단점의 순서를 바꾸게 된다. 아버지의 단점은 너무 많고 공회 전체가 알 만한 인물 중에서는 아버지처럼 신앙의 정점까지 갔다가 신앙의 최악으로 바닥을 친 인물은 없을 듯하다. 신앙의 정점이란, 공회의 초기 부흥의 상징인 삼봉산 칼바위 기도와 봉산교회 집회 등의 이름에 아버지는 남반 신앙으로 첫 손에 올랐다. 그리고 바닥을 친 것은 바로 앞인 (18번) 글에서 살폈다. 공회의 발생지이며 고신의 중심지 시내를 만취로 소를 타고 휘젓었다. 대로에 기생집을 차고 앉아 하루 종일 술로 긴긴 세월을 펼쳐 놓았다. 고신측은 고신을 떠나 백영희를 따른 결과라며 조롱했다. 거창에서 제일 부자라는 말과 제일 신앙 있다는 말을 듣는 인물이 양혜원이라는 사업으로 복음운동의 빛이 되었고 거창 제일 중심가에 제일 잘 나가던 사업장은 폐업이 되어 누가 봐도 망한 집구석이 되었다.

(내핍 경제)
나는 그 어떤 면도 남에게 내세울 만한 실력이 없지만 돈을 아끼는 면은 자신이 있다. 나의 경쟁력이다. 현재 내가 속한 연구소나 공회가 가진 확실한 비교 우위적 경쟁력은 경제 내핍이다. 이런 점은 아버지에게 배웠다. 나는 배 고파 본 적이 없다. 아버지 이야기를 통해 배고픈 서러움을간접으로 느꼈고 나의 자녀들도 돈 아끼는 것은 필사적이다. 그런데 맹목적으로 아끼던 내게 백 목사님은 그 아낌이 얼마나 복이며 행복한지를 가르쳐 주셨다. 아버지께 받은 공포적 경제관은 목사님을 거치며 절약의 쾌감으로 바뀌었다. 껌 한 통에 5-6개가 들어 가던가? 보통 1개를 씹는다. 나는 7cm 안팎의 그 1개를 10개로 조각을 내어 씹는다. 혹시 1개를 입에 넣으면 입이 벅차게 되며 아주 불편을 느낀다. 아버지께 배운 지혜다. 나는 화장지 20cm 가로 세로 한 조각이면 10번이고 20번이고 말려 가며 입을 닦고 코를 푼다. 더럽다거나 미쳤다 할 수 있겠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휴지 한 조각이 있다는 그 자체가 행복이다. 나 어릴 때는 신문지 한 뼘이 없어 풀로 대변을 닦는 사람들이 주변에 흔했다. 그 때를 기준으로 오늘의 휴지 한 조각을 다시 본다면 별 문제가 없다. 나는 흙바닥에 떨어 진 국수를 지금도 그냥 입에 넣는다. 방바닥에 음식 부스러기가 떨어지면 닦아서 입으로 가져 간다. 남이 볼 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백 목사님은 남의 시선에 대한 침해도 성경이 금한 남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기계 공장을 했다. 사장이지만 기술이 없는 대신에 종업원들이 일을 할 때 기름을 묻히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손님이 오면 아버지를 종업원으로 보고 사장을 찾는다. 야간 작업이 있으면 공장 맞은편에 있는 집으로 저녁을 위해 잠깐 온다. 아버지는 손을 바지에 털고 그냥 들어 온다. 어머니는 결벽증이 있다. 이런 모습을 보기만 해도 식사를 잘 못하는 정도다. 매일 반복이 된다.

'씻고 밥을 먹어야지요.'
'물값에 비누값은 누가 내고?'

'얼굴에 시커먼 떼는 씻어야지요.'
'자주 씻으면 얼굴에 기름이 빠져 나가니 안 돼!'

아버지는 양치를 쳐도 대개 세숫물을 입에 한 번 머금고 우물거리고 뱉는 정도다. 나는 치아가 좋지 않아서 그렇게 양치는 부지런히 친다. 그러나 물을 아낄 때는 늘 아버지를 기억한다. 그런데 백 목사님은 세수 한 번을 할 때 양 손에 물을 묻히고 그 물을 조용히 깨끗히 다 털어 내고 비누를 딱 한 번 스친다. 그리고 양 손을 수십 번 비벼서 거품을 조금 낸다. 이렇게 세수를 하기 때문에 물 한 바가지면 세면을 한다. 나는 성격이 급해서 후닥딱 해 치운다. 그래서 물이나 비누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러나 늘 아버지와 목사님의 물 절약이 마음 속에 나의 경제관이다. 이 땅 위에 것은 가장 적게 사용하는 것이 경제의 첫 걸음이다.


(위생 문제)
휴지나 음식을 두고 주변에서 건강 문제를 제기한다. 오히려 면역력을 길러 준다. 1984년에 미국을 갔을 때 호텔로 사용하던 건물을 St. Louis 대학이 구입하여 기숙사로 사용했다. 나는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다 갔기 때문에 기숙사는 내게 낙원이었다. 공회의 세인트루이스 교회에서 사용하던 작은 냉장고를 주셨다. 나는 처음으로 마트에 갔고 가장 싸게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보니 빵과 우유였고 우유는 노란색 뚜껑이 있으면 거의 절반 가격이었다. 한 통을 냉장고에 넣었다. 물로 된 우유가 며칠이 지나니까 뻑뻑하게 굳었다. 나는 한국 우유는 물을 타서 묽어서 굳지를 않고 미제는 우유 원액만 넣었기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다음 주일 교회에서 첫 주일을 지냈고 점심 시간에 교인들이 안부를 물어서 우유 이야기를 했다. 그 교인들은 모두 백 목사님의 자녀들이다. 모두 깜짝 놀라며 병원에 가지 않았느냐고 한다. 왜 병원을 가는지 몰랐다. 우유가 상해서 뻑뻑하게 굳었고 그 것은 곰팡이 덩어리인데 우유가 상한 것은 아주 고약하게 탈을 낸다고 했다. 나는 전혀 괜찮았다. 없어서 먹지 못하지 먹지 못할 음식이 있겠는가? 평소 노동을 하면서 또 생활 속에 아무 것이나 먹고 위생에 대해 막 대하고 살았던 것이 내게 면역력을 키운 것이다. 알고 보니 그 냉장고는 고장이 나서 그랬던 것이다. 교인 중에 수리하는 분이 계셔서 간단히 고쳤고 나는 귀국할 때까지 사용했다. 그리고 나 다음에 이런 기계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달리 큰 일이 날 듯하여 폐기를 했다. 그리고 돈을 쳐서 세인트루이스 교회에 냉장고 값을 연보하고 나왔다. 세인트루이스 교회의 실질적인 책임을 졌던 교인은 나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너무 심하다는 뜻이다. 나는 지금도 그 때 표정과 그 분의 진심과 그 분의 문제점을 동시에 기억한다.

그 분들은 백 목사님 제자라면 백 목사님처럼 극빈으로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평소 이야기 한다. 나는 내게 하는 소리라고 들었다. 나의 전임자들은 그런 교인들 자세 때문에 그 교회를 무척 비판했다. 나는 나를 연단하는 좋은 과정이니 감사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분들이 그렇게 아끼면서 자신들은 왜 백 목사님 방식으로 신앙 생활을 하지 않는지에 대해 나는 반대한다. 그렇다고 내가 그 분들을 가르치거나 그 분들에게 내 생각을 표시할 관계는 아니어서 입에 담지는 않았다. 이제36년이 된 시점에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그 분들도 하나님 앞에 서시기 전에 이런 점은 회개하면 좋겠다. 그 분들이 공회가 싫거나 맞지 않아서 미국까지 가셨다면 남들에게 공회식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을 듯하다. 내가 냉장고 값을 쳐 드리고 나온 것은 눈치가 있는 그 분들로서는 일종의 욕으로 받았지 싶다. 개인적으로는 그 분들이 귀국하는 내게 마음을 담은 귀한 선물들을 가정 별로 따로 주셨다. 사진을 검사한 분은 아니다. 그 분들의 선물은 나 평생에 천하에 자랑하고 싶은 내용이다. 그 분들이 미국 유학 생활 중에 개인적으로 나를 챙긴 것은 아버지 때문에 진심을 담았고 그 분들과 나의 당시 개별 관계는 지금도 나의 친 가족들보다 가깝다. 그 분들도 평생에 나를 아낀 것처럼 그렇게 아낀 적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분들 중에 한 분은 공회 목회자에게 한국에 있는 일반 교인이 상대하듯 그렇게 하는 것은 경우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 분과 나는 하루에 한두 번 전화를 했고 한 번 전화를 하면 보통 한두 시간이었다. 2년을 그렇게 지냈다.

어쨌든 나는 세인트루이스 교회의 백 목사님 5남매 가족들에게 최소한 '경제' 면으로는 흠잡히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교회까지 몇 시간을 걸어서 다녔고 그 때는 뺨이 부르텄다. 그 고통은 겨울 내내 갔다. 미국 대륙의 허허벌판을 칼바람을 맞고 교회와 신학교를 걸어서 다닐 때도 원망해 본 적이 없다. 경제를 두고 가장 극단적인 그 분들은 앞으로 내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나를 적대적으로 고문 고형할 원수들에게 이길 수 있는 사전 연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들이 나를 그들의 막내로 생각하는 것은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그후 오래 동안 실제 그렇게 되었다. 그 가족들이 그 때 나를 봤기 때문에 1989년 8월 27일의 백 목사님 순교 때 5일 장례 내내 나를 가족의 대표로 앞세워 전권을 행사하게 했고 심지어 총공회 대표와 서부교회 대표 위에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게 했고, 장례식의 이 분위기 때문에 그 다음 주간에 백 목사님의 서부교회 후임으로 내가 이재순 목사님을 추전할 때 가족도 교회의 대표들도 일체 반대 없이 그렇게 결론을 맺어 주셨다.



(2년의 식사)
나의 유학 비용은 목사님께서 다 주겠다 하셨다. 보낼 때는 서부교회 십일조에서 5천 달러를 주셨고, 나를 보낸 다음 바로 교역자 회에서 공회의 양성원 교수로 조직신학을 맡기기 위해 보냈으니 총공회가 비용을 지출하게 했다. 서부교회든 총공회든 내게는 백 목사님의 돈이다. 백 목사님의 경제관과 인재 양성의 노선은 명확하다. 목사님은 지원하겠다 했지만 나는 1원 하나라도 아껴야 하고 또 스스로 벌든지 가족의 돈을 끌어다 채워야지 교회에 신세 지는 것은 최소화 해야 한다. 나는 목사님 생전에 공회가 비용을 주며 신학을 시킨 유일한 경우다.

5천 달러를 가지고 도착하자 최재현 목사님이 장로님으로서 나를 맡아서 안내했다. 공부가 치열할 것이니 기숙사 생활을 하며서 미국 학생들처럼 잘 먹어야 견딘다며 2개월의 식비를 지출하자 했다. 11주의 방학 과정을 위해 2500달러를 지출했다. 호텔식 방에서 식사는 대략 아침에 $1.5, 점심에 $4, 저녁은 $5 정도로 기억이 된다. 그 돈으로 먹는 식탁은 내가 구경도 할 수 없는 호화판이었다. 이미 돈을 지출했다. 2개월은 평생에 다시 구경하지 못할 식사만 했다. 그리고 2개월 식사가 끝나는 날 나는 주변에 있는 맥도날드 햄버거 집으로 가서 가장 작은 50센트 햄버거를 아침에 1개, 점심에 2개, 저녁에 3개로 계산해서 한꺼번에 샀다. 그리고 Covenant로 옮길 때까지 한 달을 한 끼도 바꾸지 않고 그렇게 끝냈다. 그 때 $1이 650원쯤 할 때다. 그리고 신학교로 간 다음에는 빵 사이에 양배추 익힌 것을 넣고 잼을 바른 샌드위치를 만들고 아침에 하나, 점심에 둘, 저녁에 세 개를 먹으며 2년을 하루도 빠짐 없이 그렇게 했다. 요즘 우리 나라로 말하면 라면만 2년 먹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는 신사참배의 고난과 6.25의 환란을 설교로 배운다. 배가 고파도 견뎌야 한다는 설교를 한다. 듣기도 한다. 이제 막 발전하던 한국에서 최저 생활을 하던 서부교회 직원이 미국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2년을 먹은 것은 호강이었다. 미국에 익어 져 있던 이들이나 미국의 환경을 기준으로 삼은 이들이 볼 때는 자기 학대였다. 백 목사님의 7남매 중에 5가정이 함께 있었다. 그 분들은 나를 아끼려고 또 세인트루이스 교회의 비용을 아끼기 위해 한국으로 전화를 했다. 신학생 보내놓고 굶어 죽이려느냐고 항의성 탄원을 했다. 백 목사님은 미국에 가보지 않았으나 나의 생존력과 미국의 인식과 한국의 현황을 간파하는 분이다. 이런 면에서 지혜롭고 탁월한 분이다. 목사님께서 직접 전화로 물어 보셨다. 나는 '목사님, 미국 사람 기준으로는 난리들이지만 한국에서 먹던 것과 비교하면 이 곳은 호강입니다.' 목사님은 한 마디 보고를 듣고 바로 파악이 되었다. 그런데 자꾸 전화가 가니까 목사님은 내 얼굴 사진을 찍어서 보내라고 했다.

다음 주일에 교회를 가니까 5남매 중에 한 분이 나를 불렀다. 아버님이 걱정할 수 있는 사진이면 안 된다고 사진을 먼저 자기에게 검사를 받으라 한다. 그 분은 한국에 있을 때부터 나를 옛날식 머슴 대하듯 했다. 나는 목사님 때문에 그 분의 자세에 상관하지 않고 늘 극진했다. 사진을 보여 주자 안 된다고 새로 찍으라 하며 조건을 붙였다. 사진을 요즘처럼 만들 수 없으니 몇 가지 시키는 대로 해서 보냈다. 목사님은 원래 나를 안다. 일단 목사님은 안심을 하신 듯하다. 이후에도 목사님의 자녀들은 신학교 옆에 있는 대형 병원의 직원들 식당에서 사 먹게 하는 방법 등 온갖 대안을 제시했다. 나는 그냥 내 방식대로 끝을 냈다.



(장점과 단점)
이 노선은 어떤 사람이나 어떤 피조물에게도 단점과 장점이 함께 있다고 가르친다. 천하의 악인도 바로 그 악함 때문에 우리에게 좋은 면을 제공하고, 천하에 가장 좋은 선물도 그 좋은 점을 우리는 오해하여 크게 손해를 볼 수 있으니 만사를 조심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이 딤4:4이다. 목사님은 이 면을 구원의 첫 순서로 놓은 '하나님의 목적'에서 방향을 잡고, 그 목적을 이루어 가기 위한 하나님의 '절대 예정, 절대 주권 성취'로 설명한다.

나는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결핍 생활 하나는 철저히 익혔다. 그런 바탕 때문에 목사님께 배우면서 목사님의 경제 내핍만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백 목사님께 배운 수 없는 분들이 초기든 최종이든 사실 경제 때문에 거의 다 실패한다. 목사님은 목회자의 제1 조건을 '경제 초월'로 잡는다. 경제를 넘어 서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다. 신앙과 상관 없이 일단 경제에 관한한 아버지의 극단적 가난이 내게는 복이 되었다.


(8세 아들의 100리 산길 심부름)
그런 아버지가 한 마디를 늘 더한 것이 있다. 백 목사님을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백 목사님이 여덟 살짜리 도광이를 김천 100리 길에 방아 부속을 고쳐 오라고 심부름을 보냈다. 한 겨울에, 호랑이가 나오던 덕유산 그 골짝을 차도 없이 걸어서.' 이 대목은 아버지가 늘 감탄하며 신나게 반복했다. 1988년 1월부터 백도광 장로님을 생활 속에서 모셔야 할 일이 있어 그 때를 물어 봤다. '아버지 명령은 목숨을 걸고 했다. 그 것이 아버지였고 그 것이 나였다. 눈이 소복하게 쌓이면 내리막이 문제다. 새끼로 허리에 방아 부속을 묶고 그냥 굴러 버렸다. 넘어 지지 않으려 하면 갈 수가 없다. 구르면 해결이 된다.' 백 목사님은 덕유산 골짝에 호랑이가 나오는 환경에서도 8세짜리 남자 아이가 김천까지 혼자 이 정도를 해결할 수 없다면 인생의 파란을 이겨 낼 수 없다는 소신 때문이다. 이 때는 이미 백 목사님이 믿기 시작한 초기여서 불 붙는 신앙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를 믿는 신앙 면까지 더해 졌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버지에게서 어릴 때 수없이 들었고, 그리고 그 분에게 직접 확인을 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내가 전하는 이 글을 통해 이 경험담은 나와 꼭 같은 입장이 된다고 생각한다.


(토벌대의 치사적 매질)
해방 후 좌익의 준동을 간파한 백 목사님은 집사로서 고제면의 유지로서 남로당의 고제면 인민위원회 조직 결성을 반대하였다. 백영희 때문에 거창군에 고제면만 유일하게 위원회 결성이 좌절 되자 빨치산을 토벌하는 토벌대 내에 들어 와 있던 좌익분자 15명이 목사님에게 보복을 하되 빨치산 공비들과 내통을 한다는 통비분자로 몰아 개명의 본가 마당에 밤새 불을 대낮처럼 밝혀 놓고 죽일 작정을 하고 밤새 매질을 했다.

나는 이 내용을 백 목사님께 설교 시간에 듣기 전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 직접 들었다. 온 고제면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건이었다고 한다. 특히 목사님과 가까왔기 때문에 아버지는 누구보다 먼저 달려 갔을 분이고 또 시골의 산골짝 여러 대처를 말씀 드렸을 분이다. 그런 면에는 아버지가 충직하고 민첩하며 재주도 많다. 아버지는 목사님의 심부름으로 주남선 목사님의 사택에 심부름을 자주 다닌 분이다.

백 목사님에게는 세상 사람이 전설이며 신화라고 할 사연이 많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한 편으로는 영웅담으로 들으면서 한 편으로는 늘 도마처럼 들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아버지 역시 이런 호기심과 의심이 많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극단적으로 타락하고 백 목사님을 무참하게 저주를 하던 시기에 별별 욕을 다해도 백 목사님에 대하여 변치 않고 했던 이야기들은, 나는 목사님의 반대 편에서 나온 증언으로 생각하며 가장 확실한 증거로 삼는다. '토벌대가 죽도록 매질을 해서 모두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경고 정도가 아니었다. 죽이기로 작정했다. 모두가 완전히 죽었다고 했다'는 내용, '주 목사님 사택을 근실하게 살폈다. 내게 심부름을 자주 심부름을 시켰다.' '여덟 살 도광이를 김천까지 그 겨울에 심부름을 보냈다' 여기에 또 하나 더 있다. 백 목사님에 대하여 1950년대 중반부터 고신은 여자 문제를 집요하게 소문을 냈다. 아버지는 해방 후 남녀반이 한 가족처럼 밤낮없이 하나 되어 함께 했던 시절에 몇 되지 않는, 거의 하나 밖에 없던 남반이다. 경제 때문에 모두들 그렇게 잘 되지 않는다. 아버지는 경제가 넉넉해서 자유로웠다. 아버지는 그 때 이야기를 하며 모두 나를 '수닭'이라고 놀렸다고 한다. 놀린 것이 아니라 모두들 의심을 했다 한다. 그런데 신앙의 그런 세계를 모르는 이들이 볼 때는 의심을 해도 할 말은 없다. 아버지는 뒤에 탈선을 했었고 목사님에게 온갖 욕을 다했지만 이성 관계만은 그 분은 그런 분일 수 없다고 했다.
전체 0

전체 145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
이용 안내문
담당 | 2018.04.11 | 추천 0 | 조회 820
담당 2018.04.11 0 820
2522
C. 사후 30년을 돌아 보며 - 연구소의 역사적 고찰 (준비 중)
서기 | 2019.11.12 | 추천 0 | 조회 100
서기 2019.11.12 0 100
2526
(23) 교회 경영론으로 본 백영희 (거창고 전영창과 비교하며) - 2
서기 | 2019.11.14 | 추천 0 | 조회 74
서기 2019.11.14 0 74
2536
New (24) 사후 30년을 돌아 보며 - 연구소의 역사적 고찰 (진행 중)
서기 | 2019.11.17 | 추천 0 | 조회 63
서기 2019.11.17 0 63
2437
대법원 최종 판결 (1)
이영인 | 2019.10.18 | 추천 0 | 조회 373
이영인 2019.10.18 0 373
2452
'이 말씀 전하다 이 말씀 때문에 죽는 것' - 종교인의 상식이 아닐까?
부공3 | 2019.10.27 | 추천 0 | 조회 277
부공3 2019.10.27 0 277
2481
연구소 정체성에 대한 참담한 시비 (5)
담당 | 2019.11.02 | 추천 0 | 조회 282
담당 2019.11.02 0 282
2509
화산, 지진, 전쟁이라는 파란이 주는 선물
서기 | 2019.11.09 | 추천 0 | 조회 111
서기 2019.11.09 0 111
1355
B. 사후 30년을 돌아 보며 - 연구소의 역사적 고찰
서기 | 2019.09.29 | 추천 0 | 조회 213
서기 2019.09.29 0 213
1356
(12) 전원일치의 악용 - 탈선이란 제도로는 막지 못한다. (3)
서기 | 2019.09.29 | 추천 0 | 조회 351
서기 2019.09.29 0 351
1393
(13) 나의 요게벳 - 김명자 나인숙을 평생 그린다. (1)
서기 | 2019.10.01 | 추천 0 | 조회 334
서기 2019.10.01 0 334
1431
(14) 세상을 참 몰랐다. 지금은 세상을 안다. - 공회와 교인의 여러 현안을 중심으로 (1)
서기 | 2019.10.06 | 추천 0 | 조회 267
서기 2019.10.06 0 267
1470
(15) 국가에 반영된 공회 의견들 - 공회와 세상 (보충) (4)
서기 | 2019.10.09 | 추천 0 | 조회 947
서기 2019.10.09 0 947
1493
(16) 전국 최고, 최초, 최대를 휩쓴 기록들
서기 | 2019.10.13 | 추천 0 | 조회 216
서기 2019.10.13 0 216
2441
(17) 하늘에서 떨어 진 횡재, 백 목사님께 순종하면 그러했다.
서기 | 2019.10.20 | 추천 0 | 조회 285
서기 2019.10.20 0 285
2449
(18) 극단적 탈선과 가족의 고난, 백 목사님께 거역하면 그러했다.
서기 | 2019.10.24 | 추천 0 | 조회 233
서기 2019.10.24 0 233
2451
(19) 아버지께 배운 '경제 내핍'과 '백영희 자녀 교육'
서기 | 2019.10.26 | 추천 0 | 조회 214
서기 2019.10.26 0 214
2482
(20) 축소 시켜 허락하신 '호사스런 경험'
서기 | 2019.11.03 | 추천 0 | 조회 169
서기 2019.11.03 0 169
2498
(21) 백영희를 소개한 분들, 보물을 소쿠리에 끌어 담다. - 보충
서기 | 2019.11.06 | 추천 0 | 조회 170
서기 2019.11.06 0 170
2512
(22) 교회 경영론으로 본 백영희 (거창고 전영창과 비교하며) - 1
서기 | 2019.11.10 | 추천 0 | 조회 154
서기 2019.11.10 0 154
1196
A. 사후 30년을 돌아 보며 - 연구소의 역사적 고찰
서기 | 2019.09.07 | 추천 0 | 조회 320
서기 2019.09.07 0 320
1197
(1) 이 노선을 위해 특별히 예비 된 우리
서기 | 2019.09.07 | 추천 0 | 조회 336
서기 2019.09.07 0 336
1199
(2) 한 사람의 사례로, 각자 자기를 살펴 보셨으면
서기 | 2019.09.08 | 추천 0 | 조회 399
서기 2019.09.08 0 399
1231
(3) 백영희의 학습 세계, 나의 과거를 돌아 본다. (3)
서기 | 2019.09.11 | 추천 0 | 조회 396
서기 2019.09.11 0 396
1236
(4) 백영희 설교의 자료화, 1948년의 의미 (1)
서기 | 2019.09.14 | 추천 0 | 조회 304
서기 2019.09.14 0 304
1237
(5) 공회의 '선교관'
서기 | 2019.09.15 | 추천 0 | 조회 282
서기 2019.09.15 0 282
1261
(6) 모이면 썩고 흩어지면 사는, 진리의 세계
서기 | 2019.09.17 | 추천 0 | 조회 222
서기 2019.09.17 0 222
1306
(7) 우리는 못났다. 그러나 자라 가면 된다. (1)
서기 | 2019.09.20 | 추천 0 | 조회 293
서기 2019.09.20 0 293
1313
(8) 백영희 가정의 교육 - 이 노선 우리에게 주신 보석들
서기 | 2019.09.22 | 추천 0 | 조회 228
서기 2019.09.22 0 228
1314
(9) 공회의 결혼 이야기 - 20세에 결혼하고 30세에 아이 4명
서기 | 2019.09.22 | 추천 0 | 조회 324
서기 2019.09.22 0 324
1344
(10) 나의 총공회 1등 기록들 - 혼자 달리니 민망했다.
서기 | 2019.09.24 | 추천 0 | 조회 279
서기 2019.09.24 0 279
1349
(11) 공회의 감탄할 기록들 – 모두가 가장 평범한 것에서
서기 | 2019.09.27 | 추천 0 | 조회 299
서기 2019.09.27 0 299
1192
변치 않는 사명, 변하는 사명
담당 | 2019.09.07 | 추천 0 | 조회 115
담당 2019.09.07 0 115
1193
다윗의 전쟁, 그 모든 향방은 '성전' 건축
담당 | 2019.09.07 | 추천 0 | 조회 114
담당 2019.09.07 0 114
1147
다윗의 성전 준비로 본 연구소의 사명
담당 | 2019.08.30 | 추천 0 | 조회 196
담당 2019.08.30 0 196
1194
훌륭한 지도자의 당대와 후대
담당 | 2019.09.07 | 추천 0 | 조회 140
담당 2019.09.07 0 140
1146
압살롬과 시므이 (1)
담당 | 2019.08.30 | 추천 0 | 조회 197
담당 2019.08.30 0 197
1276
세상의 어느 장관, 공회의 어느 장관 (1)
담당 | 2019.09.18 | 추천 0 | 조회 219
담당 2019.09.18 0 219
1131
'시체를 도적질하여 갔다'고 퍼뜨리니 오늘까지..
담당 | 2019.08.24 | 추천 0 | 조회 210
담당 2019.08.24 0 210
1125
이론적 양심가들의 불장난과 시대의 균형추
담당 | 2019.08.21 | 추천 0 | 조회 286
담당 2019.08.21 0 286
1133
최악의 좌익이, 정상적 우익으로 - 안병직으로 본 공회 (1)
회원 | 2019.08.25 | 추천 0 | 조회 300
회원 2019.08.25 0 300
1124
고정 생활의 농경식과 이동 생활의 목축식
담당 | 2019.08.21 | 추천 0 | 조회 159
담당 2019.08.21 0 159
1123
매년제와 집회
담당 | 2019.08.21 | 추천 0 | 조회 162
담당 2019.08.21 0 162
1122
세상의 셈법, 신앙의 셈법 - 손익을 기준으로
담당 | 2019.08.21 | 추천 0 | 조회 200
담당 2019.08.21 0 200
1113
공회의 '실행'론, 이 노선의 희망
담당 | 2019.08.18 | 추천 0 | 조회 214
담당 2019.08.18 0 214
1111
'조국 후보' 논쟁 - 공회만이 아는 국가적 이야기들 (2)
담당 | 2019.08.17 | 추천 0 | 조회 483
담당 2019.08.17 0 483
1092
비밀글 부공1의 대구 기도원 철거와 집회 탈선 역사 (부공2측 공개 발언) (1)
부공2 | 2019.08.11 | 추천 0 | 조회 15
부공2 2019.08.11 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