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17) 하늘에서 떨어 진 횡재, 백 목사님께 순종하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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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0
백 목사님께 순종을 해 보면 그 뒤에는 세상 사람이 하늘에서 떨어 진 횡재라 할 정도, 신앙의 우리가 볼 때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쏟아 진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의 가정도 그렇고 내가 평생 알며 상대한 이들이 다 그렇다. 나는 그 분께 배운 것으로 지난 날에 대한 해석은 좀 하는 편이다. 그러나 앞 날에 대한 지도나 판단은 거의 하지 않는다. 못한다거나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가 능력으로 함께 하는 것이 별로 없다. 몇 가지는 있다. 백 목사님의 걸어 간 길은 거의 다 능력이 뒤를 따른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신앙은 사람이 무어라고 말을 하는 정도로 표현을 할 수가 없다. 그냥 숨이 막힌다. 하나의 예를 들어 본다.



(양혜원의 개설 배경)
나환자를 치료하면서 생활까지 보장하는 양혜원은 백 목사님의 부탁 때문에 시작되었다. 앞에서 잠깐 설명을 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경제는 일본에서 벌어 온 돈이 아니라 그 돈으로 '철물 공장'을 하면서 크게 성공을 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다. 거창군 고제면의 봉산리 산골짝에서 논밭만 가지고 있던 아버지는 6.25 전쟁의 최전선이 북쪽으로 올라 가면서 거창읍으로 내려왔다.

6.25 전쟁 중에 '거창군'과 그 주변 일대는 전쟁 1개월 만에 공산군에게 점령을 당하며 그 과정에 미군은 황급히 후퇴를 했고, 다시 2개월 후에 미군은 인천상륙 작전을 통해 단숨에 진격을 하며 그 지역을 태풍 지나 가듯 쓸고 나갔다. 이 과정에 미군의 차량은 수도 없이 주변에 널리게 되었다. 전시에 파괴 된 경우는 당연하다. 급하게 움직이는 과정에 고장이 나면 수리가 없다. 그냥 버려 두고 간다. 곱게 버려 두면 적이 사용하기 때문에 핵심 부품을 빼거나 곳곳을 끊어 버리거나 골짝으로 밀어 버린다. 당시 우리 나라 기술과 산업 수준에서는 수 없는 차량이 그냥 방치 되었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고물 장사를 했다. 일본에서 막노동을 하며 돈을 벌다가 너무 근면하고 또 고향 가족을 생각하는 것이 특별한 점을 지켜 본 이웃 일본 사람이 아버지를 불러 고물 장사를 가르쳤다. 아버지는 밤에도 노동을 해서 돈을 벌어도 몸으로 때우는 벌이는 한계가 있다. 일본 사람이 아버지를 데리고 일일이 가르쳤다. 그리고 큰 돈을 벌어 귀국했다. 그 돈으로 모두 논밭을 샀다. 전쟁 때문에 미군 차량이 지천으로 널려 있을 때 '돈'과 '기술'이 합하면 이 차량들을 고철로 팔고, 부속을 재사용하고, 심지어 차량을 재생하면 큰 돈이 된다. 아버지는 사업에 대한 눈도 차량에 대한 기술도 전혀 없다. 그냥 일본에서 벌어 온 돈이 많은 사람이다. 이런 아버지에게 '고물 장사'를 하라는 이야기가 들어 왔다. 버려 진 차가 고물이라는 점에서 비로소 아버지는 이해가 되었고, 이 분야는 서툴지 않았다. 기술자가 문제였다. 정보를 준 분이 기술자는 월급만 주면 경북 김천에 가서 데려 올 수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일단 손에 돈이 들어 오면 무조건 모을 줄 만 알았고, 모아 놓는 방법은 논을 사는 것밖에 몰랐다. 새로운 투자나 경제 운용에 대한 감은 평생 없었다. 버려 진 차를 주워다 부속을 분리하고, 몇 대를 모아서 한 대가 움직이게 되면 그 차는 '제무시'라는 GM 트럭이다. 그 험한 거창의 덕유산에 목재를 운반하는 화물트럭이 되었다. 횡재가 된다. 미제 '제무시'는 그 수명이 보통 50년이다. 심지어 60년을 운행한 차량도 종종 볼 수 있다. 한국 전쟁과 전후 산업 과정에 제무시라는 이름은 유명하다. 이 과정에 '차'를 다루다 보니 '고물상'으로 생각한 사업이 '공업사'가 되었고 거창 지역에서는 '차량 정비업'을 하는 공장이 되었다. '진주철공소'라는 이름을 붙였다. 1970년대까지 거창의 중심지를 아는 사람은 '진철' '진주철공소'를 모르는 이들은 없다. 이 이름은 우리 가족의 이름이 되었다. 산곡의 백합화라는 변판원 순교집에 아버지 이름을 비공개하려고 '이진철'이라고 적었다.


(보건사회부 장관의 제의)
훌륭한 집안과 인재들은 장관과 직접 대화와 거래가 쉽다. 1950년대의 장관은 지금의 총리나 국회의장처럼 높았다. 시대가 그러했다. 아버지는 글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어 군청의 말단 공무원에게도 자기 할 말을 못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어느 날 정준모 장관이 아버지에게 제안을 해 왔다. 그가 국회의원에 출마를 하는데 1958년의 여당인 자유당 후보로서는 당선 가능성이 없자 전북의 제일 험한 장수군 일대를 직접 뛰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차량과 기사가 따로 필요했다. 화물차는 더러 있어도 자가용이 거창군에 1대도 없던 시절이다. 장수군은 거창보다 더 함한 곳이다. 그런데 의사로서 제3대 국회에서 보건사회 상임위원회의 위원장을 했고 또 정부에서 보건사회부의 차관을 거쳐 장관까지 했으니 나환자 마을에 대해서는 그 실태를 너무 잘 안다. 그런데 장수군과 붙어 있는 거창군의 '양혜원'은 해외 선교부나 복지법인이 운영하지 않고 이운길 원장이 개인 돈으로 시작을 했기 때문에 원장과 주변 분위기로 보면 그래도 괜찮아 보이나, 장관과 국회의원의 눈으로 볼 때 정부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게 되면 엄청난 시설로 발전 시키는 것은 정말 쉽다.

정준모 장관이 아버지에게 차량과 기사를 제공해서 선거 운동을 해 주면 당선 후에 양혜원의 '병원' 허가와 함께 국고 지원을 약속했다. 요즘 선거법에서는 금지가 되나 당시는 합법적이었다. 아버지는 이런 세계, 이런 말을 모른다. 그런데 바로 밑에 이상길 동생은 이런 말을 알아 듣는다. 이렇게 중요한 대목이 있으면 아버지는 주변에 의논을 한다. 이상길 삼촌이 아버지를 적극 설득했다. '형님, 이 것은 횡재요. 된다면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형님이 병원의 원장이 되고 지금까지 형님이 아까운 돈을 연보해서 만든 마을이 시골의 가난한 움막 몇 채지만 복지시설로 바뀌게 되는 겁니다.'

차는 이미 미군 차량 때문에 하던 사업의 범위에 있다. 유지 보수는 쉽다. 그 옛날 그 때는 차를 구입한다 해도 비포장의 험한 길을 다니면 고장이 잦다. 수리할 곳도 기술자도 없다. 그래서 거창군에는 경찰의 '백차'라는 흰색 짚차 1대만 있었다. 의전용이며 비상용이다. 아버지는 마음만 먹으면 운영과 보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사는? 삼촌이 형님을 위해 헌신하고 나섰다. 정준모 장관은 여당인 자유당 소속인데, 1958년에 국회의원을 다시 출마할 때는 장기집권 때문에 자유당은 전국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고 결국 무리하게 부정선거에 나섰다가 4.19혁명으로 무너진다. 의사 출신인 정 장관은 모든 면으로 무난한 인물인데 정국의 분위기 때문에 전북의 제일 험한 장수군 전부를 발로 뛰어야 할 상황이었다.


(당선 후 장관의 수고)
정준모 국회의원은 차관을 거쳐 1956 ~ 1957년에 보건사회부 장관을 했다. 1954년부터 국회에서 보건사회 상임위 위원장을 했다. 이런 인물이 제4대 국회의원이 되자 병원과 복지 정책에는 실무는 물론 정부와 국회의 숨은 실력자였다. 지금도 전관이 심한데 자유당 정권 당시니 말할 것도 없다. 정준모 국회의원은 당선이 되자 아버지를 바로 서울로 불러 올렸다. 당시 정부 종합청사는 '중앙청'이라는 이름으로 광화문 바로 안에 있었고, 국회는 광화문 사거리에 있었다. 아버지에게 국회와 중앙청을 직접 두루 안내하고, 장관으로부터 '개인이 나환자 시설을 개설하고 수고한' 공로로 표창장을 받게 했고 또 나환자 치료를 위한 병원 설립을 허가 받게 했다. 병원장이 된 것이다. 당시 대통령상을 받았다고 하며, 그 상은 거창군청이 별도로 보관을 한다고 하여 가족이 직접 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정부에서 양혜원에 특별 예산을 지원했다. 이 돈으로 아버지는 나환자들을 위해 논과 밭을 구입하여 환자들의 향후 생계 대책을 마련하게 된다. 이 과정은 다음에 다른 기회에 자세히 설명하고 싶다. 최근 내 주변에 일어 난 모든 일은 이 때의 역사적 반복이다.

보통 아버지처럼 수고를 하면 거창읍장이나 면장이 먼저 표창을 한다. 그리고 경쟁을 뚫거나 로비를 해서 군수상을 받는다. 수십 개 군에서 추천이 올라 오면 그 중에 한 사람이 도지자 상을 받는다. 장관상은 거창군의 각 분야에는, 특히 아버지 같은 분은 로비도 모르고 실력도 없고 또 그 가치와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그냥 주면 받겠지만 돈을 들여서 받을 인물은 아니다. 그런데 중앙청에서 상을 먼저 주게 되자 경남도지사가 바로 상을 수여했다. 그러자 거창군수 경찰서장까지 관련 기관장들이 줄줄이 뒤를 따랐다. 어릴 때 집에 들어 가면 현관이 넓었지만 거창한 표창장 감사장들이 마루 전체를 메웠다. 그 때는 학교의 학급 반장이 받는 것이나 그 것이나 같은 줄 알았다. 나환자 치료를 위한 시설의 정부가 인준한 나환자 병원의 원장. 그 이름이 보통인가?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사람이! 그리고 정부로부터 받은 돈은 훗날 대략 계산을 해보니 1990년대에 200억원이라는 평가가 나온 적이 있다. 거창군에서 그 시설 일대 전체를 수용하면서 나온 평가애기었다.


나는 애양원의 손양원 목사님이 순교한 후 그 가족이 애양원 바로 입구 마을에 개척한 신풍교회 목사다. 31년째 이 곳에 있으며 애양원의 역사와 내면을 잘 아는 편이다. 미국의 남장로교 선교부가 만들었고 정부가 제1호로 허가한 시설이다. 이 애양원에서 일제 때 근무한 김철주 직원이 의사가 되고, 해방 후 애양원병원의 원장이 되었으며, 50년대에 국회의원을 하면서 국회 보사위원을 지냈다. 그 분 때문에 애양원이 받은 혜택을 안다. 그래서 거창의 양혜원에 관련 된 내용을 짐작하는 데 별로 어려움이 없다.

양혜원을 거쳐 간 공회 목회자들은 백 목사님 생전에 '이재순, 정재완, 고장환, 우현룡' 목사님 등이다. 양혜원으로 보낼 때는 꼭 원장에 대해 부탁을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실은 백 목사님의 설립과 지도였다. 그리고 백 목사님의 말 한 마디에 순종을 한 교인에게 대해 백 목사님은 인간적으로도 소리 없이 뒤를 챙기고 책임을 느끼는 분이다. 그런데 그 분이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께 붙들려 전한 말에는 순종을 한 뒤에 하나님께서 챙기고 갚는 것은 그 내용을 일일이 아는 사람이 보면 이 것은 불신자가 볼 때는 하늘에서 거저 떨어 진 횡재고, 믿는 우리가 보면 하나님의 세밀한 은혜의 역사가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을 확실히 볼 수 있다.



여기까지가 아니다.

양혜원 때문에 나의 아버지와 가족이 겪은 실패는, 아버지가 순종을 한 번 해서 올라 간 바로 그 높이 그 만큼 밑으로 떨어 졌다. 그 분의 말 한 마디는 그냥 말이 아니라 실체적 역사가 너무 크기 때문에 나는 백 목사님의 말을 설교로, 이 노선의 연구로, 또 성경 공부의 현실 적용으로 세세히 살핀다. 신학자로서 남들이 다 연구해서 이제 연구할 분야가 남지 않으니 틈새 시장으로 백영희를 지목하고 주력하는 것이 아니다. 나만의 경우가 아니라 내가 아는 한 모두가 다 이러하다.

그래서 최근에 나 주변에 발생한 수백 건의 고소가 겹쳐 들어 와도, 그리고 그들은 이런 사실을 나 정도로 알든 모르든 상관 없이 그들은 그들 기준으로 일단 말을 하고 소문을 전하고 별별 조처를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양혜원에 대한 성공과 그 후 여지 없는 인생 파탄 때문에 그리고 그 자녀들의 그런 모습 때문에 만사를 조심한다. 남들이 보면 비슷한 수준에서 비슷하게 맞붙어 싸운다고 하는데, 이런 일을 다 듣고 나면 무릎이 떨릴 것 같다.


* 인물 : 정준모
1950년대의 의료계 복지분야에 워낙 유명한 인물이어서 일반 자료는 생략한다.
정준모 장관은 1957년 경남 사천군(당시 삼천포) 비토섬의 나환자 집단학살 사건을 조사한 현장 책임자였다. 6.25 전란을 피해 사천군 실안동에 영복농원을 마련한 나환자 정착민들이 정부의 개간 정책에 따라 건너 편 비토섬에 들어 갔다가 현지 주민들에게 20여명이 학살을 당했다. 이 사건 때문에 정부는 경남 지역의 나환자 정착과 보호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고 당시 주무 장관이며 의사로서 경남 지역의 상황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직보하던 정준모는 나환자의 치료와 지원 문제를 두고 정부 내 독보적 책임자였다. 이 사건은 한겨레신문이 2006년02월15일 제597호에서 당시 국회 현지보고서 등의 정부 문건을 공개했다. 백 목사님은 밀양 부산으로부터 여수까지 이르는 남해안의 나환자 시설을 식구처럼 방문하며 집회를 인도했고, 나환자들은 서로 연락을 하여 연합집회처럼 진행되어, 삼천포 집단 학살 사건을 잘 아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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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백영희의 학습 세계, 나의 과거를 돌아 본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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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6
(4) 백영희 설교의 자료화, 1948년의 의미 (1)
서기 | 2019.09.14 | 추천 0 | 조회 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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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7
(5) 공회의 '선교관'
서기 | 2019.09.15 | 추천 0 | 조회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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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1
(6) 모이면 썩고 흩어지면 사는, 진리의 세계
서기 | 2019.09.17 | 추천 0 | 조회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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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
(7) 우리는 못났다. 그러나 자라 가면 된다. (1)
서기 | 2019.09.20 | 추천 0 | 조회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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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3
(8) 백영희 가정의 교육 - 이 노선 우리에게 주신 보석들
서기 | 2019.09.22 | 추천 0 | 조회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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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4
(9) 공회의 결혼 이야기 - 20세에 결혼하고 30세에 아이 4명
서기 | 2019.09.22 | 추천 0 | 조회 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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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나의 총공회 1등 기록들 - 혼자 달리니 민망했다.
서기 | 2019.09.24 | 추천 0 | 조회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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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9
(11) 공회의 감탄할 기록들 – 모두가 가장 평범한 것에서
서기 | 2019.09.27 | 추천 0 | 조회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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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2
변치 않는 사명, 변하는 사명
담당 | 2019.09.07 | 추천 0 | 조회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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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3
다윗의 전쟁, 그 모든 향방은 '성전' 건축
담당 | 2019.09.07 | 추천 0 | 조회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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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7
다윗의 성전 준비로 본 연구소의 사명
담당 | 2019.08.30 | 추천 0 | 조회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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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4
훌륭한 지도자의 당대와 후대
담당 | 2019.09.07 | 추천 0 | 조회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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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6
압살롬과 시므이 (1)
담당 | 2019.08.30 | 추천 0 | 조회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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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6
세상의 어느 장관, 공회의 어느 장관 (1)
담당 | 2019.09.18 | 추천 0 | 조회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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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1
'시체를 도적질하여 갔다'고 퍼뜨리니 오늘까지..
담당 | 2019.08.24 | 추천 0 | 조회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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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이론적 양심가들의 불장난과 시대의 균형추
담당 | 2019.08.21 | 추천 0 | 조회 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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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3
최악의 좌익이, 정상적 우익으로 - 안병직으로 본 공회 (1)
회원 | 2019.08.25 | 추천 0 | 조회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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