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16) 전국 최고, 최초, 최대를 휩쓴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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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10.13
(너무 쉬운, 그래서 공회적인 이야기)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는 공회와 상관이 없다. 아무나 하면 되는 '주일학교 세계 기록'은 자랑이 될 수 없다. 모두가 그렇게 쉬운 것을 왜 몰랐고, 왜 해 보지 않았을까? 이 것이 공회다. 이 것이 공회적이다. 이런 점을 분명히 하고 넘어 가고 싶다. 공회 목사는 신학 과목 1개도 듣지 않고 지게 지다가 목회자가 된다. 그리고 그 목회 결과가 주변에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타 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일제 때 주남선처럼 공회는 오늘도 그렇다.


나는 1964년에 거창군에서 '최초' 기록을 2개 가졌다. 당시 거창에는 이동용 성인 자전거뿐인데 아동용 자전거는 우리 집에 1대였고 그 것은 초등학교 1학년을 들어 가는 나를 위해 샀다. 그 자전거를 타고 사립학교 입학을 위한 시험을 치러 갔다. 학교는 호주 선교부의 본부 주택이었다. 그 주택에서는 나는 3년을 공부했다. 그 주택 옆에 있던 화장실은 수세식이었고 화장지가 있었다. 물에 넣으면 풀어 졌다. 지상낙원이었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혼다 50cc 오토바이를 거창군에서 혼자 타고 다녔다. 다른 형태의 산업용 또는 직업용 오토바이는 몇 대 있었으나 가정용은 이 1대뿐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형이 영남대학교 원예학과에 합격을 했다. 술에 절여 살던 아버지는 대학 합격 소식을 듣자 중3인 나에게 운전을 시키고 거창의 11개 면을 모두 다녔다. 비포장이었다. 면마다 흩어 져 있던 유지들, 친구 집을 찾아 갔다. '아들이 대학을 갔어' 이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대학이 흔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없지도 않던 시대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1학년도 들어 가지 못해서 평생 공부에 한이 맺혔고, 전쟁 때문에 파괴된 미군 차량을 수습하는 과정에 돈을 모았고 거창군에서 납세 1위까지 되었으나 무식 때문에 이렇게 자랑을 하러 다닌 것이다. 이 것이 우리의 수준이며 나의 배경이다.

이 집안은 나중에 학교를 어디에 나왔던 전국의 거의 모든 자녀나 사촌들이 이런 쪽에 일을 한다. 사장이 아니라 남 밑에서 직공으로 살았다. 말하자면 초등학교 1학년도 나오지 않은 아버지로 인해 나의 형제와 사촌 수십 명은 바로 크게 될 수가 있었는데 집안 전체의 수준이 낮다 보니 1950년대의 아버지 수준의 근방에도 가는 이들이 없다. 하나님께서 못난 아버지에게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지금의 시골이 아니라 여러 면에서 무시할 수 없었던 당시 지방 환경에서 모든 면에서 지역의 유지가 되게 했다. 그런데 내용이 이렇다 보니 아버지와 집안 식구 그 누구도 교만할 수가 없다. 공회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 한다. 못난 사람이 은혜로 괜찮게 살게 되었다는 스토리다. 원래 출중한 인물과 실력을 가진 사람이 더 잘 되는 것은 관심이 없다.




(신풍의 몇 가지 이야기들)
지금은 너무 넘치다 보니까 모두가 내 버려 두기 때문에 이제야 공개를 한다. 신풍은 그 시골의 일반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4월에 중졸 시험을 통과하고 8월에 고졸이 되며 그 해 가을에 주변의 대학에 수시로 합격한다. 혹 늦은 아이는 한 해 뒤에 들어 간다. 여학생들은 한 때 간호대학으로 지도를 많이 했다. 전국 최연소 간호사는 거의 다 우리 교인 학생들이다. 대학병원이든 어디든 우리 학생들이 가는 곳은 그 분야에서 늘 그렇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교회의 일반 예배와 집회의 분위기 때문에 눌려 있었고, 이런 분위기 때문에 일반 학생들이 요즘 식으로 언행을 하는 것과 비교를 하면 한 눈에 한 세대 이전으로 보인다. 이 것이 순수해 보이고 이 것 때문에 대학의 연구소나 회사나 병원에서 특별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내가 볼 때는 너무 치장을 하고 너무 요즘 아이들이 되었다고 탄식을 하지만 시내 일반 사람 눈에는 그래도 아주 건전해 보인 모양이다.


* 15세 근로 취업 증명서
대학에 입학할 때도 또 대학에 들어 간 후에 모든 중요한 선발이나 경력에 늘 써먹는 것이 '최연소 중졸 고졸 합격'에 더하여 '15세 미만' 아동의 취업 증명서이다. 이 것은 노동부에 신고를 해서 정식으로 받아야 한다. 원래 이 증명서는 아동의 인권과 학습권 때문에 규제로 나온 법이다. 그런데 우리 말고는 이런 증명서를 발급 받는 학생은 없다. 가출이나 돈이 필요해서 움직이는 경우는 알아서 아르바이트를 몰래 한다. 주인도 본인도 이런 증명서를 기피한다. 우리는 정상 가정에서 정상적인 아이들이 검정고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신청도 할 수 있고, 이 취업 증명서를 통해 오히려 보호를 받는다. 그런데 이 것이 요즘 흔히 말하는 '스토리텔링'에 꽃이 된다.

사는 곳이 신풍 시골이고, 교인들이 모두 저소득이다. 이런 가정에서 고액의 사교육비를 무릅쓰고 도시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시골학교는 폐교가 되고 시골마을은 유령화가 되어 국가적 문제가 되었다. 이런 곳에서 아이들이 내적으로는 교회 때문이지만 진로와 경력으로 발표할 때는 '태어 난 고향이 시골이지만, 고향에서 공부하고 고향을 지키기 위해 도시로 이사하지 않았으며, 시골에는 학원이 없고 교육기관이 없어 독학으로 중고교 과정을 통과했다'고 적으면 성장 과정에서 아주 돋보인다. 요즘 모든 진학과 취업과 특별한 선발에서는 아주 특출하든지 아니면 사회 배려 대상으로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특출이라는 것은 내 주변에 아예 없다. 공회의 기본 환경에도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특출하지 않은 일반 학생은 무슨 경력을 써든 거의 다 비슷하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이 적으면 눈에 바로 띈다.

* 신풍 아이들의 10가지 공통 경력들
① 중학교 3년치 영어 교과서를 모두 암기했다. - 이 것은 사실이지만 주일학교 공과 암기식이다. 공회에서는 흔하다.
② 대한민국 최악의 환경 오염지 광양만이다. - 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어느 날 공단이 들어 오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
③ 대한민국 나환자병원 1번 애양원이 신풍 1번지에 있다. - 광주에서 쫓겨 나서 왔다. 그런데 사실이다. 그래서 잘 써먹는다.
④ 손양원 성자의 순교로 시작된 교회다. - 이런 교회는 신풍교회뿐이나 공회 교회는 모두 신풍 개척이니 역사에 포함한다.
⑤ 여순반란사건이라는 현대사의 중심지다. - 어디에 내놓아도 좋아 보인다. 여순 100리길의 딱 중앙이다.
⑥ 이순신 임란의 시작이 여수고 종결이 신풍 앞바다이다. - 고대에서 현대까지 이어 가며 산업단지로 이으면 이야기가 된다.
⑦ 항공 항운 국철 국도가 100미터 이내에 있는 대한민국 유일의 요충지다. - 이런 마을에서 본 것이 있고 겪은 것이 있다.
⑧ 신풍의 모든 주민이 외지로 다 빠져 나갔다. - 우리는 신풍에서 나고 자라고 결혼하고 다시 아이를 낳아 고향을 사수한다.
⑨ 면이 아니라 리단위 시골이라 학원이 없다. - 돈도 없지만 학원도 없다. 그래서 독학을 했다. 마을의 아동센터만 이용했다.
⑩ 15세 미만의 근로 자격증으로 자립을 했다. - 노동부의 노동허가증을 통해 돈을 벌며 공부하는 현대판 고학을 입증했다.

우선 생각 나는 것 10가지를 적어 봤다. 이 것은 모든 학생의 거의 공통점이다. 여기에 각 가정의 상황을 현재 국가가 제도로 만들어 놓은 기준을 대입하면 여러 종류의 서민 또는 소외 계층에 해당이 된다. 산업단지 형성 과정의 이주에는 거의 다 해당이 된다. 국가의 발전 과정에 개인 가정의 주택과 농지가 수용 되면 모두가 떠나는데 우리는 그 피해를 고스란히 앉고 아무 소리 없이 이 곳에서 우리가 이 나라 이 사회에 할 일이 없는지 준비하고 기다리며 기회를 찾고 있다고 적는다. 여기에는 거짓말을 더할 것도 없고 또 굳이 뺄 것도 없다. 법무부 장관을 비롯하여 이 나라 모두는 특출난 사람들 사이에서 더 특출 나려고 하다 보니 가짜 경력서를 만들고, 실제 참가하지 않은 가짜 증명서를 만들어 온갖 문제가 생겼다.


* 중학생들의 교사 경력
신풍교회의 주변 가구는 걸어서 올 수 있는 가구가 다 합해야 100가정 정도다. 아이들이 있는 가정은 거의 우리 교인들이다. 마을 한복판에 병원이 문을 닫고 떠났다. 우리 교인 중에서 연구소에 자원봉사를 한 번씩 하던 분이 병원장에게 신풍 시골을 지키며 살고 싶은 젊은 부부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제공하려고 아동센터를 개설하려 하는데 이 병원 외에는 법적으로 해당 되는 시설이 없으니 좋은 일을 해 주시라고 부탁을 했다. 평소 우리 교회를 남 달리 좋게 보고 그 교인을 옆집에 두고 좋게 봤던 그 병원장은 거의 공짜로 건물을 넘겨 줬다. 그래서 마을 안에 교회와 전혀 상관이 없는 아동센터가 하나 설립이 됐다.

그 교인은 센터에 나오는 학생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4월에 중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하여 중학교 졸업생이 될 때 그 학생에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중에 한둘을 데리고 따로 공부를 함께 하면서 돌봐 주게 했다. 모르면 가르쳐 주고, 착한 학생이면 함께 공부하는 분위기가 어린 아이에게 스스로 학습을 길들이는 일이 된다. 바로 이 과정에 '동생 돌보기'가 된다. 그런데 이 것을 센터에서 기록을 하고 업무 배정을 하게 되면 중학교 졸업장을 가진 그 형이나 언니는 초등학교 1-2학년 저학년 동생에게 '자습 도우미'가 될 수 있다. 이런 작은 책임감이 검정고시 학생에게 보이지 않게 사람을 만들게 된다. 이 도우미는 아동센터의 교사 보조가 될 수도 있다. 거창하게 말하면 아동센터의 운영 보조원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학생은 8월에 고등학교 졸업장을 쥐게 된다. 그 때부터는 이제 확실하게 아동센터에오는 초등학생 저학년의 학습 도우미로 이름을 올린다. 그 해 2월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빠르면 8월에 고등학교 졸업생이 되면 초등학교 1-2학년의 수학이나 국어는 가르치게 된다.

센터에서 이렇게 운영 방향을 잡다 보니까 법적인 정식 교사나 사회복지사로는 인준이 되지 않으나, 14세에 '아동센터의 교육 보조교사'라고 경력을 적을 수 있다. 이 과정을 모든 종류의 정부나 공공기관 보고서에 사진과 실제 상담과 활동 사항을 올리고 점검을 받는다. 점검하는 이들이 감탄을 한다. 심지어 점검 온 이들이나 그들의 말을 들은 이들 중에 여수시나 순천시에 사는 이들은 아이들을 일부러 이 시골까지 보내어 이런 곳에서 듣고 보고 자라 가게 한다. 그런데 이런 이들이 많아 지면 지자체의 인터넷 점검에서 이상 상황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전체 규모 중에 한둘 정도가 아니면 일부로 거절을 한다. 이 것이 불법인가? 최근 부공3의 연구소 직원 출신 목사님들이 신풍에 비리가 있다며 떠들게 만들었던 모든 이야기는 바로 이런 이야기다. 이런 지도를 안내를 받아 비판하고 고발한 그들조차 그렇게 했었다. 왜 이제 와서 난리들인가? 이 것이 나의 집안의 수준이 원래 그렇다.

그런데 공회를 아는 우리는 이런 방법이 주일학교의 교사 양성 과정이어서 낯설지 않다. 공회 사람들은 내가 이 글을 적는 순간 모든 것을 다 알 듯하다. 모르는 사람이 있나? 그는 공회의 2세대이거나 평생 공회에 있어도 늘 공회의 outsider여서 그렇다. 공회는 주일학교 교사의 양성과정은 전혀 없다. 신앙 있는 청년들이 동네 골목으로 토요일 오후에 나가 봤다. 그리고 보이는 아이들에게 교회를 가자고 말을 건네 본다. 아이들이 따라 온다. 5명이 따라 오면 반사가 된다. 이 것이 총공회의 1970년대와 1980년대 20년간 세계 최고의 기록을 만든 주일학교 규모화의 현장이다. 1960년대에는 가장 신앙 있는 청년들이 교사의 일선에 나섰다. 공회는 반사라고 한다. 그 다음부터 교회 대예배를 잘 나오는 교인이 있으면 누구든지 먼저 반사를 하든 사람에게 무조건 붙인다. 반사를 따라 다니며 5명을 맡을 정도가 되면 그도 보조반사에서 반사가 된다. 나중에는 주일 오전에만 교회를 다니는 새 교인에게도 보조반사를 시켰다. 이들도 곧 반사가 되었다.

(지난 수 년의 참담한 고소 고발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내막이 나온다.)
이 것이 공회 문화고 공회 체질이다. 이 과정에 도덕적으로 학문적으로 사회 상식 차원에서 수준 낮은 사람이 많아서 비판도 많이 받았다. 공회는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했다. 그리고 19세기 중반에 시작된 세계 기독교의 주일학교 역사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바로 이 원리를 가지고 교인이 시골의 학생들이 학원이나 문화 시설이 전혀 없어 이를 대신하려고 시청에 지역아동센터를 인가 받았다. 온 동네 아이들이 다 다닌다. 교회와 전혀 상관이 없는 개인의 시청 허가 시설이다. 그런데 이 시골에는 신풍교회 교인만 시골에 살고 아이를 낳다 보니 그 아이들이 그 센터의 대부분 회원이다. 이 것이 교회 사업인가? 이 것이 공회가 금지하는 교회의 돈벌이인가? 이런 길을 교인들에게 소개하면서 시골이라고 떠나지 말고 시골에서도 이 노선으로 살아 보기 위해 알아 보고 노력해 보라고 지도를 했는데, 그런 지도를 했다고 그 복지시설이 목사의 개인 소유가 되고 그 목사의 친인척은 목사에게 덕을 봤으니 그 시설을 내놓으라고 대든다면 그런 ㄴㄴ들은 그 목사가 직접 경찰에 고소를 해야 그 것이 고소금지원칙에 맞지 않을까? 고소금지원칙은 신앙 때문에 남들과 투쟁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런데 목사 아들딸이 목사를 따르는 교인에게 개인 사업체를 내놓으라 하면 도둑ㄴㄴ들이 아닌가? 사건을 특정하고 싶지만 또 법원에 불려 다닐까 싶어 이 정도에서 그치고자 한다.

나의 아버지가 50년대에 무식한데 운 좋게 전쟁터에 버려진 차량으로 돈을 벌고 나환자 구제사업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첫째 백 목사님의 지도가 있었고, 현장에서 실제 수고한 이는 바로 밑에 삼촌이다. 이 분은 초등학교를 나와서 글을 안다. 그 삼촌이 수고를 했고 아버지는 글도 모르고 돈만 댔는데 나중에 사업이 잘 되니까 아버지는 자금이 아버지 거싱라며 모든 사업체 공장을 전부 혼자의 것이라고 했고, 삼촌은 본전은 형님 것이나 사업의 발전 과정에 동생이 수고한 것은 월급 받고 직원으로 수고한 정도가 아니라 동업자 정도가 되어 자본과 영업 중에 영업을 맡은 정도니 사업체 중에 하나는 가져야 하지 않느냐, 실제 그런 말이 있었고 추진까지 되었는데 말귀를 알아 듣지 못하는 형님이 마치 동생이 형을 속이고 사기 친 것처럼 난리를 부리니 난감하다는, 대충 이런 식으로 1960년대에 나의 아버지 형제는 극심한 분쟁을 겪었고 그 과정에 심약한 한 분은 돌아 가셨고 한 분은 지명수배를 받아 해인사로 도피하는 상황이 생겼다. 나는 아버지 편이다. 그런데 자라 가면서 또 사회를 알아 가면서, 그리고 특히 백 목사님께 배우게 되면서 내가 아버지 편이라 해도 이제는 아버지의 문제점을 잘 안다. 사람 자체가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인식과 수준의 한계가 너무 좁았다. 여기에 감정이 겪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말과 행동이 정도를 넘어 선다. 2015년경부터 벌어 진 나의 형제들의 나에 대한 모든 고소를 두고 어느 쪽이 부친인지 삼촌인지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정확히 1960년대에 벌어 진 부친 대의 형제 참상이 2010년대에 또 벌어 진 것이다. 이 것을 알고 조심해도 어려운데 다른 형제들은 이런 사실을 아예 모른다. 그 내용의 전개를 모른다.


(교회 학생들의 경력들)
지금은 국가적 제도가 없어 졌고, 나도 교인들이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을 구경 시켰기 때문에 더 이상 애굽의 바로왕궁을 부러워 하지 않을 듯하여 대한민국 학생이 받는 최고의 기회를 다시 소개해 주려 하지 않고 있다.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대한민국인재상이라는 것이 있었다. 서울대생도 한 해에 2명 정도만 받는다. 각 시도에서 1명에서 2명이 받는다. 당시 400만명 대학생 중에 40명이 받는다. 김연아 피겨 선수가 받을 때 신풍의 학생이 옆에서 함께 받았다. 대통령, 교육부 장관이 함께 앉는 청와대 헤드테이블에서. 박태환 수영 선수는 다음 해에 우리 교인 학생과 함께 받았던 기억이 있다. 올림픽 금메달이나 세계 과학대회에 금메달을 수상한 학생들도 최다 금메달이나 특이한 경우가 아니면 받지 못한다. 우리 교회 학생들이 받은 이유는 그냥 하나다. 바닷가 시골에서, 사교육 없이, 독학으로 중고교를 검정고시 했고, 노동부의 15세 미만 근로 자격증을 가지고 고학을 했다. 그리고 도움만 받지 않고 아동센터에서 교사 보조를 했다. 그런데 이 학생들의 출신지는 우리 나라의 현재 국가적 고민들을 거의 다 가지고 있는 곳이다. 산업화 과정에 발생한 공단 이주민이나 인근 오염 지역, 극단적인 바닷가 시골, 사람이 없어진 시골... 앞에서 이미 말한 경력들이다.

나라가 극단적으로 발전하면서 소외계층의 각종 문제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봇물을 만든 것은 좌익들이다. 우리는 기독교 신앙을 사회주의로 만드는 좌익이 싫다. 그런데 그들 때문에 어느 날 신풍 시골의 공회식 신앙 생활이 대통령상의 대상으로 해마다 계속 선정이 되었다. 해마다 7월이 되면 전라남도의 대한민국인재상 담당자가 아예 신풍의 아동센터로 전화를 한다. 전남 전체를 통틀어 청와대가 직접 챙기고 교육부가 샅샅이 훑고 있는 인재상은 전라남도의 체면이 걸려 있어 '스토리텔링'이 될 학생을 발굴해야 하는데 전남의 과학고 외국어고 학생들도 전국 단위 인재와 비교하면 내놓을 정도가 아니고, 양궁과 바둑은 하도 세계적 기록이 많아서 아무런 흥미 대상이 되지 못한다면서 신풍의 이야기만이 전국 경쟁력이 있으니 해마다 추천을 해 달라고 먼저 부탁을 한다. 한 지역에서 계속 받으면 남들이 오해하지 않겠느냐고 해도 사실이 그런데 무슨 말이냐고 오히려 되묻는다. 나는 아무리 교회와 관련이 없는 세상 학생들의 세상 진학과 수상 과정이라 해도 수상자가 많으면 어느 날 언론에 부각이 되고, 그렇게 되면 2002년부터 몇 년간 TV 방송 3사의 수도 없는 출연 교섭과 전국의 학부모들이 내가 대안학교 전문가인 줄 알고 찾아 와서 남감했던 일이 재발 될까 싶어 대한민국인재상이라는 학생들의 최고 상조차 모두 피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내 부탁에도 불구하고 나 몰래 아이들을 위해 또 신청을 한 가정이 있다. 이 가정은 형제만 8남매다. 전부가 초등학교만 나왔다. 이 가정의 아이가 신청을 했는데 선발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통령상 밑으로 장관상 정도를 적으려면 통계가 잡히지도 않는다. 시도지사상과 대학 총장상정도는 내 주변에서는 상으로 치지도 않는다. 문제는 이런 경력으로 주일을 출근할 각오를 하고 직장까지 도전한다면 나 주변의 학생들은 정말 오늘 우리 사회에서 모두가 괜찮다는 직장으로 진입했을 것이다. 의전원 로스쿨의 경우는 앞에서 설명한 주일 시험에 걸렸다. 이 것은 내가 해결할 길을 다 확인해 놓고는 여기서 포기를 했다. 이 것이 공회다. 세상을 구경했으면 됐지 세상 속에 빠져 버리면 그 속에서 신앙을 지킬 수 있을까? 타 교단이 부러운 것은 타 교단에서는 훌륭한 정치가 법조인 의료인이 신앙에 철저한 경우를 흔하게 본다. 그런데 목사님 생전부터 공회 내의 인적 구조에서는 평범한 공회인이 우리 사회의 최상위층으로 진입을 하게 되면 거의 전부 신앙을 버린다. 공회 내에서 공회 신앙이나 우리 사회의 최고 자리에서 신앙까지 잘 지키는 분들이 몇 분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가까웠던 관계다. 그들은 원래 세상적으로 뛰어난 분들 출신이다. 공회의 일반 교인들은 출신이 나처럼 평균이거나 평균 이하다. 이런 이들은 9급 공무원만 되어도 신앙은 찾기 어려운 정도가 된다. 내 주변의 부공3이나 연구소의 직원 자녀들의 경우가 다 그럴 수준들이다. 그래서 국가적 시험 중에 중요한 시험들을 평일 시험으로 빼 놓고도 정작 로스쿨과 의전원 시험은 한 사람도 그들의 경력을 써먹지 못했다. 내 주변의 학생들의 경력이면 웬만하면 이 번 법무부 장관 가정의 자녀들의 경력과 비교해 보면 우리 학생들이 훨씬 낫지 않을까? 그 장관 가정이 조작했다는 경력과 비교하면 이 쪽이 훨씬 낫다.


만일 이런 경력들을 해외에 사용했다면?
그 것은 1988년 2월에 서울 사직동교회의 분규를 해결하려고 백 목사님의 심부름으로 파송 되는 과정에 나는 중학교만 졸업한 서부교회 교인 한 분의 질문을 받고 서울 가는 비행기 안에서 미국의 아이비리그로 입학하는 핵심적인 방법을 소개해 준 적이 있다. 서부교회라는 출신 배경, 백영희 목사님이라는 공회의 인물, 그리고 미국 사회가 각광할 수 있는 우리만의 장점 등을. 그 분은 눈치가 있었고 그 뒤에 내게 전화를 해 왔다. 미국에서 공부 시킨 아이를 일단 고려대에 해외 전형으로 입학을 시켰다고. 그 아이는 예일대학을 거쳐 하바드 의대를 나왔다는 말을 그 분의 다른 가족에게서 들었다. 최근 내게 수백 건으로 고소한 이들은 모두 그 자녀들의 진로에 가장 핵심적인 순간에 나에게 지도를 받았다. 심지어 합격 후에 어디를 선택해야 할지에 대하여, 그리고 남들이 시시하게 생각하는 전문학교가 우리처럼 어중간 한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문이 된다고, 그래서 그들 중에서 내가 지도한 교인들에게 고비마다 신세를 지고 그들이 갈 수 없다고 생각한 길이 열려 졌는데, 왜 이제 와서 나를 사이비 교주 정도로 비판하고 고발을 하는가? 나는 이 노선의 사람이다. 이 노선에 필요하면 헌신한다. 그러나 이 노선에 빗나가거나 이 노선의 서고 움직일 때와 다르면 나는 가족이든 그 누구든 더 이상 상관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열심히 돕다가 갑자기 연락을 중단하고 협조를 하지 않을 때 사람은 그 동안을 감사해야 할 듯한데 오히려 상대적 빈곤감이나 박탈감 때문에 배신감을 느끼는가 보다. 이 것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

갈라디아서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

나는 대림건설의 창업주 이재순 목사님으로부터 1992년에 대구공회와 양성원 때문에 고소 사건이 시작 될 때 수도 없는 전화를 받았다. 한 번만 더 도와 달라고. 나는 1989년 9월에 그 분이 서부교회로 부임하도록 역할을 했다. 이후에도 그 분이 남정교회와 분리 될 때까지 예배 중에 벌어 지는 상황까지 일일이 신풍으로 전화를 해서 광고 문안 하나까지 만들어 드렸다. 나중에 이 이야기는 따로 자세히 하겠다. 그 분의 부탁을 들어 주면 내게 돌아 올 혜택은 참으로 많다. 그런데 해서 안 되는 고소 건이어서 인정사정 보지 않고 끊었다. 누구의 어떤 부탁이든 이 노선의 기본에 대한 것은 나든 가족이든 은사든 그 누구든 내가 도와 줄 일은 없다.



공회의 장점, 공회만의 특별한 점이란,
가장 무식하고 일반적인데 가장 자연스럽게 가장 간단하게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가다가 보면 어느 날 우리보다 몇 단계 위에 있는 이들이 별로 부럽지 않은 그런 신앙과 그런 세상 상황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것은 진리 노선에 주신 '모든 믿는 사람이 받는 자연스런 은혜'라고 생각한다. 우리뿐 아니라 믿는 이들에게 다 함께 주시는데, 문제는 우리처럼 실제 그렇게 걸어 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보니 무슨 특별한 재주를 부리고, 또는 요즘 나를 향해 수백 건을 고소 고발하는 이들이 나의 이런 점을 너무 잘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는 점에서 이들이 회개하지 않고 그냥 말로 내게 미안하다거나 돌아 서겠다고 한다면 나는 미리 말한다. 말만 가지고는 나는 받아 주지 않는다. 알고 지은 죄는 실제 돌아 서야 회개가 된다. 회개라면 무조건 우리는 받아 준다. 문제는 회개라 하지만 회개가 아니면 우리는 속지는 않는다. 회개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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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연보를 들고 주일에 가게로 갔던 첫 죄, 이어진 죄들
담당 | 2020.01.21 | 추천 0 | 조회 153
담당 2020.01.21 0 153
2802
(35) 간간히 비추며 인도하신 순간들, 능력의 체험이라 하고 싶다.
담당 | 2020.01.26 | 추천 0 | 조회 117
담당 2020.01.26 0 117
2809
(36) 고교 입학 시험 - 첫 기도와 그 서약 (4)
서기 | 2020.01.27 | 추천 0 | 조회 137
서기 2020.01.27 0 137
2820
(37) 공회의 인재 양성은 고전1:27, '미련한 것들'을 주목한다.
담당 | 2020.01.28 | 추천 0 | 조회 100
담당 2020.01.28 0 100
2822
(38) 공회 신앙의 정상적 모습들, 나도 공회인이 되었다.
담당 | 2020.01.29 | 추천 0 | 조회 112
담당 2020.01.29 0 112
2829
(39) 군 생활의 실패, 백영희 사후를 준비하게 되다
담당 | 2020.01.30 | 추천 0 | 조회 141
담당 2020.01.30 0 141
2847
(40)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하고 대견한 일들 - 1 (1)
담당 | 2020.02.01 | 추천 0 | 조회 190
담당 2020.02.01 0 190
2852
(41) 1980년, 다시 시작한 주일학교 - 2
담당 | 2020.02.03 | 추천 0 | 조회 118
담당 2020.02.03 0 118
2873
(42) 서윤호, 평생에 감사하고 그리고 아직도 소망을 놓치 않다. (1)
담당 | 2020.02.09 | 추천 0 | 조회 129
담당 2020.02.09 0 129
2727
천주교 WCC 동성 ... 귀신의 복병전, 논점 돌리기
담당 | 2020.01.05 | 추천 0 | 조회 183
담당 2020.01.05 0 183
2686
성탄행사를 폐지할 시점 - 1980년 8월의 주교 야외예배 폐지 (2)
담당 | 2019.12.25 | 추천 0 | 조회 280
담당 2019.12.25 0 280
2651
감정이 가진 반발심, 북조 이스라엘부터 오늘까지 (1)
담당 | 2019.12.15 | 추천 0 | 조회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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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2
C. 사후 30년을 돌아 보며 - 연구소의 역사적 고찰
서기 | 2019.11.12 | 추천 0 | 조회 292
서기 2019.11.12 0 292
2526
(23) 교회 경영론으로 본 백영희 (거창고 전영창과 비교하며) - 2
서기 | 2019.11.14 | 추천 0 | 조회 305
서기 2019.11.14 0 305
2536
(24) 사후 30년을 돌아 보며 - 연구소의 역사적 고찰
서기 | 2019.11.17 | 추천 0 | 조회 319
서기 2019.11.17 0 319
2577
(25) 전교조가 그린 1964년의 꿈, 그 실패와 실체
서ㅣ | 2019.11.22 | 추천 0 | 조회 350
서ㅣ 2019.11.22 0 350
2588
(26) 타 교단과 같았던 시절, 총공회의 성장 과정
서기 | 2019.11.27 | 추천 0 | 조회 304
서기 2019.11.27 0 304
2633
(27) 전국의 공회가 한 가족으로
담당 | 2019.12.10 | 추천 0 | 조회 250
담당 2019.12.10 0 250
2677
(28) 교회를 방문하는 타 교회 목회자와 교인들
담당 | 2019.12.22 | 추천 0 | 조회 231
담당 2019.12.22 0 231
2703
(29) 개별 교회의 사경회, 공회의 인재를 실제 길러 내던 기회 (계속2)
담당 | 2019.12.31 | 추천 0 | 조회 190
담당 2019.12.31 0 190
2721
(30) 서부교회 4층, 강하기만 하다 실패
담당 | 2020.01.03 | 추천 0 | 조회 239
담당 2020.01.03 0 239
2744
(31) 내게 각인 시킨 목회자의 고난
담당 | 2020.01.09 | 추천 0 | 조회 159
담당 2020.01.09 0 159
2753
(32) 나는 적어도 의리는 있다. 나는 신앙의 의리를 본 적이 없다.
담당 | 2020.01.11 | 추천 0 | 조회 244
담당 2020.01.11 0 244
2755
(33) 공회의 굉장한 인재들, 그 어릴 때와 훗날
담당 | 2020.01.12 | 추천 0 | 조회 257
담당 2020.01.12 0 257
2437
대법원 최종 판결 (1)
이영인 | 2019.10.18 | 추천 0 | 조회 573
이영인 2019.10.18 0 573
2452
'이 말씀 전하다 이 말씀 때문에 죽는 것' - 종교인의 상식이 아닐까?
부공3 | 2019.10.27 | 추천 0 | 조회 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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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1
연구소 정체성에 대한 참담한 시비 (6)
담당 | 2019.11.02 | 추천 0 | 조회 443
담당 2019.11.02 0 443
2509
화산, 지진, 전쟁이라는 파란이 주는 선물
서기 | 2019.11.09 | 추천 0 | 조회 270
서기 2019.11.09 0 270
1355
B. 사후 30년을 돌아 보며 - 연구소의 역사적 고찰
서기 | 2019.09.29 | 추천 0 | 조회 330
서기 2019.09.29 0 330
1356
(12) 전원일치의 악용 - 탈선이란 제도로는 막지 못한다. (3)
서기 | 2019.09.29 | 추천 0 | 조회 506
서기 2019.09.29 0 506
1393
(13) 나의 요게벳 - 김명자 나인숙을 평생 그린다. (1)
서기 | 2019.10.01 | 추천 0 | 조회 492
서기 2019.10.01 0 492
1431
(14) 세상을 참 몰랐다. 지금은 세상을 안다. - 공회와 교인의 여러 현안을 중심으로 (1)
서기 | 2019.10.06 | 추천 0 | 조회 421
서기 2019.10.06 0 421
1470
(15) 국가에 반영된 공회 의견들 - 공회와 세상 (보충) (4)
서기 | 2019.10.09 | 추천 0 | 조회 1093
서기 2019.10.09 0 1093
1493
(16) 전국 최고, 최초, 최대를 휩쓴 기록들
서기 | 2019.10.13 | 추천 0 | 조회 356
서기 2019.10.13 0 356
2441
(17) 하늘에서 떨어 진 횡재, 백 목사님께 순종하면 그러했다.
서기 | 2019.10.20 | 추천 0 | 조회 534
서기 2019.10.20 0 534
2449
(18) 극단적 탈선과 가족의 고난, 백 목사님께 거역하면 그러했다.
서기 | 2019.10.24 | 추천 0 | 조회 396
서기 2019.10.24 0 396
2451
(19) 아버지께 배운 '경제 내핍'과 '백영희 자녀 교육'
서기 | 2019.10.26 | 추천 0 | 조회 363
서기 2019.10.26 0 363
2482
(20) 축소 시켜 허락하신 '호사스런 경험'
서기 | 2019.11.03 | 추천 0 | 조회 322
서기 2019.11.03 0 322
2498
(21) 백영희를 소개한 분들, 보물을 소쿠리에 끌어 담다. - 보충
서기 | 2019.11.06 | 추천 0 | 조회 355
서기 2019.11.06 0 355
2512
(22) 교회 경영론으로 본 백영희 (거창고 전영창과 비교하며) - 1
서기 | 2019.11.10 | 추천 0 | 조회 265
서기 2019.11.10 0 265
1196
A. 사후 30년을 돌아 보며 - 연구소의 역사적 고찰
서기 | 2019.09.07 | 추천 0 | 조회 440
서기 2019.09.07 0 440
1197
(1) 이 노선을 위해 특별히 예비 된 우리
서기 | 2019.09.07 | 추천 0 | 조회 499
서기 2019.09.07 0 499
1199
(2) 한 사람의 사례로, 각자 자기를 살펴 보셨으면
서기 | 2019.09.08 | 추천 0 | 조회 534
서기 2019.09.08 0 534
1231
(3) 백영희의 학습 세계, 나의 과거를 돌아 본다. (3)
서기 | 2019.09.11 | 추천 0 | 조회 532
서기 2019.09.11 0 532
1236
(4) 백영희 설교의 자료화, 1948년의 의미 (1)
서기 | 2019.09.14 | 추천 0 | 조회 440
서기 2019.09.14 0 440
1237
(5) 공회의 '선교관'
서기 | 2019.09.15 | 추천 0 | 조회 416
서기 2019.09.15 0 416
1261
(6) 모이면 썩고 흩어지면 사는, 진리의 세계
서기 | 2019.09.17 | 추천 0 | 조회 362
서기 2019.09.17 0 362
1306
(7) 우리는 못났다. 그러나 자라 가면 된다. (1)
서기 | 2019.09.20 | 추천 0 | 조회 434
서기 2019.09.20 0 434
1313
(8) 백영희 가정의 교육 - 이 노선 우리에게 주신 보석들
서기 | 2019.09.22 | 추천 0 | 조회 322
서기 2019.09.22 0 322
1314
(9) 공회의 결혼 이야기 - 20세에 결혼하고 30세에 아이 4명
서기 | 2019.09.22 | 추천 0 | 조회 445
서기 2019.09.22 0 445
1344
(10) 나의 총공회 1등 기록들 - 혼자 달리니 민망했다.
서기 | 2019.09.24 | 추천 0 | 조회 400
서기 2019.09.24 0 400
1349
(11) 공회의 감탄할 기록들 – 모두가 가장 평범한 것에서
서기 | 2019.09.27 | 추천 0 | 조회 452
서기 2019.09.27 0 452
1192
변치 않는 사명, 변하는 사명
담당 | 2019.09.07 | 추천 0 | 조회 184
담당 2019.09.07 0 184
1193
다윗의 전쟁, 그 모든 향방은 '성전' 건축
담당 | 2019.09.07 | 추천 0 | 조회 189
담당 2019.09.07 0 189
1147
다윗의 성전 준비로 본 연구소의 사명
담당 | 2019.08.30 | 추천 0 | 조회 284
담당 2019.08.30 0 284
1194
훌륭한 지도자의 당대와 후대
담당 | 2019.09.07 | 추천 0 | 조회 231
담당 2019.09.07 0 231
1146
압살롬과 시므이 (1)
담당 | 2019.08.30 | 추천 0 | 조회 266
담당 2019.08.30 0 266
1276
세상의 어느 장관, 공회의 어느 장관 (1)
담당 | 2019.09.18 | 추천 0 | 조회 324
담당 2019.09.18 0 324
1131
'시체를 도적질하여 갔다'고 퍼뜨리니 오늘까지..
담당 | 2019.08.24 | 추천 0 | 조회 307
담당 2019.08.24 0 307
1125
이론적 양심가들의 불장난과 시대의 균형추
담당 | 2019.08.21 | 추천 0 | 조회 374
담당 2019.08.21 0 374
1133
최악의 좌익이, 정상적 우익으로 - 안병직으로 본 공회 (1)
회원 | 2019.08.25 | 추천 0 | 조회 381
회원 2019.08.25 0 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