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11) 공회의 감탄할 기록들 – 모두가 가장 평범한 것에서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9.09.27
(주교 부흥 – 그냥 쓸어 담았다.)
* 주교의 기준
백 목사님에 대해 불신자와 타 종교인까지도 무조건 입을 다물지 못한 세계사적 기록들은 많다. 그 중에 첫째는 주일학교 기록이다. 먼저 공회의 주일학교는 ‘초등학교 6학년 이하의 주일 오전 8시 30분 출석’만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기본이다. 가끔 수천 명 단위의 주일학교라는 사례가 나오고 해외에서 1만명이라는 기록도 나오는데 ‘주일날 + 대예배 외의 모든 종류의 특별 프로그램을 합산’한 것이다. 성인이나 초신자를 위한 성경공부 등을 합한 기록이다. 서부교회 주일학교는 ‘오전 8시 30분’ ‘단 1회의 예배’ ‘초등학교 6학년이하’만을 말한다. 만일 이 시간 외를 포함하면 오후 4시 30분의 5천명 주일학생 예배가 ‘2부’라는 이름으로 더해 진다. 여기에 중고등학생이 더해지면 또 2천명이 추가 된다. 1만 5천명이 1년 52주 계속 이어 진다. 1년에 2회 특별행사는 여름의 성경학교와 겨울의 성탄절인데 이 때는 주일 오전 1회 출석만 1만 4천명이다. 이 때는 ‘출석 2만명’을 넘겨 버린다. 그리고 장년반 출석이 주일오전 4천명이니 장년반의 몇 배가 되는가?

* 어떻게 가능했는가?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 한겨울에 난방이 없었다. 상상을 할 수 있는가? 여름에는 선풍기 한 대가 없었다. 물론 공간에 따라 평소 교인들의 식사나 밤기도를 위한 곳은 선풍기나 벽 보일러가 있었다. 그런데 본당의 가장 넓고 중요한 곳에는 냉난방 자체가 없었다. 성인이 없었기 때문에 주일학교도 없었다. 그래서 여름에는 압력밥솥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고, 겨울에는 사람의 체온이 난방에 도움이 되긴 했다. 성경학교 때는 빵 3개를 선물, 성탄절에는 학용품으로 쓸 수 있는 노트가 몇 권이 추가 된다. 평소 주일에는 어떤 선물도 없다. 그리고 예배는 한 주간 전의 장년반 주일 예배의 설교를 요약한 것을 읽어 주거나 외우기를 하는 것이 전부다. 율동이나 아동용 노래도 없다. 장년반 찬송가만 사용한다. 이런 상태에서 나온 기록이다. 이 정도면 세계사적 기록이 아닐까? 어떻게 가능했는지 적으려면 끝이 없다. 반사들의 평소 기도, 토요일 오후에 골목을 다니는 전도와 아이들의 집집을 일일이 살피는 심방이 전부다. 어떤 포스터나 구호나 풍선이나 전도지조차 없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기독교의 첫 모습뿐이다. 바로 이 방법이 최고 최대의 전도와 심방과 예배로 이어 졌다. 원칙, 기본, 교과서 딱 그대로 했다. 결과를 예상하고 목표치를 둔 것이 아니라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다. 교사(반별 교사 > 반사)를 위해 특별하게 마련 된 교육이나 단계나 방법이나 특별히 모인 모임조차 전혀 없다. 아무 방법도 없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이 것이 기독교가 아닌가? 이 것이 초대교회가 아닌가?꼭 말하라고 한다면 볼 수 없는 성령의 역사를 우리는 봤다. 그래서 그 성령을 따라 순종했을 뿐이다. 그리고 따라 간 결과가 그러했다. 천하의 모든 좋은 방법이 특수한 상황에서만 가능했지 보편적이고 일반적이지 않다. 주일학교의 이 방법과 결과는 총공회 전국의 120곳은 물론 타 교단에서 견학하고 돌아 간 뒤에 시행한 결과도 같았다. 굳이 반사 1인당 또는 장년반 대비 주일학생의 비율을 따진다면 서부교회가 평균 이하였다.

정말 방법이 없었나?
1980년대까지 백영희 생전에는 토요일 오전까지 학교에 수업이 있었다. 그래서 토요일 오후에 주일학교 반사들은 동네 골목으로 갔다. 그리고 ‘교회 따라 갈래?’라고 한 마디를 던졌고, 가겠다는 아이가 있으면 집을 물어서 위치를 확인하고 부모가 있으면 허락을 받았다. 다음 날인 주일 아침에 데리러 갔고, 예배가 마치면 데려다 줬다. 서부교회는 이렇게 했고, 공회 전국 교회는 바로 따라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 교회는 서부교회와 비교할 때 비율적으로 더 나았다. 그 방법이 전부였다. 여기에 신학이 필요한가? 이렇게 하는데 교사 교육 과정이 필요한가? 새로 출발하는 반사가 있으면 먼저 하는 반사를 따라 다녔다. 빠르면 한 달, 늦으면 몇 달을 그렇게 구경하다 보면 그 것이 쉬워 보이고 또 현장에서 직접 겪은 실습이 되었다.

다른 교회들은? 교사 양성을 위해 반사 선발에 공을 들였고, 반사 양성 교재를 가지고 특별한 시간에 모여 배웠고, 반사 양성 과정을 모두 밝았고 수료증을 받고 사진까지 찍었다. 목사로 말하면 신학교 과정을 거친 것이고 의사로 말하면 의대 교육 과정을 거친 것이다. 공회는 목사를 하고 싶은 사명감이 신학교의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면 기술은 배우고 사명감을 들끓게 만들던 성령의 감동은 식어 진다는 병폐를 안다. 그래서 공회는 목사까지도 교인 상태에서 바로 목회자로 임명을 해 버린다. 그리고 목회자로서 가져야 할 상식은 목회자가 된 뒤에 양성원의 강의를 통해 참고하게 한다. 주일학교 반사는 아예 그런 사후 교육조차 없다. 평소 모든 예배와 설교를 통해 반사에게 필요한 것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어도 초대교회의 사례를 봐도 가장 쉽고 간단하고 기본적이며 아무 특별한 것이 필요가 없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을 했다. 여기에 무슨 백영희의 아이디어가 필요하며 그 분의 명석한 두뇌와 출중한 감각이 필요한 대목이 있나? 다른 교회는 이 방법이 너무 밋밋해서 하지 않았고, 공회는 했다. 그 차이가 전부였다. 공회가 우수해서 주일학교를 잘한 것이 아니고 다른 교회처럼 잘 할 수 있는 여건도 수준도 되지 않아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했는데 이 방법이 당시의 주일학교의 대부흥을 이끌었고 그 기록은 세계사적이 되어 버렸다. 세상 표현을 빌자면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었다. 교회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초대교회가 확대 재현이 되었고, 오늘 우리는 이 것이 바로 백영희 노선은 다른 교회와 구별해서 따로 살펴야 할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너무 쉽고 간단한 일인데, 모든 교파와 교회들이 전부 기본과 기초를 버렸기 때문에 서부교회와 총공회만 모든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고 그 기록을 일일이 설명을 하려면 끝이 없다. 그 끝없는 이야기 중에 어떤 부분이라도 말을 해야 할 때가 되면 한편으로 신이 나고 한 편으로 슬프기 짝이 없다. 왜 밭에 있는 보물을 열어 보고도 그냥 가버리는가?

(양성원 – 성경백독이 기본)
공회의 목사 과정은 ‘성경백독’이 기본이다. 교인도 읽어야 하는 백독이 아닌가? 공회 교회의 제대로 된 주일학생들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1년 1독은 한다. 집에서 좀 챙기면 2독도 한다. 중학교 1학년이 되면서 학습을 받을 때 성경 5-6독은 기본이고 집에서 좀 챙긴 학생들은 10독 이상이다. 목사의 성경 백독은 기본 중에 기본이 아닐까?

나는 미국에서 성경신학으로 유명했던 카브난트에서 공부를 했다. 신학은 일반 학문을 기준으로 보면 대학원 과정이며 목사 과정은 100학점의 3년 과정이 기본이다. 여기에 헬라어 히브리어라는 필수 고전 외국어가 20학점 정도로 배치 된다. 원어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설교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려면 신학교 3년간 그 공부만 죽어라고 해도 못한다. 한국의 상위 그룹 학생들이 중고등학교 6년을 영어에 집중해도 영어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설교에 사용할 수 없다. 한국 학생의 중고등학교 6년의 절반은 영어에 시간을 뺏기는 정도가 아닐까?

세계적으로 일반 신학교의 교과 과정을 본다면 성경을 1독 제대로 할 시간과 여건이 주어지지 않는다. 공회는 누가 뭐라 하든지 말든지 성경 백독을 필수 과목으로 못을 박아 놓고, 일반 신학교가 목숨을 걸고 가르치는 신학의 기본 학문이며 전부라 할 수 있는 헬라어 히브리어의 고전 외국어는 알파벳을 구경시키는 정도로 끝낸다. 한국에서 태어나 목사가 되는 일반 수준에서는 해 봐야 써먹지 못할 것이니 그 속에 뛰어 들어 갔다가 소용 없이 빠져 죽거나 혹시 어학에 천재적 소질을 가져서 써 먹을 만큼 되는 사람은 교만에 빠져 죽는데 그 써 먹는다는 표현도 남들보다 낫다는 것이지 강단에서 원어 성경으로 가르칠 실력이 된다는 말은 아니다.

공회에는 서울대 영문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한 서영호 목사님이 있다. 이 분이 1983년, 유학 공부를 준비하던 내게 딱 한 마디를 해 줬고, 나는 평생 그 한 마디 때문에 나는 물론 우리 교인들 전부를 영어 문제로 고민하지 않게 지도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는 것이다. 서 목사님은 겸손하면서도 천재적 실력을 갖춘 학자다. 그 분이 경남중고교와 서울대 영문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했고 미국에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거쳐 Ph.D를 취득하느라고 10년을 미국에서 살았다. 그 분이 막 귀국한 상태에서 내게 한 말이 ‘내가 솔직히 말하면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 영어를 만들지 못합니다. 문법으로는 되지만 원어민이 읽으면 어색합니다. 외국인이 아무리 어학을 해도 원어민과 다른 한계입니다. 그러니 중1 영어 교과서를 통째로 암기하는 것이 영어 공부에 지름길입니다.’라고 가르쳤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했으면 자기 비법을 감춘다고 생각했을 것이나 그 분의 말이기 때문에 머리 속에 새겨 들었다. 유학의 일정을 백 목사님이 챙기고 있어 토플 영어를 했고 중1 교과서를 암기하지 않았으나, 나는 1994년부터 시골 교회 교인의 학생에게 시내로 학원을 다니지 말고 집에서 중1 교과서를 암기하라며 서영호 목사님의 비법을 알려 줬고, 암기하는 방법은 주교 공과 외우는 나의 방법을 알려 줬다. 이 방법으로 1998년 신풍교회 반사는 국립전남대학교의 어학원을 통째로 무료 위임 운영권을 받았고, 여수 시내의 어학원 전체가 존폐 문제가 걸렸다고 교육청에 집단 민원을 제기하여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영어의 문법, 토플, 원어민 수준의 듣기와 말하기까지 모두가 함께 해결 되는 방법은 너무 쉬웠고, 한 때 여수 시내를 휩쓸었다. 이 것이 돋보이면 세상과 교회를 구별하는 나의 걸음에 문제가 될 것이어서 하나님은 다른 일을 통해 막았다. 이미 주일학교의 가장 쉬운 방법이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더 쉬웠다. 영어를 포기하고 대학을 졸업한 나에게는 영어가 이 노선으로 사는 우리 학생들의 학교와 진학과 진로를 활짝 열도록 만드는 만능 키처럼 되었다. 오늘 내 주변 교인 대부분에게 제공 된 직업까지 열어 주었다.

목사의 ‘성경백독’, 이 말이 이상한가? 교인도 성경백독은 해야 할 터인데 무슨 목사에게 성경백독이 특별한가? 이 것이 특별하게 들리게 된 오늘의 교회가 이상하고, 성경백독을 주장하는 공회는 너무 쉽고 지극히 당연한 기본을 말했다. 어떤 교단도 그렇게 하지 않다 보니 공회는 혼자 달려 혼자 1등을 했다. 부끄럽다. 안타깝다. 탄식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1등이 주는 행복이 있다. 나는 백영희가 좋다. 하나님과 말씀을 가장 쉽게 가장 잘 알도록 했기 때문이다.

(찬송가, 예배의 3요소 중 하나인데)설교와 찬송과 기도를 예배의 3대 요소라 한다. 성경과 나란히 놓을 수 있는 것이 찬송이다. 설교는 읽고 배우고 생각을 해서 깨달아야 비로소 양식이 된다. 지성 이성이 총동원 되는 고난도 학습의 과정을 거친다. 찬송은 새들도 노래하는, 감성의 세계다. 복잡할 것이 하나도 없다. 흥을 돋운다. 기도는 살다가 어려움을 만나면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열심히 한다. 우리가 아는 설교와 찬송과 기도는 이렇다. 그러다 보니 가난하고 못살 때는 기도가 흥왕했고 지금 잘 먹고 잘 사는 시대가 되니 기도는 멋있는 행사용 인사말로 전락해 버렸다. 설교는 어려우면 듣기를 싫어 하니 설교 중에 농담을 넣고 세상 예화를 사용하고 시간도 줄여 버리는 대신 찬송만 찬양의 이름으로 자꾸 비대해 진다.

교회가 건강하고 고난을 이기는 강한 교회가 될 때는 깊은 말씀이 끝이 없고 그 말씀을 새기느라고 기도에 빠져 어느 바위에 숨었는지 찾기도 어려웠다. 찬송은 그 가사에 녹아 있는 말씀과 기도의 맺힌 것을 풀어 내기 위해 음이 낮았고 느렸다. 요즘 찬송은 술 먹고 취하여 밤새 부으라 마시라 인생을 노래하자고 기뻐 뛰며 난리다. 그렇게까지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도 없고, 죄송한 것도 없고, 자랑스러우며 떳떳한가? 그렇게 자연과 인생을 누릴 정도로 모두가 경지에 이르렀는가? 혹시 찬송을 빌려 학자는 고전 음악에 심취하고, 일반인은 복음성가라는 이름으로 흘러 간 옛노래에 저려 있고, 청년 아이들은 랩이라는 쥐약 마약 먹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닌가? 내가 좋으면 성령도 좋아 하시나, 성령이 좋아 하실 때 성령에게 붙들려 내가 좋아하나? 누가 원동이며 누가 피동인지, 누가 중심이고 누가 변방인지 사실 모르겠다.

일단 100전에 순교 순생적 교회의 분위기를 기본으로 본다면 오늘 교회의 예배, 특히 오늘 찬송은 제 정신이 아니다. 세상의 유행가도 부르기 싫으면 그냥 두지 가사를 바꾸지는 않는다. 한국교회 찬송은 20년에 한 번씩 가사를 뜯어 고친다. 뜯어 고칠 때마다 핑계야 많다. 그런데 무식한 사람이 봐도 20년 단위로 고쳐 대니 앞에 고친다고 한 사람이 틀렸거나 새로 고친다는 사람이 틀렸거나 둘 중에 하나는 틀렸다. 찬송가 곡에 포함하는 인물과 동기를 보면 좌익 우두머리의 사상가도 들어 있다.

공회는 일제 때부터 사용하던 신편 찬송가를 기본으로 가졌다. 1960년대에 새찬송가로 바꿀 때 몹시 기분이 상했지만 분쟁으로 삼을 정도는 아니어서 문제가 있는 부분들을 짚기는 했지만 그대로 사용했다. 1983년에 모든 교파가 뒤범벅을 해서 통일찬송가를 만들자 더 이상 따라 갈 수가 없어 새찬송 이전의 신편 찬송가로 돌아 가서 옛것을 기본으로 삼고 옛날 어렵고 고난을 겪을 때 늘 부르던 찬송 200곡을 추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대로다. 교계는 새천년을 핑계로 또 찬송을 바꾸었다. 바꿀 때마다 마치 십계명이나 되고 사도신경이나 되는 것처럼 옳은 일이며 교회의 표준이라고 떠들었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이단이라는 낙인을 쉽게 찍었다. 이 사람들은 ‘이단’의 단어를 알기나 하나? 나의 외가는 모두 고신이다. 고신에서도 중심부에 있다. 그 중심에 있는 한 분이 ‘고모님! 우리처럼 새찬송가를 사용하고 계셨네요. 이단인 줄 알았는데 새찬송가를 사용하네요.’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들려 준 이야기다. 1983년에 만들어진 통일 찬송가를 사용하지 않아서 당한 고초는 전국 공회에 심대한 타격이 되었다. 그래서 대구공회라는 공회의 3분의 2 되는 교회들은 찬송가를 바꾸었다. 지금은 후회한다고 본다. 그 통일찬송가를 2000년이라는 새천년이 열린다고 또 다시 버리면서 통일찬송가에 잘못된 부분이 많다고 하니. 그 만든 새천년 찬송가를 다시 버리기 위해 또 새천년 찬송가를 트집 잡고 있다.

공회의 자랑은 많다. 그 중에 하나가 이제 세월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공회 찬송가’조차 공회의 자랑이 되었다. 이 찬송가는 새천년이라는 이름이 정치계 문화계 종교계까지 휩쓸 때 한국교회가 만든 새천년 찬송가, 그 찬송가 이전의 통일찬송가, 그 찬송가 이전에 만든 새찬송가, 그 찬송가보다 더 앞에 만들어 진 일제 때 선교사들이 서툴게 만든 찬송가를 중심에 두고 있다고 말한다. 박물관에 전시 될 찬송가를 우리는 지금도 매 예배 때 사용한다. 2019년의 주일학교 어린 아이들까지도. 새 세대를 이길 수 없는가? 옳고 바른 것, 신앙에 속한 것까지도 새 세대를 이기지 못하면 그 것은 세상에게 삼킨 기독교가 아닌가? 그 것은 탈선이며 속화일 것이다. 건축 자재는 더 싸고 더 튼튼한 것으로 바꾸어 예배당을 건축할 수 있다. 그러나 예배당의 분위기는 예배에 맞게 맞추는 것이 맞지, 극장식 취향으로 만들어 관람객이 무대를 향해 너희들 한 번 놀아 봐라 내가 음미해 줄게 라는 식이 된다면 이 것은 발전인가, 속화인가?

공회 찬송이 자랑스럽다. 누구를 만나도 찬송가를 강조한다. 그러면서 오늘의 신앙이 우리의 고난 중에 견뎌 온 과거의 신앙에 비해 잘못 되었고 그 극명한 사례 중에 하나를 찬송가라고 나는 말한다. 손양원 목사님의 가족들은 신앙 면으로 넓다. 물론 일반 교회가 볼 때는 좁다고 생각할 듯하다. 내가 볼 때는 넓다. 예술가 집안이니 더욱 더 그렇다. 나는 5년 전부터 그 분들과 가족 이상으로 서로 가깝게 지낸다. 그 분들에게 ‘공회 찬송’을 말했다. 단번에 알아 들었다. 바로 부모님의 생전 찬송이라고. 그리고 내 부탁을 들어 주셨다. 공회 찬송의 가사는 최소한 1983년 이전의 새찬송가 가사와 가장 가까운데 찬송 테이프를 찾아도 가사가 틀려 어린 교인들에게 찬송 테이프를 소개하지 못한다는 점을.

이미 박흥우 교수님이 자원봉사로 취입해 준 찬송가에 이어 손양원 가족회가 나머지 201곡까지를 모두 취입해 주셨다. 나는 음악을 모른다. 성악가는 한 이틀이면 한 자리에서 201곡을 다 만들어 주실 줄 알았다. 박흥우 교수님은 3곡 5곡을 보내기 위해 몇 달씩 시간을 내야 했다. 그냥 바빠서 그런 줄 알았다. 그 분은 자신을 다 쏟아 넣었다. 그리고 손양원 가족회가 201곡을 완성해 줄 때 비로소 그 작업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조금 알게 되었다. 몇 곡 정도만 취입하는 것이지 이렇게 201곡 전체를 부탁하는 것이 참 무식해서 부탁한 것이라고, LA에 계신 음악 전문가가 내게 해 준 말이다. 그 때서야 뒤늦게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는 무식하다. 그래서 용감하다. 이런 사람이 임진왜란에 살았더라면 충무공 옆에서 신나게 뛰었을 것같다. 일찍 죽었으면 무명용사가 되었을 것이고, 운좋게 몇 전투에서 살아 남았다면 역사에 이름 한 자가 올라 갔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일제 때 살았으면 지나 가는 일본인 기차가 미워서 돌을 던졌을 것같다. 잡혀서 경찰에게 매를 맞고 기록에 남았으면 일제 때 불량선인으로 눈치 보고 살다가 해방 후에 독립유공자가 되었을 것이고, 잡히지 않았으면 동네마다 한둘씩 있는 양아치나 되었을 듯하다. 내가 백영희를 만나 배우지 않았으면 총공회 욕을 제일 많이 하고 살지 않았을까? 나의 아버지는 돌아 가실 때까지 백 목사님 욕을 했다. 양혜원 일을 두고 백 목사님은 손을 떼고 환자들에게 넘겨 주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 말이 섭섭해서 욕을 하다 나중에는 선을 넘는 표현을 했다. 그 것이 오늘도 나의 집안 형제들에게 쏟아 지고 있다. 백영희, 그 이름이 늘 감탄스럽다. 이런 망나니로 살 인간에게 가장 쉬운 길에서 보배로운 길을 열어 주셨다. 그래서 그 자녀들 7남매가 수백 건으로 나를 고소하지만 나는 30년째 매일 그 분들과 손주 20명을 위해 기도한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 백영희의 신앙 호적에서 탈퇴를 해 버렸고 나만 남아 버렸다. 나는 현재 백영희 신앙의 호적에 1명만 남았다. 그 자녀들은 나를 막내 동생으로 대해 줬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남녀분리)아직도 공회 교회는 예배당의 좌석을 남반과 여반으로 나눈다. 예전에는 다 그렇게 했지만 세월 속에 합석을 했다. 그 것을 발전의 이름으로, 또 여성의 권리를 찾아 준다는 명분으로. 그러나 공회는 속으로 타락한 세상은 주님 오실 때까지 이 땅 위에서는 남녀를 구별하지 않으면 화재가 난다는 점을 성경과 교회사를 통해 잘 파악하고 있었다. 60년대부터 남녀 좌석이 예배당 안에서 없어 지고 있었다. 80년대에는 다 없어 졌다. 공회는 오늘도 과거 모습 그대로 버티고 있다. 가족석도 없다. 덕분에 욕이라는 욕은 다 받았다.

2019년, 지금은 여성을 쳐다 보면 성모욕으로 잡아 가고 오해를 피하려고 시선을 돌리면 여성 무시라며 대학교수조차 사표를 받는다고 난리다. 여성은 자기의 몸을 직접 보라고 벗어 제치고 옷의 투명도를 높이며 온갖 발광을 다한다. 그리고 천하 남자들에게 결혼의 기회를 30세 이전이 어렵게 만들고 버틴다. 예전보다 음식이 좋아 지니 발육은 빨라 지고 온갖 그림이 남자들의 눈과 귀를 뒤흔든다. 이런 환경에서 아무 여자나 덮칠 충동을 받지 않는다면 장애자가 아닐까? 중들과 신부들이야 혼자 사니 뒤로 엉망인 것은 역사적으로 유명하다. 목사는 루터와 칼빈 때문에 5백 년 전부터 결혼을 하는 바람에 여자 문제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제 아내를 둔 목사들조차 온통 뒤흔들고 다니는 세상이 되다 보니까 드디어 무너 지기 시작했다. 어느 한두 곳이 아니다.

바로 이런 때 공회의 남녀 구별은 이제야 제대로 빛을 발하고 있다. 교회의 예배와 모든 행사에서 남자와 여자를 떼 놓아 버리니 봤다고 시비하고 안 봤다고 시비할 일이 없다. 세상의 남녀 문제는 누가 먼저 전부 만들어 버렸나? 적어도 한국 사회의 남녀 문제는 교회가 일을 먼저 벌였다. 불신자도 남녀는 서로 어려워 했다. 미리 조심했고, 꼭 필요하면 뒤로 나쁜 짓을 했다. 그런데 교회가 예배당 안에서 어릴 때부터 손에 손을 잡고 뒤섞어 놓으니 그들의 신앙이 그들의 자라 나는 이성욕심을 제어 하고 다스렸겠나, 아니면 신앙의 발전보다 앞서 뻗어 가는 이성이 신앙의 빈틈을 노렸거나 아니면 아예 제압을 해버렸겠나?

주일 오전 예배에 온 교인이 좌우 옆으로 향해 앞뒤 다른 교인을 향해 손을 맞추며 인사를 해대니 신앙 없는 청년들이나 평소 혹심을 감춘 이들이 마음 드는 사람 주변에 앉았다가 손끝을 닿아 보는 것은, 이 글을 적는 나만의 나쁜 추억일까 아니면 이 글을 적는 나는 그런 일이 없는데 샛별초등학교와 거창고등학교라는 교육 과정을 통해 목격한 경험담일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모든 학교는 4학년부터 남녀는 반을 구별했다. 내가 다닌 학교는 그 때부터 남녀를 나란히 앉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남녀 학생을 쌍쌍히 팔짱을 끼고 뱅뱅 돌아 가는 포크댄스를 시켰다. 나는 그 때 신앙과 상관이 없었다. 그냥 경남 거창의 시골 남자 아이였다. 나는 운동장 마당에 버려진 나뭇가지 하나를 쥐고 내 손을 잡으려는 여학생에게 나무 가지를 잡으라고 인상을 썼다. 이 학교는 반골 학교여서 중학교 허가를 내주지 않아서 나중에 김옥길 이화여대 총장이 문교부 장관이 된 다음에 중학교가 설립되었고 그 과정에 지금은 보수가 되어 있고 당시는 진보 좌파의 일선에 있던 김동길 교수가 힘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를 1970년 공립학교로 가자 입학식 첫 주간 수요일인지 자치 조례 때 학칙을 소개해 주면서 연애하면 정학, 두 번 하면 무기정학, 세 번 하다 들키면 퇴학이라고 했다. 불신 학교도 그랬다. 여학생에게 편지를 넘기다 틀켜도 연애로 본다고 했다. 1학년 중에는 그런 아이들이 없었다. 2학년이 되자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360명 한 학생 전체에서 한둘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벌써 친구들이 한 학년 밑에 여학생들과 사귀는 것을 봤다. 그리고 거창고교는 머리를 다 깎아 버리던 1970년대 유신 정권 하에서 전국 고등학교 중에서 제일 먼저 머리를 길러 줬고 남녀 학생을 한 반에서 함께 공부 시켰다. 기독교 학교에 교장 선생님이 유학 1호 출신이라 파격적이었다. 나는 그 때 구경을 참 잘했다. 이 글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소개하기 힘든 이야기도 많다.

그리고 나는 공회 신앙에 철이 들면서 남녀의 구별에 대해서는 이미 좋은 구경을 잘 했기 때문에 구구절절이 이해가 되었다. 지금도 아마 전국 공회 교회들 중에서 부공3, 신풍교회가 제일 엄할 것이다. 뒤로는 무슨 짓을 하든 적어도 앞에서는 엄하게 구별한다. 그렇게 한다고 막아지는가? 막아지지 않는다. 그런데 풀어 놓는 것과 비교하면 결과적으로는 그래도 낫다. 여기에 하나 더 얻는 것이 있다. 어릴 때부터 막아 놓으면 뒤로 나쁜 짓을 해도 그 사람 속에 양심이라는 것이 그를 찔러 댄다. 양심에 가책이 있으면 이성의 발전 과정을 늦출 수는 있다. 그 틈을 타서 일찍 결혼을 하도록 권한다. 그래서 18세 결혼까지도 시키고 있다. 연애를 할 바에는 제대로 된 연애, 떳떳한 연애, 책임을 지는 연애를 하고 연애의 목표를 달성 시켜 버리면 되지 않을까?

1984년, 미국에서 백 목사님 자녀들과 첫 논쟁은 이성 분리 문제였다. 아버지의 분리는 효력도 없고 미개하니 폐지해야 한다는 지론들이었다. 막아 대던 한국보다 풀어 놓은 미국이 훨씬 합리적이라는 말도 했다. 얼마 지난 후 우연히 방송에서 미국 10대의 실상이 나왔다. 나는 바로 그 분들에게 반론을 폈다. 풀어 놓으면 다 엉망이 되고, 막아 놓으면 다 막힌다는 생각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껴 진 것이지 그래도 막아 놓은 것이 좀 낫고 그래도 풀면 심각해 지기 때문에 교회는 막는 것이 더 낫다고. 최근의 모든 뉴스를 볼 때마다 백영희, 그 이름이 그립다. 고맙다. 참으로 그를 알게 되지 않았더라면 나도 일반 교회처럼 다른 공회처럼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신풍교회 강단에서, 그리고 5월과 8월의 집회 강단에서 목청을 높인다.

연애를 해라. 일찍 해라. 결혼처럼 좋은 연애는 없다.
아무나 만나고 다니다가 나중에 결혼을 한 다음에 상대방에게 미안한 과거를 만들지 말라.
그대신 조금만 참으라. 제대로 된 연애를 마음껏 해라.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왜 기웃거리나. 도적놈처럼. 생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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