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8) 백영희 가정의 교육 - 이 노선 우리에게 주신 보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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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2
(나와 동지들의 자녀 교육)
나의 4명 아이들은 초등학교만 다녔다. 공회의 목회자 월급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다. 부공3에 목회를 하는 분들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다 그렇다. 오늘의 교육 사회 환경, 이 노선의 경제 원칙, 이 노선의 세상 교육과 진로의 사고방식, 이 3가지를 한 곳에 모아 놓으면 이 것이 정상이다. 총공회 5대 공회와 200개 교회 중에 연구소가 운영하는 부공3 교회들만 그렇다. 그래서 부공3은 규모가 적든, 신앙이 형편이 없든, 부공3은 이 노선의 실질적인 중심이다.

이 글을 관심 있게 읽도록 하기 위해 아이들의 교육 결과를 먼저 소개한다. 이미 소개했지만 나는 중간 정도의 성적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노선의 교육법은 마치 굉장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도 굉장했다. TV 3사의 취재를 피하느라고 수 년간 애를 먹었다. 이 노선의 학생 교육과 진로 지도, 이 세상 그 어떤 최고의 길이라도 갈 수 있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일반 교인이라도, 이 원칙이 해당 되면 우리의 복음이다. 특수한 사람에게만 해당 된다면 남의 자랑이며 나의 슬픔일 수도 있다.

한 아이는 19세에 6개월을 공부하고 사법고시를 1차 합격하고 2차도 합격점에 소수점 이하로 접근했다. 1차 시험이 주일이고 어학 자격 문제 등으로 사시를 칠 수 없다고 생각하여 법학과를 다녀도 시험을 준비하지 않았다. 8월 집회가 끝나면서 갑자기 제도의 변경이 일시 예고 되었다. 6개월만에 1차, 그리고 연이은 시험의 성적은 훌륭했다. 신림동이나 학교 고시반을 전혀 거치지 않고 1급 장애인 어머니 때문에 집에서만 공부한 과정 때문에 아는 사람들은 모두 충격이었다. 그러나 공회의 주일학교 방식과 공회의 재독 집회 방식을 아는 사람들은 정말 효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서부교회의 주교 방식은 80년대에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 졌다. 그 핵심은 어느 교회 어느 교인도 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회의 재독 집회는 남들은 상상도 못하겠다 하지만 막상 해보면 불신자 가정의 첫 참석 초등학생도 모두 한다. 하루 4번, 1번에 2시간을 녹음만 듣고 책만 읽는다. 공회 수준은 낮다. 공부가 체질이 아닌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된다. 이 것이 바로 공회의 특수성이다. 가장 쉽고, 너무나 당연한데, 아무도 하지 않을 때 공회는 했을 뿐이다. 시대가 발전하며 학습의 집중력은 사회 전체가 약화 되었으나 공회는 과거 그대로다. 그래서 크게 우수하지 않은 아이가 마치 크게 우수한 것처럼 되었을 뿐이다. 공회의 특별한 점은 분석해 보면 거의 다 그런 식이다. 다른 교회가 다 남녀를 뒤섞을 때 섞지 않음으로 돋 보일 뿐이다. 과거 다 그러했다. 그 때 공회는 별 것이 없었다. 남들이 모두 주저 앉다 보니 공회가 마치 뭐나 된 것처럼 보인다. 공회는 수십 년 전의 예배와 설교를 오늘도 그대로 판에 박아 놓고 반복한다. 그 과정을 거친 아이들이 옛날식 공부를 하게 되고, 요즘은 옛날식 공부를 시킬 수가 없어 전부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공회 아이들은 마치 우수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좀더 아는 사람은 백 목사님 가정의 학습 내역을 전부 알고 있던 덕분인 줄 안다. 나와 집안의 수준을 미리 설명했으니 이 노선을 강조하는 사례다. 지금 군에 있다. 목사님은 막내 사위 서영준 목사님에게 2차를 포기시켰고 나도 포기 시켰다.

또 한 아이는 초등학교 졸업하고 1년 뒤에 대학을 들어 가면서 학교의 영어 대화를 휩쓸었다. 독학으로 공부했고 토플 630점대에 이를 정도였다. 그 학교의 영문학과 교수들보다 앞섰다. 이 이야기도 서울에서야 웃을 정도지 않을까. 그 정도 영어 실력은 흔할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지방' 국립대였기 때문에 특별했고 그 경력 때문에 카이스트로 편입해서 졸업한 뒤 연구소에서 나를 돕고 있다. 고마울 뿐이다. 연구소는 법정 최저임금 이상은 주지 못한다. 실제로는 법정 최저 임금의 절반만 줘야 하는데 최근 세상법을 다 지키라는 고소가 빗발치는 바람에 할 수 없어 ‘법정 최저 임금’을 지키고 있다. 손해가 많다. 모두 소개하려면 그 내용이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내가 지도하는 학생들 전부는 원래 실력이 없으면 중간쯤 간다. 원래 중간쯤 가면 돋보이게 선두에 선다.


(공회의 세상 교육과 진로)
공회 목회자는 의무적으로, 공회 교인들은 마음에 목표를 삼는 기준이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집 밖에서 사용하는 돈은 알아서 벌고 알아서 쓴다. 자기가 번 돈으로 공부하는 것은 막지 않는다. 그런데 돈을 벌어 보고 돈 맛을 알고 나면 저절로 해결 된다. 할 만하면 공부를 하고, 공부를 하면 열심히 한다. 백영희 설교가 세상이나 신앙이나 만사 원리를 이렇게 가르친다. 부공3은 연구소 직원들의 교회여서 설교 연구를 심층적으로 했고, 그래서 타 공회 목회자들이 이론은 알지만 실제 해 보지 않은 길을 우리는 쉽게 해 왔다.

스스로 벌어서 공부를 해도 자기 교회에서 오갈 수 있는 범위, 꼭 멀리 가려면 부공3 우리 교회를 출석할 수 있는 곳으로 간다. 그래서 부공3 목회자 자녀들은 100% 부공3 안에만 있다. 2명은 타 지역으로 갔으나 그 곳에서 개척을 목표로 혼자 예배를 드리거나 실시간을 통해 본 교회 교인 자리를 지킨다. 그러다 보니 부공3의 핵심 교인들은 거의 그렇다. 부공3이 비록 규모가 적지만 그래도 교세를 지켜 내는 것은 아이를 많이 낳고 자기 교회를 지키기 때문이다.

80년대 설교에는 약하게 섞여 나오지만 70년대 설교에는 아주 구체적이고 강하게 설파했다. 생명의 본능이란 도우면 나약해 진다. 신앙은 후퇴를 한다. 던져 놓으면 저절로 자란다. 현실에 던져 놓아야 비로소 제대로 된다. 신앙으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각자를 알아서 책임 진다. 연구소 직원들인 부공3 목회자들은 그 직업 때문에 실제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외친다. 이 노선은 모든 면에서 정말 좋은 것이라고.


(백영희 가정을 접한 혜택)이 번 글에서 주로 소개하고 싶은 것은 백 목사님 자녀들의 가정 교육이다. 앞에서 소개한 나의 아이들과 공회 학생들을 지도할 때 일반 공회 교인들과 달리 나는 백 목사님의 자녀 가정을 들여다 봤고 이 때문에 더 많이 얻어 챙겼기 때문이다. 백 목사님 자녀 7남매 부부와는 가족처럼 지냈고 20명 손주 중 17명은 다소간에 직접 가르쳤다. 3명도 가까이에서 오랜 세월 지켜 보고 있다. 연구소 직원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20여명 직원 중에 대학을 나온 것은 나뿐이어서 유학을 가게 되었고 그 결과 그렇게 연결이 되었다. 이 가정을 접하며 얻어 챙긴 것이 수도 없이 많다. 그 중에 ‘교육’이라는 단어, 그 하나만 가지고 지켜 봤고 또 주고 받으며 나는 백 목사님이 설교 중에 강조한 세상 교육의 세계는 말이 아니라 실제 가능하다고 알았다. 그래서 나의 자녀와 우리 공회는 세상 교육에 관한한 전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다. 연구소와 부공3이 비록 소규모지만 버텨 내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내가 나의 아이들과 공회 모든 학생들의 ‘교육’과 ‘진로’를 두고 자신 있게 공회의 원칙을 앞서 끌어 갈 수 있었던 첫 배경은, 다른 글에서 설명한 ‘샛별초’와 ‘거창고’라는 특수 교육 과정을 직접 거쳤기 때문이다. 그 시대 그 시골 기준으로 천하에 제일 좋은 이상적 교육을 받았지만 그 실제 내면을 보니 전혀 겉 다르고 속 달랐다. 그들의 교육은 헛발질을 했고 백영희 이 노선이 정확했다. 그 교육의 체험 때문에 나는 미국 유학 생활은 물론 백 목사님의 자녀 가정의 교육 내용을 늘 관심 있게 지켜 봤고, 이 노선 설교 내용이야 말로 하나님의 절묘한 은혜 중에 하나로 파악했다. 백 목사님 가정의 교육 내용을 소개해야 참고가 되지 않을까? 나는 그들의 세계를 그림의 떡으로만 생각했다. 지금은 나는 그 정도가 가능하다. 신앙의 더 나은 목표 때문에 절제하거나 막고 있을 뿐이다.


(백 목사님 가정의 학습력)
백 목사님의 큰 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에서 바로 2년을 월반하여 중학교에 들어 갔고, 월반이 계속 되어 서울대 법학과를 20세에 졸업했다. 1930년생인 그의 대학 졸업은 1950년 6.25 직전이다. 이 정도 기록은 없을 듯하다. 나는 감탄했다. 그래서 잘 집안을 조사해 봤다. 이 집안의 재주가 천부적이면 내게는 딴 나라의 일이다. 내게도 가능한 면이 있다면 좀 나눠 받고 싶었다. 목사님의 딸 셋은 모두 부산의 최고 명문 부산여고 출신으로 딸 둘은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왔다. 큰 딸은 부산대 법학과를 입학했으나 부친이 고신에서 극한에 몰려 가정을 책임 져야 했기 때문에 서울로 갈 수가 없었다. 다른 아들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한 아들은 설명이 좀 필요하다. 이과 쪽이며 기술이 특별하다. 막내 아들은 명문 경남중학교를 졸업한 후에 바로 미국의 대학에서 3년 과정을 통해 Ph.D 박사 학위를 받았다. 손주 20명은 더 화려하다. 미국 전국 고교 수학대회 1등, 예일대를 거쳐 하바드 의대 등이다. 하바드 미식 축구부에서 활동한 손주 하나의 이야기는 더욱 많다. 20명 손주 전부가 다 화려하다. 시카고대를 졸업한 손주가 가족 중에서 열등감을 느껴야 하는 상황이다. 나는 7남매 자녀 부부 전부와 사생활을 함께 말하며 살았다. 20명 손주 중에 17명은 다소 간에 내가 직접 가르쳤다. 3명도 성장 과정과 출세 과정을 잘 안다.

그리고 나는 이들을 통해 2 가지 비법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백영희처럼 진실하게 잘 믿고 나가면 된다. 그 가정을 아무리 연구해 봐도 확실히 하나님이 챙겨 주셨다. 눈에 잘 보였다. 그래서 나도 잘 믿고 진실하면 어떤 면으로 저렇게 확실히 챙겨 주겠다고 느꼈다. 멀리 있는 사람을 책이나 간접으로 소개를 받으면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겉돈다. 직접 모두를 겪어 보니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챙겨 주는 은혜의 세계를 눈으로 봤고 손으로 헤아릴 수 있었다. 한 가지를 더한다면 하나님은 틀림 없이 기회를 주시는데 기회를 잡으면 되고 방심하면 그냥 지나 간다는 점이다. 하나는 은혜, 하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 같은 평범한 사람도 이제는 백 목사님의 가족 전체를 최소한 세상 공부 면으로는 부러워 하지 않는다. 나는 마음을 먹으면 나의 식구와 나의 교인들을 거의 다 그렇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백 목사님을 직접 모시게 되면서 그 가족을 접했고 그러면서 나는 이런 생각하지 못했던 신앙의 간접적인 보배들을 대거 얻을 수 있었다. 그 얻는 방법이 얻으려고 해서 얻기도 했지만 그런 의도와 상관 없이 정말 나의 뜨거운 충성심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그 가족 전체를 열심히 모시는 과정에 받게 되었다. 떡을 만지면 떡고물이 묻는다 했던가? 향수병을 만지면 향내가 난다고 했던가? 기름을 만지면 기름을 손에 묻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보배로운 가족을 생활 속에서 겪었다. 나만큼 그렇게 함께 한 사람은 없다. 내가 제일 많이 모셨다. 그래서 나는 제일 많이 받았다. 그래서 늘 그 가족에게 감사할 뿐이다. 지금 수 백 건으로 나를 고소하지만 그 것은 그들의 오해고, 나는 그들에게 받은 감사는 늘 따로 계산한다.

(그 가정에 대한 정밀 분석)몇 분의 자녀는 공부를 잘해서 특출나게 공부를 잘하고 또 좋은 학교를 들어 간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집 앞에 학교를 다니다 보니 그렇게 된 것처럼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나의 경우와 그 자녀들의 경우를 나란히 놓고, 이 것은 특수하지만 그 특수한 것이 알고 보면 누구에게나 한 번씩은 지나 가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백 목사님 설교에도 나온다. 일일이 성경과 설교록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가족들이 그렇게 된 이면의 사정을 이리저리 다 알게 되었다.

손주들의 경우도 그러했다. 다 그렇지는 않으나 대부분 그러했다. 모두 좋은 기회를 우연히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은 특별히 챙겨 주셨고 그 가족들은 그런 기회를 그냥 지나 칠 수 있는데 방심하지 않고 단단히 붙들었다. 손주들 중에는 부모의 노력으로 길을 열어서 출중하게 된 경우도 있다. 그 부모는 내게 오히려 방법을 배웠다. 내가 먼저 다른 가족들을 모시면서 그 분보다 형제들을 더 잘 알게 되니까 그렇게 되었다. 현재 그 가족이 7남매 중에 제일이다. 그리고 마지막 가족을 이야기 해야 하겠다.

(막내 가정의 의미와 내막)서영준 목사님이 1987년 8월 15일에 돌아 가셨다. 사고로 가셨는데 옷 안에 교인 연락처가 있었고 경찰에서 나의 가족에게 전화를 해서 내게 연락이 왔다. 경북 청도라고 한다. 그 곳은 공회의 연고가 없다. 그런데 전화를 해 온 사연으로 볼 때 틀림이 없다. 나는 아침 10시경이나 교회로 가려다가 전화를 받고 바로 교회에서 1시간 차량 거리에 있는 양산기도실로 전화를 했다. 목사님은 주일 준비로 산에 가 계셨다. 기도원 밑에 근무하는 직원께 산으로 올라 가서 모셔 와 달라고 했다. ‘서영준 목사님을 청도에 보내셨는지’ 여쭤 달라고 했다. 목사님은 바로 내려 오셔서 나의 보고를 받았다. 그 날 이후 나는 서 목사님의 아들들을 반사로 맡았고 서로 나뉠 때까지 그들을 내가 제일 잘 안다.

나는 첫째 아이를 서 목사님 돌아 가시기 전부터 알았다. 서 목사님과 나와 그 아이가 나란히 앉아 필기를 했다. 초등학교 2학년 3학년 때다. 서 목사님과 나는 빠르게 필기를 한다. 거의 다 받아 적는다. 이 아이는 또박 또박 적는다. 1시간 설교가 끝나면 보통 1페이지를 적는다. 그런데 그 적어 놓은 것을 보면 1시간의 설교 내용을 총정리를 해서 교재화나 내용 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학교 공부는 무조건 1등이다. 신앙도 이 정도였다. 그런데 서 목사님이 이 아이 초등학교 4학년에 돌아 가셨다. 그 서 목사님은 백 목사님이 일기에 ‘후계자’라고 적어 둔 분이다. 어떤 분은 백 목사님의 수첩에다 자기 이름을 적어 놓고 자기가 후계자라고 우기며 평생을 투쟁하는 이도 있다. 나는 그 수첩을 안다. 그 수첩에 누구든지 가짜를 적으면 바로 전화를 해서 중단을 시켰다.

39세의 아버지는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사법시험을 1차 합격한 후 백 목사님이 2차는 언제 되도 될 터이니 시간 보내지 말고 목회로 출발하라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 가신 이 아이가 11세, 초등학교 4학년이다. 백 목사님은 서 목사님이 돌아 가시자 이제 내게는 더 이상 후계자를 미리 정하고 발표할 사람은 없다고 하셨다. 목사님을 가깝게 모시면서 실제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는 몇 사람 중에 하나인 나는 이 아이가 후계자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봤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었다. 다만 성장 과정에서 변수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머지는 모두 후계자라 할 정도의 기준으로 보면 아예 턱 없이 부족하다. 한 사람은 천하를 뛰어 다니는 면만 보면 후계자라 해도 된다. 그러나 교리도 노선도 아예 모른다. 한 사람은 여성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지만 그가 스스로 후임으로 서는 문제는 어렵다. 나는 실력과 자격을 논하기 전에 ‘교리’와 ‘노선’ 연구용 인물이다. 따라서 나는 후임이 될 사람을 위해 옆에서 수고할 사람이다. 엔진이 훌륭하다고 핸들이 되겠는가? 심장이 좋다고 판단하는 뇌의 자리에 올라 가겠는가? 나는 나를 알겠는데 다른 사람은 내가 목사님의 후계자를 노리고 훗날 여수로 가게 되자 호남의 암살자를 파견하여 백 목사님을 살해하고 후계가 되려 했다고 했다. 대구공회는 거의 다 그렇게 믿는 분위기였다. 부산공회의 절반도 그런 정도였다. 속으로 나는 내가 대견했다. 내가 그렇게 의심 받고 그렇게 믿어 질 만큼 커져 버렸다. 이 말에 가슴이 툭 떨어 지는 목회자들의 얼굴을 그려 본다.

나는 백명희 사모님과 마주 앉았다. 달리 길은 없다. 앞 날의 보장도 없다. 그러나 공회와 서부교회의 가장 중요한 결정권을 가진 우리 두 사람이 마음을 먹으면 해 낼 수 있는 일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우리는 대구공회처럼 공작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부산공회2처럼 억지로 인물 좋은 사람을 추대하려고 정치 결사체를 만들고 추진하지 않는다. 백 목사님 생전이다. 우리는 그 분을 잘 안다. 우리가 꿈을 꾼 것도 우리에게 말하는 분이다. 속이고 싶어도 속일 수가 없다. 오히려 진실로 충성하는 것이 진리에도 맞고 우리의 신앙도 그러했고 무엇보다 그 분을 모시는 직원으로서 다른 길이 없다. 이 아이가 현재로는 백 목사님의 후임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다. 문제는 10년은 더 있어야 확정을 지울 수 있다. 백 목사님의 연세가 이미 78세였다. 당시 그 나이는 최근으로 말하면 95세나 되는 정도다. 백 목사님이 돌아 가신 80세가 요즘으로 말하면 100세로 보면 된다. 2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백 목사님은 늘 곧 죽는다고 준비를 하시니 마음은 급하고 목사님을 보면 모세처럼 120세까지 청청할 것이라 생각했다.
(교육의 과정과 방향의 전환)어느 날 사모님은 이 아이가 대학만 나오면 나오면 되겠고 그렇지 않으면 고등학교만 졸업을 해도 좋을 터이나 어떻게 20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겠는가? 방법이 없는가 라고 한탄을 했다. 이 때 나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통과한 친구들이 많았고 그들이 나와 함께 신앙 동지들이 되었는데 그 중에 한 그룹은 정통파 독학과정을 거쳤고 그 중에 한 그룹은 초단기 과정을 거쳤다. 그들에게 바로 검정고시 제도를 알아 봤다. 기초를 튼튼히 하려면 중고교 6년 과정 전체를 야학으로 자습하며 다지는 것이 맞고 이들은 자기가 특별히 하고 싶은 과목에 집중을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었다. 나는 이 아이를 위해 시간이 없었다. 한 그룹은 합격만을 위해 초단기로 통과하였다. 시험 출제 위주로만 공부한다. 그렇게 하면 1년이면 끝을 낸다. 그 친구가 그런 경우였다. 그 친구의 형제들도 그러했다.

이 때가 1987년인데 내가 미국으로 유학을 갈 때 백 목사님은 토플 시험 때문에 아예 불가능하다고 설명 드리는 내게 ‘시험이란, 야마자끼’라는 것이 있다. 핵심 위주로 짚어 가면 된다고 했다. 일제 때 초등학교 5학년 중퇴하신 분이 미국 유학 영어를 지도하면서 무슨 일본어를 쓰실까? 어른의 말이니 듣기는 하지만 공부에 실제 도움은 전혀 되지 않는 뜬구름 잡는 말이었다. 나는 이렇게 같은 말을 들어도 복없이 듣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분을 접하면서 이왕이면 복이 있게 듣는 사람으로 개조가 되어 오늘은 바뀌어 있다.

그 기억을 합했다. 그리고 결론이 나왔다. 이 아이의 머리가 좋으니 부산의 서면에 학원가를 알아 봤고 초단기 과정을 밟으려 했다. 부산의 서면은 제일 번화가다. 깨끗하고 순진한 초등학교 4학년을 혼자 보낼 수 없다. 검정고시 학원은 특히 위험한 가출 사고 청소년이 많다. 그래서 연구소에 이치영 선생님에게 함께 가서 공부를 하도록 부탁을 했다. 이 선생님이 이 아이를 데리고 학원을 다녔다. 며칠을 다녔을까? 몇 주는 아니다. 백 목사님께 보고가 들어 갔다. 너무 지나친 노력이라고 금지를 시켰다. 바로 이 때의 기억과 경험은 의외로 백 목사님 사후에 사용이 되었다.


(백영희 사후, 그 손주를 지도한 복이 내게로 돌아 왔다.)
신풍은 내가 부임했을 때 33세인 내 나이 밑의 교인은 3명 정도였고, 그 중에 밤예배까지 나오며 교인 노릇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여고를 막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는 아가씨 한 사람이다. 공부를 할 만한 가정은 보이지 않았다. 또 33세의 젊은 전도사가 전남 여수의 바닷가에 첫 목회를 나왔으니 설교 외에 교인들에게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서로의 생각과 살아 가는 사고방식은 물론 신앙의 체질도 아주 달랐다. 신풍교회는 타 교단에서 들어 왔기 때문에 공회 분위가를 느끼기 어려웠다. 공회의 경제와 모든 교육관 때문에 나는 아이들을 제대로 공부를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나는 아이가 4명이며 연령생 남자들이다. 아마 우리 나라의 기록이지 않을까? 예전에는 영양이 따라 가지 못해서 연이은 출산이 어려웠고, 지금은 낳지를 않으니 연이은 출산은 없다. 4명째가 되자 백 목사님이 그렇게 기뻐하며 웃는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다른 것은 신앙도 실력도 없으나 아이를 낳는 것은 뒤에 어떻게 기를지 대책이 없으니 그냥 낳는 대로 낳은 것이다. 4째가 생기자 아내는 아이 때문에 죽겠는데 이 것은 순교할 만한 일이 아니니 낙태를 하겠다고 했다. 4째만 낳으면 이후에 아이에 대해서는 어떤 결정을 해도 알아서 하라고 사정을 했다. 여기까지가 나의 범위였다. 이 아이들을 시골에서 기르려니 공회의 경제 원칙이 걸렸다. 백 목사님은 평생 초등학교 공부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그 이상의 공부는 별로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목회자는 교회 돈으로 공부를 가르쳐야 하는데 교회 돈으로 중학교 공부 이상을 가르치는 것은 뭔가 곤란하지 않느냐는 입장이었다. 실제 쓸모도 별로 없는데 교인의 돈으로 어떻게 쓸모 없는 일에 돈을 쓸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내 월급은 4명 아이들이 집에서 먹고 옆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니면 맞다. 어떤 종류의 학원도 보낼 여력은 없다. 아이들이 스스로 돈을 벌 때까지 모든 옷은 지금 나를 고소하느라고 정신도 없는 부산의 직원이 아파트에서 버리는 옷을 세탁해서 보내 줬다. 아이들을 직접 옷 사준 기억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중학교를 보내고 싶어도 곤란하다. 고등학교부터는 불가능하다. 연령생이기 때문에 그렇다. 어중간하게 중단 되면 본전 생각 날 이다. 바로 이런 순간에 예전에 목사님의 손자를 검정고시로 길을 열어 보려던 생각이 났다. 바로 계산이 나왔고 판단이 섰다.

초등학교 6학년까지는 교회 월급으로 공부를 시키고, 나머지는 알아서 해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백 목사님의 교육 지도에도 맞고, 또 공부를 잘하지는 못해도 공부 구경만은 해 볼 만큼 해 본 나로서 모든 면으로 이해타산이 나온다. 이 순간 내게는 내가 나온 거창고등학교와 샛별초등학교의 경험이 결론을 낸다. 밀어 붙여서 급박하면 되고, 달래고 밀어서 하는 공부는 필요가 없다. 그리고 정말 급하면 바보가 보통은 되고, 보통 아이는 수재 소리를 들을 만큼 실력이 올라 간다. 그 학교의 공부가 늘 그러했다. 그 학교는 매로 패서 그렇게 만들었다. 나는 공부 때문에 그럴 일은 없다. 대신 아이들에게 선택의 절박감을 던졌다.

목사로서 가정 교육에 시간을 낼 수는 없다. 대신 아내에게 공부하는 방법만 가르쳐 주고 실제 데리고 해결을 하도록 부탁을 했다. 마침 교회 옆에 같은 또래가 2명이 있었다. 6명이 사택 마루에서 아내의 감독하에 독학을 시작했다. 독학의 원리는 주일학교 학습법과 집회 때 재독 학습법이다.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집회의 재독은 글을 읽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설교록만 들고 테이프만 들으며 하루 4번의 예배에 1번 예배가 2시간이 보통이다. 11회의 예배를 그렇게 책을 들고 있다면 학습의 태도는 고시를 할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학습 내용은 주일학교 방식이다. 알든 모르든 반복하면 들어 간다. 머리 속에 가득 담아 두면 인간의 머리는 저절로 지식을 배열하고 비교하고 추리면서 자리를 잡아 간다.

6명의 아이는 시골 학교에서 1등은 없고 우수와 보통과 좀 낮은 수준이었다. 따라서 이 아이들을 가지고 해 보면 알 수가 있다. 이 아이들이 갈 수 있는 만큼이 앞으로 내가 맡은 이 교회 아이들의 앞 날의 학습 실적이 될 것이다. 샛별초와 거창고의 학습은 1970년대에 정규 수업 시간에도 영어와 수학을 A B C로 나누었다. 그리고 마구 밀어 붙였다. 교장의 지도력과 추진력은 펄펄 끓는 용광로며 불도저였다. 삼성의 지성적 신사적 귀족적이 아니라 정주영식의 목표 지상주의다. 나는 이 아이들에게 이왕 할 것이니 집중하라는 것이지 무슨 실적이나 밀어 붙일 마음은 전혀 없었다. 공회는 세상 공부를 약간의 참고라고 인식한다. 신앙은 절대지만.

아이들의 성적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해에 중학교를 끝내고 다음 해에 고등학교 과정을 끝내니 초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해 가을이면 수시 모집에 합격한다. 교회의 모든 행사, 장례식까지 다 참석하고, 이보다 좋을 수가 있나? 학교를 따로 설립할 것도 없고, 독학이니 교사도 필요 없다. 공회는 원래 독학이 기본이다. 그 어려운 백영희 설교와 성경도 독학인데 학교 공부야 온갖 좋은 책과 참고서가 다 있으니 무슨 어려울 일이 있는가?

큰 아이는 연세대 법학과를 합격했으나 장학금을 받지 못해서 합격을 포기했다. 합격했더라면 서울의 우리 교회가 있으니 보냈을 것이다. 그 정도라면. 학비를 벌 수 없으니 순천대라는 주변의 지방 국립대로 보냈다. 나는 지방 국립대를 사다리로 딛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안다. 백 목사님 자녀들을 통해 미국의 아이비 리그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장학금을 받고 간다면 보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입학의 가능성만 마음에 그리고 그만 둔다. 훗날 교회 학생들 중에 꼭 가야 할 경우가 있으면 그 때는 아는 길이니 마음껏 지도할 수 있다.

이제 교회와 공회의 다른 아이들도 이렇게 소개할 수 있어야 이 소개는 특수한 예외가 아니라 이 노선의 일반적 현상이 된다. 그렇게 되어야 여기 소개할 가치가 있다. 그 소개를 다 하려면 끝이 없다. 그 소개를 하려 들면 최근 몇 년 간 나를 수백 건으로 고소한 이들이 또 그 글을 근거로 시작할 듯하다. 내가 직접 당하는 것은 사서라도 당하면서 알려야 하지만 나 외에 사람들은 그렇게 겪을 정도의 신앙은 아닐 듯하다. 구 게시판에서 한 번 소개한 적이 있다. 대략은 다음 글에서 소개를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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