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7) 우리는 못났다. 그러나 자라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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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작성일
2019.09.20
(신앙의 궤적)
총탄은 직선으로 날아간다. 그러나 탄도학의 원리에 따라 포물선을 그으며 위로 가다가 아래로 향한다. 알고 보면 그렇다.
인체도 마음도 물질이라는 겉 사람인 이상 시간의 한계에 붙들려 일정 부분은 나아 지다가 절정을 찍은 다음에는 후퇴한다.
'신앙'은 어떨까? 참 신앙이면 시간의 제한을 벗고 날로 새로워지나, 신앙이 신앙 같은데 신앙이 아니라면 포물선을 그린다.
세상이나 신앙이나 물질의 것이나 신령한 것이 모두 포물선의 원칙대로 될까? 정말 신앙이라면 날로 새로워 져야 한다.

평생을 두고 신앙의 가장 절정은 누구나 첫 은혜의 순간이다. 성경은 이 것을 첫 사랑이라 한다. 중생의 첫 경험을 말한다.
부부가 처음 만나 처음 좋을 때를 첫 사랑이라 하는데 신앙의 첫 순간에 감격이란 이 땅 위에 달리 비교할 길이 없다.
부부의 사랑이 정말 바로 되었다면 첫 사랑은 멋 모르고 좋아 한 정도고 살아 가면서 말할 수 없는 세계를 맞게 된다.
신앙을 뺀 인간의 부부 사랑은 그렇게 될 수 없다. 그러나 부부의 사랑이 신앙으로 바로 되었다면 죽는 날이 가장 절정이다.

사람뿐 아니라 교회와 교단과 각종 복음 운동의 단체들도 그렇다. 일어 날 때는 불길과 같다. 그러나 세월 속에 식어 진다.
종교 개혁의 16세기도 그렇고, 미국의 청교도 신앙도 그렇다. 우리가 잘 아는 고신, 재건파, 순복음교회, CCC 모두가 그렇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총공회의 출발은 어느 정도였는가? 우리는 사도행전 2장을 성경으로 읽지 않고 우리의 모습으로 읽었다.
그런 총공회조차 궤적에 올려 보면 시간의 한계 궤적에 따라 포물선을 긋고 내려 오는지 창공을 향해 끝없이 오르고 있는지?

(백영희 신앙이 궤적)
보이는 교회를 교회라는 사람이 있다. 보이는 교회는 포물선을 그린다. 연구소도 공회도 보이는 것은 물질이니 다 그렇다.
그런데 참 교회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불가견교회론이 있다. 참 신앙도 있다. 보이지 않은 참 신앙은 날로 새로워 진다.
여기서 아주 가끔, 보이는 모습조차 포물선이 아니라 끝까지 자라 가고 올라 간 신앙들이 있다. 손양원 백영희의 경우다.
아주 가끔 곳곳에 그런 숨은 종들은 있다. 우리는 이 곳에서 글을 적는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범위에서만 예를 들어 본다.

그 어떤 위대한 종들도 '내가 젊을 때는' '내가 개척할 때는' 이라는 말을 한다. 이미 신앙의 노쇠를 인정하고 있다.
손양원의 신앙은 학생 때 삼일운동을 했다. 20년 뒤의 신사참배 때는 나라는 물론 부모까지 버려 두고 신앙 투쟁만 했다.
신사참배를 승리한 종들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없지는 않다. 그런데 해방 후에 신앙을 지키고 이겨 낸 이들은 거의 없다.
손양원의 장점과 위대한 점은 원수를 사랑한 것이 아니니 그런 세계는 조폭도 있고 공산당도 있다. 그는 계속 자라 갔다.
1948년의 여순반란 사건 때 아들의 순교와 원수를 사랑한 것은 하나의 사건이지만 그의 신앙은 창공을 향해 계속 올라 갔다.
그리고 1950년 점령 기간에 손 목사님은 평생의 신앙에 최고점을 찍는다. 그리고 그는 신풍교회라는 외아들을 두고 간다.

백영희 목사님의 위대하고 위대한 점은 첫 신앙 때는 어렸고 서툴었으며 문제가 참으로 많은 상태로 출발을 했다는 데 있다.
전체 기도를 인도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을 빼버렸다. 청중에 피동 되고 주변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그의 순수했던 내면을 말한다. 달리 순수한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우리도 실수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1940년 개척한 개명교회는 성탄절에 성극도 했고 산타 할아버지 선물 행사도 했다. 성경학교 때는 위생교육도 했다.
그의 걸음을 살펴 보면 그는 일반 교회의 평범한 모든 것을 모두 했다. 말하자면 그의 노년 기준으로 보면 정죄 할 일들이다.

1952년 서부교회에 부임했을 때 그의 서부교회에는 남녀 학생들이 학생회나 성가대를 통해 남녀 교류가 활발하게 했다.
부산 성가대 대회에서 1등도 하게 했고 학생회는 영도제일교회와 맞서 부산의 정상급이었다. 고신 인물이 많이 배출 되었다.
신학교도 다녔다. 신학교에서 강조하는 원어를 노트에 적고 설교 시간에 학설과 원어와 신학자를 인용하는 일도 흔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공회 출신들이 공회 기준으로 믿기 어려워지면 공회가 과거 잘 믿을 때 타 교회처럼 했다면서 해 버린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백영희의 신앙은 덕유산 골짝에서 지게 지고 농사 지으며 성경 하나만 가지고 기도하며 믿던 그의 첫 신앙 때보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좁아 지고 더 엄해 지고 더 철저해 졌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허락하던 것을 갈수록 더욱 좁혀 나갔다.
개척 때는 철저하지만 교회가 부흥이 되면 사람이 많아서 그렇다 하면서 주일도 예배도 교회의 모든 기준도 모두 넓히는데
백영희 신앙 세계는 그의 서부교회도 공회도 50년대보다 60년대가 더 철저해 졌고 70년대보다 80년대는 더욱 더 그러했다.

고신은 50년대까지 주일에 돈을 내고 시내버스나 택시를 타지 않았고 주일에 시험을 보거나 외부 행사를 하지 않았다.
고신의 60년대 서울 교회들은 슬슬 이런 제한을 풀고 70년대가 되자 시골까지 결국 주일에 바쁘면 남이 하는 일을 다 했다.
공회는 2019년 지금도 돈을 내고 이용하는 모든 매매를 하지 않는다. 주일 시험 때문에 로스쿨 의전원을 전부 포기한다.
개인적으로 한다면 막을 수는 없지만 교회는 집사 조건에 주일 성수를 포함하여 13가지를 적용한다.

1976년에시작한 양성원도 처음에는 교양 차원이지만 신학을 많이 포함했다. 성경 100독에도 불구하고 다른 과목도 있었다.
다른 신학교도 성경 중심으로 시작하나 결국 신학이 중심에 선다. 공회는 신학 과목을 갈수록 줄이고 성경을 강화해 나갔다.
주일학교의 경우 1950년대까지는 천하 모든 교회와 그 모습이 같았다. 1960년대부터 성경학교조차 설교 위주로 바꾸었으며
1980년대에 들어 서자 성경학교의 야외 예배조차 폐지했다.

백영희, 그는 나이가 들어 갈수록 더욱 조심했고 충성했다. 그의 설교는 더욱 예리해 져 갔고 그 깊이는 측량하기 어려웠다.
그는 그의 비결을 그렇게 말했다. 한 걸음씩 걸어 가다 보면 어제보다는 나아 져야 한다. 그 쉬운 방법, 그 것이 비결이었다.

나는 백영희의 절정이던 시절, 신화로만 전해 듣던 그의 명성이 높아만 가던 1977년부터 1989년까지 10여년을 직접 겪었다.
그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비로소 그를 역사 속에 던져 놓고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살펴 보기 시작했다. 그런 기회를 받았다.
그의 장례식은 전국 총공회, 부산 서부교회, 그리고 가족이라는 세 주체가 서로 주관하려고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삼각 관계 때문에 나는 장례식 전체를 총 책임지고 진행하는 책임자가 되었다. 가족들이 전적 밀었던 배경이 컸다.
장례 5일의 일정 전부, 그리고 다음 주간에 서부교회의 후임 결정까지 다 주관할 수 있었다.

이런 일정은 전부 지나 가는 절차였다. 바로 한 번밖에 없는 바로 이 순간에 교회와 가족의 모든 자료는 전부 내게 들어 왔다.
가족 중에 '바쁜 장례식을 틈타 훔쳐 갔다'는 주장은 예수님의 시체를 몰래 훔쳐서 부활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어렵다.
목사님은 개인 공간이 없었다. 장례 때는 해외 가족이 전부 들어 왔다. 그 곳은 30년이 지금까지도 가족들만의 공간이다.
설교 자료 훔쳐 가서 연구소가 출간도 하지 못한다는 말에 서부교회와 공회 지도부가 광우병 소동에 촛불을 든 적도 있었다.
바로 그 연구소가 그 때도 지금도 모든 자료를 다 가지고 있다고 큰 소리를 치고 집회 재독을 진행한다. 공회 수준이 이렇다.

백 목사님 생전에 그 사무실의 쓰레기통까지 뒤져서 그 분의 메모를 모으는 줄 모든 직원과 가족이 다 알았기 때문에
목사님 사후 서부교회 사무실은 각종 교회 원본을 내게 넘겼다. 목사님이 부탁한 공회와 교회와 백영희 전기 작업 때문이다.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모든 역사적 자료조차 하나도 빠짐 없이 전남의 여수 신풍 자료실에 있다. 왜 서부교회에 없을까?
목사님 5층의 집무실을 정리하면서 가족들은 백순희 백명희 두 딸에게 모든 결정을 맡겼고 그들은 내게 친필 자료를 맡겼다.
그 중에 일부는 시급히 공개를 해야 했다. 공개를 시작하자 가족 중 일부가 교권 장악에 문제가 있다고 반대를 했다.
그래도 내가 주장을 굽히지 않자 자료 일부를 잠깐 볼 것이 있다고 빌려 갔다. 그리고 메모지 일부를 돌려 주지 않았다.
나는 그 분들에게 내 자료를 달라고 여러 차례 독촉장을 보냈다. 가져 간 분은 자료를 가져 간 적이 없다고 답변을 했다.
원래 가족과 나 사이는 이런 관계다. 내 자료를 가져 갔으니 돌려 주시라. 그 것은 가족 것이 아니면 연구소의 연구 자료다!
이렇게 내가 그 분들에게 자료를 독촉한 것이 실상인데, 내가 미운 이들은 가족들의 말만 믿고 싶은 모양이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 그러나 실제를 알고 싶어야 신앙이다.

(갈수록 좁게, 갈수록 긴장을)
공회 노선 중에 일반적으로 알려 진것은 인체로 말하면 사진이나 주민등록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다.
공회 노선 중에 정말 생명이 되는 내용은 심혈관처럼 신경이나 신장 위장 간장처럼 겉으로 보기 어려운 것들이니
'갈수록 좁아 지라' '갈수록 조심하라' '갈수록 더 엄해 져라'는 원칙이 있다. 율법주의가 되고 천주교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신앙이 어릴 때는 모든 규정을 너그럽게 적용할 수 있다.
교회도 그렇다. 개척 교회 때는 다른 교회에 도움도 받을 수 있고 전도를 위해 예배답지 않은 예배를 드릴 수도 있다.
그러나 신앙이 자라 가면 과거에 너그럽던 규정을 더 엄하게 더 철저히 적용해야 한다. 자라는 과정에 당연한 것이다.
교회도 그렇다. 부공3도 그렇다. 지금 부공3의 교회들은 백 목사님 생전의 결혼 적령기 20대 중반을 더 앞으로 당겼다.
그 때보다 건강이 좋고 사회 여건이 낫기 때문이다. 세상 공부도 그 때보다 더 적게 한다. 세상과 더 멀어 지려고 노력한다.

이 과정에 수 많은 오해를 받고 있다 사이비냐, 목사가 학생을 지도하고 수고비를 받아서 재벌이 되었다는 등이다.
공회는 1950년대까지 사회사업을 목회자가 직접 직원이 되어 한 적도 있다. 이재순 목사님은 거창 양혜원의 총무였다.
뒤로는 백 목사님이 직접 지도를 했다. 말이 지도지 지시요 결정이었다. 그렇다고 그 수익금을 나누지 않았다. 오해는 받았다.
다른 교파는 그런 사업을 시작하면 공부방을 야학으로, 야학을 학교로, 학교를 교육기관으로 키워 간다. 자랑스러워 한다.
공회는 개척 과정에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창양혜원을 공회 교회로 운영했다. 양혜원 초기 목회자들은 직원으로 일했다.
그런데 양혜원이 자리를 잡아 가자 공회는 빠르게 공회와 교회를 멀리 했다. 나중에는 목회자가 완전히 시설에 손을 끊었다.

역사를 모르고, 취지를 모르고, 공회의 실제를 모르고, 공회의 노선을 모르면. 모르면 아이다. 아이들은 마구 고함을 지른다.
밖에서 들으면 아이 소리만 들린다. 주는 밥 먹고 학교만 가서 글만 배운 학생들이 천하 옳은 소리는 다 하고 있다.
이 때 부모와 아이가 부딪히면 부모는 기득권을 지키는 수구세력으로 보이고, 아이와 학생은 참신해 보인다. 좌파가 된다.
이래서 좌파 좌익은 큰 소리는 항상 치고 그 소리는 항상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 좌익 좌파의 속을 뒤집어 보면 멸망이다.
최근 이 나라의 가장 참신한 학자, 서울대 교수, 진보 진영의 최고 인물을 상대로 X-ray, MRI, CT 촬영과 혈액검사를 했다.

오래 되면 옳다는 말이 아니다. 공회는 그 것을 깨고 시작했다. 그래서 공회는 정말 진보다. 그들에게는 극좌파 극좌익이다.
공회는 묵은 곳을 뒤질 때 자기를 먼저 뒤졌고, 자기를 먼저 고쳤다. 그리고 상대 것은 피할 수 없을 때만 고치자고 부탁했다.
그 소리가 싫어 온갖 죄를 뒤집어 씌웠다. 공회가 그렇게 당하니까 옆에 있던 이단들이 자기들도 당했다면 한 편인 줄 안다.
심지어 강남 좌익의 핵심들까지도 공회가 그들과 같은 좌파라며 반가워 한다. 우리를 알고 나면 극보수라고 비판을 한다.
좌파에게는 극보수, 우파에게는 극좌파. 우리는 신명기 5:32에 따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그 말씀만 따라 갈 뿐이다.

내게는 성장 과정에 나도 모르게 국내 좌익의 핵심 속에서 자랐다.
그리고 나는 성장 과정에 참으로 싫었는데 공회라는 극우 속에서 자랐다. 알고 보니 극우가 아니라 진리의 길일 뿐이었다.
나만 이렇게 특별한 섭리 가운데 남 다른 은혜를 받았는가?
아무리 돌아 봐도 내가 아는 사람은 나처럼 각자 자기가 맡고 있는 자기 위치에서 그런 과정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
공회는 이 것을 예레미야 1:5에서 가르친다. 다른 교회는 보통 이 성구를 목회자나 특별한 지도자에게만 해당 된다고 한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공회는 여기의 '너'를 그 때 예레미야로 읽는다. 그리고 여기의 '너'를 오늘의 믿는 모든 사람이라고 읽는다.
믿는 사람은 1명도 빠짐 없이 하나님 앞에 구약 예레미야와 같이 자기 현실 자기 환경에 특별한 위치와 사명이 있다고 본다.
만일 공회의 교훈과 방향이 이렇다면 제대로 된 공회의 간증과 글에는 교만이나 자기 홍보가 깃들 여지가 없다고 본다.
그런데 이 좋은 노선의 이 좋은 내용이 공회에 주어 졌으나 공회 내에 이 보배가 보배로 대우 받는 사례는 거의 알지 못한다.

그 때마다 나는 이단이라고 거의 공식화 되어 있는 지방교회를 부러워 한다. 그 곳이 우리보다 못한 점을 나는 몇 가지 안다.
그러나 공회의 맹점, 단점, 치명적인 약점만은 공회 우리 모두가 지방교회 교인의 발 밑에 기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들은 비판을 해도 공회 우리만은 지방교회의 이름이 나오고 그들의 활동을 접하거나 심지어 누가 비판을 할 때에도
지방교회는 우리의 선생이다. 지도자다, 우리가 무조건 보고 배워야 한다는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호랑이야 독수리의 날개만 부러워 하면 된다. 호랑이가 자기 발을 독수리 발처럼 바꾸는 것은 곤란하다고 본다.
반대로 독수리는 호랑이의 입과 발만 부러워 하면 될 듯하다. 그렇게만 갖추면 천하 무적이 되지 않겠는가?
다른 교회들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는지 찾아 본 세월이 많다. 어떤 교회도 있기는 있다. 많기도 하고 적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공회에게만은 공회 중에서도 공회의 약점을 두고만 말한다면 지방교회는 우리가 무조건 배워야 할 목표치다.
이 연구소, 특히 오늘 우리 부산공회3의 현황으로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지방교회의 유치원에 우리는 입학해야 할 수준이다.
전체 1

  • 2019-09-20 23:46
    전적동의고 유치원 입학입니다. 그런데, 어머니 위치는
    아쉽습니다. 우리공회의
    아쉬운점 같습니다.
    그랬다면, 밧단아람으로
    향했을텐데 오히려 그 도중
    인지는 모르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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