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6) 모이면 썩고 흩어지면 사는, 진리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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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7
(천세욱, 백 목사님의 전우)
백 목사님 평생에 백 목사님 입에서 유일하게 '전우'라고 부른 이름은 천세욱 1명이다.
6.25 전쟁을 전후하여 백 목사님은 일제 말기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위험한 고비를 많이 넘겼고 그 때마다 천세욱은 소리 없이 백 목사님을 보호했다. 워낙 민감한 이야기가 많아서 앞으로도 일반인에게는 직접 말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다.

천 선생님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나의 담임이었다. 끌려서 다시 입학한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는데 나의 담임이 바로 과거 공회 교인이자 6.25 전쟁을 목사님과 함께 견딘 분. 이렇게 만남으로 내게는 많은 일들이 평생 펼쳐 진다. 이 분으로 부터 받은 은혜는 너무 크고 많았으나 나의 실력이나 선택이 아니라 그냥 어느 날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천 선생님을 직접 담임으로 거친 공회 교인들은 내가 처음이지만 이후로 적지 않다. 공회 안에는 이 학교를 다닌 학생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처럼 그 분에게 얻어 가진 이들은 없는 듯하다. 있다면 표시가 나지 않을 수가 없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늘 중간쯤 되는 사람인데 지나 놓고 보면 고평가를 받는다. 실력이 아니라 그냥 주셔서 받았다. 나만 받았는가? 모두가 함께 받았는데도 다른 사람들은 내버렸기 때문에 나만 받은 것처럼 되어 버렸다. 어쨌든 1969년 그 분은 6학년 담임이자 당시에는 고신의 장로님이었고 나를 공회 교인이라고 그토록 박해했다.



(천세욱, 세상을 가르친 분)
거창고 전영창 교장이 그를 불굴의 신앙과 교육적 실력을 갖춘 인물로 초빙하여 40대 교장으로 임명했다. 실은 그는 공회의 '주일학교 부장'으로 유명하다. 해방 후 국기 '배례' 정책을 '주목'으로 바꾼 역사적 인물이며 전쟁 기간 거창의 위천교회의 반사며 학교의 교사로서 백영희의 제일 옆을 지켰다. 위천면은 정부가 출범하던 1948년부터 이미 경찰지서가 여러 번 점령을 당했고 면장이 고문을 받고 죽는 상황까지 발생하여 6.25 전쟁 이전에 이미 전쟁터였다. 나는 1994년 그 분의 자료를 모두 받을 수 있었고 1997년에 그 분의 전기가 되는 '국기배례'를 출간했다. 그 책 때문에 나는 백 목사님의 자녀에게 5건의 형사 고소를 당했었다.

거창고 전영창 교장은 수 많은 면으로 탁월했지만 그 중에 하나가 인재 유치였다. 거창은 지금은 짐작조차 어려울 시골이었으나 학교장은 전국 최고라 할 만한 인재들을 학교로 계속 유치했다. 내가 있을 때까지는 그러했다. 그런 좋은 인물들과 비교를 해 봐도 6학년 첫 시간에 들어 온 천 선생님은 한 눈에 차원이 달랐다. 내게 많은 것을 남겼다. 좋은 면 절반, 나쁜 면이 절반이다. 좋은 면은 세상 교육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혜택을 봤다. 나쁜 면 절반은 신앙적으로 박해를 당한 것이다. 그 때는 그 분이 공회 교인임을 몰랐다. 고신의 장로님이 되어 공회를 비판하던 시절이었고 나는 1년 내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겪었다. 선생님은 80년대가 되어 공회로 돌아 왔고 이후 2002년 돌아 가실 때까지 자신의 아들과 친구이자 초등학교 제자인 나를 늘 백 목사님의 후계자로 대우했고 기대했고 만사를 내게 물어 보고 결정했다. 그 분에게 교계의 정치를 들었는데 공회 안에서만 자란 내게는 접할 수 없는 세계를 전해 주셨다. 2016년 사모님이 돌아 가시기 직전에 구미로 방문을 했다. 사모님은 내 이름을 한없이 반복하며 목이 메었다. 1988년 그 분은 내가 양성원에서 강의할 때 학생이었고 1991년에 안수를 받을 때 함께 목사가 됐다.

선생님은 졸업이 가까왔을 때 6학년 45명 전체 학생에게 일일이 앞날에 어떤 사람이 되라고 격려를 했다. 내게만은 너는 앞으로 아무 것도 될 수가 없다며 싸늘한 말씀을 던졌다. 나는 눈 밖에 났다는 의붓 아들의 느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1973년 거창고를 입학하자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자며 선동하던 교장은 공회 교회 하나만은 확실히 적대적으로 찍어 탄압을 가리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다른 기회에 하려 한다. 좌파 진보는 군부독재와 싸울 때는 '민주' '개성' '인권'을 방패로 높이 치켜 든다. 그러나 그들이 주도권을 쥐면 순간 돌변한다. 이 학교를 다녀 간 유명인은 우리 사회의 진보 좌파 거물들이다. 그들의 모습을 잘 볼 수 있었다.



(천세욱, 시사와 역사를 가르친 스승)
그 분의 신앙이 그토록 대단하다는 것은 훗날 알았다. 내가 매일 그 분에게 하루 종일 배워야 했던 1969년 1년은 초등 6학년의 교실이었다. 신앙 교육은 없었다. 그는 공과 사를 잘 구별하는 분이다. 한 번씩 중요한 신앙의 맥은 짚지만 누가 봐도 일반 교사의 공정한 교육이었다. 그로부터 특별하게 기억 하는 것은

매일 아침 첫 시간에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잠깐 요약했다. 내가 세상을 거의 접하지 않고도 세상을 깊게 접하게 된 것은 바로 그 때부터다. 나는 1960년대를 그냥 숫자가 아니라 당시 정치 사회 국제 관계를 지금처럼 심각하게 접했다.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이런 상황이 가능하겠는가? 요즘 같은 전교조식의 의식화 교육이 아니라 그 반대였고 그 수준은 훗날 대학에서 정치학 과목을 들으며 선생님의 짚어 준 내용과 수준을 실감했다. 그리고 평생을 살면서 나를 위해 주님은 그 분을 맞춤 교사로 보내셨다고 느낀다. 이 부분 역시 내게만 아니라 믿는 사람에게는 주님이 그에게 필요한 지식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알리신다는 것을 주변 누구를 접해도 늘 느낀다. 주님은 제공했으나 본인이 눈을 감아 외면을 했을 뿐이다.

매일 선생님은 한국의 태고사로부터 근대사까지를 전부 훑어 주셨다. '역사'란 공회가 '법학'과 함께 이 땅 위에서 굳이 배워야 한다면 배우라고 추천하는 2과목 중에 하나다. 실력 있는 교사가 마음 먹고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쳤다. 나는 그 분의 모든 수업이 다 싫었다. 그 분뿐 아니라 모든 학년에서 늘 그랬다. 그런데 시사와 역사만은 너무 잘 배웠고 평생 이 부분에 대해서는 관련 전문인과 대화에서 별로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이 2가지가 그렇게 내게 도움이 된 것은 바로 백영희 설교를 접하기 위한 교양 과목의 역할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어와 수학이 되지 않고 의대 공부를 할 수 없듯이, 원어를 모르고 신학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백 목사님의 설교는 '목회' 설교이기 때문에 시사와 역사를 알지 못하고 설교를 들으면 한 자리에서 함께 듣고도 아주 엉뚱하게 나간다. 공회 내의 극좌 진보 인물과 신앙의 이야기를 하면 만사가 정확히 하나가 되는데, 갑자기 실제 생활 속에 이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 정반대가 된다. 그런 이들을 접할 때마다 나는 천세욱 선생의 초등 6학년 1년의 공부가 감사하다. 백 목사님의 설교를 나와 함께 들었고 나와 함께 편집실과 연구실에서 평생 일하거나 다른 위치에서 함께 전념한 분들은 적지 않다. 그런데 그들은 나의 학교 성적과 공부와 관련 된 여러 기록적인 실적 때문에 마치 내가 세상 학습력이 우수해서 그들보다 나은 줄 안다. 앞의 (3)번 글에서 자세히 설명을 했다. 나는 그냥 보통이다. 굳이 하나 남 다른 혜택을 말한다면 천세욱 선생님의 2가지 강의가 도움이 되었다. 끌려서 가게 된 학교, 그 학교의 6학년이 되었을 때 전체 학생이 함께 들었던 학습 내용. 그런데 선생님의 아들이 나와 그 1년을 함께 다녔고 평생 서로 제일 가까운 친구로 마음에 두고 있을 듯하다. 그 아들도 아버지의 바로 그 2 가지 면에 대해 나만큼 배우고 써먹고 감사하지는 않는 듯하다. 우리는 자기 주변을 잘 살펴 보면 자기에게만 주신 사명이 있고 그 사명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은 남과 비교할 것 없이 자기에게만은 보배로운 학습과 기회와 은혜를 주신다. 공회의 교리가 그렇다. 내가 겪은 모든 분들의 내면이 그러했다. 나도 그 중에 하나다.



(천세욱, 여러 감사한 단편들)
이 글에 제목은 '모이면 썩고, 흩어 지면 산다'고 적었다. 선생님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인식을 1년 동안 잘 심었다. 내 평생에 한 순간도 잊혀 져 본 적이 없다. 이런 말을 듣고 배운 것은 모두가 같을 것이나 이 분은 절감하도록 잘 가르쳤다. 내게만 잘 심겨 졌는지는 모르겠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 조선 사람을 가르쳐 모래알 같아서 한 사람 한 사람은 단단한데 뭉치면 저절로 흩어 진다고 했다. 일본 사람은 한 사람씩 살펴 보면 우리가 모든 면에서 낫지만 그들은 뭉친다고 했다. 그 분은 일제 때 일본에서 공부를 했다. 이 분 때문에 내 평생에 나의 성격상 두 번 보지 않을 사람이라도 일본 사람의 단결을 기억하여 협력을 했고, 백 목사님께 배운 말씀 때문에 그 어떤 세상의 좋은 관계라 해도 신앙에 필요하면 바로 끊고 살아 왔다.

그 분에게 오늘까지 평생 새기고 또 새기는 것 중에 하나는 '한국 사람은 먹는 데는 귀신, 일하라면 병신, 공부하라면 등신'이라며 삼신을 말했고, '못난 것이 잘 난 체, 모르는 것이 아는 체, 없는 것이 있는 체'라는 삼체를 배웠다. 해방 이승만 대통령의 탄식이라고 했다. 누군들 모르며 누군들 말하지 않았겠는가? 일본인이 우리를 우민화 하려고 한 말일까? 우리가 우리를 보면 알고 우리가 일본인을 조금 살펴 보면 금방 비교가 되면서 느껴 진다. 선생님을 통해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너무 잘 배웠다. 평생에 잊지 않도록. 학교, 교사, 책, 시험, 강의.... 이런 것은 정말 싫고 싫었는데 그를 통해 이런 면은 그렇게 잘 배웠고 평생에 내 눈에 걸린 액자와 같다. 그리고 이 것이 이 노선을 알고 이 교훈을 배울 때 그렇게 잘 사용 될 줄은 몰랐다. 학교의 공부, 내가 평범하게 살아 온 일상 생활의 것은 그냥 일반적이고 이 분을 통해 받아 가진 것은 그야 말로 특별했다.



(모이면 썩는다는 공회 정신)
공회는 백 목사님이 1959년 고신에서 제명을 당하면서 비로소 자유롭게 새 출발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 이름을 '공회'라고 했다. 왜 하필 교단 이름이 '공회'인가? 개교회 자유주의를 전제로 한 것이다. 개교회주의.

흩어 져 살다 보면 당한다. 없어 진다. 뭉치면 효력이 있다. 1 실력을 가진 10 명이 흩어 져 있을 때, 1 실력 가진 3 사람이 힘을 합하면 3이 된다. 그 3이 나머지 1을 하나씩 격파하면 쉽게 먹는다. 그래서 나머지 7을 먹으면 각자 3배 이상 커지고 전체적으로 1 가진 개인보다 10배 큰 단체가 된다. 이 10배 큰 힘을 가지고 주변에 흩어 져 사는 여러 종류의 1짜리들은 말할 것도 없고 혼자 사는 2짜리 3짜리조차 쉽게 먹고 자꾸 커진다. 그리고 이 것이 100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되면 이제는 어떤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혼자 있는 사람은 무조건 자기 것으로 삼키면서 부족이 되고 그 다음에는 초기 형태의 국가가 된다. 한반도에 최초로 그렇게 한 인물이 단군 두목이다. 단군 두목이 좀 빨리 그리고 효율적이었다면 중국의 황제가 되었을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전능과 무한을 전제로 한다. 한 사람이 1이지만 그가 하나님을 모시면 1 + 1 = 2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1 + 하나님 = 전능에 만능이 된다. 1 + 1 + 1을 천 번이든 만 번을 더한다 해도 그 것으로는 세상을 점령하지 하나님을 상대하지는 못한다. 여기서 공회는 혼자든 여럿이든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생명이며 그 것이 교회며 그 길만이 이 땅 위에서 잘 살고 잘 되는 유일의 방법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공회는 다른 교단들과 연대하는 일을 마치 죄는 되는 것처럼 피한다. 다른 사람과 어울려 하나 되는 상황을 극히 조심한다.

세상의 사업, 학문, 정권, 전쟁이라는 것은 무조건 많이 모이면 낫다. 그리고 어느 단계를 넘어 서게 되면 아예 주변에서 견제조차 할 수 없고 무조건 기어 들어 오게 된다. 로마 제국이 그러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로마 조직은 영원히 갈 것으로 봤다. 지금 미국이 그렇다. 스스로 자만하다 내부적으로 붕괴만 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그 어떤 조직도 상대하려고 나서지를 못할 상황이다. 경제로는 달러가 그렇다. 미국이 핵폭탄을 개발한 다음에 조금이라도 위험해 보이는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을 핵으로 미개국을 만들어 버리면 왜 지금처럼 신경을 쓰겠는가? 미국 내부의 반대 때문에 방심해서 그런 것이다. 이런 곳을 우리는 세상이라 부른다. 하나님이 없는 타락한 세계.


교회도 그렇게 해야 할까? 왜 미국이든 한국이든 어디든 교회들이 자꾸 연대를 하고 뭉치려 할까? 우선은 사랑과 화목이라는 말이 좋아서 그렇다. 그런데 내면을 유심히 들여다 보면 다른 교회와의 경쟁에서 살아 남는 방법으로 보인다. 한 편으로는 세상이 늘 교회에 위협인데 교회가 단결을 하면 세상을 견제할 수 있고 세상에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공회의 개념은, 아예 처음부터 나 하나가 주님과 동행하면 나머지는 주님이 해결한다, 이 것이 생명이며 신앙이며 공회 신앙의 전부다. 지금 동성애를 막기 위해, 또 북한의 남침을 막기 위해, 그리고 미국은 이슬람이나 기타 반기독교적 법제화를 바꾸기 위해 교회들의 연대가 활발하다. 공회는 아예 세상과 싸움을 교회의 보이는 단결과 투쟁으로는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본다. 연기를 그물로 막겠는가, 아무리 촘촘하게 짠다 해도! 하늘의 구름을 모아 고래를 사냥하겠는가?

세상은 엡2:1에서 공중에 권세 잡은 악령의 나라인데 그 나라 안에 들어 있는 교회가 보이는 것은 좋든 싫든 세상에게 다 내어 줘야 하고 내어 주지 않을 도리도 없고, 보이는 정권 법과 제도와 문화와 투표권과 여론과 건강과 가족은 전부 세상에게 내어 주면서도 우리 속에 모신 주님과 말씀으로 사는 나의 행위만은 내 손으로 내어 주지 않으려 하는 싸움만 우리의 싸움이 아닐까? 공회가 소송금지원칙을 주장하는 것은 '소송'이라는 단어를 피하자는 기술적 구호가 아니라 그 근본 속에는 신앙의 세계를 세상에서 해결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안 된다는 것이다.

공회는 왜 교회끼리도 교인끼리도 최대한 따로 믿고 따라 살도록 운영해 왔는가? 공회 교회는 어디를 가도 눈 인사도 잘 하지 않는다. 인사를 하지 않으면 신앙이 있어서가 아니라 반갑게 인사를 하다 보면 자기 속에 회개할 과제를 잊어 버리거나 상대방과 반갑게 대화를 하다 보면 내 마음 속에 몰래 꼭 붙들고 있던 주님과 주님의 뜻을 잃어 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이 것이 원래 공회의 분위기다. 그런데 이 것이 하나의 분위기로 굳어 지다 보니까 이제는 경상도의 투박한 말투나 인상 쓰는 모습이 마치 공회의 신앙 있는 모습처럼 잘못 알려 졌고, 체질적으로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사람들은 신앙이 너무 좋아서 자기의 사교성을 억눌러 도를 닦은 사람이 된 것으로 착각하는 정도가 되었다. 공회 목회자들이 검정 양복에 검정 007가방을 쥐고 앞만 노려 보거나 눈만 감고 있으면 그 속에는 지금 주님과 깊은 동행의 세계가 이루어 진다고 남들이 착각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목회자가 세상의 유행을 쉽게 따르지 말고 또 교회 돈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자는 뜻으로 검정 양복이 교복처럼 되었는데 현재 공회의 목회자들이 중들 머리 깍듯이, 신부 수녀들이 검정 옷을 입듯이 겉 모습만 남은 상태가 되었다면 공회 목회자들의 검정 양복은 구약의 바리새 교인들이 외식일 뿐이다.



사람이 모이면?
그 중에 반드시 뛰어 난 사람이 있다. 그 뛰어 난 사람이 아무리 숨으려 해도 돋 보이게 되고 결국 주도하게 된다. 좋은 면으로도 그렇다. 그리고 그 한 사람 때문에 구약도 그렇고 신약의 교회사에서도 시대를 감당하는 좋은 복음 운동이 나타 난다. 개혁교회의 16세기 루터와 칼빈으로부터 한국교회의 주기철 손양원 백영희 김현봉 등이 다 그렇다.

그런데 사울처럼 중간에 실패하지 않고 끝까지 바르게 걷고 가르 쳐서 다윗처럼 좋은 교회를 만들어 뒀다면, 그 뒤는 솔로몬 같은 실수가 나오고 그 후에 르호보암처럼 폭망하는 일들이 생긴다. 피할 수가 없다. 그래서 공회는 모이지 않아도 각자가 주님과 동행하는 영의 사람이 되면 각자가 자기 위치에서 다윗이 될 것이고, 여러 다윗이 함께 모이면 자연스럽게 더 큰 다윗이 되겠지만, 여러 다윗이 뭉쳐서 회장이 있고 회비를 모아 서기와 회계와 위원들이 역할을 맡으면 복음 운동을 힘있게 하며 교회를 위협하는 세상에 맞설 수 있고 함께 세운 교육 기관이 자라 나는 신앙을 제대로 잘 양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공회는 이미 그 시도가 주님의 무한, 주님의 전능, 주님과 동행이 생명이라는 절대 가치를 포기하고 세상의 덩치 싸움으로 변질이 되었다고 본다.

정말 피할 수 없이 모여야 한다면 모인다. 가라 해서 갔고, 가서 증표를 받아 오라고 해서 사울의 진을 찾았다. 그 과정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군대를 욕하는 원수를 목격했다. 아무도 나서지 않으니 다윗은 나갔을 뿐이다. 처음부터 다윗이 출세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자기가 나서면 여러 면에서 유리하고 출세에 도움이 될 순서를 암산하지 않았다. 주님 인도를 따라 주님과 동행하다가 엘라 골짝에서 골리앗을 보게 된 것이다.


교회가 비록 좋은 뜻으로 모여도, 사람이 모여 지면 그 속에 지도자가 보이게 된다. 귀신은 그 지도자 하나만 잡으면 나머지는 저절로 다 따라 온다는 경제적 투자를 잘 안다. 어느 때 누구를 통해 어떻게 하면 가장 쉽게 교회를 다 삼킬까? 방법이 많다. 평소 교회 창문에 돌을 던지는 귀신은 교회를 크게 해하지 못한다. 순복음교회 80만 교인들의 가정마다 부부싸움을 해서 죄를 짓게 하는 것은 참 어렵다. 그대신 조용기 목사님 머리에 교리 하나만 바꾸게 하면 귀신은 통째로 80만 교인을 소리도 없이 삼킬 수 있다. 조용기 목사님이 신령하여 잘 버텨 내면 그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워서 본인은 원통하고 교인들은 오해를 해서 이탈하게 만들어도 된다. 방법은 많으나 많이 모인 곳일수록 진리가 흥황되는 것보다 서로의 자기 속에 죄와 어두움이 반응을 하면서 교회가 이탈 되는 것이 쉽다.

가축을 한두 마리 기르면 병이 없다. 대규모로 기르면 무수한 질병이 발생한다. 풀도 나무도 곡식도 다 그렇다. 타락한 세상은 그 어떤 것이든지 모이기만 하면 죄를 짓고 하나님과 멀어 지는 방향으로 커지고 많아지고 강해 진다. 아벨을 죽인 가인이 떠나 가서 바로 성을 쌓는다. 요즘으로 말하면 창4:17에서 벌써 도시화가 시작 된다. 그리고 21절에는 예술이 벌써 발전하고 22절에서는 정밀 기계 공업이 나타 난다. 하나님을 떠났고 그 은혜가 없지만 인간이 모이니 이 땅 위에 낙이 생기고 이 세상의 발전은 오늘까지 이어 지면서 이제는 제동이 이미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과 진리는 없어 졌고 천국은 멀어 졌음이 틀림 없다.

신앙의 사람은 애굽의 바로 왕궁 안에서도 출애굽을 준비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말세 휴대폰과 인터넷 때문에 죄악이 노아 때 땅을 다 덮어 버린 죄악의 물결보다 더 극심한 듯하다. 한 의인보다 두 의인이 낫다. 두 의인보다 열 명의 의인이며 소돔이라도 구원하니 더 낫다. 그런데 한 의인보다 두 의인이 두 의를 모으려 하다가 의인은 2명 10명으로 늘어 나지만 속에 들어 있는 주님과 동행과 영의 생활이 후퇴하면 이 것은 신앙의 학살로 가는 길이며 교회가 공원 묘지가 되는 길이다.


그래서 공회는 개교회주의다.
주님을 모신 1 사람
주님을 모신 1 교회
주님을 모신 1 공회에 주력한다. 주님을 모신 상태를 유지하면서 많아지는 것은 우리는 부흥이면 성장이라고 본다. 주님과 멀어 진 규모는 어떤 덩치라도 우리는 탈선으로 본다. 경험적으로 아주 특별한 인물이 주도하는 과도기의 잠깐이면 몰라도 일반적으로는 모일수록 죄가 넘치고 인간의 술수와 인간적인 감성이 주도한다. 그런데 주님과 동행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다 보면 해야 할 일조차 하지 않고 골방에 숨어 충성을 하지 않을 수가 있다. 이 점을 고쳐 보려고 공회는 주일학교 반사로부터 모든 교회와 공회 전체의 모든 모임을 늘 1일 보고로 챙긴다. 모르는 이들은 방문 판매원을 실적 그래프로 경쟁을 붙이는 상술이나 심리적 운영이라고 비판을 한다.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자기 충성을 독려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하늘의 소망에만 전력하도록 우리의 연약한 내면을 깨우치는 노력이다.



세상은 모이면 강해 진다. 흩어 지면 망한다.
신앙의 세계는 모일수록? 뭔가 걱정이 앞 선다. 주님과 동행이라는 내면이 유지 되면서 생명력이 점점 강해 지는가?
대개는 모였다 하면 99.99999 % 이미 썩기 시작한다. 이미 소리 없는 귀신이 벌써 그 모임을 주창하고 앞 장 서고 열심을 내는 이들의 심리를 먼저 붙들어 버렸다. 그 뒤를 끝까지 봐야 할까? 세상의 한 단체의 흥망성쇠와 교계의 통계를 보면 그냥 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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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WCC 동성 ... 귀신의 복병전, 논점 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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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6
성탄행사를 폐지할 시점 - 1980년 8월의 주교 야외예배 폐지 (2)
담당 | 2019.12.25 | 추천 0 | 조회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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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1
감정이 가진 반발심, 북조 이스라엘부터 오늘까지 (1)
담당 | 2019.12.15 | 추천 0 | 조회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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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2
C. 사후 30년을 돌아 보며 - 연구소의 역사적 고찰
서기 | 2019.11.12 | 추천 0 | 조회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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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6
(23) 교회 경영론으로 본 백영희 (거창고 전영창과 비교하며) - 2
서기 | 2019.11.14 | 추천 0 | 조회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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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6
(24) 사후 30년을 돌아 보며 - 연구소의 역사적 고찰
서기 | 2019.11.17 | 추천 0 | 조회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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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7
(25) 전교조가 그린 1964년의 꿈, 그 실패와 실체
서ㅣ | 2019.11.22 | 추천 0 | 조회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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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8
(26) 타 교단과 같았던 시절, 총공회의 성장 과정
서기 | 2019.11.27 | 추천 0 | 조회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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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3
(27) 전국의 공회가 한 가족으로
담당 | 2019.12.10 | 추천 0 | 조회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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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7
(28) 교회를 방문하는 타 교회 목회자와 교인들
담당 | 2019.12.22 | 추천 0 | 조회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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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3
(29) 개별 교회의 사경회, 공회의 인재를 실제 길러 내던 기회 (계속2)
담당 | 2019.12.31 | 추천 0 | 조회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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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1
(30) 서부교회 4층, 강하기만 하다 실패
담당 | 2020.01.03 | 추천 0 | 조회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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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4
(31) 내게 각인 시킨 목회자의 고난
담당 | 2020.01.09 | 추천 0 | 조회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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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3
(32) 나는 적어도 의리는 있다. 나는 신앙의 의리를 본 적이 없다.
담당 | 2020.01.11 | 추천 0 | 조회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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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5
(33) 공회의 굉장한 인재들, 그 어릴 때와 훗날
담당 | 2020.01.12 | 추천 0 | 조회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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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7
대법원 최종 판결 (1)
이영인 | 2019.10.18 | 추천 0 | 조회 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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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2
'이 말씀 전하다 이 말씀 때문에 죽는 것' - 종교인의 상식이 아닐까?
부공3 | 2019.10.27 | 추천 0 | 조회 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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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1
연구소 정체성에 대한 참담한 시비 (6)
담당 | 2019.11.02 | 추천 0 | 조회 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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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
화산, 지진, 전쟁이라는 파란이 주는 선물
서기 | 2019.11.09 | 추천 0 | 조회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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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5
B. 사후 30년을 돌아 보며 - 연구소의 역사적 고찰
서기 | 2019.09.29 | 추천 0 | 조회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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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6
(12) 전원일치의 악용 - 탈선이란 제도로는 막지 못한다. (3)
서기 | 2019.09.29 | 추천 0 | 조회 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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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3
(13) 나의 요게벳 - 김명자 나인숙을 평생 그린다. (1)
서기 | 2019.10.01 | 추천 0 | 조회 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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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1
(14) 세상을 참 몰랐다. 지금은 세상을 안다. - 공회와 교인의 여러 현안을 중심으로 (1)
서기 | 2019.10.06 | 추천 0 | 조회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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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0
(15) 국가에 반영된 공회 의견들 - 공회와 세상 (보충) (4)
서기 | 2019.10.09 | 추천 0 | 조회 1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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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3
(16) 전국 최고, 최초, 최대를 휩쓴 기록들
서기 | 2019.10.13 | 추천 0 | 조회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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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1
(17) 하늘에서 떨어 진 횡재, 백 목사님께 순종하면 그러했다.
서기 | 2019.10.20 | 추천 0 | 조회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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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9
(18) 극단적 탈선과 가족의 고난, 백 목사님께 거역하면 그러했다.
서기 | 2019.10.24 | 추천 0 | 조회 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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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1
(19) 아버지께 배운 '경제 내핍'과 '백영희 자녀 교육'
서기 | 2019.10.26 | 추천 0 | 조회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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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2
(20) 축소 시켜 허락하신 '호사스런 경험'
서기 | 2019.11.03 | 추천 0 | 조회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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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8
(21) 백영희를 소개한 분들, 보물을 소쿠리에 끌어 담다. - 보충
서기 | 2019.11.06 | 추천 0 | 조회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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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
(22) 교회 경영론으로 본 백영희 (거창고 전영창과 비교하며) - 1
서기 | 2019.11.10 | 추천 0 | 조회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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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6
A. 사후 30년을 돌아 보며 - 연구소의 역사적 고찰
서기 | 2019.09.07 | 추천 0 | 조회 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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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7
(1) 이 노선을 위해 특별히 예비 된 우리
서기 | 2019.09.07 | 추천 0 | 조회 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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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9
(2) 한 사람의 사례로, 각자 자기를 살펴 보셨으면
서기 | 2019.09.08 | 추천 0 | 조회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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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
(3) 백영희의 학습 세계, 나의 과거를 돌아 본다. (3)
서기 | 2019.09.11 | 추천 0 | 조회 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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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6
(4) 백영희 설교의 자료화, 1948년의 의미 (1)
서기 | 2019.09.14 | 추천 0 | 조회 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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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7
(5) 공회의 '선교관'
서기 | 2019.09.15 | 추천 0 | 조회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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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1
(6) 모이면 썩고 흩어지면 사는, 진리의 세계
서기 | 2019.09.17 | 추천 0 | 조회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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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
(7) 우리는 못났다. 그러나 자라 가면 된다. (1)
서기 | 2019.09.20 | 추천 0 | 조회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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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3
(8) 백영희 가정의 교육 - 이 노선 우리에게 주신 보석들
서기 | 2019.09.22 | 추천 0 | 조회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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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4
(9) 공회의 결혼 이야기 - 20세에 결혼하고 30세에 아이 4명
서기 | 2019.09.22 | 추천 0 | 조회 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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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4
(10) 나의 총공회 1등 기록들 - 혼자 달리니 민망했다.
서기 | 2019.09.24 | 추천 0 | 조회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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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9
(11) 공회의 감탄할 기록들 – 모두가 가장 평범한 것에서
서기 | 2019.09.27 | 추천 0 | 조회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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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2
변치 않는 사명, 변하는 사명
담당 | 2019.09.07 | 추천 0 | 조회 184
담당 2019.09.07 0 184
1193
다윗의 전쟁, 그 모든 향방은 '성전' 건축
담당 | 2019.09.07 | 추천 0 | 조회 189
담당 2019.09.07 0 189
1147
다윗의 성전 준비로 본 연구소의 사명
담당 | 2019.08.30 | 추천 0 | 조회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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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4
훌륭한 지도자의 당대와 후대
담당 | 2019.09.07 | 추천 0 | 조회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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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6
압살롬과 시므이 (1)
담당 | 2019.08.30 | 추천 0 | 조회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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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6
세상의 어느 장관, 공회의 어느 장관 (1)
담당 | 2019.09.18 | 추천 0 | 조회 324
담당 2019.09.18 0 324
1131
'시체를 도적질하여 갔다'고 퍼뜨리니 오늘까지..
담당 | 2019.08.24 | 추천 0 | 조회 307
담당 2019.08.24 0 307
1125
이론적 양심가들의 불장난과 시대의 균형추
담당 | 2019.08.21 | 추천 0 | 조회 374
담당 2019.08.21 0 374
1133
최악의 좌익이, 정상적 우익으로 - 안병직으로 본 공회 (1)
회원 | 2019.08.25 | 추천 0 | 조회 381
회원 2019.08.25 0 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