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2) 한 사람의 사례로, 각자 자기를 살펴 보셨으면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9.09.08
자서전이 되어도 이 노선 우리 모두를 위해 '사례'를 드리고 싶다.
내가 접하는 분들은 각자 위치와 장단점은 달라도 분명히 이 노선을 위해 주님이 특별히 만들었고 남 다른 점을 주셨다.
내가 거친 50명 정도의 연구소 직원들은 물론 내가 접한 거창과 사직동과 St.Louis와 서부교회와 신풍교인은 다 그렇다.
나는 아침마다 850명의 이름을 적으며 기도한다. 그들 모두가 다 그렇다. 그런데도 아니라는 분은 따로 연락해 주면 설명해 드리고 싶다. 자기의 신상을 간단히 적어 연구소 이메일로 주시라. 이제 적는 소개는 하나의 평균이지 않을까?




1. 집안
조부가 병에 걸려 젊은 나이에 안방에 누워 있었고 조모는 들에 나가 생풀을 뜯고 있다 지나 가는 선교사에게 주일날 밥 한 그릇 얻어 먹는 기회를 허락하여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10리 산길을 걸어 교회를 출발했다. 이 선교사와 함께 다닌 분이 새공릉교회 이도영 목사님 조모였고 그 교회가 그 분 댁이었다. 이 목사님은 공회의 평범한 분이고 그 분과 비교하면 집안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내 부친은 초등학교조차 다녀 본 적이 없다. 백 목사님은 평생 5학년만 다녔다 하고 백태영 목사님은 초등학교 2학년만 다녔다며 평생 말씀했다. 그 시대라 해도 초등학교는 나오던 시기고 최소한 다녀는 봤다는 뜻이다. 부친의 나이는 백영희 백태영 사이다. 그리고 13세에 남의 집 머슴으로 살았다. 평생 부친을 아는 사람치고 부친보다 더 가난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은 없다. 그렇다면 학습력이나 다른 재주라도 있는가? 사촌이 30명쯤이나 반장 한 번을 한 사람이 없다. 우등상장 1장을 받았다는 말도 들은 적이 없다. 공무원 1명이 없고 대기업 1명이 없다. 거의 다 공장 기계공이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의 어떤 가정과 비교해도 비슷하거나 좀 못한 편일 듯하다.


2. 신앙
백 목사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 시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배가 고파 교회를 출발했고 가난하고 한이 맺혀 열심히 다닌 정도, 딱 그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서 신사참배 문제가 생기자 모두 그 시대 사람들처럼 그렇게 했다. 그런데 해방 후 백영희 집사님의 활동이 시작되면서 고개 너머지만 생활권에 살았던 부친 4형제 식구들은 대부분 열심히 믿었다. 당시 백영희 주변의 교인들은 자자손손 모두가 전설적으로 믿었다고 말한다. 실제가 그렇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각 집안은 그들 부모들만 그런 줄 안다. 거의 다 그랬다. 백영희가 거쳐 간 '개명 봉산 원기동 웅양 > 위산 > 서부 > 청량리' 교회의 교인 대부분은 전부 자기나 자기 부모만이 마치 백영희 직계였던 것처럼 말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보면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백영희와 접촉한 이들은 타 지방, 타 교회, 타 목회자와 접했던 분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모두 전설적으로 믿었다. 나도 나의 부모만 백영희의 하나뿐인 직계인 줄 알았다. 공회사를 연구하면서 백영희 전기를 적으면서 모두가 나처럼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백영희를 직접 접하면서 전설적인 신앙을 갖게 된 이들의 가정은 그 자녀들이 대부분 특별한 신앙으로 자라 갔다. 그들이 공회의 지금 주력들이다. 물론 곳곳에 별스러운 아이들도 있었다. 그렇다 해도 나는 손꼽을 정도로 나쁜 아이로 자랐다. 나 정도로 교회 내에서 나쁘게 자란 경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돌아 가신 개명 출신 이재순 목사님, 지금 대구공회의 원로 김영웅 목사님 등이 나 없는 곳에서 아마 나를 솔직히 설명했을 듯하다. 나를 가장 싫어 했어야 할 분은 정작 신용인 김명자 목사님 부부라야 한다. 신 목사님은 그 엄청난 성격에도 불구하고 꾹 참아 주셨고 그 사모님은 오늘의 나를 만드셨다. 그 분들이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면 그 것은 사실에 따른 평가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밉상이라고 듣고 자기의 선입견을 더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 순간까지 나는 총공회 범위 내에서 나 없는 곳에서 가장 악평을 듣는다고 알고 있다. 백영희 살인범, 이 것이 백영희 장례 직후 1년을 따라 다닌 나의 이름이다. 어린 놈이... 이 말은 나보다 나이도 적은 동역자들로부터도 들었던 말이다. 여론이 그렇다 보니 그렇게 되었으리라. 신도범 목사님은 15년만에 만났을 때 이영인이란 것이 백 목사님 두 딸과 하나 되어 서부교회와 총공회를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말을 대구공회 백태영 백영침 이재순 등으로부터 전해 들었다면서 아주 면박을 했다. 그러나 그 다음 날 전화가 왔고 자신의 언행을 취소했다. 그 분은 1976년에 내게 백영희 목사님과 꼭 같은 차원의 스승이었다. 그래서 더 존경스럽다. 이런 초월적 지도자들은 사과성 취소를 하지 않는다. 그는 이 노선을 벗어 낫지만 이 노선 내에 있는 거의 모든 지도자들처럼 비겁하지 않았다. 지금 94세에도 능력 있는 목사님으로 과거 모든 기억이 어제 일처럼 술회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공회의 역사며 공회 밖에서도 공회를 변호했다.


3. 목회자
나는, 총공회 2백여 목회자와 비교를 해 본다. 모두들 최소한 나보다는 낫게 출발했고 나보다는 나쁜 평을 덜 듣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꼴찌는 아닐지라도 중간에 갈 정도는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공회 모든 목회자는 거의 다 나보다는 나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부공3 소속이 아닌 분들은 '제 꼬라지를 알기는 아는구나'라고 읽을 듯하다. 부공3 밖에 모르는 이들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가? 총공회 전체를 통해 최상위급인데 겸손도 지나치면 교만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듯도 하다. 나는 공회 신앙의 중간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공회 대부분 목사들은 나처럼 평생을 다 기울여 이 노선과 이 교훈을 전하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나보다는 돈과 시간과 노력을 더 기울이는 것이 맞다고 본다.

부공3 내에서도 나를 돈과 명예 때문에 백영희를 써먹고 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돈과 명예를 초월한 사람들이니 나보다 이 노선과 교훈을 소개하기 위해 나보다 더 노력해야 하지 않았을까? 돈과 자기 명예 때문에 백영희라는 남을 상품으로 파는 장사치와 비교할 때 돈과 명예를 초월한 종들의 충성은 분명히 조금이라도 나아야 하지 않을까? 얼마나 해 먹었는지를 일단 접어 두고 일단 전하기는 했는가? 백영희 자녀분들의 극언은 더 심하다. 이단이라고 법원에 일러 바친 정도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기 부친을 소개하는 것이니 그러면 얼마나 전했나? 얼마의 돈을 투자했나? 그들은 자기들 자녀를 나처럼 세상 공부를 전부 포기 시키고 이 노선의 최전선으로 보냈는가? 이렇게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가장 나쁜 나보다는 나아야 정상일 듯하다. 내가 적고 전한 것을 허락 없이 했다고 전과자를 만들었지, 그 내용에 구체적으로 틀린 것을 짚은 적은 있었는가? 오히려 그들이 전한 것이 잘못 되었다고 내가 지적을 해서 그들이 고친 것이 있다. 많다. 여기서는 그 것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총론을 말한다.

왜 총공회 200명 목회자 중에서 가장 저질이며 나쁘며 이단인 나만 설교록을 연구하고 연구서를 발표하고 설교록을 전하나! 참으로 기이하다. 공회 방법으로 공회를 외부에 소개한 글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른 신학교의 체계에 이 노선을 담으려 노력한 이들은 더러 있다. 그들의 활동 때문에 덕을 본다. 그러나 공회 내적으로 말하면 그 발표문은 공회식 발표는 아니다. 10만 페이지 백영희와 공회 자료 일체를 나는 무제한 무차별 전달했다. 그리고 현재 징역 6개월의 고등법원 결과를 두고 대법원의 최종 전과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나보다도 이 노선과 교훈을 전하지 않았다면, 아예 전하지를 않았다면, 내가 전할까봐 자료를 감추고 막고 일러 바쳐 전과자가 되게 했다면, 또는 나의 길이 옳다고 함께 하다가 경고장 하나를 받고 황급히 몸을 피했다면,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나는 총공회의 최고 인물이 아닌가?

전교생이 200명인데 1등에서 199등까지가 시험을 치지 않고 도망을 갔다. 200등으로 알려 진 꼴찌 혼자 시험장에 앉았다. 그렇다면 이 학생이 뭐라고 적어 내든 1등이 되지 않을까? 나에게 괜찮은 점이 있고, 나에게 남보다 나은 실적이 있다면, 따져 보면 다 이런 식이다. 참으로 기이하다. 총공회 이름을 기억하거나 사용하는 목사들은 전부가 '백영희 신앙노선은 역사적!' '세계적!' '독특한!' 곳이라 한다. 대구공회 부산공회 각 홈에도 교회 홈에도 그렇다. 목회자들이 주변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다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왜 제일 나쁜 인간 1명만 전하고 왜 다른 이들은 다 전하지 않는가?

나는 백 목사님 사후에 5번 제명을 당했다. 참으로 우스운 것은 제명을 시킨 쪽은 제명을 시킨 적이 없다고 펄쩍 뛴다. 역사의 죄인이 될까 두렵기는 한 모양이다. 1990년 1월, 분리 전의 총공회 양성원에서 양성원 교수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위에 어른들이 지급하지 말라는 말을 하니 그렇게만 알고 있으라고 했다. 대구공회에서 양성원 교수직을 제명하면서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구공회는 상식이니 합법이니 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옳을 듯하다. 그리고 천석배라는 호남전체 지역의 공회 대표 목사님이 예배당 화장실 앞에서 '이영인을 제명한다'고 선포를 했다. 선포를 하면 효력이 있다는 말까지 하면서. 그런데 그 근거를 받아 보니까 고신 교단의 헌법이다. 고신 교단의 헌법으로 공회 목회자를 제명한다? 그 것이 1989년 1월에 나와 다른 길을 걸었던 분들의 역사가 되었다. 1993년부터 부산공회에서도 그런 일을 3회 당했다. 모두 합하면 5회다. 2014년경인가? 부공3 안에서도 3명의 목회자가 또 그렇게 나를 처리했다. 다 합하면 8번 정도 제명이 된 모양이다. 아마 총공회 전체의 최고 제명 기록이지 않을까?

단 한 번도 나를 불러서 해명할 기회를 주거나 절차를 밟은 적이 없다. 모두 소리 없이 그냥 이름에서 지워 버렸다. 나는 주일학교 1학년 처음 출석하면서 연보를 받아 교회 갖다 주는 것이 아까와 교회의 반대편으로 가서 만화방에서 그 돈으로 오전 예배를 빼먹었다. 창동교회 김봉선 집사의 아들이 빠졌으니 필시 아파서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듯하다. 아무 탈이 없었다. 그런데 중생은 되었나 보다. 그렇게 양심에 가책이 되어 다시는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대신 마루 예배당이던 시절, 사촌 동생 하나와 예배당 마루 밑으로 가서 못으로 헤집으며 연보 동전 하나 떨어 진 것을 줏으러 다녔다. 그리고 성탄절이 되면 반사 선생님들이 전 시내를 다니며 아이들을 교회로 보낼 때 그 동생 나는 대문에서 처음 오는 아이들을 전부 집으로 돌려 보냈다. 이런 나를 알기 때문에 김영웅 목사님 정도의 연세 되는 사람들은 나 없는 곳에서 아마 나를 목사라는 호칭도 제대로 잘 하지 않는다는 말을 평생 듣고 있다. 그렇지 않겠는가? 주일학교 예배 시간에 예배가 진행 되지 못하도록 예배 시간마다 휘젓고 다녔다. 나는 옆에 있는 고신의 거창읍교회가 아이들에게 잘 해 주니 그리 간다고 늘 노래를 불렀다.


총공회 200개 다른 목회자들과 부공3의 10여명 다른 목회자들은 성장 과정이나 신앙 출발 이후에 모두 덕이 되고 주변에서 목회자가 될 인물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자랐다고 한다. 좀 혼란의 시기를 거친 분들도 있으나 적어도 예배당 안에서 교회를 상대로 그렇게까지 한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앞에 적은 이야기는 그래도 철이 없을 때 그랬을 것으로 백 번을 양보해서 이해해 줄 수 있다고 보나, 여기에 차마 적지도 못하는 이야기들은 더욱 많다.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하는 원로 장로님격에 해당 되는 분의 면전에 했던 언행은 그냥 생략한다. 한 마디로 나는 다음에 여러 특별한 점을 설명하고자 한다. 그 특별한 점은 그 면만 보면 남 달라 보일 듯하다. 그런데 나의 집안과 성장 과정을 보면 나에게만 있는 일이 아니라 다른 분들에게는 종류가 달라서 그렇지 특별한 일들이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하며 이 글을 적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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