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3. 고신의 계약신대원 인수, 약육강식? - 진행

작성자
담당a
작성일
2021.10.12
(고신의 타 교단 병합사)

1. 큰 것을 먹으려다 먹힌 경험
고신이 일제 말기 신사참배를 반대할 때는 한국 교계의 변방에 이름 없는 이들이 전부였다. 손양원? 해방 후에 알려 졌지 그 전에는 아무도 몰랐다. 한상동 이인재 주남선 조수옥 손명복 박인순... 고신과 연관성이 없으면 합동 합신 개신조차 이런 이름은 서툴다. 대부분 모른다. 그냥 해방 후 교회 분열사에서 잠깐 알았을 뿐이다. 마치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한국 교회에서는 미국 내 하바드 예일 다음이나 가는 줄 알지만 미국인 중에 그 학교를 아는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다. 고신의 일제 말기 인물은 한국 교회사에서 기억조차 하지 못할 인물들인데 신사참배 때문에 해방 후에 알려 지기 시작했다.

해방 후 갑자기 신사참배 문제가 크게 부각이 되자 고신으로 모인 인물들의 역할은 중요해 졌다. 그렇다 해도 장로교는 당회든 노회든 총회든 다수결이다. 90%라고 할 수 있는 신사참배 지지 세력이 총회를 장악하고 10%가 되기 어렵든 경남 중심의 고신을 간단히 제거했다. 아무리 진리를 외쳐도, 해방 된 조국에서 신사참배를 이긴 종들이 모이면 권위가 설 줄 알았으나 허무하게 밀려 나가게 되자 고신은 1950년대를 거치며 교회의 진리도 머리수를 확보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비로소 절감했고 이후부터는 진리 투쟁을 위해 회원 확보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본질이었던 진리는 묻어 버렸고 잊혀 졌으며 남은 것은 표대결뿐이다. 그래서 총회가 합동과 통합으로 양분 될 때 비교적 가깝다고 느낀 합동과 고신은 교단을 합한다. 아무리 봐도 야합이었고 자기 부정이었다. 그런데 합한 다음에 원래 큰 세력이든 합동에게 일방적으로 다 뺏기고 나서 얻은 경험은 '큰 것과 합하면 먹히고, 작은 것과 합하면 먹는다'는 약육강식을 터듯했다.

바로 이런 역사적 경험을 체득하는 과정에 변해 가는 고신을 보면 극단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첫째는 일반인들이 고신을 참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자기들보다 월등히 크고 많은 교단과 합하고 나면 고신이 진리로 상대를 압도할 줄 알았다. 상대가 약속을 지킬 줄 알았다. 그들이 그렇게 양심적이면 일제 말기 신사참배를 버텼겠지, 해방 후 회개라도 했겠지, 뻔한 것을 가지고 어두워 지니 그렇게까지 어리석게 되었다. 다른 한 편으로 본다면 고신이 순수하기는 틀림 없이 순수하다. 순진하다. 착하다. 그러니 신사참배를 이겼겠지.. 그렇다면 끝까지 순수했으면 진실은 주장할 수 있었을 터이나 순수하다 해서 큰 것을 먹으려다 먹혀 버렸다. 그래서 1964년 다 삼키기 직전에 황급히 탈출을 하는 바람에 1961년에 합할 때 고신이 가졌던 큰 교회 중요한 인물 훗날 한국 교회에 위인이 될 인재와 교회를 거의 다 뺏겼고 악으로 깡으로 끝장을 볼 몇만 고신의 이름으로 다시 출발하게 된다.



2. 고신의 이후 노력
확실히 숫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상태에서 상대방 교단을 먹는 것이 고신의 이후 원칙이다. 역사적 교훈이다. 대략 고신은 1500개 교회였다. 지금은 좀 많아 졌을 듯하다. 이 상황에서 고신보다 적으면서 우선 신앙적으로 고신 주변에 있는 교단들은
* 순장로교 : 북한에서 재건 운동을 하다 6.25 때 피난 온 교회다. 부산 주변에 있다. 몇 개 정도의 교회가 전부였다.
* 서울고려파 : 석원태 목사님이 고신에서 탈퇴하여 수도권에 세운 교회다. 1백개나 되었을까?
* 재건파 : 해방 직후 고신과 바로 나뉘었다. 1백개나 될까?
* 계신측 : 1백개나 되었을까? 최근에는 2백개를 헤아린다고 하였으나 원래 총공회보다 적었다.
* 총공회 : 백 목사님 생전에 1백개 이후 2백개가 된다.
* 합신 : 박윤선 목사님이 합동에서 탈퇴하여 형성한 곳이다. 수도권 중심에 괜찮은 교회들이 꽤 많다. 몇백 개는 되었다.

각 교단의 연도별 통계와 고신이 통합을 추구하는 노력은 따로 보충해 나가겠다. 지금은 일단 기억으로만 적는다.

이 교단들의 특징은 고신보다 더 강경하다. 그래서 대화가 더 어렵다. 또 각 교단은 고신의 한상동을 우습게 알고 각 교회를 지도한 초기 지도자들에 대한 존경이 아주 특별하다. 이럴 때는 그냥 두고 기다리면 된다. 지도자가 죽으면 흐트러진다. 그들이 어디를 가겠는가? 고신보다 더 넓고 흐린 곳이 합동, 그보다 세상으로 더 나간 곳이 통합, 그보다 더 심각한 곳은 기장 등이다.

고신의 1차 흡수 대상은 늘 서울고려파였다. 그러나 석원태라는 지도자가 살아 있을 때는 어렵다고 봤다. 그런데 석원태와 경향교회가 내분에 휩싸여 분열이 생겼다. 경향교회도 내분으로 갈라 섰고 서울고려파의 일반 교회들은 대거 석원태와 나뉘었다. 그들이 어디를 가겠는가? 고신은 그 어느 곳보다 내분이 많지만 일단 고신대와 고신대학병원이라는 큰 이권이 있고 그리고 1,500여개의 교회들이 체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내분을 견뎌 낼 외피가 든든했다. 서울고려파는 석원태의 권위가 무너 지는 순간 덩치로나 그 어떤 면으로도 그들을 묶어 줄 연줄이 없었다. 고려파로 대거 넘어 와 버렸다. 고신은 남의 슬픔을 통해 순식간에 덩치를 키웠다. 재미를 본 것이다.

고신이 숫자가 적은 교단에게 일대일 통합을 제의할 리는 없다.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최대한 예우를 하되 그냥 흡수 통일만 추구한다. 명분만 제공하면, 그리고 소규모 주변 교단이 내분에 내려 앉으면 저절로 고신으로 온다는 경험이다. 순장로교나 재건교회는 내분으로 쪼개질 문제는 아니나 너무 오랜 세월을 폐쇄적으로 운영하다 보니 교회들이 지리멸렬인데 교계 환경의 변화로 주변 교단과 격차가 너무 컸다. 더 이상 독자 생존이 어렵게 된 것이다. 하나씩 흡수할 여건이 조성 된 것이다.

총공회는 백 목사님 사후 연일 분열 소식이 들렸다. 백영희 생전에도 이탈하는 교회들은 거의 고신으로 들어 왔다. 백영희 사후 서부교회의 분열을 시작으로 공회가 여러 갈래로 나뉠 때 고신은 애가 탔다. 고신의 열등감 중에 열등감은 초대형교회가 없었다. 서부교회가 들어 와 주면 너무 좋은 경우다. 백 목사님 생전에 이미 고신의 총회장이나 고신대 총장 등 주요 인물들이 교단을 합하자고 제의를 해 왔었다. 부산의 북교회 담임 중 과거 백영희를 제명할 때 서기를 했던 서완선 목사님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눈물까지 보이면서 백영희 가족 중 한 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 기록이 있다. 백영희 사후, 본 연구소까지 찾아왔던 핵심 인물도 있다. 본 연구소는 불과 10개 교회도 되지 않는데 왜 왔을까? 본 연구소가 총공회 전체의 언론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총공회가 고신과 합하는 데는 역할을 하지 못하나 합하려 하는 이들이 이 곳의 눈총 때문에 행동을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으로 여겨 진다. 고신의 핵심 인물들을 여러 사안으로 접한 적이 있다.

합신의 경우, 박윤선 목사님이 고신에서 쫒겨 났던 때를 고신이 합동에게 당한 것만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리고 재건 총공회 서울고려 순장로교 계신측과 달리 합신측은 비록 숫자는 적지만 신학적 체계적 기반이 든든하다. 독자 생존에 당장 아쉬움이 없고 내외부 충격이 별로 없는 곳이다. 물론 소규모라는 단점 때문에 언제든지 급하면 고신과 우선 합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늘 교류나 협의의 연결선은 살려 놓고 있다.


계신의 경우, 이병규 목사님이 공회의 백영희와 같은 위치다. 그들의 생전에는 몇개 이탈 교회는 가질 수 있어도 전체를 가질 수는 없다. 백영희 사후 공회처럼 이병규 사후가 되면 계신 교단도 어느 날 내분이 날 것이다. 공회는 근본적으로 고신과 교훈과 행정이 아주 판이하다. 계신측은 거의 같다. 그러니 가지기 쉽다. 그리고 최근 이병규 사후 바로 계신의 중심인 창광교회 내부에서 분열이 터졌고 몇 년을 버텼으나 결국 망국 신라가 신흥 고려 왕건에게 나라를 바치고 스스로 속국의 단계를 지나 그냥 고려의 일부가 되는 상황을 현재 우리는 보고 있다.


3. 세월을 기다리면 된다는 학습
고신보다 더 강한 신앙의 결집체들은 고신보다 규모가 적다. 교회라는 종교 단체가 옆에 있는 타 단체를 접수하는 것은 어렵다. 집을 바쁘게 사려면 값이 올라 간다. 그 집의 주인이 급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부동산 구입의 방법과 같다. 그 기간 동안 고신 노선의 신앙을 모르고 세상에게 그들의 신앙을 손해 보는 것은 처음부터 관심도 없다. 애 태울 것도 아니다. 종교인이 아니라 종교 사업가이거나 종교 활동가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냥 두면, 1-200개 정도에 지나지 않는 교단들은 지도자의 장례나 내분이 생기면 이합집산하면서 고신으로 그냥 들어 온다. 이들이 고신 안에 들어 오면 원래 있던 고신의 규모 때문에 그냥 고신의 일부만 된다. 그런데 그 일부가 동남아 이민 유입자들처럼 한국 사회가 손해를 본다는 그런 식이 아니라 마치 서구인들의 한국 귀화처럼 한국민들로서는 여러면에서 좋아 보이는 모습이다. 이 교단들이 고신보다 신앙의 결집력이 더 강하기 때문에 고신에 들어 오면 고신의 전체 신앙을 더 신앙답게 만들기 때문이다. 회원의 숫자는 고신의 기존 정치 판도에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에 거저 먹는 것이다. 아이를 낳느라고 고생할 것도 없고 아이를 기르느라고 수고할 것도 없이 그냥 20대 30대를 입양하는 셈이다.

서울고려파 등을 흡수하고 또 최근 몇몇 교단을 흡수할 가능성이 보이기 직전만 해도 고신은 규모 자체가 적고 부산 경남 지방에 편중 된 문제 때문에 한국 교회의 교계적 주류에서 심각하게 멀어 지며 존폐를 걱정한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단일 교회론'을 앞세워 합동 등과 연합하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고신의 교권이나 주류를 가진 쪽에서 고신의 역사성 정체성을 앞세워 아예 눌러 버렸다.



그런데 순장로교 재건교회 서울고려 계신교단 합신.. 등은 고신과의 관계가 서로 이단이라 할 만큼 적대적이었다. 그런데 고신에 가입을 한다는 말만 나오면 갑자기 고신은 형제가 되고 한 몸이 되고 교회의 일치에 맞다며 대대적인 환영일색이다. 지난 날 왜 나뉘어 졌는지 누구의 무슨 문제였는지, 아예 거론조차 없다. 그러면 바로 그 논리를 가지고 왜 합동과는 합하지 못할까? 왜 그 논리를 가지;고 1964년에 고신이 스스로 합동으로부터 탈퇴해 나왔는가? 오늘 계신 교단을 흡수하고 서울고려를 가지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면 그들과 나뉜 그 때를 정죄해야 한다. 그 때가 옳으면 지금 다시 합하는 교회들이 이합집산의 이해만 따지는 종교 사업가들이 된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지난 날 서로 비판한 것은 공연히 형제를 정죄한 죄가 된다. 그런 죄는 불신자들이 술 한 잔 먹고 취하여 서로 다 잊어 버리듯 그렇게 넘어 가 버린다.



4. 이런 비판은 고신에만 해당이 될까?
총공회 내의 백영희 사후 내분도 꼭 같은 식이다. 규모가 좀 유리하면 상대에게 들어 오라고 손짓한다. 합한다는 말은 꺼내지를 못하게 한다. 서로가 상대에게 이유 없이 탈퇴했으니 들어 오면 받아 주겠다고 한다. 부산공회와 대구공회가 그러했다. 서울공회도 그러했다. 대구공회와 서울공회의 이합집산 과정에 거창공회라는 중간측이 일시 존재하면서 그러했다. 부산공회는 부공1, 2, 4가 늘 그러했다. 서부교회도 그러했다. 우리는 외부보다 내부를 더 잘 안다. 고신이 우리보다 심했을까? 아니다. 공회는 더 심하게 분열했고, 규모에 유리하면 상대방에게 회개하고 들어 오라는 말을 더욱 많이 했다. 독자적으로는 사실 존재조차 어려운데, 이 노선에 배운 것은 옳은 것을 잡고 양보하지 말라고 했는데 옳은 것은 백 목사님 장례 때 묘지에 묻어 버렸고 오로지 나 혼자라도 신사참배 때처럼 6.25 점령 때처럼 끝까지 버틴다는 독선만 남아서 목사 1명씩이 하나의 교단으로 버틸 태세다. 물론 외로우면 최근 10년 20년을 칩거하다 다시 돌아 와서 노곡동 대문 앞에 부공2의 대표로 활동하는 이들처럼 결국 혼자 끝까지 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전체의 성향은 혼자 버티기는 고신보다 훨씬 낫다.

기본적으로 해병대는 모여야 힘을 발휘한다. 하나씩 흩어 놓으면 숨어 버린다. 공수부대는 기본적으로 하나씩 흩어 놓아야 일당백 소리가 나오고 그럴 만한 가치를 보인다. 이들은 한 곳에 모아 놓으면 해병대나 일반 육군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회는 처음부터 공수부대 성향의 신앙이다. 그래서 흩뿌려 놓았을 때 고신보다 다른 어느 교단보다 생존 지속이 강하다. 문제는 강할 뿐이지 제대로 가는 사람은 없다. 전국 공회인들 중에 제일 세다는 이들도 최근에 결국 줄줄이 다 여기저기로 편입하고 말았다. 아직도 몇이라도 모여서 독립 교파를 형성하며 유지하는 곳은 이 연구소가 운영하는 부공3뿐이다. 이 곳은 다행히 백영희 이후 2세까지는 이어 졌다. 이 곳도 3세대로 내려 가며 그렇게 될까? 그렇게 되려면 교리 노선 연구 교회 생존력의 실무와 역사성을 다 가져야 하고 거기에다 안목까지 두루 갖춰야 한다. 아직은 그런 인물들이 보이지 않는다. 자기 한 사람은 끝까지 갈 수 있다 해도 이어 가도록 만들어 낼 인물까지는 모르겠다.


5. 고신의 한계, 고신의 슬픔
* 숫자의 한계 앞에는 무릎을 꿇는다.
1,500개 교회라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개신교, 그 것도 보수 정통 교회로서는 당당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고신은 합동 통합 개신 개혁 대신 교단 앞에만 서면 고신 스스로 자랑한 역사성이고 뭐고 다 입에 발린 소리고 스스로 추위를 느낀다. 그래서 아주 적은 교단을 교리고 노선을 가리지 않고 흡수하여 규모를 키우는데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

* 수도권 앞에 늘 춥고 외로움을 느낀다.
해방 직후 고신은 박형룡 목사님을 모실 수 있었다. 그러나 전국의 중심인 서울이 아니라는 이유로 부산을 떠난다. 그 직후 전쟁을 겪으며 서울 수복이 되자 서울의 발전은 이전과 달랐고 전국의 모든 것을 빨아 들이던 서울은 전국의 신앙까지 빨아 들였다. 수도권의 발전과 인재 집합을 보며 고신은 기어코 서울로 진입하기 위해 참으로 무던 노력했다. 인천 쪽에 신학교 분교를 세운 적도 있고 마지막까지 실패하자 천안으로 신대원을 옮겼다. 그 이상은 올라 갈 여력이 없었다. 왜 고신이 불신 세상 기준의 지역을 두고 서울이 아니면 안 된다고 저러는가? 서울이어서 좋은 점은 세상과 가까와지고 유리해 지는 속화 타락 외에는 없는데.. 아마 총공회 외에는 서울에 대한 열정을 가지지 않은 곳이 없을 듯하다. 총공회는? 서울이 뭔 말인지 알아 듣지도 못하는 우맹들이니 서울이 아직도 먹히지 않을 뿐이다. 서울이라는 곳을 제대로 맛을 보면 중이 벽에 무엇을 남기지 않는다 할 곳이다.

* 세상 기준으로 볼 때의 인재난을 느낀다.
믿는 사람이야 무식하든 말든 신앙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닐까? 세상의 고관대작 재벌과 정치계의 인물들이 어느 교회 어느 교단 출신이냐에 따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또는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크게 영향을 미친다. 그 것은 교회가 이미 세상이 되었다는 뜻이 아닌가? 그런데 고신이 겉으로는 세상 인물에 대해 아쉬움이 없다고 큰 소리를 쳐도 막상 그들의 내면은 항상 세상 인물에 대한 갈급이 크다.

이런저런 면을 통해 우리는 고신의 아쉬움, 고신의 병폐를 지금 적어 보고 있다. 고신을 비판하는 글인가? 한국교회의 중심을 돌아 본다는 뜻이다. 고신보다 더 고신답고 진정한 고신이며 더 나은 고신인 공회, 우리 내면을 고신이라는 거울을 가지고 보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출신의 목사가 40명 교회를 세계 10대교회로 만들고 갔다. 그의 장례식이 끝나자 서부교회는 불과 1년을 넘기면서 명문고 명문대 해외 우수 신학 학위를 가진 분을 모시고 왔다. 백영희 생전에 백영희와 가장 반대 되는 인물이었다.




* 이 글은 자료의 구체적인 수치 등을 수정한 후 제목에 '진행'을 없애려 한다.
전체 0

전체 464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
이용 ① 안내문 ② 취지
공지 | 담당 | 2018.04.11 | 추천 0 | 조회 2084
담당 2018.04.11 0 2084
11047
무리의 자기 최면, 아궁이 속의 장작 (1)
11047 | 담당 | 2021.11.23
담당 2021.11.23 0 74
11050
전두환 노태우 장례와 백영희
11050 | 담당a | 2021.11.24
담당a 2021.11.24 0 97
11054
총공회의 '12.12. 조처 - 대구공회 1989년 공문 이미지 (1)
11054 | 서기 | 2021.11.24
서기 2021.11.24 0 81
11027
(사회) 가속도가 붙은 발전은 사람을 삼킨다.
11027 | 담당 | 2021.11.18
담당 2021.11.18 0 94
11021
지향점 - 성경과 역사와 현실이 가리키는 곳
11021 | 담당 | 2021.11.17
담당 2021.11.17 0 59
11003
카톡 금식? 말은 좋은데, 말로 그치지 않았으면
11003 | 담당 | 2021.11.15
담당 2021.11.15 0 89
10991
부산의 인구 급감 - 동구 서구 영도구, 공회의 중심지 상황
10991 | 담당k | 2021.11.12
담당k 2021.11.12 0 128
10998
공회 노선에서 본 '인구 절벽과 부동산 문제 - 진행
10998 | 담당b | 2021.11.14
담당b 2021.11.14 0 77
11010
공회의 경제 - 부동산을 중심으로
11010 | 담당 | 2021.11.16
담당 2021.11.16 0 86
10967
선진국의 국교에서나 있을 법한 일 - 목사 월급을 국가에서 (8)
10967 | 담당a | 2021.11.07
담당a 2021.11.07 0 175
11014
국내외 신학생의 급감과 신학교 운영 문제
11014 | 담당 | 2021.11.16
담당 2021.11.16 0 66
11037
신학생과 장학금, 교단의 신학교 운영
11037 | 담당a | 2021.11.21
담당a 2021.11.21 0 68
10930
야마 잡기, 절제의 지혜
10930 | 담당 | 2021.11.01
담당 2021.11.01 0 140
10891
교회를 몰아 가는 율동, 난무의 망극함
10891 | 담당 | 2021.10.21
담당 2021.10.21 0 195
10915
신앙의 성향, 그 흐름의 모습들
10915 | 담당 | 2021.10.27
담당 2021.10.27 0 163
10924
울면서 배신한, 베드로
10924 | 담당 | 2021.10.30
담당 2021.10.30 0 157
10885
미국의 국가 형성을 통해 본 공회
10885 | 담당 | 2021.10.20
담당 2021.10.20 0 121
10901
침륜의 소멸기, 봄을 위한 겨울잠 - 밤을 맞은 교회의 자세
10901 | 담당 | 2021.10.24
담당 2021.10.24 0 154
10866
30대 남성의 절반이 미혼이라는 통계 이미지
10866 | 담당 | 2021.10.17
담당 2021.10.17 0 134
10864
코로나 2년이 지나 가며 남긴 것들 - 교회는 무엇과 싸웠던가? (3)
10864 | 담당 | 2021.10.16
담당 2021.10.16 0 188
10835
고신의 이병규 계약신대원 흡수를 보며 - 약육강식론
10835 | 담당 | 2021.10.07
담당 2021.10.07 0 181
10841
1. 이병규와 계약신학대학원, 계신 교단사
10841 | 담당a | 2021.10.08
담당a 2021.10.08 0 156
10843
2. 고신의 생존법과 교단 병합, 약육강식의 교계
10843 | 담당 | 2021.10.10
담당 2021.10.10 0 163
10849
3. 고신의 계약신대원 인수, 약육강식? - 진행
10849 | 담당a | 2021.10.12
담당a 2021.10.12 0 166
10853
4. 고신의 계신 흡수, 총공회에 스며 든 영향 - 진행 (7)
10853 | 담당a | 2021.10.13
담당a 2021.10.13 0 274
10815
천로역정, 이 노선으로 다시 적는다면 (1)
10815 | 담당 | 2021.09.30
담당 2021.09.30 0 178
10822
탄식과 감사, 소망과 사명을 동시에 본다 - 공회의 현황에 대하여 (1)
10822 | 담당b | 2021.10.02
담당b 2021.10.02 0 213
10803
하찮은 현실, 그 속에 있는 무한 - 공회 교회들의 속화를 보며 (2)
10803 | 담당b | 2021.09.28
담당b 2021.09.28 0 226
10798
진리의 세계가 정말 끝이 없을까, 의학 물리 사회학은 그런 듯하다.
10798 | 담당 | 2021.09.27
담당 2021.09.27 0 150
10819
이론의 세계, 현장의 세계 - 교리와 실행의 조화
10819 | 담당a | 2021.10.01
담당a 2021.10.01 0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