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2. 고신의 생존법과 교단 병합, 약육강식의 교계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1.10.10
(한국교회 분열의 내면사)
1. 한국 장로교는 하나였다.
한국 교회를 선교한 장로교는 미국의 남장로교, 북장로교, 카나다 선교회, 호주선교회였다. 3개 국의 4개 장로교 교단은 서로가 다른 교회였다. 각 선교부는 각기 따로 한국을 선교하고 싶었다. 그런데 선교가 참으로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선교가 잘 될 것으로 봤다면 각국의 선교부는 한국에서 각자 교단을 설립했을 듯하다. 한국의 선교 환경이 너무 어렵고 또 '일단 선교'라는 목표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3개 국의 4개 교단은 한국에서는 하나의 총회로 출발을 시켰다.


2. 선교한 교단은 분열했다.
참으로 고맙다. 그들은 그들의 모국에서 서로 싸우며 서로 교회를 나누어 살았지만 한국의 우리에게는 교회는 하나! 라는 목표로 교회를 출발 시켰으니 더욱 감사하다. 그런데 한 편으로 늘 이상한 마음을 떨치기는 어렵다. 한국 교회를 선교한 한국 교회의 선생이며 부모인 자기들끼리는 싸웠고 나눴다. 그들은 싸워야 할 교리적 이유가 있었고 함께 할 수 없는 신앙의 노선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전도하고 가르쳐 놓은 한국 교회에게는 교리든 노선이든 모두 물리 치고 하나가 되라고 했다. 이 것이 가능한가? 이 것이 가능하면 그들이 먼저 하나가 되는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3. 노선이 다르면 하나 될 수 없다.
미국의 북장로교는 성경을 그대로 믿는 것은 곤란하다고 가르친다. 미국의 남장로교는 성경 그대로 믿자는 곳이다. 이 둘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가? 그런데 한국에 와서는 누가 가르쳤던 하나의 총회로 출발 시켰다. 한 교단, 한 총회, 하나인 평양신학교에서 각 선교사들이 자기들 가르치고 싶은 것을 가르쳤다. 카나다는 미국의 북장로교와 지역이 가까와서 그런지 북장로교와 더 가깝다. 아니, 미국의 남장로교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미국의 북장로교회보다 훨씬 넓게 나갈 교회였다. 호주 선교부는 지리적 위치로 볼 때 미국의 북장로교회보다 남장로교회가 더 가깝다. 그래서일까? 미국의 남장로교회는 너무 엄격하게 잘 믿으려는 노력에다 흑인 차별을 더했다. 인종 차별에 관한 한 미국의 남부보다 호주가 더 심하지 않을까?

이런 인간적 지리적 역사적 국가적 상황이 다양하게 맞물리면서 교회는 천지만엽으로 쪼개지며 복잡해 진다. 그 나뉘는 상황을 각자에게 주신 각자의 위치와 사명이 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일단 말은 되는 듯하다. 그렇다 쳐도 너무 심하다는 말을 피할 수는 없다. 그 중에서도 한국을 선교한 4개 선교부들이 한국에서 굳이 단일 교회를 만든 것, 나는 그 것을 한 편으로 감사히 보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아니! 자기들은 갈라 지고 우리 보고는 합하라 하면? 말이 되나.. 말을 듣나! 남장로교는 노예 해방을 반대하고 1960년대까지 흑인을 차별하면서 19세기 말에 한국에 들어 와서 한국인들끼리 양반 서민 백정을 서로 차별하지 말라고 하니 좀 따지며 믿는 이들은 '너나 잘 하라!'고 반발을 할 듯하다. 그런데 한국인은 미국인을 기준으로 보면 순박하다. 그래서 선생을 향해 대들고 따지지 않고, 시키는 대로 노력했고 하나의 한국 교회로 출발했다. 그래서 선교사님들께 늘 감사하고 있다. 자기들은 술담배를 해도 한국 교인들에게는 술담배를 하지 말라고 가르쳤으니 이 것도 감사하고, 자기들은 연애를 하면서 한국 교회는 이성 교제를 금지 시켰다. 일단 감사하다. 모두가 좋은 일이었다.

그런데 분열만 하면 무조건 나쁜가? 세상은 종교 통합을 하라면서 종교는 어짜피 같다고 한다. 괜히 밥그릇 싸움 때문에 자기 종교를 고집한다면서 제일 나쁜 경우를 기독교라고 한다. 우리는 이런 불신자들에게 불신자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고 이해를 해 준다. 분열이 무조건 나쁘다는 사람들은 옆집과 벽을 허물고 사나? 대문 없이 사나? 팔다리 구별하지 않고 꿰매어 하나로 묶어 버리나? 하나라야 하는데 인간의 사욕이 들어서 쪼갠 것도 있다. 이 것은 회개의 대상이다. 도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리가 다르고 교회가 걸어 가는 신앙의 노선이 다르면? 당연히 다른 교회로 존재해야 한다. 노선과 교리가 다른데 한 곳에 섞어 버리면 둘다 틀리게 된다. 교리와 노선이 다르면 덮어 놓고 합할 것이 아니라 한 쪽이 잘못 된 것을 살펴 잘못 된 쪽이 배우고 고쳐야 한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문제라면, 함께 가면서 조절해 볼 수 있다. 교회 분열을 비판할 때 덮어 놓고 무조건 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옳은 듯 보이는 말을 가지고 교회를 망치는 결과를 만든다.


4. 선교국은 분열인데, 왜 한국 교회는 하나로 만들었는가?
한국 교회는 세계적으로 분열이 극단적이며 그 분열의 원인은 거의 다 명예와 돈과 교권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이 틀렸다는 기장측과 성경이 정확무오하다는 예장은 처음부터 서로 따로 모였어야 한다. 선교 초기가 어렵다고 해서 선교사들이 덮어 놓고 하나를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하나가 되자 사회를 상대할 때는 규모가 있어서 뭔가 써먹기가 좋은데 교회 내면으로는 늘 폭발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한 쪽은 예수님이 구원인지 아닌지, 천황과 불교와 기독교가 같은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한 쪽은 죽어도 예수님만 구원이라고 하는 상황에서, 신사참배로 박해가 생기면서 고문 고형을 하게 되자 천황과 기독교를 굳이 나누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던 교회는 쉽게 신사참배를 하게 된다. 죽어도 기독교만 구원이 있다는 이들은 투쟁을 했다. 물론 대부분 실패를 했으나 해방 후에는 회개를 하며 돌아 선다.

흔히 고려파, 오늘의 고신 교단은 신사참배를 승리했다고 70여 년을 써 먹고 있지만 그들 중에 10여 명만 승리를 했고 나머지는 모두 실패를 했다. 실패를 했으나 이들은 죄책감을 느낀 사람들이다. 힘이 없어 졌지 신사참배가 뭐 어때서 따지느냐는 사람은 없다. 이 고려파 이 고신이 바로 해방 후 하나님이 붙들고 한국 교회를 살려 나가는 생명선이 된다. 그런데 역사를 되돌려 선교 초기의 선교사들이 자기들은 교파가 다르고 자기들은 교파를 합하지 못하면서 왜 어린 한국교회를 모두 한 교파로 만들었지 묻고 싶다. 어리면 남자 여자 구별 없이 섞어도 되지만 자라면서 남녀가 표시 나면 나눠야 한다. 처음부터 딸은 딸로 기르고 처음부터 아들은 아들로 길러야 했는데 50년을 닭과 오리를 함께 섞었고 남자와 여자를 뒤섞어 놓았다.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투쟁을 하는 노선과 신사참배가 왜 문제인지 모르는 교회가 섞여 있었다. 이러니 신사참배의 박해 기간에 원래 신사참배를 해도 된다는 교회와 목회자만 신사참배를 한 것이 아니고 교계의 지도자처럼 보이거나 교계의 다수 교회로 보이는 곳에서 대거 신사참배를 적극 하게 되자 하지 않고 버텨야 하는 곳이 속수무책으로 실패를 했다.

해방 후 신사참배 처리 과정에서 한국의 단일 교회가 분열 되기 시작했고, 그 시작은 고려파가 신사참배 문제를 거론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런가? 그렇다! 그런데 그 것이 이유의 전부인가? 아니다! 처음부터 물에서 놀아야 할 오리와 뭍에서 놀아야 할 닭을 섞어 버렸다. 급하니까 오리들은 물로 뛰어 드는데 닭들이 오리를 따라 뛰어 들었다. 이런 것을 몰이라고 한다. 양을 잡는 대규모 도축장에서 양들을 수백 마리 밀어 넣어려 해도 낌새가 이상한지 모두 머뭇거릴 때 도축장에 상주하는 양 한 마리를 섞어 놓고 이 양을 출입구로 먼저 몰아 넣는다. 이 친구는 늘 살던 곳이니 또 들어 간다. 들어 갈 때 안에서 옆으로 빼 돌린다. 나머지 따라 들어 간 양떼는 전부 죽는다. 이런 양을 유다라고 부른다고 한다. 한 마리만 따라 가도 줄을 지어 몰려 가는데, 선교사들로부터 평소에 신사참배 문제를 두고 별로 양심에 가책을 받을 것도 없다고 배운 이들은 일본 경찰이 고형을 들이 댈 때 오죽 잘 하겠는가? 한 곳에 몰아 넣은 이들이 누군가? 한국교회가 아니라 한국교회를 세운 선교사들이다.



(교단 통합을 통한 고신의 생존법, 약육강식의 세상법이었다.)

1. 고신은 처음에 순수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모두 양심이 밝다. 군에 처음 오면 일선에 나서겠다는 용기가 있다. 신학교를 처음 다니면 옳은 것을 찾으려는 열기가 있다. 문제는 아이가 자란 뒤에도, 또 군 생활을 오래 한 사람도, 그리고 신학교를 오래 다니고 학자가 되고 목회자가 된 사람도 초심을 잃지 않고 처음의 열정을 가지고 있을까? 교단으로서 고신은 그 초기의 열정은 뜨거웠다. 오로지 옳고 그른 문제에 모든 것을 던질 수 있었다. 거의 모든 고신 교인들은 신사참배를 실패했고 해방이 되면서 뼈 저리게 느꼈으며 10여 명의 신사참배 승리자들의 영광을 보면서 다시는 실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이후에도 그랬을까? 당연히 아니다. 변하는데 걸린 세월이 얼마나 걸렸을까? 10년쯤이다. 실은 3년 정도 지나니 이미 문제점이 보여서 손양원 목사님은 고신에서 얼른 빠져 버렸다. 고신은 운동의 시작은 좋으나 그 가는 방향이 교권 중심이었다.


2. 고신의 탈선 과정
고신이 교권 중심이었는지 한국교회의 죄 문제를 바로 회개 시켜 한국교회를 살리려는 진리 운동이었는지, 그 속에 들어 있는 마음을 알기는 어렵다. 그런데 1951년에 고신이 한국 교회로부터 분리 되면서 총회와 고신측 사이에 소송이 시작 되었다. 소송이 성경의 죄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소송 때문에 불리한 교회는 어김 없이 소송을 죄라고 주장한다. 소송하는 것이 유리하면 성경 해석을 변경해서 소송도 괜찮다며 말을 바꿔 버린다. 고신도 1951년부터 시작 된 분규 문제를 두고 초기에는 소송을 반대했다. 그런데 그냥 있으면 전국의 고신 교회를 모두 포기하는 상황이 되자 말을 바꾸기 시작한다. 결국 고신 안에서 소송을 반대하는 이들을 모두 제거해 버렸다. 이 때 제거 된 인물들이 백영희 박윤선 이인재였다. 계신측이라고 알려 진 이병규 목사님은 제명을 당하기 전에 자기 발로 나와 버렸다. 교회를 자기 발로 나오면 이 죄나, 신사참배 죄나, 소송하는 죄나 다르지 않다. 이 죄와는 싸우고 저 죄와는 한 편이 되는 상황이다. 어쨌든 고신은 신사참배 문제가 닥쳤을 때는 목숨을 버리고 한국의 교회를 전부 포기할지라도 굴복하지 않는다며 싸웠다. 그런데 해방 후 이제는 고신이 잘 운영이 된다고 보던 시점에 교회를 포기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자 소송을 해서라도 교회를 지키겠다고 입장을 바꾼다. 해방 전에는 왜 신사참배 문제를 두고 싸웠을까? 그 때 고신 신앙의 인물들은 한국 교회 내에서 무명 용사들이었다. 별로 잃을 것이 없었다. 간부가 아니었다. 잃을 것이 별로 없으니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수가 있었다.

전쟁에 가족도 없고 건강도 없고 돌아 갈 고향도 없고 친구도 재산도 없다면? 목숨을 버릴 때 용감해 진다. 회사가 있고 따뜻한 고향이 있고 사랑하는 처자식이 기다리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면? 최대한 살아 남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신사참배를 두고 목숨 바쳐 싸웠다는 고신의 초기 지도자들, 그들은 해방 후에 유명 인사가 되었지 해방 전에는 무명이었다. 어쨌든 용감히 싸웠다. 어느 책의 제목처럼 '태양신과 싸운 이들'이다. 그런데 해방 후 고신의 진리 운동으로 고신을 따르는 교회들이 많아 졌고 한국 교회 내에서, 특히 경남 중심으로 그 세력이 커졌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교회를 모두 빼앗길 위기가 닥쳤다. 이 때 고신은 소송이라는 죄의 칼을 집어 드는데 서슴치 않았다. 1951년부터 시작된 분규가 1958년까지 지속이 되어 지는 상황에서 고신을 쫓아 냈고 쫓겨 난 고신을 소송으로 다 삼키려던 한국교회가 내부적으로 두 쪽이 났다. 훗날 그들은 합동측과 통합측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합동측은 고신을 제거할 때 양심이 편치 않았다. 통합측은 속이 다 시원했다. 이들의 신앙은 원래 달랐다. 그런데 고신을 쫓아 낼 때는 이해가 맞아 떨어 져서 힘을 합했지만 막상 고신을 제거 하고 나니 양측은 서로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봤는데 5:5 정도로 애매했다. 확실하게 한 쪽이 우월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자 고신을 제거할 때 고신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던 합동측이 고신에게 1951년에 고신을 제거할 때 합동측이 원한 것이 아니라 통합측이 주도를 했다면서 이제 통합측과 결별을 했으니 고신과 합동이 합하자고 제안을 했다. 고신은 50년대 10여년 투쟁과 내부의 반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발전도 더 이상 없는 상태였으며 합동측은 고신을 잡아야 통합과 한국 교계의 판세를 겨룰 때 유리하기 때문에 덩치를 키우고 싶었다.


3. 결국 두고 갈 세상에 대한 갈망이었다.
합동과 고신의 이해관계가 맞아 지니 양쪽 지도부 몇 명이 몰래 둘러 앉아 순식간에 양 쪽 교단을 합해 버렸다. 물론 고신에게 총회장 자리를 주는 등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고신은 나름대로 영안이 밝다며 자부심이 있었는데 노련한 합동의 미끼를 물었다. 1961년에 양측이 합하고 1년이 지나게 되자 합동에게 속은 것이 드러 났다. 고신은 1964년에 합동을 파기하고 원래대로 돌아 왔다. 그러나 이미 몸은 더럽혀 졌었다. 합동은 신사참배를 했던 교단이며 해방 후에도 신사참배를 회개할 것이 없다던 교단인데 고신이 이들과 하나의 교회가 되었으니 이제 무슨 낯으로 신사참배 문제를 다시 거론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한국 내 반일 감정을 활용해 가면서 신사참배를 했던 합동이나 통합을 비판하면서 고신은 오늘까지 고신의 존재 의미를 선전하고 있다. 그런 합동과 하나가 된 고신이 무슨 낯으로... 양심조차 없는 일이다. 교권 싸움이었을 뿐이다. 무슨 교권, 무슨 싸움을 했을까? 덩치를 키우고 싶었다. 크고 많고 강하면 세상을 점령한다. 타락 한 세상의 점령법은 많아야 한다. 커야 한다. 세상 기준으로 강해야 한다. 혼자서 외로우면 끌어 들이면 된다. 죄든 아니든, 타 종교든 천주교든... 이 것을 WCC라고 한다. WCC 를 비판하는 국내 학자나 교회나 교단 중에 평소 WCC와 놀아 보지 않은 경우가 있을까? 청와대 들어 갈 때 함께 가고, 환경 운동할 때 함께 하고, 심지어 교단 통합 운동까지도 함께 한다. 그렇게 하다가 자기 교단으로 돌아 가면 갑자기 어제 밤에 함께 먹고 마시고 놀고 하나로 지새우던 친구를 매도 해 버린다. 이렇게 한다면 이 것은 정치가 되는 것이지 신앙은 아니다. 고신은 합동이나 통합과 마찬 가지로 그런 단체가 되었다.

지금도 고신 출신들은 고신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 나는 그들과 대화할 때마다 고신 안에 신사참배를 제대로 이긴 인물들은 불과 10여 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신사참배를 했거나 도피한 경우라고 말을 한다. 고신의 대부분은 신사참배를 했다. 그런데 해방 후에 신사참배 문제를 두고 회개를 했다. 이 회개가 고신이지 신사참배를 이긴 것이 고신이라 하면 곤란해 진다. 그리고 해방 후의 건전했던 고신은 1961년에 자진해서 폐업을 했고 1964년 이후의 고신은 합동과 교권 싸움을 두고 이합집산을 하는 중인 단체일 뿐이다. 그런데 신사참배라는 말을 앞세우면 유리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오늘까지도 써먹고 있다. 이 것은 활용이다. 이 것은 악용이다.

중요한 것은 죄든 아니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커야 한다. 교회가 많아야 한다. 개척을 하고 길러서 키우려면 시간이 걸린다. 큰 교단과 합동을 해서 큰 교단이 된 다음 그 교단 안에서 표 운동을 잘 해서 교권을 쥐면 가장 빠르다. 그렇게 하다가 실패를 하면 마저 다 삼기기 전에 얼른 탈출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생존 전략을 짜여 한다.. 이 것이 고신의 정체서이라고 한다면 너무 심한 비판일까? 내 생각에는 냉정한 역사적 기술이 아닐까 싶다. 생존 전략을 짜는 이들의 눈에는 진리니 하나님 앞에서니 하는 말은 늘 그냥 해 보는 말이다. 하나님이 보이고 진리를 살피려면 이런 일을 할 수는 없다.


4. 어쨌든 1980년이 되었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 섰다. 박 대통령의 18년 독재를 이어 다시 군인이 독재를 해 나가려니 내용적으로 참 필요하지만 겉으로 체면이 영 말이 아니다. 그래서 명분을 만들어 댔다. 발전하는 조국이 이제 선진국 될 날이 눈 앞에 닥쳤는데 분열이 되어 아쉽다면서 학계도 언론계도 정치계도 모조리 갈아 엎어 버렸다. 나는 이런 주장을 찬동한다. 다 맞는 말은 아닌데 일부 옳은 말이 있다. 그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오늘의 선진국이 되었다. 그 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지금 동남아나 남미처럼 어중간해 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이런 통폐합을 불교계에도 적용했다. 전국의 중들이 짓밟혔다. 중들은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치를 떤다. 기독교는? 기독교는 분열이 더욱 심하다. 기독교까지 통폐합을 추구했다. 그런데 기독교를 잘못 손을 대면 정통성 문제로 불안한 전 정권이 미국에게 찍히는 상황이 걱정이었다. 그래서 기독교를 아주 갈아 엎으려 하다가 중간에 포기를 했다. 고신은 바로 이 시기에 통폐합으로 없어 질 것인지 아니면 군소 교단을 흡수해서 더 큰 교단이 될 수 있을지 갈랫길에서 한 번 가슴이 서늘할 만한 위기를 넘겼다. 순복음교회 합동 통합 감리교 등의 대 교단들은 살아 남는 대상이면서 수백 개의 군소 교단을 흡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서울고려파, 재건교회, 순장로교, 계신측 등은 순식간에 어느 한 교단에게 삼켜 져야 할 위기였다. 고신은 기준에 따라 어느 쪽이 될지 몰랐다. 이 사건이 지나 가게 되면서 고신은 덩치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했다. 그리고 그 때까지만 해도 한국의 사회와 인구와 경제와 기독교의 숫자까지도 계속 증가 일로였기 때문에 타 교단들보다 적다 해도 고신끼리는 위안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사회가 급변하면서 발전과 도태가 순식간에 뒤바뀌고 기업도 어느 단체도 한 순간에 더 큰 것을 삼키고 대기업이 되기도 하고 국내 최고의 단체가 순식간에 없어 지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고신은 종교계 중에 기독교계는 이런 문제에 가장 영향을 받는 줄 알게 되었다.

이 때부터 고신은 갑자기 교단 통합을 부르짖기 시작했다. 신학이 다르든, WCC든, 심지어 성경을 부인하는 기장측과도 통합할 수가 있다며 교계에 곳곳을 다니고 있었다. 1980년 이후의 고신 교단의 신문 기록을 검색해 보면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각종 기독교 단체에 가입하면서 고신은 타 교단들과 지속적으로 하나 되는 운동에 나섰다. 동시에 이왕이면 작은 교단들을 흡수랄 필요를 느끼고 합신 재건 순장로교 서울고신 계약측 등을 상대로 꾸준히 합동 운동에 나선다. 덩치를 키워야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 그 방법은 약육강식이었다. 그 것은 세상이었다.





* 이 곳의 '교계'나 '한국교회'라는 표현은 대부분 장로교를 말한다.
장로교회는 한국교회의 주류이면서 이 곳은 신앙의 노선을 중심으로 만사를 살피되 공회 내면만 주력하다 보니 공회와 접할 일이 거의 없는 장로교 외를 논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세계 기독교사나 신앙의 교리적 문제를 두고는 감리교 침례교 순복음까지 언급하나 평소 적는 글은 늘 장로교 범위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양해를 구하든 않든 이 곳의 기본 성향이므로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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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2021.09.16 0 144
10761
따르기만 할 것인가, 배워서 가르치는 사람이 될 것인가?
10761 | 담당 | 2021.09.16
담당 2021.09.16 0 152
10752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눈으로 본 필리핀의 공회 선교
10752 | 담당1 | 2021.09.14
담당1 2021.09.14 0 125
10756
항상 두 길, 오직 한 길 -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시각에서 본다면
10756 | 담당 | 2021.09.15
담당 2021.09.15 0 145
10740
인간관계의 상하는 생명적, 수평은 2차 파생적
10740 | 담당A | 2021.09.12
담당A 2021.09.12 0 133
10725
신앙의 본질과 각자의 선택 범위
10725 | 담당 | 2021.09.07
담당 2021.09.07 0 161
10717
공회찬송가, 복음성가를 알기는 하는가? 이미지
10717 | 담당 | 2021.09.05
담당 2021.09.05 0 173
10710
공회가 보는 '이슬람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식과 대처'
10710 | 담당 | 2021.09.04
담당 2021.09.04 0 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