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항상 두 길, 오직 한 길 -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시각에서 본다면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1.09.15
(선교를 향한 복 된 자세)
필리핀 일로일로 지역에서 모리아선교회 이름으로 주일학교를 운영하며 150여개 분교와 4-5천명을 출석 시키는 소식을 들은 세월은 이미 오래 되었다. 한 때 잘 나가는 것은 어디서라도 가끔 접하는 소식이나 세월 속에 계속한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어려운 사회 환경의 선교 현장'이라는 점,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중심 인물'인 장영목 목사님의 활동이라는 점, '70년대 부산의 서부교회와 총공회 전국'을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점, '20여 년을 계속'한다는 점은 이 노선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바짝 긴장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현재 역사를 살필 수밖에 없다. 복음을 찬성하고 지지하고 응원하면 선지자의 복을 함께 받고, 자기가 관련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산공회2처럼 무시하거나 덮으려고 한다면 교계의 탈선을 따르게 된다.


(그러나 이 노선이란)
중국공회라는 곳이 있다. 이 곳을 안수 받는 중심에 모셨고 이 곳을 방문하여 극찬을 했다. 어느 날 입장이 바뀌며 이 곳을 이단 연관 세력이라며 교계에 공표를 했다. 그렇다면 이 곳에서 받은 목사 안수를 반납해야 하지 않을까? 안수를 할 때는 건전했고 안수한 후에 변질이 되었을까? 그렇다면 바뀐 부분을 짚어 주면 된다. 이 곳은 1982년 연구소가 출발하던 첫 해부터 오늘까지 모든 것을 공개했고 한 길만 걷고 있다.

부산공회2라는 곳도 있다. 5명이 서부교회 김효순 권사님을 어머니로 삼고 서영호 목사를 위해 10여 년 투쟁했다. 당시 서 목사님을 수단 가리지 않고 공사석을 통해 핍박하던 이들이 1994년 안수 때문에 서 목사님 추종 단체로 자리를 옮겼다. 그 곳이 현재 부공2다. 지금도 부공2의 출발 5인은 상임 이사들처럼 무게감을 유지한다. 나머지는 늘 눈치를 봐 가며 적절하게 행동한다. 이런 곳을 우리는 정치 집단이라 한다.

누구나 오판하고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남들을 인도하는 목회자나 교회의 이름은 노선을 걸고 주장하고 투쟁하던 것을 바꿀 때는 설명이 있어야 한다. 세상에서도 정치나 철학이나 학문이나 지도 위치에 있다면 당연하다. 소위 천국을 앞에 세우며 노선을 호객했다면 바꿀 때는 돈 때문인지, 과거를 회개하는 것인지, 더 발전하는 모습인지... 뭔가 설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외부에 광고를 하고 길을 안내한 경우라면..




(서부교회 주일학교)
장영목 목사님은 1982년에 서부교회 주일학교를 맡았다. 우리는 주교 총무라고 한다. 그 1명이 사실상 주일학교를 전권 운영한다. 이 분은 교계의 탐방이나 견학이 잇따를 때 한결 같이 왜 서부교회는 찬양대가 없느냐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찬양대를 운영하는 것이 죄나 되는 것처럼 설명했다. 선물을 주고 아이들을 데려 오는 것, 율동이나 시청각 교육도 죄나 되는 것처럼 비판을 했다. 서부교회 운영법 외는 모두를.

장 목사님이 필리핀 선교를 하며 초기 어려울 때 남정교회 서정교회 서부교회를 비롯하여 전국의 공회 교회를 방문하며 '선교'를 위해 지원을 호소했다. 부공3, 이 곳에만 부탁한 적이 없다. 이 곳을 알기 때문이다. 장 목사님과 우리는 이 노선 우리가 옳다고 믿고 나온 이 길이 아니면 협조하거나 돕거나 관계조차 하지 않는다. 물론 이 노선을 배우고자 한다면 가르치고 돕고 총력을 다 한다. 장 목사님과 나는 유독 옆을 돌아 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옆을 돌아 봤다는 말은 아니다. 장 목사님과 나는 남들에게 표시가 나는 위치를 가졌다. 그래서 주목을 많이 받았고 우리의 언행은 무척 알려 졌다. 백 목사님 사후 서부교회와 총공회가 분열 될 때 유독 장 목사님과 내 이름은 '저 사람이 부산공회에 섰기 때문에 나는 대구공회로 간다' '저 사람이 서부교회니 나는 남정교회를 선택한다'는 사례들이 나왔다. 평소 도무지 타협이 되지 않는 인물로 정평이 있었다. 나는 대화는 한다. 장 목사님은 대화조차 응하지 않는 편이다. 나는 상대에게 화를 내는 것은 삼가한다. 장 목사님은 그 표현조차 거칠게 나왔다.

나는 장 목사님의 필리핀 선교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장 목사님과 내가 10여 년 뜨겁게 함께 했던 시절처럼 숫자를 보기 전에 이 것이 우리가 걸어 가는 길과 맞는지 아닌지를 먼저 살폈다. 장 목사님이 필리핀에서 보이는 주일학교 관련 모든 활동은 거의 서부교회 주일학교와 공회 노선에서 금하는 것이다. 순복음교회나 일반 교계의 것이다. 우리는 80년대 내내 우리 것이 아닌 것은 그들에게 맡겼으니 그들이 할 일이지 우리가 할 일은 아니라는 입장으로 걸어 왔다. 고신 것은 고신이 전할 것이고, 우리는 우리 것이 더 낫기 때문에 우리가 전한다. 우리의 길을 도와 달라고 우리는 부탁하지 않는다. 같은 원리로 우리는 우리 것만 전해도 부족하기 때문에 고신이나 합동이나 순복음이나 교계가 도와 달라고 할 때 그럴 여력이 없었다. 실은 속으로 체질이 맞지 않았고, 실은 속으로 그들의 길은 틀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도울 수가 없었다.


(아쉬운 점들)
교회라는 곳은, 왜 모이기만 모이면 손을 들고 흔드는가? 교회라는 곳은 받은 은혜가 몸을 흔들면 흔들지만 몸을 흔들어 마음을 흔드는 방식은 피하는 곳이 아닐까? 말씀의 은혜와 회개의 뜨거움이 마음을 흔든다면 어떤 몸짓도 좋다. 그런데 몸을 흔들어서 마음이 따라 오게 한다면 이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 몸을 흔드려면 악기까지 있으면 더 낫다. 초대교회나 개혁교회나 청교도나 한국교회의 뜨거운 신앙의 초기는 악기가 없었다. 필요도 없었다. 끼어 들 여지도 없었다. 말씀으로 회개하고 말씀으로 소망하고 말씀으로 각오한 1명의 마음, 그 마음이 그의 몸을 붙들고 주변을 하나씩 신앙으로 인도해 나갔다. 그 과정에 주님은 필요한 은혜를 주셨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라 가기도 했다. 그런데 1970년대 한국 교계에는 이단이 아닌데도 뛰고 굴리고 오케스트라를 동원하며 사람들을 몰아 간 곳이 있었다. 순복음교회다. 순복음교회의 방식과 공회는 그 결과가 엄청난 점은 같은데 그 과정은 전혀 다르다.

필리핀의 주일학교는 왜 율동과 악기가 중심일까? 언어가 원활하지 않아서 그럴 것으로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던 분이나 그 곳은 영어를 사용해야 하고 영어가 되지 않는 분이다. 이럴 때 제일 빠른 것은 예배 중 찬송을 앞에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선교사들이 한국 말이 서툰데도 선교 초기에 율동을 동원했던가? 그들은 그렇게 했다 해도 공회는 그냥 하나 붙들고 한 걸음 나가는 방식이다. 문제는 속도가 느리다. 장 목사님은 단기간의 몰아 치기에 능한 분이다. 복음이란, 어떤 방법으로 전해도 전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그런데 감리교를 심으면 훗날 감리교 열매가 열리고 장로교를 심으면 장로교 열매가 열린다. 자유주의 전도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국가는 반정부 혁명이 뒤를 따르고 마지막에는 동성을 퍼뜨려 불신 사회까지 주저 앉혀 버린다. 그들을 조심하려 들면 왜 예수를 막고 복음을 막느냐고 대든다. 그들의 예수 복음 뒤에는 적기독을 퍼트리기 때문이다.

율동이야 별 문제가 없다. 오히려 안 믿는 이들을 복음에 불러 오는 방법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선물로 율동으로 전도하지 않았다. 당시 그렇게 하는 교계를 제일 큰 소리로 비판한 분이 장 목사님이다. 그런데 지금은 과거 그가 반대했던 방법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 물론 공회에서 익힌 것도 사용한다. 이 곳이든 저 곳이든 좋은 것은 다 사용하고 있다. 어떤 것이 '좋은' 것인가. 출석수에만 주력하는 듯하다. 그 분은 출석을 시켜야 그들을 상대로 가르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바로 이 주장이 교계의 입장이고 우리는 방법조차 신앙적으로 조심하고 바른 방법에 주시는 식구만 식구로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파는 바람에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 가룟 유다의 행위가 좋다는 말이 아니다. 좋지 않은 것도 좋은 결과에 사용하신다는 뜻이다. 좋지 않은 것은 내 손으로 하지는 못한다. 금지했다. 좋지 않은 것이 필요하면 그 것은 하나님이 직접 다른 방법을 통해 하신다. 필리핀의 모리아선교회는 아마 필리핀에서 가장 옳고 좋은 방법으로 옳고 바른 것을 전하지 않을까? 이 것은 확실할 듯하다. 다만 이 노선의 기준에서 본다면 필리핀에서 제일 좋은 방법이라 해도 공회가 사용할 수 없다면 사용하지 않는 것을 공회 신앙이라 한다. 그래서 공회 신앙이란, 주장하기는 쉬운데 걸어 가기란 쉽지 않은 모습이다. 세월 속에 비교를 해 보면 끝까지 견지하는 숫자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전체 0

전체 429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
이용 ① 안내문 ② 취지
공지 | 담당 | 2018.04.11 | 추천 0 | 조회 1943
담당 2018.04.11 0 1943
10773
New '실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 나게 해 주실까, 오늘도!
10773 | 담당 | 2021.09.19
담당 2021.09.19 0 76
10774
New 열려 있는 복들, 쏟아 지는 이 기회들
10774 | (담당) | 2021.09.20
(담당) 2021.09.20 0 39
10766
세상의 본질적 평준화가 미친 신앙의 평준화
10766 | 서기 | 2021.09.17
서기 2021.09.17 0 105
10757
시대의 종을 데려 가시면, 이제 내가 이어 가는 것
10757 | 담당 | 2021.09.16
담당 2021.09.16 0 99
10761
따르기만 할 것인가, 배워서 가르치는 사람이 될 것인가?
10761 | 담당 | 2021.09.16
담당 2021.09.16 0 99
10752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눈으로 본 필리핀의 공회 선교
10752 | 담당1 | 2021.09.14
담당1 2021.09.14 0 75
10756
항상 두 길, 오직 한 길 -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시각에서 본다면
10756 | 담당 | 2021.09.15
담당 2021.09.15 0 102
10740
인간관계의 상하는 생명적, 수평은 2차 파생적
10740 | 담당A | 2021.09.12
담당A 2021.09.12 0 106
10725
신앙의 본질과 각자의 선택 범위
10725 | 담당 | 2021.09.07
담당 2021.09.07 0 127
10717
공회찬송가, 복음성가를 알기는 하는가? 이미지
10717 | 담당 | 2021.09.05
담당 2021.09.05 0 131
10710
공회가 보는 '이슬람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식과 대처'
10710 | 담당 | 2021.09.04
담당 2021.09.04 0 128
10703
자기를 먼저 비판하면 '복음'
10703 | 담당 | 2021.09.02
담당 2021.09.02 0 126
10695
진학일 목사님 가정 - 사모님 별세를 들으며
10695 | (담당) | 2021.08.31
(담당) 2021.08.31 0 121
10679
몇이나 남을지, 공회의 경건 그룹 - 8월 27일 순교일 (1)
10679 | 담당 | 2021.08.27
담당 2021.08.27 0 242
10687
교회 재산의 관리 문제점 - 등기 명의를 중심으로
10687 | 담당 | 2021.08.28
담당 2021.08.28 0 195
10698
목회자 가족이 교회 돈에 손을 대는 경우 - 공회의 특이한 점..
10698 | (담당) | 2021.08.31
(담당) 2021.08.31 0 127
10702
생명 사랑, 구원 목적 - 그 실체의 갈랫길
10702 | 담당 | 2021.09.01
담당 2021.09.01 0 51
10651
극단주의 사회에서 찾아 본 보배들 - 탈레반, 북한..
10651 | 담당 | 2021.08.18
담당 2021.08.18 0 211
10642
사과 나무, 넘치는 열매.. 이미지
10642 | 담당 | 2021.08.16
담당 2021.08.16 0 135
10620
법의 이면, 교회법의 뒷면, 강한 지도력의 훗날
10620 | 담당 | 2021.08.11
담당 2021.08.11 0 180
10627
대화 하는 자세, 결혼을 중심으로
10627 | 담당 | 2021.08.13
담당 2021.08.13 0 227
10638
조직원리 - 한 몸의 다른 사명
10638 | 담당 | 2021.08.15
담당 2021.08.15 0 167
10665
아끼는 사람의 아픈 일 - 성자를 향한 성부의 마음으로
10665 | 담당 | 2021.08.23
담당 2021.08.23 0 183
10609
지나치게 강조한 표현들 - 많은 분들께 죄송하다
10609 | 담당A | 2021.08.09
담당A 2021.08.09 0 220
10663
본토 친척 아비 집, 떠날 때와 찾을 때
10663 | 담당 | 2021.08.21
담당 2021.08.21 0 124
10664
기독교 학교의 교회 박해
10664 | 담당 | 2021.08.22
담당 2021.08.22 0 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