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인간관계의 상하는 생명적, 수평은 2차 파생적

작성자
담당A
작성일
2021.09.12
다음 글은 공회 생활을 시작한 6개월 교인과 개인 대화이다.
다른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활발하게 했다면 공회 교회를 출석하게 될 때 바로 느끼는 불편 또는 질문 중에 교인과 관계를 두고는 누구나 제기하는 내용을 안내했다. 개인 대화지만 내용 상 공회 생활에 대한 기본 방향이라는 점에서 이 글을 받은 분에게 공개를 한다고 양해를 구하고 적어 본다. 연구소 사이트에는 질문이나 발언이나 소식이나 이 곳의 남단에 이르기까지 이런 과정을 거쳐 적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때마다 이렇게 설명하면 중복이 심할까 싶어 사이트 전체 '공지'에 설명하며 개별 글에는 거의 생략해 왔다.




'교회의 교인과 가정의 가족이 수평적 관계로 하나 되는 노력과 서로 상하로 하나 되는 노력에 대한 비교'를 소개해 봅니다.

■ 공회의 수평적 식구 관계와 상하적 식구 관계에 대한 자세
공회 결혼이란 교제 없이 바쁘게 추진 되는 결혼이라는 점 때문에 결혼식 전과 직후까지는 세세히 살피지만, 첫 날 이후 얼굴이 좋으면 그 때부터는 흔하고 흔한 부부의 일상이므로 최대한 멀리 합니다. 결혼 직전이나 직후의 조정 과정에 이 쪽과 저 쪽에 양해를 구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데, 결혼 후 제가 연락을 거의 하지 않으면 저를 잘 모르는 가정은 결혼 전의 일 때문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회는 기본적으로 가정은 가정 단위로 그리고 교회는 교회 단위로 내면의 자율을 신앙의 자유성이라는 가장 중요한 가치로 지킨다는 점을 당분간 잘 지켜 보시고 연구도 해 보시며 장단점을 살펴 보면 좋겠습니다. 장단점은 있으나 성경과 교회사 그리고 공회의 오랜 경험을 통해 아래 위는 긴밀할수록 좋고, 부부와 다른 부부 또 가정과 다른 가정 또 구역과 다른 구역 또 교회와 다른 교회 또 공회와 다른 공회는 꼭 필요하지 않으면 지나 가면서 반갑게 인사하는 정도 그 이상을 최소화합니다.

평소 우리가 사용하는 표현 중에 끼리끼리 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못 사용 되면 몇몇이 뭉치고 주변 다른 사람을 떼 내버리는 나쁜 일이 됩니다. 끼리끼리가 또래 집단이 되면 남을 떼 내버리려고 하지 않았다 해도 한 없이 또래 집단을 키울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은 연령상의 또래든 직업이나 취향의 또래라는 개별 단위를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개별 단위들 사이에 별다른 적대감이 없다 해도 세월 속에 점점 색채가 달라 지면서 가족이 친척이 되고, 친척이 이웃이 되고, 이웃이 옆 동네가 되고 타 지방이 되면서 나중에는 타 민족으로까지 진행이 됩니다. 이 것은 자연 분화인데, 신앙의 세계는 주님을 머리로 삼고 교인이 말씀으로 한 몸이 되는 '생명적 연결'이 주님의 몸이 되는 과정입니다. 또래나 분화 되는 집단이란 반 신앙적으로 장차 굳어 질 것이라 공회는 이 면을 기본적으로 조심합니다.

처음부터 부부 이외에는 부모 자녀라는 수직 관계가 하나가 되도록 최대한 노력합니다. 교회도 구역장과 각 식구가 수직 단위로 하나 되도록 노력합니다. 공회의 교회들도 각 교회 별로 그렇게 되기를 노력합니다. 그리고 상하 관계가 긴밀해 지면 위로 올라 갈수록 공동의 머리가 있으니 옆으로도 서로 가까와 집니다. 상하 위로 하나가 되다 보면 공동의 위를 가진 사람은 옆에 있는 분들과는 하나 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하나가 되는데 이 것이 수평적 하나가 되는 모습으로 직접 옆과 하나 되는 것보다 상하를 먼저 노력해서 수평이 하나 되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나의 사촌이 그 부모인 나의 삼촌과 너무 가깝고, 그 삼촌이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하나가 되고, 그리고 나는 나의 부모와 좋고 나의 부모가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하나라면, 사촌끼리 따로 만나고 교제를 통해 가족의 우의를 노력하지 않아도 어느 날 나이가 좀 먹어서 만나도 늘 함께 해 온 친 형제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상하 하나 되는 것보다 친한 형제끼리는 가깝고 같은 또래의 사촌끼리만 가까운 경우, 자기 부모들과 세월 속에 조금씩 멀어 질 수 있습니다. 멀어 지려고 해서 멀어 지는 경우도 있고 그런 생각이 없었으나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추석 설날 명절에 많은 친척이 모였을 때 10대 손주들끼리 저 쪽에 모여 지고 30대 아들들은 이 쪽 거실에서 모두 뜻이 통하고 잘 맞고, 안 방에는 60대 할아버지들끼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내다가 각자 흩어 지면 세대끼리는 처음 만날 때 인사하고 헤어 질 때 한 번 인사하지 살아 온 이야기나 묻고 싶은 것을 세세히 주고 받는 시간은 없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현재 일반 가정들의 모습이고 동시에 교회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규모가 수백 명쯤 되면 젊은 아이 엄마들끼리의 여전도회(요즘은 선교회)가 따로 있고 60대 권사님들의 여전도회가 따로 있고, 사업 하는 경제력 있는 50대 장로님들은 모이고 대화하는 주제와 서로 돈 쓰는 수준이 맞도록 모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든 세계교회든 초기에 전도를 위해 남녀 전도회만 있었는데 지금은 남녀 선교회1, 2, 3... 이렇게 나누는 것이 세대 차이를 기준으로 삼는데, 그 이면에는 묘하게 수준 차이로 나뉩니다. 서로가 사람이 좋으니 환하게 웃고 적절하게 상대하나 깊은 내면의 하나 됨은 없습니다. 외국인을 도로에서 만나 길 안내를 친절하게 하는 상황입니다.


상하를 먼저 하나 만드려는 공회의 노력이 바른 방향이라 해도 뜻한 대로 잘 되지 않고 문제는 많습니다. 그렇다 해도 성경과 신앙의 기본 방향 때문에 목표가 이루어 지든 실패하든 상하 하나 되도록 노력하며 수평으로 또래 집단을 만들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해 왔습니다. 전도회의 규모 때문에 1, 2, 3..으로는 나눌 수 있다 해도 세대나 수준에 따라 나누지는 않습니다. 일단 나눠 본 적은 없습니다. 초대형 교회로 유지 되던 서부교회 시절, 아무리 불편해도 '한 전도회' 원칙을 지켰습니다. 현재 다른 공회들의 규모 있는 교회는 또래 집단을 만들고 있으나 우리는 몇몇 교회가 그렇게 나눌 수 있는데도 나누지 않고 있 습니다.



공회가 교회 내 교인의 관계를 두고 상하에 주력하면서 수평 관계를 최대한 절제하는 이유는 크게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의 2가지 때문입니다. 가정의 가족 관계를 중심으로 먼저 설명을 해 봅니다.

과거와 달리 서양식 개방 과정에 우리 한국 사람으로서는 적절하게 자기 조절을 잘 하지 못하여 부부 사이에 남이 들어 와서 문제가 되는 경우를 막고자 합니다. 서양 사람은 유목민이며 원래 개방적이고 합리적이며 지성적이어서 부부들이 함께 어울려도 자기 부부를 잘 지키는가? 그럴 듯 한데도 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하물며 동양이며 농경 문화에 한반도라는 좁은 지역에 사는 유교 사고의 우리는 부부들을 어울리게 해도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한 번 무너 지기 시작하면 댐 붕괴처럼 됩니다. 교회 내에까지 이런 문제는 사실 심각합니다. 부부 외에는 상하만 강조하고 수평 문제를 조심 시키는 긍정적인 이유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가정은 부모를 통해 자녀로 내려 가고, 교회는 강단과 구역의 지도를 통해 내려 가는데, 위에서 흘러 내리는 은혜와 지도와 보호와 대화가 바로 되고 튼튼해 지고 이 부분이 넘쳐야 비로소 옆으로 함께 해도 흔들리지 않고 건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진보 좌파 자유주의 신앙의 교회는 옆을 강조합니다. 상하 관계는 구조적으로 허물어 버립니다. 그래서 당장에는 또래까지 좋아서 즉효가 있는데 장기적으로는 세대의 단절이나 갈등으로 이어 지며 신앙 자체에서 멀어 집니다. 역사적으로 초대교회 개혁교회 영국 미국의 청교도와 한국의 선교 초기에는 상하가 짙었고 수형 관계는 최소화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상하가 바로 되면서 자연스럽게 뻗어 나오는 수평 관계는 건전하게 유지 되었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 나이가 밑으로 내려 갈수록 예전 것은 기본적으로 거부하고 요즘 식을 좋아 하는데 바로 이 흐름의 문제는 신 세대 젊은 사람을 이해한다 못한다는 데 그치지 않고 뿌리와 둥치가 단절 되면 가지끼리 아무리 좋아도 근본적으로 고사해 버립니다. 경제도 사회도 가족 관계에도 전반적으로 이 원리는 모두 적용이 됩니다. 신앙의 관계는 아주 절대적으로 문제가 생깁니다.

한편으로, 긍정적인 면을 보자면 뿌려 진 씨앗이 나무가 되는 과정은 뿌리와 둥치와 가지와 잎으로 이어 지는데 이 것은 생명의 본성이며 성장의 필수적인 관계입니다. 옆 가지와 옆 가지끼리 반갑고 서로 할 말이 많겠지만 각자 공통의 하나가 되는 곳까지 상하로 튼튼하게 이어 져야 가까운 옆의 가지끼리 친목이 가능합니다. 각 교인이 자기의 신앙 지도자와 관계가 강할 때, 그리고 그 강한 범위 내에서 옆에 있는 교인과 가까와 질 때 서로 신앙으로 도움이 됩니다. 교회는 처음 나와서 아직 주일도 모르는데 처음 나온 또래 교인이 반가워서 하나가 되어 주고 받는 기회가 많아 지면 그 오가는 인정과 즐거움과 교제는 신앙과 주일을 벗어 나는 힘으로 작용을 합니다. 이 문제는 심지어 목회자들까지도, 각자 자기 마음에 오신 주님을 만나느라고 동역자를 볼 시간이 없고 연락을 틈이 없을 때, 이 목회자들은 주님 모시고 자기 교인들을 위해 정상적으로 충성을 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동역자들이 꼭 모여야 할 사안이 없는데도 모이면 목회자들은 목회자들끼리의 관심사가 있고 교제가 있고 그들끼리의 주고 받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이 교제, 이 대화, 이 만남을 만일 교인들이 직접 생중계로 보고 들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모두 시험에 든다고 할 정도입니다. 목회자들이 한 교인을 살리기 위해 서로 대화하는 내용에 개인 신상이 공개가 되어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인간들의 마음 자세가 강단에서 교인들을 가르칠 때와 다른 것이 너무 많아서 그럴 것입니다.

도둑들이 도둑 소굴에서 하는 대화는 잘 훔치는 것이 주제일 것이나, 도둑들이 각자 집에 가서 아이들과 대화할 때는 훔치지 말고 정직하게 노력해서 사는 것이 좋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도둑이 상하 가족을 만나면 자꾸 그런 말을 하면서 자기 양심에 가책을 느낄 것이나 도둑이 도둑들끼리 만나면 도둑질에 대한 각오가 더 강해지고 더 발전하는 도둑이 될 것입니다. 구역장이 구역장을 만나면 서로가 편하고 좋아서 세상 별별 이야기를 하기 쉽고, 구역장이 교인을 만나면 그렇게 되기가 어려워 집니다. 목회자도 구역장도 또 가정의 어른도 그 위에 어른도 어른이 자녀나 손주를 만나면 옳은 말과 행동을 하지 자기 속에 나쁜 것을 쏟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어린 사람 앞에서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르고 자기들끼리 만났을 때 말과 행동이 다르면 외식이 아닌가? 예, 그 어른이 아이 앞에서는 어른이고 그 구역장이 교인 앞에서는 구역장이지만 어른도 목회자도 알고 보면 자라 가는 도중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 속에 잘못 된 것을 누르는 기회가 많아 지면 그 잘못 된 것이 자꾸 위축이 되고 그 잘못 된 것을 자꾸 표시할 수 있게 되면 내면의 잘못이 점점 강해 지고 익숙해 집니다. 바로 이 것이 수직 관계로 만나고 수평 관계를 최대한 조심 시키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고신을 시작한 어느 유명한 경건자 그 시대의 최고 신앙가라는 분이 1960년경? 교역자 수양회의 쉬는 시간에 장기를 둔 이야기가 전해 집니다. 목회자들끼리 모인 수련회라 가능한 것입니다. 장기 바둑이 죄인가? 장기 바둑을 둘 시간이 있고 그 것에 관심이 기울여 질 마음 속에 빈 곳이 있고 자기의 스트레스 해소의 방법이 그 것이라고 한다면, 그런데 일반 교역자도 아니고 시대를 지도한다는 분의 내면이 그 정도면? 고신은 이미 썩고 썩어 뿌리까지 병 들었다 할 정도입니다.


자기 수준에 넘치는 의를 행하려 하다 주저 앉는 것도 귀신이 부추기는 일입니다. 그러나 편하게 믿으라고 주저 앉히는 것도 마찬 가지입니다. 가장 적절한 것은 한 걸음 더 나아 지려고 노력하는 정도입니다. 이렇게 한 걸음씩 떼다 보면 어느 덧 자기가 그려 보기도 어려운 신앙과 수준에 도달해 있을 것입니다. 이 것이 공회의 지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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