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가장 효과적인 교육 방법론 - 백영희의 혜안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1.07.20
(일반 교육의 체계)
오랜 세월 일반 교육 과정은 초등 6년, 중고등 6년, 대학 4년이다. 일제 때 초등 졸업은 지성인이고 지금은 대학원은 필요하다.
80년대까지는 유치원을 다녔다 하면 부자집이다. 요즘은 어느 유치원이냐는 문제지 전 국민이 무료로 다녀도 다닐 수가 있다.
80년대까지 대학은 경제와 학습력이 좋아야 했다. 머리가 좋아도 돈이 없으면 못 갔다. 돈이 많아도 공부가 안 되면 못 갔었다.
90년대까지 검정고시 하는 사람은 경제적 극빈층이거나 사고를 친 낙오자였다. 지금은 맞춤 교육의 최상인 경우가 적지 않다.



(방송통신학교)
TV는 80년대부터 일반화 되었다. 70년대까지 전 국민은 요즘 휴대폰처럼 라디오를 통해 뉴스와 모든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80년대부터 TV가 일반화 되었지만 뉴스 스포츠 연속극 오락이 전부였고 채널도 3개 정도였다. 교육방송이란 개념이 없었다.
해방 후 오랜 세월을 통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면 낮에 일을 하고 밤에 동네의 야학을 찾거나 라디오 교육 방송이 전부였다.
라디오로 배우는 교육방송은 이 사회의 제일 어려운 사람들이 가장 불리한 상황에서 교육 과정을 밟는 극단적 경우라 하겠다.

야간 대학을 다녔다는 말이 나오면 어렵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여건이 따라 갔다는 뜻이 된다. 그 다음이 야학이다.
방송 통신 학교는, 라디오만 켜만 된다. 돈이 들지 않는다. 등하교도 필요 없다. 그런데 아무도 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방송 통신 과정은 초중고등학교에 대학까지 16년 과정이 모두 있다. 특수한 이유가 없다면 방송 통신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백 목사님 평생 교육 문제를 두고 매번 강단에서 강하게 비판하면서 거의 모든 설교에서 예화로 들었던 때가 60년대부터다.



(서부교회 학생들)
50년대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고 공부를 하는 사람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서부교회에 교육 문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바로 이 50년대는, 서부교회 규모도 적었으나 학생들은 탁월하게 공부를 잘 하는 교인이 즐비했다. 전국의 최고 수준이었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성적도 인격도 신앙도 대부분 특별했다. 학습력이나 형편이 곤란한 사람은 거의 공부를 포기하고 있었다.
백 목사님의 감화가 탁월했기 때문에 공부하는 학생들은 훗날 탁월한 신학자가 될 듯했고 일반 청년들은 신앙에 만족했었다.

서울대 법학과 백도광, 서울대 영문학과 김병도 서영호, 서울대 불문학과 장렬, 실력으로 이들만 못지 않은 한동희 한종희...
그들과 오가며 지나 갔던 그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은 학교에서도 특별했지만 백 목사님이 모두 목회자로 점찍고 길렀었다.
같은 기간에 노동 장사 직장을 다녔던 김응도 김삼암 신용인 송용조 등도 학습력이 탁월했으나 형편 때문에 그러지 않았다.
정재성 이병준까지 헤아리기 시작하려면 학교 안이든 밖이든 어떤 형편이든 우리 사회 일반 기준에서도 대단한 인재들이다.



(백 목사님의 교육관)
백영희는 신학이라는 것도 우습게 생각하는 분이다. 학문의 세계로 거창하게 포장했으나 말씀으로 들이 대면 외화내빈이다.
하물며 백영희에게 세상 학문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그는 무식해서가 아니라 신학과 일반 학문을 들여다 봤었다.
신학과 세상 학문을 그 내용과 본질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일반 교인들에게 성경 외에는 배울 것은 없다고 가르쳤다.
그의 자녀들은 모두 학습력이 탁월했다. 그래서 최고 명문으로 가득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학문의 실상을 쉽게 생각했다.

70년대가 되며 나라가 발전하며 온 나라가 자녀를 고등 교육에 뛰어 들게 분위기가 바뀌고 있었고 교인 분위기도 그러했다.
백 목사님은 라디오를 통해 세상을 대략 파악하고 있었다. 교육의 열기가 뿜어 나오던 그 때 목사님은 '통신교육'을 권했다.
교육 중에 최고의 교육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통신학교 강좌'라는 것이다. 설교 중에 평소에 그냥 습관처럼 쉽게 말했었다.
나는 자라면서 통신 과정은 들어 보지도 못했다. 아니, 들어 봤을 것이나 마음 속에 교육이라고 담아 둔 적이 없었을 것이다.

요즘 내 입에서 20세 결혼과 30세 4명 자녀를! 늘 절박하게 노래하듯 백 목사님은 탄식하며 통신 교육을 늘 극찬하고 있었다.
1977년 2월부터 서부교회 교인으로 출석하며 유신 정권을 옹호하는 설교와 함께 방송 통신 학교에 대한 표현이 늘 걸렸다.
다 좋은데 독재 정권을 지지하고 통신 강좌가 최고라는 대목이 나오면 잘 받던 은혜가 한꺼번에 깨어 지며 쏟아 진 느낌이다.
저 말씀만 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정치 문제는 3개월만에 조기 해결이 되었다. 이해가 되었고 오늘까지 그 입장이 되었다.



(방송 통신 학교)
백 목사님의 라디오에서 공짜로 제공하는 방송 통신 과정에 대한 입장을 알아 차리는 데는 세월이 많이 걸렸다. 10여 년...
1982년까지 대학을 다녔다. 학교를 거의 나가지 않았으나 대충 눈치는 있다. 1984년부터 세계적인 강의를 접해 보았다.
1986년부터 부산에서 대학교 강의를 몇 년 동안 해 봤다. 직접 하면서 그 때야 절감을 했다. 백 목사님은 본질을 아셨다.
나는 대학에서 토플을 강의하며 괜찮은 출판사의 부탁으로 영어 기초 교재를 제작해 봤다. 또 대학의 강의 세계도 접했다.

강의가 공개가 되면, 강사는 최선을 다한다. 사력을 다한다. 어디 줏어 오든 밤새 준비를 하든 최고의 강의를 제공하게 된다.
아무리 대우가 좋고 명예와 인지도가 올라 가고 무슨 여건을 다 갖다 줘도 공개가 되지 않고 평가가 없으면 대충하게 된다.
경제를 두고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나눠 먹기 전에 굶어 죽게 되고 자본주의를 하면 우여곡절을 거쳐 먹을 것이 넘치게 된다.
이 것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인간의 본능에 관련 되어 있다. 강의를 공개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으면 놀고 먹는다.

왜 방송 통신 강좌가 가장 훌륭한가? 가장 훌륭할 수밖에 없나? 왜 굳이 학교를 다닐 필요가 없다고 백영희는 단정했을까?
그 이유를 몇 가지 적으며 글을 마친다. 공회의 행정 원리도 그렇다. 백영희의 목회와 그 자신의 평생이 이 원칙에 충실했다.
교회와 강단과 목회자 이름에 숨어 들고 그 간판 밑에서 교권과 명예와 돈과 안일이 독버섯처럼 솟아 난다. 천주교가 된다.
백영희는 그렇게 되지 말자는 한국 교회의 초기 개혁주의자들을 직접 겪어 봤다. 그런데 구조적으로 개혁일 수가 없었다.

소송 금지 원칙, 전원 일치 결정, 성경 외의 교회법 배제, 당회와 제직회 대신 권찰회 운영, 시무투표가 모두 개혁적이다.
이 개혁은 멀리 갈 것도 없고 시대나 교계를 향할 것도 없다. 내가 죽지 않고 신앙의 사람이 되려면 생존의 필수 사항이다.
세상의 교육 면으로 말한다면 '방송 통신 강의'로 공부하면 돈 들 것도 없고 학교와 교육 때문에 문제 생길 것도 없어 진다.
백영희가 비교 평가적으로 방송 통신 강의를 교인들에게 오랜 세월 권했으나 학교를 포기하고 방송으로 바꾼 교인은 없다.



(방송 통신 강좌가 탁월한 이유)
이유를 좀 띄어 저 밑에 적겠다. 좀 생각해 보고 나서 이 글의 결론과 비교해 보면 좋겠다. 읽지만 말고 생각해 봤으면 한다.
공회 신앙을 배워 가는 방법이며 백영희 없는 이 시대에 백영희를 제대로 알게 되고 심지어 그를 뛰어 넘어 보라는 뜻이다.
어느 책이나 특별한 자료를 찾아 보려 말고, 더 이상 읽지도 말고, 차분히 인간의 본성 차원에서 살펴 보면 좋겠다.















1. 방송에 공개 된 강의는, 학교 교실처럼 강의를 대충하지 못한다. 전국에서 지켜 보는 눈 때문에 강사가 최선을 다한다.

2. 방송에 모시는 강사는 전국 최고의 실력자다. 실력도 있고 강의력도 있다. 그 사람이 자기의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3. 지금은 녹음과 재방송이 가능하나 그 때는 한 번 들으면 질문도 하지 못한다. 공부할 학생으로서는 전념을 하게 된다.

4. 다른 직책은 정부나 방송이 인맥이나 여러 이유로 강사를 보호해 줄 수 있다. 방송 강좌의 수준은 그냥 두지를 않는다.

5. 강의의 내용과 진도의 방향이 어느 한 대목도 뺄 곳이 없다. 교실 강의란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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