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통성기도, 그 역사와 공회 기도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1.06.01
(통성기도의 역사)
통성기도는 영어로 'Korean prayer'라는 단어가 따로 있다. 다른 나라에는 없다는 말이 된다. 보통 concerted prayer라고 표시한다. 마치 '김치' '홧병' '시집살이'라는 영어 단어는 없는 것과 같다. 통성기도는 역사적 기록이 확실하며 선교사들의 본국에 보고한 기록에도 나온다. 전체적으로 이야기는 이렇다. 1907년 1월에 평양에서 대부흥회가 시작 되었고 1,500여명이 계속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토요일 집회 시간에 이길함 선교사가 '누구나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두세 분이 기도하라'고 하자 20여 명이 일어나 한꺼번에 기도가 나왔고 '그렇다면 다 같이 기도합시다'라고 하자 통곡과 함께 예배당은 겉잡을 수 없이 기도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이미 이전 집회 때도 예사롭지 않은 은혜 분위기가 뜨거웠고 이후로도 전국을 휩쓸게 된다.

역사적으로 통성기도는 '1907년 평양부흥회에서, 한 사람의 대표 기도로 이끌 수 없도록 참석한 교인 전체를 통해 한꺼번에 쏟아 질 수밖에 없는 폭발적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선교사부터 각 목회자들이 자기들 입으로 낼 수 없도록 지은 죄를 서슴치 않고 다 쏟아 버렸고 참석한 이들이 다 그러했다. 인간의 체면, 계산, 눈치가 덮을 수 없도록 성령이 강단과 교인 전체를 흔들어 회개를 시켰다. 그 때 참석한 사람은 모두가 죽고 그 때의 기록이나 그 때 증인들로부터 현장 상황을 생생하게 들어 온 한국교회는 100년 동안 '통성기도'를 이어 왔다. 공회도 그렇게 해 왔다. 2007년에는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전국 교회가 모여 평양대부흥 백주년 행사를 했다. 공회는 해방 후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기도 운동과 성령 운동으로 소리 없이 유명하다.



(공회 노선과 교회사)
공회는 모든 교회가 옛날 것이라고 버린 지 오래 된 것을 꼬깃꼬깃 보관하는 것이 많다. 박물관은 아닌데도 무슨 집착증처럼 그런 면들이 흔하다. 그래서 타 교단에서 신앙 생활을 했던 분들은 이단인 줄 알고 외부 모습만 보고도 뒷걸음 치는 경우를 흔하게 본다. 그런데 교회사를 제대로 아는 이들은 '초대교회 같다' 또는 '한국교회가 건전했을 때가 기억난다'고 한다. 고마운 말이다. 평생 이런 이야기를 듣고 산다. 가장 객관적이고 연구적이며 감사한 반응은 '다른 교회들과 왜 이 부분이 다른지' 물어 본다. 일단 질문이 들어 오면 할 말은 많아 진다. 교회사 3학점 강의를 해야 할 분량이다. 그런데 그냥 간단히 설명한다. 늘 설명하는 방식이 있다. 비판적으로 공격을 할 때는 '소속 교회나 교단의 이전 연혁을 보면 이 것이 맞다'고 할 것입니다.

몰라서 그냥 물어 보는 이들에게는 '제도'나 '모습'의 시작을 먼저 설명한다. 배 고팠던 때 '보리밥'은 서러운 추억이다. 배부른 지금의 '보리밥'은 특식이다. 단어는 같으나 환경을 모르면 반대 말이 된다. 배 고플 때 교회는 모금 주머니를 교인들 한 명씩 얼굴 앞에 내 밀고 돈을 모았다. 내가 알기로 그렇게 하지 않은 교단은 없다. 배가 부른 뒤에는 신사적이 되어 그렇게 하지 않는 교회들이 많이 생겨 나고 있다. 지금 그들은 지성적으로 교회를 운영한다고 한다. 나는 배가 부르니 멋을 부린다고 해석을 한다. 공회는 역사적으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한 곳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굶어 죽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늘의 경제 상황에서 공회는 오늘에 맞는 검소한 경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그 검소함은 배 고플 때와는 다른 형태일 뿐이다.

공회는 일제 때 사용한 찬송가와 성경을 오늘도 유지하고 있다. 선교 초기의 남녀반 분리와 전도사의 옛 말인 조사, 교사의 원래 말인 반사를 사용한다. 을 오늘도 유지하고 있다. 일제 때 성경을 오늘도 유지하고 있다. 남녀반이 따로 앉는다. 요즘 남녀 문제로 이 문제는 좋게 보여 지는 것이 다행이다. 반면에 교회와 신앙에 확실하게 문제가 있는 것은 거침 없이 폐지하거나 바꾸어 왔다. 아는 분들은 '개혁'이라고 좋아 한다. 타 교회의 고위직일수록 바뀐 모습에 거부감이 심하다. 목사 장로를 매2년 투표해서 면직을 시킨다. 젊은 사람들은 개혁이라 좋아 하고 타 교회 목사 장로님들은 아주 비판한다. 연보 방식과 목회자 생활 수준도 타 교회 교인들은 좋아 하나 목회자들은 아주 꺼린다. 통성기도의 경우도 우선 역사를 살피며 오늘을 설명해 본다.



(한국교회의 통성기도사)
공회 생활만 사람들은 통성기도를 묵상기도인 줄 안다. 그러나 공회의 이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타 교단의 통성기도를 겪어 보면 공회이 통성기도가 맞겠다고 바로 파악할 수 있다. 통성기도는 마음을 뒤흔드는 성령의 역사가 마음으로만 기도를 할 수 없도록 만들 때 입으로 터쳐 나오는 기도를 말하는데, 한 개인이야 살다 보면 그럴 경우들이 있겠지만 예배에 참석한 전체 교인에게 일시에 그런 내면의 성령 역사가 동시에 표출 되는 경우를 말한다. 1907년이란 한국의 모든 교인들이 일제 침략을 눈 뜨고 당하면서 암울한 세상과 함께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모든 면에서 절망감이 극에 달했다. 인간으로서 절대로 해결을 할 수 없는 억울한 일, 슬픈 일, 목이 메어 불러 봐야 할 상황이 넘치고 있었다. 심지어 시집살이의 억울함또 발화물이었다.

5천 년 역사를 자랑하나 못난 민족의 미신에 찌들고 불교 유교의 종교들에게 속아 나라도 파탄 났고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물론하고 희망의 빛이 전혀 없도록 된 것은 바로 이 나라 우리에게 귀한 복음을 귀하게 주시고 사용하시려고 하나님께서 환경을 극도의 불안과 절망에 몰아 놓았다. 그리고 선교사들을 통해 이 나라에 복음의 첫 씨를 뿌렸고 복음은 인간적 종교적 국가적 사회적 인화물이 많이 깔린 전국의 방방 곳곳에 번지기 시작했다. 서울과 북경을 잇는 당시 한반도의 길목은 평양이다. 정보에도 빠르다. 그러니 아는 것도 많고 억울함과 절망감은 더욱 많다. 그리고 선교 20년이 막 넘어 가는 시점에 이제 평양을 중심으로 형성 된 교회들의 신앙과 말씀 준비와 회개 진행과 교인들의 상황은 건들이면 폭발하게 충분히 준비가 되어 졌다.

1907년 1월, 주변 지역 전부가 부흥회에 참석을 했다. 그리고 우리 말이 서툰 선교사들의 예배 인도는 인간적으로 보면 그리 감화적일 것 같지 않았다. 훗날 그들 스스로 그러했다고 말한다. 한국 교회 초기에 배출한 목사님들도 그렇게 한 시대를 장악하고 울고 웃기며 이끌어 갈 조용기 목사님처럼 위대한 설교가들도 아니다. 성령이 한 교인의 내면을 직접 모으고 계셨고, 드디어 예배당에 몰아 넣었고, 그리고 선교사와 목사님들도 그들의 평소 설교 감화력으로 강단에 섰을 뿐인데 그들의 마음을 붙들고 그들의 입을 움직였으니 겉은 강단의 설교자였고 그 설교의 내면에서는 성령이 직접 역사했다. 교인들은 폭발을 했다. 성령의 내적 역사와 외적 역사가 마주쳤다. 이 장면은 어느 과학, 어느 연출, 어느 기획, 어느 우연으로 될 수 없는 필연이었다.

강단에서 회개가 나왔고, 모인 모든 교인들은 일시에 그들의 지난 날 묵혀 두었고 쌓아 두었고 견딜 수 없도록 그 동안 그들 마음을 흔들어 왔던 말씀 앞에 죄송했고 그 죄송한 마음을 성령이 불을 질러 버렸다. 한 명이 아니라 전부를. 강단만 아니라 교인 전부를, 평소 떳떳하고 자신 있고 훌륭하고 깨끗하게 살아 온 교인도 또 그 집에 배려 받고 살아 온 며느리도 머슴들도, 그리고 그 옆 집에 망한 부자 집 사모님도 또 시집 살이에 찌든 며느리도, 돈을 떼 먹고 도망 다니다 우연히 앉은 사람도, 사도행전 2장 4절에서 천하 각국에 있던 무리를 말했다. 한 집에 살아도 서로의 형편과 환경과 마음은 천하 각국의 천차 만별이었다. 그러나 같은 점은 이미 배우고 있던 말씀에 가책을 받고 있었다. 모두가 자기 신앙과 상황에 따라 죄는 달랐으나 폭발은 동시였다.

휘발유든 경유든 스치로폼이든 어떤 종류의 인화 물질이든 잔뜩 쌓여 있는 곳에 때 마침 건조하고 적절하게 밀폐 된 상황이 되었고 여기에 지나 가던 불량 청소년이 우연히 담배불을 던졌다면 그냥 슬슬 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대폭발이 일어 나면서 건물을 날려 버릴 수 있다. 평양대부흥 1907년은 심리학자 사회학자 종교학자들이 인간적으로도 많이 연구해 온 사건이다. 그들이 양심껏 정말 세밀히 냉정하게 조사를 했다면 당시의 모든 여건이 그런 대폭발의 회개하는 통성 통곡 기도를 하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다. 결정적인 요소들이 몇 가지 빠져 있었다. 인화 물질이 아무리 쌓여 있다 해도 비에 젖어 버리면 폭발로 이어 지지 않는다. 1907년의 통성기도 첫 폭발은 성령이 시대와 개인을 한꺼번에 몰아 넣고 성령이 폭발을 시켰다.



(통성기도에 대한 분석)
1907년, 선교사 말 한 마디에 1,500여명 교인이 한꺼번에 자기들의 지난 날의 모든 추악한 죄를 토쳐 내고 예배당 자체가 떠나 가게 해 버렸고, 이로 인해 사도행전 2장 1절의 오순절 기록을 성경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직접 체험을 했고, 이로 인한 한국 교회의 청결 운동으로부터 전도와 부흥과 전 교인의 전도인화로 이어 진 역사, 그 광경이 한국 교회와 당시 그들에게 심어 놓은 것이 하나 있다. 이보다 더 극적일 수 없고 이보다 더 은혜스러울 수가 없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그 시기의 은혜가 신사참배를 맞게 되자 다 식어 버렸고 남은 것이 없었다. 신사참배는 밤이다. 밤이 오자 1907년부터 시작 된 그 불길의 기름이 다 떨어 져 버렸다. 그리고 그 부흥회의 불길이 신사참배 밤중을 밝히지 못했다는 점에서 통성기도는 다시 살펴 봐야 하는 연구 대상이다.

성령이 환경을 만들고, 성령이 모인 교인들의 상황을 인간이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을 심어 놓고, 그리고 성령이 한꺼번에 기도가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이 1907년의 첫 통성기도였고 그 기도가 한국 전체의 복음화로 이어 졌다. 그런데 이 평양 대부흥회가 평양에서 시작하여 조선 반도 전체를 휩쓸 때 '경상남도'는 무풍지대라 할 정도였다. 일본에 불어 닥친 태풍을 한국에서 뉴스로 보듯, 그런 식이었다. 왜 그럴까? 덜 감성적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 것이 전부일까? 훗날 신사참배가 몰아 닥쳤을 때 그리고 해방 후 다시 신사참배의 환란기와 이후 이어 지는 정통성을 살펴 보면 마치 경남이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오늘까지 신사참배 반대 세력은 지역적으로 '경남'처럼 보인다. 심지어 북한 교회에서 승리했던 분들도 피난을 와서 모두 경남에 모였다.

우선 평양대부흥회는 요즘 생각하는 부흥회와는 다르다. 그 부흥회는 정확하게 '사경회'였다.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자기를 살피며 말씀으로 자기를 먼저 돌아 본다. 말씀을 배우고 말씀으로 자기를 살피다 보면 당연히 생각 못한 죄들이 쏟아 질 수밖에 없다. 말씀을 읽고 배우고 깨달아야 자기가 얼마나 악하고 더럽고 몹쓸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말씀을 접하는 바로 이 순간에 성령은 말씀 속에서 우리를 감화 감동으로 깨닫게 하고 고칠 마음도 주시고 원통함도 느끼게 만든다. 혼자 이런 기회를 가지면 혼자 회심이라고들 하는 회개의 순간을 맞는다. 그런데 어리거나 약한 교인 또는 교회적 사명에 필요하면 성령은 이런 과정을 함께 모인 교회를 통해 예배를 통해 또는 특별 집회를 통해 역사한다. 평양대부흥회는 말씀으로 깨닫고 그리고 폭발을 했다.

이 것이 통성기도라는 모습으로 나타 났는데 왜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는 없었는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Korean prayer, 한국형 기도 또는 한국식 기도라는 단어까지 나오게 되었을까? 한국의 선교 역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이야 말로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주님이 부탁하신 대로 '땅 끝'이다. 아프리카나 동남아나 중동이나 남미를 땅 끝인 줄 알고 선교 가는 분들이 땅 끝 선교라는 표현을 하지만 우리의 주소지를 기준으로 말하면 맞지만 행1:8의 2천년 전 말씀이 세월을 통해 전파 된 과정을 보면 아프리카와 중동은 이미 사도행전 2장 9절 이하에 전파가 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대항해시대가 열린 5백 년 전에 남미 동남아 호주까지 이미 복음은 다 들어 갔다. 일본과 중국도 이 시기에 이미 그렇게 되었다. 한국만 버텼다.

중국과 일본에는 수백 년 전에 들어 온 복음을 왜 한국만 19세기 말까지 버티며 20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전국 곳곳에 전해 지게 되었을까? 인간적으로는 참으로 이해가 어렵다. 하나님의 섭리 역사 때문이다. 인간사에 하나님의 예정이 없는 곳은 없다. 한국이 세계 선교에서 확실히 혼자 동떨어 지고 제일 마지막에 전해 졌다면 그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리고 한국이 현재 세계 최고 최대의 기독교국이 되어 있다. 그 것도 보수 정통의 신앙이 주류가 된 상태에서다. 그리고 한국은 세계적 미개국에서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 되었다. 이렇게 전부를 다 갖춘 상태를 왜 가장 늦게 준비를 시켰을까? 이렇게 넓은 눈으로 훑어 보면서 1907년의 평양대부흥이라는 세계 기독교사적인 상황을 보고 그 때 시작이 되었다는 통성기도를 살펴 보면 윤곽이 나온다.



(공회와 통성기도)
전국이 다 평양대부흥회 1907년의 영향을 받았다. 공회가 출발한 경남 거창은 그 바람이 지나 가지 않았다. 전국을 다 휩쓸었다 해도 이 노선이 출발하던 거창의 덕유산 유역은 평온했다. 그리고 1936년에 백영희는 전도를 받는다. 그리고 성경 하나만 읽고 성경을 읽으며 깨달아 지는 대로 실행했다. 그 실행은 그의 평생을 통해 늘 동일했다. 뭐든지 말씀으로 살펴 봤다. 선교사가 가르치든 목사들이 말하든 세계 교회가 그렇다고 말하든 말든 성경으로 하나씩 살피며 그 말씀으로 자기와 주변을 철저히 만들어 갔다. 술도가라는 술 사업가였으나 자기 사업 정리가 먼저였고 고리대금으로 돈을 벌었으니 번 돈을 모두 처리하는 것이 먼저였다. 처음 시작에 이런 이들은 더러 많다. 그런데 일제 때나 전쟁 때나 잘 살게 된 훗날까지 계속 그러는 경우는 거의 없다.

1936년 처음 믿기 시작하자 바로 신사참배 환란이 닥쳤다. 그가 목회한 교회는 교인 전체가 신사참배를 하지 않았다. 한국 교회사에 유일한 경우일 것이다. 해방이 되자 신사참배 때 마련 된 신앙과 사선을 넘는 충성에 성령이 그를 붙들고 말씀에 능력을 더해 주셨다. 그를 아는 시골에 몇몇 교회들이 그의 생활을 알기 때문에 그의 설교는 설교로 듣지 않고 그가 걸어 온 체험을 그려 보면서 말씀을 들었다. 실제 그렇게 살아 본 사람이 전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에는 성령이 그가 실제 살면서 더해 진 충성 때문에 감화가 더해 졌다. 그만큼 더해 졌기 때문에 다른 설교자들보다 설교의 은혜가 더 있었다. 그는 믿는 처음부터 그리고 해방 후에도 평생토록 늘 성경 말씀으로 실제 살아 본 것을 전한다. 말씀에 실행을 더하게 되면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가?

그의 설교를 들어 본 이들이 그의 설교에 담긴 말씀으로 자기를 비춰 봤고 그리고 깨달아 지니 깨닫는 것만큼 회개를 하게 되었다. 실행해 본 말씀을 전했고, 실행해 본 말씀이기 때문에 그를 아는 이들은 실감 있게 그리고 자기 문제처럼 관심 있게 들었고, 귀를 기울여 들으니 들려 졌고, 그들도 그가 실행하고 전한 그 말씀으로 자기의 문제를 가슴 아프게 느꼈고, 가슴 아픈 만큼 기도는 저절로 가슴 아픈 기도 소리로 나오게 되었다. 그 나오는 분량이 점점 모여 지고 커지다 보니까 백영희의 가는 곳마다 통성 기도는 평양의 1907년과 전혀 다른 곳에서 평양의 통성기도와 상관 없이 평양의 통성기도처럼 터쳐 나왔다. 평양의 통성기도를 배우고 그런 모습이 나오게 하기 위해 힘을 쓴 것이 아니라 평양처럼 말씀을 전하고 말씀으로 살피다 보니 나온 것이다.

아이를 가지면 누구나 행동이 같아 진다. 아이가 태어 날 때 산모는 연습하지 않아도 통증도 몸부림도 같아 진다. 아이는 가지지 않고 산모처럼 울부짖고 몸을 비틀면 아이가 나오게 되는가? 이 것이 평양대부흥의 통성기도를 오늘에 재현하려고 노력하는 교회들의 몸부림이다. 말씀을 가지고 생각해 보니 죄송하고, 말씀으로 깨닫고 보니 기가 하고, 그 죄송과 그 기막힘이 속에서 점점 끓어 오르는데 예배당의 공적 예배 시간이라 예배의 진행 때문에 또는 옆 사람 때문에 자기 속에 끓어 오르는 것을 솥 뚜껑으로 내리 누르려고 해도 누를 수가 없게 된 상태, 또는 겨우겨우 내리 누르는 상태에서 이길함 선교사가 자기는 자기 정도에서 그렇게 느끼며 기도를 부탁했는데 차례로 한 사람씩 기도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20여 명이 한꺼번에 일어 섰다.

모두가 함께 자기 내면을 내리 누르며 말씀 앞에 죄송하고 억울하고 통분함이 있던 순간. 기도를 부탁하자 20여 명이 먼저 일어 선 것은 그 20여 명만이 전부가 아니라 그 자리 모두에게 거의 비슷하게 내면이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 중에 가장 급했던 이들이 20여 명이었다. 그리고 그 20여 명은 나머지 1,500여 명의 냉정한 마음에 불길을 던진 것이 아니라 전부가 인화물로 가득 찼고 발화점을 이미 넘기고 있던 상황에서 20여 명이 자기 기도를 하자 나머지에게 각자 눌러 둔 뚜껑을 열게 만들었다. 이 것이 통성기도다. 그런데 그 모습을 100년이 지난 세월동안 전국의 거의 모든 교회의 모든 목회자와 교인들이 그런 결과를 가지고 싶어서 소리를 지르는 연습을 또는 숙련된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통성기도인가? 통성기도 연습인가? 모방인가?



공회는 설교 시간에 은혜가 될 때 '아멘!'을 아무리 크게 외쳐다 막지 않는다. 그대신 아멘! 이라는 마음이 나오지 않는데 아멘!을 습관적으로 하게 하지는 않는다. 바로 여기에서 실제 현장의 차이는 좀 있다. 아멘! 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 교회 전체 분위기가 말씀을 듣는데 집중이 되어 있어 이 차분한 분위기 전체를 깨뜨리고 터쳐 나올 정도는 아니어서 표시를 내지 않는다. 공회는 연보도, 간증도, 믿는다는 표시도, 예배당 건물도, 모든 신앙의 모습을 내면의 것이 저절로 밖에 나오는 것은 막지만 일부러 표시하지는 않는다. 십자가 목걸이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십자가가 너무 좋아서 달고 싶다면 막지도 않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습관적으로 건다고 보이면 장단점을 안내한다. 결국 걸지 않게 된다. 찬송도 아멘도 할렐루야도 모든 소리도 다 마찬 가지다.

여기까지 말하다 보면 공회식의 일방적인 선전이고 해명에 그칠 것같다. 백 목사님의 설교와 폭발력은 한국 교회 최고라는 찬사를 아끼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80년대 초반까지 통성기도 때도 어느 정도였고, 설교 중에 아멘이나 할렐루야라는 소리는 일체 없었다. 그런데 순복음교회가 아멘, 할렐루야 라는 합창을 이끌어 내면서 1970년대에는 이단으로 비판을 받았으나 그 것이 한국인이 여간 드러 내지 않는, 그런데 한 번 드러 내면 함성으로 터쳐 나올 수 있는 심리적 배경인 줄 알게 되었고, 순복음교회를 비판하던 장로교 중심의 전국 교회들이 모두 따라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설교를 들을 때 마음이 풀어 지는 상태를 깨울 수 있고 이로 인해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전국 모든 교파 모든 교회는 전부 순복음식 강단으로 바뀌고 있었다.

공회는 남들이 먼저 했다 해도 죄 되지 않고, 그리고 좋은 것은 배우고 따라 한다. 연보 봉투도 원래 없었는데 약간 변형을 해서 따라 하고 있다. 찬양대는 남녀 문제가 심각하고 말씀 중심의 교회가 위락 중심으로 나갈 수 있어서 1960년경에 없앴으나 다시 시작하면서는 주일학교 여학생들만의 찬양대로 운영하여 단점을 막고 그들 나이에 교회와 신앙에 도움이 되도록 한 것처럼, 아멘과 할렐루야도 설교하던 백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그렇게 외쳐 보라고 가르쳐서 유치원생 연습처럼 시켰다. 타 교단은 그 것이 전부인 것처럼 되어 치우 쳤고, 서부교회와 공회는 고요히 말씀을 들으며 깨닫고, 깨닫는 내면이 솟구칠 때 실행도 하고 감사도 하고 환란도 이기고 통성기도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맞다고 했으나 이 교과서적인 순서가 잘못 굳어 져 있었다.

공회는 원래 말씀으로 뜨거웠다. 너무 뜨거워서 주변 교회가 염려를 했었다. 그런데 자꾸 말씀으로 깨닫는 것을 먼저 가르치고 감성적 신앙을 자꾸 눌러 놓다 보니까, 어느 순간 어린 교인이면 남 눈치 볼 것 없이 첫 말씀에 기쁜 표시를 할 수 있어야 하고 또 하는 것이 당연한데, 공회의 역사적 발전 전체는 원만하게 그렇게 자라 올라 왔으나 공회의 절정기인 1970년대를 지나면서 교회를 처음 다니는 사람도 평생을 믿은 원로 교인처럼 자기를 절제하다 보니 첫 말씀에 처음 좋아서 뛰고 날라야 하는 단계를 가지지 못했다. 이 것이 교회를 경건하게 만든 것은 너무 좋지만 그렇다고 경건이 지나 쳐 천주교화가 되는 것은 발전이 아니라 석고화 신앙이 되어 버린다. 아이가 어른 흉내를 내다가 아이다운 시기를 놓치게 되면 아이스럽게 자라는 면을 놓칠 수 있다.

1980년 초반부터 설교 중에 꼭 기억해야 할 부분, 모두가 합창을 해야 하는 단계에는 과거 설교 단어 설교 내용의 일부를 따라 하게 했는데 '아멘!' '할렐루야!'를 외치게 했고 통성기도도 좀 하도록 했다. 그래서 눌러 놓았던 이들은 자연스럽게 은혜롭게 외쳤고, 어린 교인은 옆에서 배우며 자라게 되었다. 그래서 무조건 분위기를 달구어 분위기에 휩싸여 멋 모르고 통성기도가 나오게 하고, 억지로 울려고 해서 울음이 나오는 식은 그 때나 지금이나 확실히 차단하지만, 내적으로 나오는 소리는 낼 수 있도록, 그리고 조금 애매한 이들에게 주변에서 도움이 되는 정도는 신앙의 자연스러운 변화와 성장과 학습 과정으로 가져 왔다. 이 것이 1980년대 말까지 백 목사님 생전의 마지막 10여 년, 공회와 서부교회의 뜨거웠던 시기의 통성기도였다. 참 뜨거웠다.

뜨거웠지만 타 교단 타 교회 타 부흥회에 흔한 그런 분위기 잡는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백 목사님 사후, 지금 30여 년을 지나고 있다. 오늘의 통성기도는 어떤 모습일까? 그 분만큼 은혜가 되지 않으니 80년대의 공회 통성기도는 현재 총공회 어디에나 없다. 혹시 소리가 나는 곳이 있으면 타 교단처럼 강단에서 분위기를 돋우워 따라 가는 방식이다. 이는 공회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느 교인 단 1명이라도 말씀에 은혜로 소리를 낼 만큼 되지 않을 정도인가? 그렇게 설교에 은혜가 없으면 교회 유지가 어렵지 않을까?



(정상적인 성장 과정이라면)
한국 교회는 초기에 연보 주머니를 교인 한 명씩 얼굴에 내어 밀고 연보를 거뒀다. 오늘은 그 때를 비판하나 그 때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목회자가 굶어 죽어야 했다. 오늘의 시각과 그 때의 불신자가 보면 나쁜 모습이다. 공회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 공회는 목사 월급을 교인의 저소득층의 중간쯤에 맞춘다. 그러나 조용기 목사님의 월급이 1억이든 10억이든 100억이든 비판하지 않는다. 그런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자체가 그 분의 충성이며 실력인데 그 분을 비판하는 이들은 실력도 없고 충성도 없으면서 비판을 한다. 우리는 그런 비판을 오히려 비판한다. 우리는 그렇게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되 그렇게 매출이 많다 해도 그렇게 받지 않는다. 그렇게 준다 해도 그렇게 써지도 않는다.

통성기도라는 것은 교회가 자라 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옹아리와 같다. 아이가 태어 난 뒤 아이가 정확하게 말을 하기 전에 옹아리라는 단계를 거친다. 장성한 후에 옹아리를 하면 곤란하다. 그런데 자라 가는 과정의 옹아리는 발음의 전 단계로 필수가 된다. 걸음마도 마찬 가지다. 넘어 지며 배운다. 어른이 걸음마를 하면 코메디언이거나 장애자겠으나 아이에게는 좋은 현상이다. 통성기도는, 선교 초기가 정상적으로 발전이 된다면 당연히 나오게 되어 있는 걸음마며 옹아리다.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교계도 모두 거쳐 갔을 것이다. 믿는 사람치고 처음 은혜 받고 미쳐 보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그런데 개인뿐 아니라 한 나라가 복음화가 되는 과정에 한 나라 전체에게도 그런 모습은 지나 갈 수 있다. 한국의 경우는 더 표시가 났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런데 평양대부흥회의 1807년 통성기도의 내용을 유심히 읽어 보셨는지 모르겠다. 남의 집 돈 훔친 이야기, 시어머니 욕한 이야기, 선교사가 본국에서 보낸 돈을 떼 먹은 이야기... 여기까지는 그 때도 좋고 오늘도 좋다. 그런데 옆 집 아가씨를 마음으로 죄 지은 이야기나 같은 교회 결혼한 남자를 마음에 품었던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이런 이야기는 전체 분위기에서 모두 덮어 졌고 좋은 결과로 나갔다. 그런데 사도행전 2장의 성령 역사로 방언 전도가 있었고 제자들이 더해 지며 43절에서 재산을 서로가 팔아서 함께 먹고 함께 사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까지는 성령이 재산과 가족의 책임, 그리고 개별적으로 따로 해야 할 일을 가리지 않았다. 지금 돌아 서는 단계이기 때문이고 첫 발을 딛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5장과 6장에서 이미 선을 긋고 있다.


아나니아 부부는 재산을 다 연보할 정도는 아니었다. 전체 분위기 때문에 자기 신앙 이상으로 연보를 하려다 탈이 생겼다. 1907년의 대부흥에서는 성령이 한국이라는 나라의 교회 전체에 할 일이 있어 인간을 모두 배제하고 직접 역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었다면 그 때부터 오늘까지도 늘 옆 집에 훔친 이야기를 예배 때마다 통성기도 때마다 해야 하는가? 음욕을 가진 것조차 낱낱이 회개해야 할 때를 주시면 해야 하겠지만, 그 때 그렇게 했다고 늘 그렇게 통성기도로 공중 고백을 해 버리면 상대방 가정은 어떻게 되며 자기를 조심해야 할 미혼의 여성은 어떻게 되나. 두 남녀가 간통을 했고 한 사람은 고백을 원치 않는데 한 쪽이 고백해 버리면 나머지 한 사람은 억지 회개를 해야 한다. 이 것은 신앙의 자유성을 무시한 큰 잘못이다.

회개라는 것은 내가 손해를 보면서 돌아 서야지 내가 돌아 서는데 남을 희생 시킨다면 그 것은 회개의 값을 남이 내고 혜택은 내가 보는 문제가 된다. 특히 상대방이 나의 회개의 값을 내기 싫어 하는데도 내게 한다면 이 것은 강제 모금이 된다. 이 것은 절도가 아니라 강도 죄로 봐야 한다. 십자가란 내가 질 때만 십자가다. 목회자가 교인에게 십자가를 메워 놓고 자기는 얹혀서 그냥 간다면 십자가를 전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원수가 된다. 통성기도, 통곡기도라고도 한다. 성령이 내면을 흔들어 성령에 붙들려 내가 따라 가고, 그 결과 눌러 놓을 수 없을 때 터쳐 나오는 것을 말한다. 이 것은 개인 기도에서 흔하고 나올 수 있다. 그 것을 통성기도라고 하지는 않는다. 모든 교인이 함께 그렇게 될 때를 말한다. 눌러 놓은 사람은 이 시간 터트려도 된다는 기도다.

1907년대에는 한국 교회에 바로 된 통성기도, 성령이 실제 인도하는 통성기도가 실제로 휩쓸고 있었다. 그래서 통성기도의 시간을 따로 주지 않으면 예배가 진행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설교 전에는 후에 따로 통성기도를 하라고 했다. 이후에 식어 졌고 그런 현상은 없어 졌으나, 해방 후에 다시 감격스럽게 그런 때가 있었다. 이상스럽게도 거의 고려파 위주로 그렇게 되었다. 이 것이 고려파의 정통성에 내증이다. 그리고 6.25 전쟁이 터지자 교파를 막론하고 다시 통성기도의 은혜가 내렸다. 설명하지 않아도 재구성을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1960년대부터 나라가 발전하면서 어느 날 이 나라에는 통성기도가 없어 졌다. 1960년대부터는 고신의 통성기도를 기억한다. 통성기도를 하려고 노력을 했지 주어 진 통성기도를 보지 못했다. 공회는 눌러 놓았었다.



(오늘 우리 환경과 통성기도)
우리가 예배 순서의 설교 전과 후를 '통성기도'라고 표시하는 이유는 하나다. 설교 전에는 '설교의 은혜'를 구하는 제목 하나를 두고 함께 간곡히 간절히 기도하자는 것이다. 소리가 터쳐 나오면 최고의 신앙이고, 소리가 덜 나오면 일반 신앙이다. 무슨 말인지 또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으면 어린 신앙이다. 집에 초상이 나도 아이들은 뭔 일인지 모르는 것과 같다. 며느리 울음과 딸의 울음은 확실히 다르다. 며느리 곡 소리는 최근의 통성기도다. 딸의 곡 소리는 1907년의 통성기도를 떠올리게 만든다. 설교 후에 '통성기도'는 그 날 받은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으로 자기를 돌아 보고 각오하면서 필요한 사람은 마음껏 소리를 터트려도 된다는 강단의 예배 순서 안내다. 고요히 기도할 때도 있고 통성기도가 필요한 분은 이 때 하도록 부탁하는 것은 공회의 공통이다.

현재 부공3을 기준으로, 또 전체 공회들을 살펴 봐도, 오늘의 통성기도는 언제라도 성령이 어떻게 인도하실지 모르고 역사적으로 한국교회는 물론 우리 공회에 역사하셨던 그런 기회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순서에 꼭 넣고 있다. 마음에서 우러 나지 않는 분들이 억지로 하지는 말고,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분이면 그 우러 나오는 정도에 따라 알아서 하고, 통성기도를 하고 싶은데 아무도 하지 않기 때문에 혼자 하기가 이상하지 하지 못하는 분은? 그렇다면 주변에 눌려서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렇게 교인 전체의 내면 총합이 예배당을 떠들썩 하게 만든다면 너무 좋은 교회의 너무 좋은 분위기가 되는 것이고, 웅성거림으로 끝이 나면 옹아리가 그 교회의 현재 상황이 됩니다. 이럴 때 심성이 소탈한 분이 혼자 해 버림으로 다른 분들을 이끌어 준다면, 좋습니다.

백 목사님 생전, 서부교회에 그런 분이 꼭 1명 있었습니다. 1명뿐이었습니다. 세계 10대 교회로 손꼽히는데 그렇게 밖에 되지 않았을까? 그 분은 질실했고 그 분은 처음 믿을 때 본 기적 때문에 돌아 가시는 날까지 그런 통성기도를 쉬지 않았고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분 외에는 모두 강단에서 백 목사님의 반복 된 지시 때문에 마지 못해서 끌려 가듯 했고 몇 년이 지나게 되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역과 인물의 차이를 비교합니다. 왜 1907년의 평양대부흥의 통성기도가 전국을 휩쓸고 난리가 났는데 경남 지방만 무풍지역이었을까. 이 지역을 붙들고 다음에 역사하려고 아껴 두었을 수도 있고, 이 지역의 지역민의 특성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무뚝뚝! 속은 그렇지 않은데 겉으로 표시가 그토록 없는 인색함! 이런 면도 있어 보입니다.

이런 성격이 평소에 통성기도에는 불리하지만 환란이 닥쳤을 때 경남은 전국에서 선교도 늦고 교인수도 가장 적었지만 승리한 분들은 월등히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성격을 붙들고 환란 때 등불로 들기 위해 미리 성격을 깐깐하게, 따져 가며 믿되, 한 번 결심하면 끝까지 가는 면을 주셨을까? 고신과 타 교단을 비교하면 지역적 차이 외에도 성향에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지역을 사용하지만 고신과 공회를 비교하면 또 같은 식입니다. 부공3은 공회들 중에서도 유독 그런 면이 강합니다. 이렇게 만들어 주신 자기 성향을 남들처럼 맞추려고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 개선은 해야 하지만 바꾸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사투리를 꼭 바꾸려고 노력한다면 그 것도 무리라고 생각하면서 목회자로서는 목회자의 말씀 은혜가 부족해 그렇다고 내심, 그렇게 생각합니다.



(덧붙여)
공회의 성찬은 예로부터 눈물로 진행을 했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 서면서 백 목사님 눈에서부터 눈물이 없어 졌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속에 감사는 더 뜨거워 져 가고 있었습니다. 눈물의 성찬식을 가져 보면 어떤 성찬식도 눈물이 없이 진행 되면 이상하게 느껴 졌습니다. 부모 장례에 어떻게 눈물이 없는가? 성찬은 주님 날 위해 죽으심을 기념하는데.. 처음 믿을 때는 입으로 죄를 회개했고, 주먹으로 자기 입을 쥐어 박았으며, 눈물로 성찬을 진행했으나 얼굴을 적시든 눈물이 마음을 적시면서 내면을 향하게 되면 눈물이 날 틈이 없게 됩니다. 이 때를 '기가 막힌다'고 합니다. 어머니 장례에 며느리는 '어이 ~ 어이 ~ ' 곡 소리를 내지만 딸은 목 구멍으로 소리가 나오지 못하고 '어!' 막혀 버립니다. 한국교회 초기의 통성기도보다 오늘은 더 심해 져야 합니다.

그 때 한국 사정과 오늘의 한국 사정을 비교하면 눈으로 보는 면에서는 지상낙원이 되었는데 내용을 보면 우리의 통성기도가 더 간절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런 오늘을 향해 얼굴에 흐르는 눈물과 우리의 목청을 통해 나오는 발성적 통성기도보다 우리의 애간장을 모두 녹여 버리는 내면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내면이 '통성으로 기도'하자는 사회자의 부탁을 들을 때 소리를 쳐서는 해결이 될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는 자기만의 기막힌, 통곡을 해야 하는, 통곡을 해서도 안 되는, 간절함 애절함 절박함이 사무쳐야 합니다. '통성기도' 시간에만 그렇게 되어야 할까. 이 글을 적고 있는 이 시간에도 나와 내 주변에 닥친 위기감에 공포심을 가지고 주님께만 소망하며 떨면서 적고 있는가? 그렇게 읽고 있는가? 오늘은 조금 달라 져야 합니다.

1907년의 통성기도의 모습과 그 내용
1980년대의 공회 통성기도의 한 차원 더 올라 가고 더 깊어 진 그 통성기도,
2020년대 오늘 우리의 통성기도는, 우리가 멋진 그림을 그리려거나 누구에게 해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의 통성기도는 어떤 내면을 가지고 어떻게 끓어 오르고 있어야 할까, 노아 때 직전과 같습니다. 평양대부흥회의 1907년보다는 오늘이 더 다급합니다. 그 때는 그래도 다급함을 느끼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오늘은 태평성세를 구가하며 모두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간절함은 이런 안팎을 보며 느끼며 그리고 주님뿐이라는 소망은 어느 정도일까?


이 것이 오늘 우리의 통성기도라야 할 듯합니다.
이 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70년대 들었던 세상 사람의 무슨 시 표현입니다.
이 것은 소리 없는 통성기도... 그런데 그 소리 없는 우리 내면 우리들의 분위기 우리의 위기감 우리의 절망감을 볼 수 있다면
오늘 공회의 애절함은 최소한 강단에는 있다고 보입니다. 교인들 중에는 몇몇은 있을 듯하고 대부분은 조금만 느낄 듯합니다. 어느 순간 전체를 휘감아 흔들어 주시지 않을까? 강단이 우선 볼 것을 보고 있기 때문에 일단 소망은 있어 보입니다. 이런 저런 면을 두고 살펴 보면서 공회의 통성기도라는 참 특이한, 이상한, 그리고 수상한 면을 두루 살펴 보기를 부탁합니다.









< 참고 >

통성기도
[ 洞聲祈禱 , concerted prayer ]

여럿이 공동의 기도 제목을 두고 목소리를 합하여 함께 하는 기도. 오늘날의 통성기도는 1907년 평양 대부흥회 때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해 1월 6일부터 시작된 성회는 성령의 힘찬 강림으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고 그 다음 토요일 밤 이길함(Graham Lee) 선교사가 설교 후에 누구나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두세 분이 기도하라고 하였다. 그 때 20여 명이 일어나 서로 기도함으로 "그렇다면 다 같이 기도합시다."고 한 것이 통성기도의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통성기도'는 '동시기도', '합심기도', '통공기도'라고도 불려지게 되었고 이것이 한국교회의 한 특징이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통성기도 [洞聲祈禱, concerted prayer] (교회용어사전 : 교회 일상, 2013. 9. 16., 가스펠서브)


개신교, 특히 한국의 개신교 예배 및 집회에서 이루어지는 기도 양식으로

영어권에서는 이와 같은 통성기도를 한국식 기도 (Korean prayer)라 칭하기도 한다.
[출처] 통성기도(通聲祈禱)
전체 1

  • 2021-06-01 13:54
    실질적인 '통성기도' 총량 계산법

    * 강단의 설교 은혜 + 교인의 말씀 깨달은 총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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