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목회자의 이중 직업, 오늘 향한 어제 지도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1.05.29

1. 목회자의 부업 금지
1966년으로 기억이 된다. 새로 조사님이 오셨다. 이전에 연세 많은 목사님들이 계셨다. 뭔가 달라 보였다. 뭔가 도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막 이전했던 예배당에는 마당으로 남을 곳은 별로 없으나 예배당의 줄기초는 다 해 놓고 건축은 절반만 했다. 나머지는 대충 마당처럼 사용했는데 새로 오신 조사님이 이 곳에 닭 몇 마리를 길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았을 때인데 닭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목회자가 목회만 전념하고 벌이는 끊어야 하는데 한눈을 팔았다는 것이다. 시골 교회에 닭 몇 마리가 무슨 문제일까?

어머니가 이 문제를 설명했다. 목회자는 교인의 연보로 교회 주는 월급으로만 살아야 한다. 닭 하나 기르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기도 설교 전도 심방만 할 일이다. 교회 월급이 적으면 굶는 것이고 굶다 죽으면 죽는 것이다. 이 것이 원래 목회자 정신이다. 신앙을 떠나, 그냥 그런가 보다 라고만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후 생각해 봐도 공회 목회자의 부업은 당연히 없는 법이었다. 자기와 가족 전체가 교회 주는 돈 외에는 받지를 않는다. 이 원칙에 의하여 목회자는 다른 돈을 따로 두지도 않는다. 모두 연보하고 출발한다.

2. 부업이 주업 된 경우
1984년 공회는 미국의 한 교회에 목회자 이민으로 국내 목사님 한 분을 파견했다. 주일 외에는 교인을 따로 만날 일이 없다. 밤 예배도 없었다. 그래도 공회 신앙 때문에 공회 교회를 목표로 모인 교인들이 중심이 되고 주변에 몇 명을 전도한 경우다. 백 목사님은 이 곳에 목회자를 보내면서 국내와 다르니 그 곳에 가서는 일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교회는 주변의 미국 교회 예배당에 비는 시간에 모였다. 주일 첫 예배가 오후 2시나 넘었다. 원래 그 예배뿐이었으나 목회자가 전임으로 부임하여 바로 저녁 예배도 드렸다. 그래도 한 주간 내내 할 일이 없다. 설교는 백 목사님 노트를 읽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교인들의 저력과 공회 교회로서 예배당 마련의 꿈이 있었다. 개척 후 처음으로 전임 목회자가 왔으니 예배당을 마련할 꿈을 펼쳤다. 백 목사님은 그 동안 이 교회 교인들이 연보든 어떤 돈이든 받는 대로 저금을 해 뒀다. 그리고 전임 목회자가 갈 때 4 ~ 5만 달러 정도 보냈다. 작은 예배당을 잘 만나면 2십 만 달러 하던 때다. 주력 교인 5 가정이 의논을 했다. 목사님 가정과 4가정이 예배당 주변에 산다. 좀 멀리 있다 해도 교인으로 함께 뜻을 모을 가정이 1가정 더 있었다. 매월 꼭 같이 돈을 저금하여 예배당 구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목회자는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4명의 자녀가 있었다.

이듬해 교회는 좋은 예배당을 좋은 가격에 인수했다. 미국인 교회가 작은 예배당을 팔고 큰 예배당으로 가면서 예배당을 좋은 조건으로 넘겼다. 기억에 12만 달러 정도였다. 정확한 수치는 기록을 따로 보면 되지만 흐름만 적고 있다. 목사님은 저소득으로 생계 지원을 받았고, 한 주간 내내 부부가 온갖 부업을 다 하면서 자녀 교육과 생활과 교회 연보를 했다. 이 모습은 마당에 닭 몇 마리를 길러 계란 몇 개를 아이들에게 먹이려던 옛 모습과 비교가 되었다. 백 목사님은 자기 자녀들이 있는 교회에 교인으로서 연보 부담을 줄이기 위해 목회자에게 부업을 허락했을까, 실제로는 지시와 같았다.

3. 이 교회를 두고 말이 많다.
거쳐 온 이들은 모두 비판한다. 나는 항상 편을 든다. 그러나 어떤 때는 객관적으로 살피고 오늘 우리의 길에 참고한다. 당시 한국에는 교회 옆집부터 전도할 곳이 넘쳤다. 나가면 주일학생들을 몰아 올 수가 있었다. 반사 1명이 몇십 명은 기본이다. 시골이든 도시든. 마음만 먹으면 주일학생이든 교인이든 원래 믿는 가정이든 불신 가정이든 어느 집이나 문이 열려 있었고 심방을 할 수가 있었다. 미 대륙이 처음 발견 되었을 때 그 땅의 크기조차 가늠하지 못했다. 달리는 대로, 가서 깃발을 꽂는 대로 자기 땅이 되던 때와 같다. 당장에 펼쳐 진 가능성과 후손들을 생각하며 아마 목숨 걸고 살았을 하다.

그런데 한국에서 막 미국에 도착한 1980년대 중반의 목회자에게는 전도할 사람이 없다. 모두 교회에 소속을 가졌다. 다른 교회 다니는 교인을 빼오는 것이 전도가 된다. 심방이란 한 주간 미국에서 생존을 위해 밤낮 없이 뛰거나 아니면 미국의 여유를 누리거나 또 어떤 이유로든 미국 생활에 익어 져 자기의 개인 공간에 개인 생활을 남에게 보여 주기 싫은 집에 불시 점검이 된다. 가족끼리도 전화 해서 시간을 맞추고 간다. 부모가 자녀 집에도 그냥 들이 닥치지 않는다. 하물며 교회의 심방이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미국 생활에서 큰 불편이다. 특히 공회 교회 분위기의 심방은 국세청 조사와 같다.

교인은 몇 되지 않고, 목회자가 할 일은 거의 없다. 교인들은 잘 살든 어렵게 살든 각자 자기 생활 일정이 빠듯하다. 그런데 본국에서 보내 온 연보 때문에 예배당 마련의 꿈을 5가정이 마련했고 매월 200달러씩 모아 매월 1천불씩 저금해 나가면 몇 년 후에는 예배당을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젊고 건강한 목회자 부부도 200달러 연보에 동참했다. 교회의 평소 연보까지 저금하면 기금 마련이 빨라 진다. 한국에서 시골로만 다녔고 도시의 방 한 칸에 어렵게 개척하던 부부로서는 미국에서 시간 당 한국의 10배가 되는 돈을 쉽게 벌 수가 있게 되자 물불 가릴 것도 없다. 서로가 좋은 것이다.

4. 현재 한국의 형편
목회자의 부업은 가능한가? 공회 교회는 단언코 거부한다. 형편이 정리 되지 않아서 과도기로는 가능하다. 목회자가 필요하고 목회를 정식으로 출발하기 어려우면 과도기로 얼마든지 정리할 기간을 준다. 1939년 1월에 백 목사님의 개명교회 개척은 10년간 교회 월급 없이 돈을 벌어 가며 목회했다. 중요한 것은 돈 때문이었는가, 교회를 위한 것이었는가? 교회와 교인을 위한 최선책이었다. 그래서 백 목사님의 개명교회 10년 목회에 개인적으로 돈을 번 것은 전적 희생이었다. 그런데 그 내용과 중심은 보지 않고 목회자가 교회에만 매이지 않고 따로 생활 대책을 가지기 위해 그렇게 한다면 잘못이다.

한국의 교회가 1950년대에는 이유 있는 불가피한 분리를 시작했고 1960년대에는 이유 없는 분리를 이어 나갔다. 1970년대부터는 무한 분열로 재미 삼아 교단들이 핵분열을 했다. 그리고 모든 교단은 자체 신학교를 만들었다. 전국에 신학교가 수백 개가 되었다. 김영삼 정권 시절에 대학 설립을 자유화 하자 정식 신학대학원이 50개를 넘게 되었다. 미인가 신학교는 도심 뒷골목에 흔하게 볼 수 있다. 전국적으로 몇백 개가 아니라 1천개는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인가든 비인가든 관심이 없다. 무허가 예배당은 무허가 교회인가, 그렇다면 이단이 건축 허가를 받으면 허가 교회가 되는가?

전국은 이미 복음화가 되었다. 속이 문제지 겉으로는 이제 전도 대상이 없다. 형제나 아들이 장로 권사여서 늘 전도를 받든, 부모가 목사인데 반발로 교회를 나가지 않는 정도다. 이제 심방을 이유로 교인 가정의 방문이 어렵다. 일정도 많고 사생활 노출이 싫다. 경제 발전으로 모두가 자기 성을 쌓아 두었다. 쉽게 남을 들이지 않는다. 특히 공회 교회의 심방은 그 집에 커튼의 무늬나 벽에 그림 하나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제대로 공회 설교를 하는 교회, 제대로 눈치를 챈 교인이면, 교회는 가지만 심방은 곤란하다. 문제가 없는 교인은 굳이 심방도 필요가 없다. 그 사람이 심방을 해야 할 사람이다.

교회도 더 이상 개척할 틈이 없다. 몇 명의 지인 또는 친인척이 모인 상황에서 그들은 인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연보하지만 총액을 놓고 볼 때 목회자의 여유 있는 생활은 어렵다. 전도가 더 이상 없을 정도에 생활이 어려운데 할 일이 없다면, 목회자가 돈을 벌러 다니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막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차라리 목회자 부부가 열심히 벌어서 교인들의 경제 희생을 줄인다면 그 것이 교인을 위하는 일이고, 교인을 위하는 일이 교회를 위하는 목회가 아닐까, 그렇다면 교인들의 경제 활동보다 목회자의 경제 활동이 더 적극적이라야 하지 않을까?

5. 목회자들에게 묻는다.
한 주간이 바쁜 이유는 교회 때문인가? 성경을 읽는가, 기도를 하기나 하는가? 심방 할 곳은 없고 전도할 힘은 나지 않거나 효력이 없어 평일 대부분 교회 외적 일에 시간을 사용하지 않을까? 공회 목회자들은 이 말에 대꾸 할 사람이 없을 듯하다. 설교 때문에 시간 뺏길 일이 없다. 공회의 설교 자료와 전달 방법과 효력은 교계에도 정평이 있다. 한 마디로 공회 목사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본인이 은혜를 받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지 설교 자체를 마련하는 시간은 거의 필요가 없다. 타 교단의 경우는 설교 준비에 시간이 많이 소요 된다 한다. 그런데 그 이유는 본인의 무능이나 오판 때문이 아닌가?

타 교단의 경우, 설교 내용이 우선 쉽다. 어렵게 하지를 않는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좋은 마음으로 살면 된다는 위로가 전부다. 뉴스나 교양 도서의 한두 가지 예화를 잘 사용하면 충분하다. 그 것조차 찾아 보기 귀찮아서 모조리 배끼는 바람에 문제가 되지 조금만 뒤지면 인터넷까지 있어서 어렵지 않다. 이런 세상에서도 설교 때문에 어렵다면 자기가 사명감을 앞 세워 목회자가 되는 바람에 생긴 자기 부족과 무능 때문일 듯하다. 맞지 않는 일을 하려니 힘이 든데 왜 그 힘 드는 하소연을 교인에게 하나? 실제 목회자들이 쏟는 목회적 시간이라는 것을 들여다 보면 한심할 일이다.

마치 신학 7년을 허비할 때와 같다. 영어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서 대부분 신학과를 가는데 영어보다 어려운 헬라어 히브리어 아람어 라틴어를 한다고 시작을 했으니 이들의 7년은 할 필요도 없는 일에 소진한 것이다. 공회처럼 성경을 100독 하고, 신학을 책으로 공부할 시간에 전도하고 심방을 하든지, 요즘처럼 그렇게 하기 어려운 산 속에 들어 가서 성경 한 줄을 놓고 자기 양심을 기울이며 정말 깨닫게 해 달라고 매달리는 것이 더 신앙답지 않을까, 목회자답지 않을까? 중보다야 도를 더 닦을 각오를 하는 것이 절대 진리를 가진 우리의 할 일일 듯하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면 돈이라도 버는 것이 낫다.

6. 목회자의 부업 문제는 이렇다.
기도와 성경 읽기와 심방과 전도와 교인 지도에 정말 시간이 없다면 최고의 목회자다. 그 교회의 규모가 적든 크든 상관이 없다. 만일 기도나 성경 연구가 정말 양심껏 잘 되지 않으면 돈이라도 벌어서 교회에 보탬이 된다면 좋다. 말이 기도지 공상 망상 상상이나 하고 있다면 기도라는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 성경 연구라는 것이 정말 성경 연구가 아니라 신학서를 읽는 독서라면 하지 않을수록 낫다. 심방이 교인들과 적당한 사교로 진행 된다면 각 가정의 건전한 유지를 위해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개발이 끝 났고 모든 건물과 토지에 경계가 그어 진 지금 미국 땅에 누가 달려 가며 깃발을 꽂는다면 총 맞을 일이다.

90년대까지는 전도의 가능성이 있었다. 심방의 필요성도 있었다. 늦었지만 여전히 곳곳에 개척의 여지가 있었다. 2000년대가 되면서 이제는 한국 사회는 기독교국이 되었다. 전도보다는 나를 지켜 본 사람이 스스로 따라 오는 방법 외에는 없다. 심방도 이제는 설교를 통해 해결이 되어야 할 시점이다. 설교는 세상 교양이 인터넷과 휴대폰과 유투브 등으로 넘치는 세상이니 정말 자기 교회의 교인들에게 필요한 요점을 전할 때다. 그 것이 어렵다면 교회의 비용 절감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할 때다. 목회자의 부업은 성직자로서 금지라고 하기 전에, 오늘 목회자가 성직자인지를 물어 봐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에게 목회를 하느냐고 물어야 할 때다.

목회가 필요하고 목회에 사명을 정말 느꼈다면 부업을 하라 해도 할 시간이 없어 목회에 전념해야 하고, 그 과정에 경제 문제로 굶는다면 오늘 환경에서는 다이어트를 하는 목회자로 살지 과거처럼 굶어서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녀 공부가 문제라면 오늘 교육 환경에서는 대안 교육을 한다고 봐야지 교육이 배제 된 낙오자로 볼 수가 없는 시대다. 솔직히 성직의 이름으로 목회자로 활동하는 이들이 자기 양심에 목회 전념이 아니라 목회자 원래 차선이고 대안의 진로였다면 부업을 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암적 문제가 줄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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