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신앙과 신학의 상대성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1.04.09
(대칭은 결국 대적이 된다.)
시소는 함께 올라 가지 못한다. 양끝이 정확히 반대로 오르 내린다. 죄악의 세상은 약육강식이며 하나가 죽어야 하나가 산다.
비행기 양 날개는 시소가 아니다. 함께 올라 간다. 아니면 추락이다. 하늘로 올라 가는 신앙 세계는 햠께 올라 가야 갈 수 있다.
신앙에는 시소처럼 대칭 되는 것이 많다. 그런데 신앙의 모든 대칭은 시소가 아니라 함께 올라 가야 하는 한 몸의 양 쪽이다.
지식과 실행, 가족 사랑과 교인 사랑, 교인과 목회자, 소형 교회와 대형 교회, 교단의 본부와 지교회 등은 대칭으로 보인다.
세상 사람들, 신앙의 내면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신앙의 세계에도 이런 대칭이 있고 이런 대칭은 반대시 적대적이라 한다.
신앙이 불 붙는 초기에는 이런 대칭이 날아 오를 때 한 몸 되는 수가 있다. 그런데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결국 대칭이라 한다.
(신앙과 신학만 두고 본다.)
그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신앙에는 신학이 필요하고 신학에는 신앙이 필요하다. 바로 알아야 바로 살고 바로 믿을 수 있다.
모든 종교는 세월 속에 거짓이며 죽은 종교임이 드러 났다. 기독교만 생명의 신앙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입증이 된다.
그런데 신앙 세계에는 이런 통념이 있다. 거의 진리처럼 여겨 진다. 신앙이 있으면 신학이 없고 신학이 있으면 신앙이 없다.
신학자는 믿음이 없고, 믿음 있는 교인은 신학이 없다는 말이다. 신학자는 신사참배를 모두 비판했다. 그러나 다 실패했다.
신사참배와서 6.25 점령의 극단적 고난기에도 마찬 가지였다. 승리한 사람은 신앙으로 승리했지 신학으로 이기지 않았다.
어느 교회에도 신학적 설교는 알아 듣지도 못하는 무식한 교인들이 순수하게 믿는다. 이들은 천국을 실제 믿고 살아 간다.
그 교회의 지성인들 중에도 위대한 신앙가는 많다. 그런데 그들에게 극단적 상황이 오면 그들의 신앙은 슬쩍 꺾여 버린다.
목회자도, 정말 성공한 목회자는 겉으로 무슨 학문에 무슨 박사를 갖다 붙여도 속으로 보면 신앙가다. 좀 무식하게 믿는다.
참으로 신앙에 펄펄 불 타는 신학자도 가끔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목회에 실패한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박윤선 목사다.
신앙이 신학으로 옮겨 붙으며 신앙의 힘이 신학까지 살아 움직이는 신학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할까?
신앙이라 해도 신학만 만나면 전멸을 하는 것일까, 마치 미국에 갖다 놓으면 누구라도 미제가 되는 것처럼 신학도 그런가?
(공회의 의미)
역사적으로 공회만은 신앙으로 시작했다가 신앙이 신학까지 제대로 살아 움직이게 했다고 생각한다.
김현봉 목사님도 신앙으로 시작했다가 신학까지 살아 움직이게 했으나 공회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신앙으로 신학을 만났으나 신학에게 죽지 않았지 신학을 살려 내는 정도는 아니었다.
반사를 할 수 있는 신학자, 목회를 할 수 있는 신학자.
신학자가 될 수 있는 교인, 신학자가 될 수 있는 목사.
공회는 이 둘을 처음부터 분리하지 않았다. 목회 없는 교수는 존재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구조가 그렇다.
다른 신학교들은 교수가 전임 목회를 하면 교수직을 포기해야 한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전쟁을 할 수 없고 하지 못하는 군사 이론가, 군사의 이론을 모르는 현장의 사령관. 여기에 문제가 보이는가?
아주 가끔 현장과 이론이 함께 가는 사람이 있다. 드물게 있다. 이런 경우는 역사에 남는 영웅으로 평가 된다.
공회는 모든 교인이 모두 신학자 되기를 원한다. 그렇게 되지는 않았으나 어느 정도의 신학으로는 가게 된다.
교회에서 배운 말씀으로 자기 현실 자기 가정 자기 자신을 가르치고 고치고 길러 갈 수 있어야 신앙일 것이다.
이 점 때문에 공회의 지향점은 신앙적인 신학, 신학적인 신앙을 추구해 왔다. 공회의 교리 체계가 다른 이유다.
시소는 함께 올라 가지 못한다. 양끝이 정확히 반대로 오르 내린다. 죄악의 세상은 약육강식이며 하나가 죽어야 하나가 산다.
비행기 양 날개는 시소가 아니다. 함께 올라 간다. 아니면 추락이다. 하늘로 올라 가는 신앙 세계는 햠께 올라 가야 갈 수 있다.
신앙에는 시소처럼 대칭 되는 것이 많다. 그런데 신앙의 모든 대칭은 시소가 아니라 함께 올라 가야 하는 한 몸의 양 쪽이다.
지식과 실행, 가족 사랑과 교인 사랑, 교인과 목회자, 소형 교회와 대형 교회, 교단의 본부와 지교회 등은 대칭으로 보인다.
세상 사람들, 신앙의 내면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신앙의 세계에도 이런 대칭이 있고 이런 대칭은 반대시 적대적이라 한다.
신앙이 불 붙는 초기에는 이런 대칭이 날아 오를 때 한 몸 되는 수가 있다. 그런데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결국 대칭이라 한다.
(신앙과 신학만 두고 본다.)
그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신앙에는 신학이 필요하고 신학에는 신앙이 필요하다. 바로 알아야 바로 살고 바로 믿을 수 있다.
모든 종교는 세월 속에 거짓이며 죽은 종교임이 드러 났다. 기독교만 생명의 신앙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입증이 된다.
그런데 신앙 세계에는 이런 통념이 있다. 거의 진리처럼 여겨 진다. 신앙이 있으면 신학이 없고 신학이 있으면 신앙이 없다.
신학자는 믿음이 없고, 믿음 있는 교인은 신학이 없다는 말이다. 신학자는 신사참배를 모두 비판했다. 그러나 다 실패했다.
신사참배와서 6.25 점령의 극단적 고난기에도 마찬 가지였다. 승리한 사람은 신앙으로 승리했지 신학으로 이기지 않았다.
어느 교회에도 신학적 설교는 알아 듣지도 못하는 무식한 교인들이 순수하게 믿는다. 이들은 천국을 실제 믿고 살아 간다.
그 교회의 지성인들 중에도 위대한 신앙가는 많다. 그런데 그들에게 극단적 상황이 오면 그들의 신앙은 슬쩍 꺾여 버린다.
목회자도, 정말 성공한 목회자는 겉으로 무슨 학문에 무슨 박사를 갖다 붙여도 속으로 보면 신앙가다. 좀 무식하게 믿는다.
참으로 신앙에 펄펄 불 타는 신학자도 가끔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목회에 실패한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박윤선 목사다.
신앙이 신학으로 옮겨 붙으며 신앙의 힘이 신학까지 살아 움직이는 신학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할까?
신앙이라 해도 신학만 만나면 전멸을 하는 것일까, 마치 미국에 갖다 놓으면 누구라도 미제가 되는 것처럼 신학도 그런가?
(공회의 의미)
역사적으로 공회만은 신앙으로 시작했다가 신앙이 신학까지 제대로 살아 움직이게 했다고 생각한다.
김현봉 목사님도 신앙으로 시작했다가 신학까지 살아 움직이게 했으나 공회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신앙으로 신학을 만났으나 신학에게 죽지 않았지 신학을 살려 내는 정도는 아니었다.
반사를 할 수 있는 신학자, 목회를 할 수 있는 신학자.
신학자가 될 수 있는 교인, 신학자가 될 수 있는 목사.
공회는 이 둘을 처음부터 분리하지 않았다. 목회 없는 교수는 존재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구조가 그렇다.
다른 신학교들은 교수가 전임 목회를 하면 교수직을 포기해야 한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전쟁을 할 수 없고 하지 못하는 군사 이론가, 군사의 이론을 모르는 현장의 사령관. 여기에 문제가 보이는가?
아주 가끔 현장과 이론이 함께 가는 사람이 있다. 드물게 있다. 이런 경우는 역사에 남는 영웅으로 평가 된다.
공회는 모든 교인이 모두 신학자 되기를 원한다. 그렇게 되지는 않았으나 어느 정도의 신학으로는 가게 된다.
교회에서 배운 말씀으로 자기 현실 자기 가정 자기 자신을 가르치고 고치고 길러 갈 수 있어야 신앙일 것이다.
이 점 때문에 공회의 지향점은 신앙적인 신학, 신학적인 신앙을 추구해 왔다. 공회의 교리 체계가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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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때, 구원의 날 - 오늘에 본 '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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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은 자기 비판! - 공회의 자기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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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낳고 기르는 것이 여성의 존재 이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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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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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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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옥] 만남 - 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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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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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군 인물에 대한 개인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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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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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A | 2023.01.18 | 0 | 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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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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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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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 2023.01.19 | 0 | 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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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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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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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 2023.01.19 | 0 | 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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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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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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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b | 2023.01.20 | 0 | 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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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연령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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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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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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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 2023.01.15 | 0 | 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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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함으로 주신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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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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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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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 2023.01.02 | 0 | 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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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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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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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 2023.01.04 | 0 | 151 |
125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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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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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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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 2023.01.05 | 0 | 1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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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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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 2023.01.06 | 0 |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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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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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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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 2023.01.07 | 0 | 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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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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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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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 2023.01.08 | 0 | 3 |
산 신학은 신앙을 전하고 살리는 참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원 글은 신앙에서 신앙은 빠지고 신앙의 지식적 체계화를 죽은 신학으로 경계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