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결혼 유지의 본질, 그 비결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1.03.25
부공3은 20세 결혼이 현실적 목표치다.
과거 어느 시대와 비교해도 청소년들의 음식과 건강이 넘치고 있다. 자연스럽게 청년화가 되는 나이가 빨라 지고 있다.
그렇다면 결혼의 연령도 낮아 져야 하지 않을까? 공회의 신앙 방향은 시대를 읽는다. 말씀으로 읽고 대처하는 것이다.
여러 사정으로 늦어 지기도 하지만 19세 20세 결혼도 흔하게 본다. 그런데 대세는 20대 초반의 결혼이라고 보인다.

창조 4일째 사시 사철을 만드셨다. 어떤 때는 교회의 방향이 대세가 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어떤 때는 20세 전후가 대세였고 어떤 때는 20대 중반이 되었다가 지금은 다시 내려 오고 있다. 다시 중반이 될 듯하다.
교제 없이 자라 온 사람들은 결혼을 일찍 시킬 때 별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생각이 깊은 사람은 물어 보는 말이 있다.




* 사랑 없는 결혼이 가능한가?
결혼을 위해서는 사랑이 반드시 필요하며 애정이 있어야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는다.
애정이나 사랑의 표현은 좀 그렇다 해도 최소한 서로 끌리는 마음이 있어야 결혼한다는 뜻일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모두가 아는 당연한 말이지만 너무나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첫째, 7계명 때문에 사랑으로 시작하면 곤란하다.

마5:28에서 남녀의 이성 문제는 '마음의 죄'를 말씀했기 때문에 애정과 사랑을 전제한 결혼은 7계명 문제가 나온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한다, 그 사랑도 애착으로 발전하면서 애정이 되면 더욱 좋을 듯 하다. 문제는 7계명이다.
고전7:2에서 음행의 연고로 결혼 제도를 주셨는데 결혼할 사람과 7계명의 죄를 짓고 가정을 시작해서야 되겠는가?



둘째, 가장 위험한 감성에게 맡겨서야 되겠는가?

보통 첫 눈에 반할 정도의 상대방이면 최고의 결혼 상대일 것이다. 최소한 첫 눈에 마음에 들 정도는 되어야 한단다.
그런데 이런 결정은 내 마음 속에 누가 나서서 판단을 하는가? 자기의 지성과 理性과 양심이 만사 판단에 탁월하다.
자기 안에 있기는 하지만 자기의 감성은 참으로 위험하고 자기의 욕심은 자기 속에 있기는 하지만 사실 도둑놈이다.
감성과 욕심 중에도 남녀 사이의 정과 욕을 판단하고 끌어 당기는 정욕이 가장 변덕스럽고 철이 없고 문제를 만든다.




* 그렇다면 애정 없이 부부로 살라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남녀의 결혼과 부부로 살아 가는데 빼 놓을 수 없는 요소는 '사랑'이다. '애정'이면 더 좋다.
이렇게 설명을 하면 다시 질문을 받는다. 교제도 해 보지 않고 마음에 들지도 않는데 사랑이 생기는가?

다른 것은 몰라도 남자와 여자가 부부로 출발을 하면 사랑이 없어도 사랑이 생기고 애정으로 발전한다.
왜? 어떻게? 과연 그렇게 되는가? 그렇다. 남자와 여자가 부부로 살다 보면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졌다.
살다 보면 사랑이 생기고 애착이 되어 애정으로 발전하고 나중에 천생연분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도
귀신의 미혹과 유인에 빠져 시대적으로 모두가 미리 사랑과 애정을 먼저 만들고 시작을 하려고 난리다.
7계명은 마음의 죄도 죄가 되고 그런 죄를 막기 위해 타락 후에는 남녀의 정욕을 결혼 제도로 내셨는데
귀신은 결혼 제도까지 뒤흔들며 결혼 전에 죄를 짓도록 흔들고 또 결혼 후에는 딴 눈을 뜨게 할 목적이다.




* 프로와 아마추어라는 말이 있다.

창29:17에서 야곱의 인간적 감성이 라헬을 곱게 보고 치중하다 인생 130여 년을 허송하는 원인이 된다.
하나님은 비록 야곱의 눈에 들지 않으나 레아를 통해 이스라엘의 구원 계통인 유다와 레위를 정했는데
야곱은 곱고 아리땁게 보이는 라헬에게 빠져 요셉을 편애하고 베냐민을 애착하다 온갖 헛수고를 했다.

즐기는 것을 하라는 말이 우리 사회의 큰 흐름이다. 모두가 좋아 하는 것을 하라고 서로가 소리를 높인다.
좋은 것을 하고 즐기면서 하면 좋기야 좋다. 그런데 이 소리는 선악과를 권한 창3:1 귀신의 반거짓말이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 그런데 약한 인간이 하나님 노릇을 하려 들면 그 것이 죽는 짓이다.
3세 아이에게 독립해서 가장이 되고 이 사회를 마음대로 살라고 한다면? 가출 시킬 유아납치범의 말이다.

결혼의 동기가 사랑이면 결혼을 동호인처럼 취미로 재미로 즐기기 위해 하는 사람이 된다. 유지가 될까?
취미 생활이란 좋으면 하고 좋지 않으면 그만 둔다. 바꾸기도 한다. 평생 한 사람만 보고 살 자세가 될까?
결혼 동기가 자기의 여러 형편을 볼 때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결혼의 상대로 주셨다고 판단하여 결정하면,
이 사람은 결혼을 프로 정신으로 하는 사람이다. 자기 책임 선택 의무 위치를 알고 지킬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부부 상대방에게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의무와 책임감으로 살아 간다면 너무 무미건조하지 않을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살다 보면 사랑이라는 씨가 생긴다. 그 것을 남녀의 이성 관계라고 한다.
그 사랑의 씨는 서로가 하나님 앞에 자기에게 주어 진 위치에서 자기 의무를 성실하게 할 때 애정으로 자란다.




* 선택은 자유다.

내 마음에 그리던 사람, 내 감성이 좋아 하고 내 속에 내 욕심이 끌리는 사람과 결혼을 해도 자유다.
감성과 욕심을 거절하고 나의 지성과 사리 판단의 이성과 신앙의 양심으로 사람을 선택해도 된다.
어떤 선택을 하든 이 시대는 누구도 강제하지 못한다. 문제는 그 결과 그 열매는 본인이 먹어야 한다.

감성과 욕심을 따라 우선 좋은 사람을 잡으면 분명히 알라! 갈수록 식어 지고 애 먹을 일이 생긴다.
사리판단의 이성심을 따라 선택하면? 우선 애매하고 힘이 들지만 갈수록 좋아 진다. 너무 좋아 진다.

밥을 먹고 싶으면 먹고 먹기 싫으면 안 먹는 사람이 있다. 밥을 아마추어로 먹는 사람이다.
밥이 먹기 싫어도 건강 때문에 절제하고 선택하며 먹는 사람이 있다. 프로 정신을 가졌다.
공부가 좋아서 하는가? 아주 가끔 고장난 사람 중에는 그런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공부도 출근도 식사도 수술도 교회도 질서를 지키는 것도 해야 할 일이라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운동조차 계속 하다 보면 그 속에 남 모르게 재미가 스며 든다. 나중에는 중독이 된다.
공부도 그렇다. 싫은데, 어려운데, 해야 하기 때문에 계속 하다 보면 비로소 눈이 묘미가 있다.
하물며 남자와 여자가 부부로 뒤엉켜 사는데 두 사람이 성실히 살다 보면 재미가 생기지 않을까?
한반도 수천 년 조상들이 연애로 사랑을 기르고 결혼을 해서 이 나라 이 민족을 만들었을까?

결혼이란, 부모가 판단하고 정해 주는 것이고 본인들은 결혼 전에 서로 얼굴도 볼 수가 없었다.
교통도 정보 통신도 전혀 없으니 그러했다. 그러나 그보다 결혼 상대란 부모가 판단할 영역이었다.
청년의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을 선택하는데 어디 젊은 ㄴㄴ이, 어린 ㄴㄴ이 판단을 할 수가 있는가?
젊은 ㄴㄴ이 판단한다면 눈에 보이는 당장의 용모만 볼 터인데 그 용모를 붙들고 평생을 살 것인가?


부모가 판단을 해 주던 시대에는 밥이 없어 굶었지 사랑이 없어 아이를 만들지 못하지 않았다.
오늘은 연애를 해서 서로를 잘 알고 좋아서 결혼을 했고 밥이 넘치는데 왜 아이는 이렇게 없는가?
귀찮아서 만들지 않는다고 할 것 같다. 그러면 다시 묻는다. 왜 결혼이 없어 지고 왜 이혼만 많은가?
왜 교제를 하고 좋아서 난리를 부리고 결혼을 했는데 결혼 가정의 결혼이 왜 이렇게 모두 파탄인가?





* 문화적으로 이렇게 생각해 본다.
동양인, 특히 우리 나라 민족성은 적이 쳐들어 왔다며 순식간에 모두가 궐기에 나선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 지고 위험을 겪게 되면 슬금슬글 물러 나다. 감정이란 그런 것이다.
서양인, 특히 전쟁 민족들과 전사들은 흔히들 그렇게 말한다. '할 일이기 때문'이라고..

발령을 받고 아이 가르칠 마음에 들뜬 교사는 1년 가면 달라 진다. 몇 년이면 많이 달라 진다.
월급을 받았고 내가 지원했으니 하겠다는 교사, 처음에는 좋아 보이지 않아도 갈수록 좋아 진다.
하나는 취미 생활로 출근했고 하나는 프로로 출근한 사람이다. 인생을 취미로 사는 사람들....




* 세상이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까지 엉망이 되었는가?
역사적으로 이 것은 종교 개혁과 함께 발생한 5백여 년 전의 르네쌍스, 인문주의 여파다.
천주교 교황에게 짓눌린 중세의 1천년, 교회는 신앙 개혁 때문에 주력을 했지만
같은 시기에 학문과 예술은 성경이 금한 죄라도 인간의 본능이 하고 싶으면 마음껏 그렸고
그 과정에 '남녀의 사랑'을 그려 댔고 그냥 사랑이 아니라 성경이 금한 사랑이 뿜어 나왔다.

그리고 '사랑이 없는데 어떻게 결혼을 하는가?'라는 이런 무식하고 막 가는 세상이 되었고
천주교 시절에는 숨도 쉬지 못하던 남녀 이성의 정욕이 맹수가 되어 천하를 삼켜 버렸다.
이제 수 많은 세월이 지났고 공회 외에는 모두가 사랑 없는 결혼은 꿈도 꾸지 않고 있다.
이 말에 담긴 함정, 위험, 이 말이 우리를 낚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생각해 보면 모를 리가 없는데...



사랑 없는 결혼을 거부하려면, 부모가 살다 보면 싸울 수가 있는데 그 때마다 이혼을 해야 하는가?
사랑으로 시작한 결혼이 사랑으로 이어 지지 않으면 파탄을 낼 것인가?
소꿉 장난 하는 아이들도 아니고...


그런데 이미 세상은 그런 장난판 > 난장판이 되어 버렸고 우리 사회도 그런 끝장으로 가고 있다.
왜 이혼이 이렇게 많고 왜 결혼이 이렇게 늦어 지는가?

사랑이 있어야 결혼을 할 줄 아는 꿈을 붙들고 있으니 결혼도 늦어 지고 쉽게 파탄을 내는 것이다.
사랑과 결혼이란 혼자 그린다고 되지 않는다. 둘이 함께 가져야 하니 둘이 만나기가 어렵다.
내가 좋아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사람은 내게는 별로라는 것이다.



사랑 없이 결혼한 우리의 조상, 우리의 이전 분들은 해야 할 결혼이라 결혼을 했고
결혼 생활이라는 것을 하다 보니 남녀의 이성 사랑이 발생했고 점점 자라 갔다.

사랑 없이 결혼하면 사랑 없이 사는 줄 아는 인간들이 바보고 멍청한 오판인데...
사랑하는 결혼을 해도 결혼을 하고 살다 보면 사랑이 흔들릴 수 있고 줄 수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부부 제도란 인간이 죄를 지어 가면서 무리를 하면서 난리를 부리지 않아도
살아 가다 보면 이 땅 위에 가장 큰 복은 부부 사이의 사랑이다.
그런 사랑을 가지고 싶고 만들고 싶다면 일시 내 마음에 스치고 지나 가는 바람에 흔들리지 마셨으면.
내 마음을 요동 치게 하는 그런 바람은 그냥 바람이다. 그 바람으로는 사랑을 기를 수는 없다.
맨 손에서, 둘이 만나, 서로에게 충실하다 보면, 두 사람 사이에 작은 사랑이 움 트게 될 것이고
그 움을 잘 길러 보면 바람이 어느 날 주는 그런 허무한 사랑과 비교할 수 없는 좋은 사랑이다.



결론적으로,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과 달리 신앙까지 고려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자기의 결혼 상대란 거의 정해 져 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서 감성과 욕심의 정욕이 좋다고 끌려야 한다며 매력까지 원하고 있으니 결혼이 되겠는가?
특히 공회처럼 신앙의 노선까지 따지는 사람에게는 결혼의 상대가 단 1명, 바로 주변에 있을 것이다.
야곱이 레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밀어 내다 인생 대부분을 허송하고 수 많은 고생을 한다면 너무 안타깝다.

주님의 재림은 노아 때와 같다 했고 그 때의 죄는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는 것이니 풍요 속에 이성 문제다.
지금, 남녀의 결혼 문제가 어느 정도까지 붕괴가 되었는지 입으로 표현조차 어려울 정도다.
이 신앙의 사람이라면 답은 아주 간단하다. 하나님은 자기 주변을 현실로 주셨다. 현실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준비해 두셨다. 자기 아는 사람 중에 선택하면 된다. 그렇다면 답은 바로 나온다. 1명이 있다.
그런데 지성과 양심과 사리판단은 그 1명이 누군지 지목을 해 줄 것이다. 문제는 자기의 감성과 욕심이 거부할 것이다.
자기 속에 거부하는 자기 감성과 욕심. 이 원수를 따라 가며 이 원수의 판단을 믿고 버틴다면? 지옥 불을 맛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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