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잣대를 좁혀도 보고 넓혀도 봤으면 - 천주교의 비판을 중심으로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1.02.28
천주교는 역사적으로 1천년 중세를 통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람을 통째로 태워 죽였다. 끝도 없었다.
오늘로 말하면 탈북민들이 알려 주는 북한 내 기독교인의 무참한 탄압으로 비교하면 감이 좀 잡힐까...


천주교와 불교야 생명 없는 종교이고, 종교의 본질도 이미 치워 버렸다. 국가의 요구와 부딪힐 일이 별로 없다.
천주교는 종교를 빙자한 하나의 이해 단체가 되었고, 불교는 전통 문화 시설과 자연 요양 시설화가 되어 있다.
기독교만은 살아 있는 하나님께 붙들려 세상과 부딪혀 파열음이 나든 죽든 일단 지켜야 할 진리의 선이 있다.

코로나 방역을 앞세워 국가가 국민의 건강에 필요하다 말하면 천국과 신이 없는 불교와 천주교는 따르면 된다.
교회는 나의 건강과 나의 생명에 문제가 생겨도 할 수 없는 일이 많다. 실제 많지는 않으나 있는 것은 분명하다.
교회만이 신과 천국을 실제로 가지고 있고 또 실제 가진 것으로 말을 하다 보니 불교와 천주교가 바늘 방석이다.
예전에는 불교와 천주교도 천국을 말하고 진리를 말하고 그들의 신을 말했다. 기독교도 그런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국내와 세계의 분위기가 돌변하면서 종교와 비종교를 구별할 정도의 상황이 되자 모든 것이 드러 났다.
잘 믿지는 못해도, 우왕좌왕 하기는 해도, 그래도 기독교는 세계적으로 살아 있는 하나님과 천국을 보여 줬다.
불교와 천주교는 이 땅 위의 건강 문제가 닥치자 내세와 신은 간 곳이 없고 오로지 이 땅 위의 대처만 남았다.
그런데 불교와 천주교가 종교의 의미를 모를까, 잊었을까! 그래도 신과 진리와 내세를 수천 년 부르짖어 왔었다.
기독교까지 함께 세상 건강 문제에 휘청거리면 별 표시가 나지 않을 터인데 기독교 때문에 사기꾼임이 드러났다.


이럴 때 불교나 천주교는 그들의 창피한 모습을 덮는 방법이 있다. 기독교를 맹신으로 미신으로 몰아 가면 된다.
굳이 기독교를 욕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의 입장만 발표하면 된다. 국가와 민족과 이웃을 위해 대처한다! 라고...
물론 기독교 내의 좌파들은 불교와 천주교와 입장을 함께 한다. 코로나 상황에는 예배 드리지 않는 것이 맞단다.
그러면서 들고 나오는 논리는 '법을 짓밟는다. 무시한다. 우습게 안다.'는 말로 기독교를 강제 조처하자는 것이다.

천주교가 언제 세상 법을 지켰던가? 불교가 언제 나라 법을 지켰던가?
천주교는 세상 나라를 점령했고 처치했고 제명했고 운영한 곳이다. 세상 법 위에 올라 앉아 1천년을 지배했었다.
불교는 불교 금지국에 포교를 하지 않았던가? 유교 5백년 조선이 불교에게 산 속에 도 닦으라고 허가를 했던가?
그들이 사업을 시작할 때는 '순교'를 앞세우며 신을 팔았다. 그들이 유리하면 세상 법을 뜯어 고치면 지배를 했다.
이제는 세상 법을 지키는 것이 그들 입장에 유리한 상황이다. 이제는 세상 나라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며 난리다.


여기서 기독교 우리 내부를 돌아 보며 우리의 창피하고 못난 출발을 돌아 본다. 한국 기독교의 선교사 이야기다.
한국 교회 역사는 어느 교파의 어느 기록을 막론하고 1985년 언더우드와 아펠젤러 선교사의 입국으로 시작한다.
우리가 상식으로 아다시피 왜 그 때였던가? 조선 정부가 기독교의 선교 자유를 허용했고 선교 합법화 때문이다.
이 나라가 법으로 기독교 전도를 인정하자 여권 비자를 발급 받고 합법으로 들어 오기 시작한 것이다. 말이 되나?

반면에 천주교는 조선 조정이 국법으로 금지하는데도 죽으라고 선교사들이 들어 왔고 사회를 위협할 만큼 했다.
그래서 여러 사화를 받아 가며 수 많은 사람이 순교를 했다. 바로 이 것이 종교가 아닌가? 불법이라도 선교를 했다.
그럴 때 그 종교는 최소한 종교라 한다. 그 종교는 내세와 신과 진리를 가진 증표가 된다. 천주교가 처음에 옳았다.
문제는 세월 속에 천주교는 스스로 종교 단체를 사회 평화 단체로 성격을 바꿔 버렸다. 이제 합법적으로 운영한다.
그래야 그들 목표를 잘 이룰 수 있다. 기독교는 그 반대였다. 처음에는 종교인데도 불법이라 하니 선교를 포기했다.
역사적으로 어느 종교가 초창기에 환영을 받고 출발을 하는가? 그 나라 그 사회와 기존 종교가 맹렬히 탄압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신과 내세를 믿고 그들이 지켜야 할 진리 때문에 그들은 포교에 나섰고 죽음으로 맞서며 버텼다.

이 나라에 처음 온 불교도 그랬고, 불교국에 유교가 들어 오면서 그랬고, 유교국에 불교가 살아 남기 위해 그랬다.
그리고 가장 늦게 들어 온 천주교도 그러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기독교만은 국가의 허락을 기다렸었다.
물론 영국의 토마스 선교사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최소한 오늘 한국 기독교를 출발 시킨 교회만을 살펴 본다.
한국 선교를 맡은 미국 호주 카나다의 장로교 감리교 모든 선교부들은 어떻게 이 나라가 해제할 때까지 기다렸나?
그러고도 종교라 할 수 있을까?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 기독교의 출발은 선교를 맡은 교회들이 참으로 종교답지 않게 시작을 했다. 그런데 훗날은?
갈수록 점점 신앙이 자라 가면서 종교를 가진 종교 단체가 되었다. 그리고 일제 신사참배까지 이기며 버티고 왔다.
말하자면 처음에는 모르고 어려서 참 종교인데도 종교 단체로서 흉내를 내지도 못했다. 그러나 종교로 자라 갔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 선교한 기독교 선진국의 소위 교회들을 향해 한 마디를 하고 싶다. 여러 분들은 좀 어렸다고...
모든 한국 교회사의 기술은 신앙이 철저한 개혁주의 청교도로 똘똘 뭉친 근본주의적 미국과 호주 교회 선교사들이
한국에 신앙을 전했고 길렀다는 식이다. 이 말을 부인하지 못한다. 맞다. 실제 그러했다. 그러나 한 가지가 애매하다.

조선이 싫다 하면 선교도 하지 않나? 한국이 거부하면 교회가 철수도 하나! 한국의 국법이 요구하면 예배도 폐지하나?
다행스럽게 지금은 일부라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한다. 최소한 말로는 아직도 적지 않은 교회가 폐지할 수 없다 한다.
그렇다면 선교 초기에 조선이 허락하기 전에는 아예 단 1명의 선교사를 파송조차 하지 않은 미국의 남장로교에 묻는다.
미국 남장로교는 철두철미하며 타협이 없는 근본주의라 한다. 그들에게 일전에 물은 적이 있다. 흑인 선교사는 왜 없는지.
오늘은 왜 조선이 금지하면 선교도 하지 않았는지. 선교사가 갈 국가와 대립하지 않는다면 신사참배는 왜 거부했는지?

이런 문제 때문에 우리는 신앙 문제를 두고는 함부로 말을 하기 전에 적지 않은 것을 먼저 살펴 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결정을 할 때는 그 결정을 가지고 우리의 지난 날을 돌아 보면서 지난 날 잘못이 있으면 회개부터해야 한다.
그리고 한 번 결정을 하고 나면 교회에 닥칠 어떤 문제라도 그 끝까지를 각오해야 한다.
방역에도 예배를 사수한다고 큰 소리 치는 것은 쉽다. 그러나 뒤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할 말을 찾는다고 정신이 없다.
적어도 이렇게 되지는 말아야 할 듯하다. 한국 기독교는 현재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의 좋은 교회다. 외국에 비하면.
그런데 한국의 기독교, 우리들은 선교 초기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 그 때는 어렸다고 하면 말이 될 듯하다. 다른 해명도 있을까?
전체 0

전체 468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
이용 ① 안내문 ② 취지
공지 | 담당 | 2018.04.11 | 추천 0 | 조회 2092
담당 2018.04.11 0 2092
11076
공회의 경건 - 생활 속에 들어 온 수도원
11076 | 담당 | 2021.11.30
담당 2021.11.30 0 73
11077
건강을 위한 절제, 신앙을 위한 연단..
11077 | 담당 | 2021.12.01
담당 2021.12.01 0 65
11088
New 말로는 알 수 없었던 신28:1 '세계 모든 민족 위'
11088 | 담당b | 2021.12.04
담당b 2021.12.04 0 25
11065
진학 진로 직장을 고민하는 시기
11065 | 담당 | 2021.11.28
담당 2021.11.28 0 91
11047
무리의 자기 최면, 아궁이 속의 장작 (1)
11047 | 담당 | 2021.11.23
담당 2021.11.23 0 94
11050
전두환 노태우 장례와 백영희
11050 | 담당a | 2021.11.24
담당a 2021.11.24 0 123
11054
총공회의 '12.12. 조처 - 대구공회 1989년 공문 이미지 (1)
11054 | 서기 | 2021.11.24
서기 2021.11.24 0 103
11027
(사회) 가속도가 붙은 발전은 사람을 삼킨다.
11027 | 담당 | 2021.11.18
담당 2021.11.18 0 103
11021
지향점 - 성경과 역사와 현실이 가리키는 곳
11021 | 담당 | 2021.11.17
담당 2021.11.17 0 76
11003
카톡 금식? 말은 좋은데, 말로 그치지 않았으면
11003 | 담당 | 2021.11.15
담당 2021.11.15 0 99
10991
부산의 인구 급감 - 동구 서구 영도구, 공회의 중심지 상황
10991 | 담당k | 2021.11.12
담당k 2021.11.12 0 139
10998
공회 노선에서 본 '인구 절벽과 부동산 문제 - 진행
10998 | 담당b | 2021.11.14
담당b 2021.11.14 0 82
11010
공회의 경제 - 부동산을 중심으로
11010 | 담당 | 2021.11.16
담당 2021.11.16 0 91
10967
선진국의 국교에서나 있을 법한 일 - 목사 월급을 국가에서 (8)
10967 | 담당a | 2021.11.07
담당a 2021.11.07 0 185
11014
국내외 신학생의 급감과 신학교 운영 문제
11014 | 담당 | 2021.11.16
담당 2021.11.16 0 71
11037
신학생과 장학금, 교단의 신학교 운영
11037 | 담당a | 2021.11.21
담당a 2021.11.21 0 72
10930
야마 잡기, 절제의 지혜
10930 | 담당 | 2021.11.01
담당 2021.11.01 0 151
10891
교회를 몰아 가는 율동, 난무의 망극함
10891 | 담당 | 2021.10.21
담당 2021.10.21 0 200
10915
신앙의 성향, 그 흐름의 모습들
10915 | 담당 | 2021.10.27
담당 2021.10.27 0 167
10924
울면서 배신한, 베드로
10924 | 담당 | 2021.10.30
담당 2021.10.30 0 165
10885
미국의 국가 형성을 통해 본 공회
10885 | 담당 | 2021.10.20
담당 2021.10.20 0 131
10901
침륜의 소멸기, 봄을 위한 겨울잠 - 밤을 맞은 교회의 자세
10901 | 담당 | 2021.10.24
담당 2021.10.24 0 157
10866
30대 남성의 절반이 미혼이라는 통계 이미지
10866 | 담당 | 2021.10.17
담당 2021.10.17 0 138
10864
코로나 2년이 지나 가며 남긴 것들 - 교회는 무엇과 싸웠던가? (3)
10864 | 담당 | 2021.10.16
담당 2021.10.16 0 198
10835
고신의 이병규 계약신대원 흡수를 보며 - 약육강식론
10835 | 담당 | 2021.10.07
담당 2021.10.07 0 189
10841
1. 이병규와 계약신학대학원, 계신 교단사
10841 | 담당a | 2021.10.08
담당a 2021.10.08 0 161
10843
2. 고신의 생존법과 교단 병합, 약육강식의 교계
10843 | 담당 | 2021.10.10
담당 2021.10.10 0 168
10849
3. 고신의 계약신대원 인수, 약육강식? - 진행
10849 | 담당a | 2021.10.12
담당a 2021.10.12 0 169
10853
4. 고신의 계신 흡수, 총공회에 스며 든 영향 - 진행 (7)
10853 | 담당a | 2021.10.13
담당a 2021.10.13 0 283
10815
천로역정, 이 노선으로 다시 적는다면 (1)
10815 | 담당 | 2021.09.30
담당 2021.09.30 0 179
10822
탄식과 감사, 소망과 사명을 동시에 본다 - 공회의 현황에 대하여 (1)
10822 | 담당b | 2021.10.02
담당b 2021.10.02 0 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