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작성자
부공3
작성일
2018.03.14
(공회의 원래 양식)
백 목사님 생전의 공회는 양식이 넘쳤습니다. 백영희 설교, 목회자든 교인이든 그 설교를 접하면 지난 날 믿어 온 세계가 바뀌고 주변이 요란했습니다. 교계가 그 설교를 막아 서는 방법은 이단이라 외쳐서 접촉 자체를 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남한의 진상을 제대로 접하면 달리 방법이 없는 것으로 비교하겠습니다.

(목사님 사후 논쟁)
이런 공회에 1989.8.27. 백 목사님은 갑자기 가셨고 이제 공회는 그야말로 백 목사님 사후의 말씀을 놓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공회 노선에 충실한 사람들은 서슴치 않고 바로 '재독'의 세월이라 했지만, 자기 설교로 자기 세계를 만들고 싶은 이들은 재독을 '이단'이라 정죄하면 막아 섰습니다. 그런다고 하늘이 가려 질 수는 없었습니다.

(재독이라는 양식)
재독에 대한 정죄, 비판, 우려, 염려가 집요했으나 연구소는 이미 직원들을 통해 확인해 둔 재독의 방법, '녹음을 들으며 책으로 읽는' 길을 제안했고, 대구공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89년부터 30년 기간에 백 목사님 생전보다 낫다 할 기간을 보냈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냥 재림 때까지 가자 했고, 저희는 일단 갈 수 있을 때까지는 당연히 가자고 했습니다.

(재독을 금지 당하며)
2013년에 '목사의 설교는 아들의 상속 재산!'이라는 말을 고소장을 받으며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적 세상적 법적 상식적 도의적 모든 면에서 말도 되지 않기 때문에 무시했습니다. 2017.1.11. 형사 1심은 '백영희 설교는 백영희 본인이 설교 시간에 무슨 말을 했든 어떤 약속을 했든 여전히 자녀들만의 사유 재산'이라는 취지로 판결을 해 버렸습니다. 3심까지 남아 있지만 일단 법원의 결정이면 3심의 결정 이전에라도 잠정적으로 받아야 할 '현실'이 되었습니다. 현재 문제를 삼은 것은 예배 시간 이외의 것이나, 고소하는 사람이 마음을 달리 먹으면 언제든지 또 당해야 합니다. 일반 출간이나 사이트 제공이면 시달려 가면서라도 제공하는 것이 맞지만, 집회처럼 전국이 장기간 준비하는 예배는 고소가 들어 온 후에 갑자기 중단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따라서 개별 교회의 개별 예배와 달리 연차 집회는 7남매 가족 전체가 영구히 시비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나 그런 상황을 확보하지 않고는 재독으로 집회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1989년 1월의 사경회)
부공3은 2018년 5월집회부터 30년의 재독 집회를 일단락 짓고, 이제 그 동안 배운 말씀의 연장선에서 이 노선이 가야 할 길로 집회의 모습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가족들의 시비 상황이 종료 된다 해도 무조건 과거처럼 복습을 하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1989년 1월, 백 목사님은 생전 마지막으로 서부교회 사경회를 개최하면서 연구부장에게 백 목사님 사후의 노선을 주제로 설교하게 했습니다. 30년의 복습을 끝내고 이제 새로 출발하는 부공3의 이 번 5월 집회는 1989년 1월의 당시 사경회를 기본으로 삼고 2018년의 시점에서 다시 그 내용을 가지고 앞날을 살피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허락 된다면 당시 '총공회의 역사와 사명'이 첫 주제가 될 것이고, 당시 '총공회 교인의 시국관'이라는 두 번째 주제 대신에 '창세기 1장'을 공부하게 될 듯합니다. 신앙의 출발, 모든 것의 시작을 창세기 1장을 통해 세밀히 살펴 보면 이후의 걸음을 알게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위로의 말씀)
인도하시는 이유와 방향은 알겠지만 여전히 재독까지 끊고 출발하는 상황을 두고 우려와 조심은 심각합니다. 인간적으로는 내키지 않고 또 스스로 나서기는 참 어려운 길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인도가 꼭 자체 사경회를 원하시면 마냥 거부만 할 수도 없습니다. 백 목사님 사후에 재독을 반대하던 분들이 일제히 새 시대에 새 말씀이 있다고 했으나 30년을 돌아 보면 재독으로 복습한 우리가 조금은 나아 보이고 새 말씀을 주창한 분들의 희망은 모두 허망한 듯합니다. 재독과 비교하면 확실히 부족하거나 아니면 곁길입니다.

이제 저희 차례입니다. 30년의 재독, 그 정도의 복습이라 해도 부족한 것은 마찬 가지지만 우리가 다른 점은 대구공회처럼 스스로 복습을 버리고 새 길을 찾은 것이 아니라 현실의 인도에 따라 밀려서 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부족하고, 그래서 우리는 더 나은 은혜를 기대합니다.

마18:8,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제자들이 아는 양식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모르는 양식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제공하는 방법으로만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주님의 신령한 양식이 바른 방법으로 제공이 되었으나 그 전부는 늘 부정 배척되었습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기대할 수 없었던 주님 승천 후 시대에 전혀 생각 못한 방법으로 받았습니다.

어쨌든 순종할 뿐입니다.
순종이 믿음이라 했고, 우리는 30년을 복습만 했습니다. 160여 건으로 고소를 당해도 버텼습니다. 이제는 '장기 준비'가 필요한 집회만은 1차적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억지로, 강제로, 참으로 마지 못해 떠나는 걸음입니다. 에서에게 밀려 가는 야곱처럼. 가시덤불의 음성에 밀려 가는 모세처럼.
전체 2

  • 2018-03-15 03:53
    사도행전10:13-16
    초대교회 당시 이스라엘만 택한 민족이고 이방인은 짐승이라 전도 자체가 필요없다 생각했으나 베드로의 선입관을 하나님이 환상으로 꺾으십니다.

    이방인 고넬료의 전도로 베드로는 나중에 할례자들이 힐난할 때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 막을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더럽다 했으나 하나님은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 하십니다 이방인 접촉을 안하는 자기가 옳다 확신했는데 시간이 지나보니 자기가 틀렸습니다.

    사도 바울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사도행전16:6-7
    비두니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 했으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고 막으시더라.

    왜 비두니아를 막으셨는가?
    베드로전서1:1
    비두니아는 베드로에게 책임지워진 곳이고 이방인 전도를 위해 부름받은 바울보다 유대인 전도를 위해 부름받은 베드로가 더 적합했기 때문에,  우리는 모르나 주님은 지역성 민족성까지 다 고려해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막으시면 그 속에 뜻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끝까지 고집부렸다면 바울이 끝까지 가려했다면 야곱처럼 신체적 어려움을 만나 회개의 시간을 보내겠지요! 그러기엔 우리네 인생이 너무나도 짧습니다.

    재독 또한 소송의 모습으로 하나님이 막으시는 것입니다
    이 곳을 더 크게 사용하시려고
    이제는 생전 백목사님처럼 집회하라고
    더 나아가 주님처럼 장성한 사람되라고
    걸음마를 두려워하면 자전거를 배울때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면 평생 걸어다녀야 합니다.

    pkist.net 홈페이지가 폐쇄된 것이 원고측 강제도 아니요 그렇다고 피고측 스스로 내린 것도 아닌줄 우리는 잘 압니다.

    홈페이지가 닫힌 2018년 1월 말부터 주님은 재촉하십니다.
    이제 사람과는 그만 싸우고 새길을 걸어가라고 그럴 시간이 없다고 앞으로 2년 허송세월하지 말고.

    우리의 손에 수백 수만의 목숨이 달려 있나이다.

  • 2018-03-25 17:03
    부공3 전체 교역자와 집회 지도자들은
    말씀하신 뜻을 잘 새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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