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집회의 계시록 공부를 거치며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0.05.16
집회 후 연구소 데스크에서 본 자료를 대신 올리며 이 노선 우리 전체의 자기 과제로 삼고 읽었으면.

....

백 목사님의 생전에도 꿈을 가졌지만 목사님 장례 이후 여러 희망 사항 중에 연구 작업을 두고는 크게 3가지를 과제로 품었다. '조직신학' '백영희 전기' 그리고 '계시록 주해'였다. 공회 전체의 꿈이고 백 목사님의 개별 부탁 때문에 개인의 제1호 사명이며 그 분에 대한 빚이다.

전기는

1994년에 먼저 전국을 다니며 면담을 하고 1995년에 원고를 완성했다. 이후 완성도를 위해 계속 원고를 여러 곳에 공개하며 이의 제안 반론을 기다렸다. 1998년에 시작 된 연구소 사이트에 전부 공개를 하며 기다렸다. 어떤 지적도 없어 2015년에 출간했다. 1995년부터 출간 직전까지 백영희 전기의 기본 원고를 부산연구소와 목사님 가족들에게 미리 제공했고 연락을 주시면 최대한 반영을 하겠다고 했다. 그 원고를 받아 들고 경쟁에 돌입한 가족도 있었다. 휘하의 많은 교인을 동원하고 설교록 전부를 분담해서 전기 자료를 재구성했지만 단 한 줄도 발표하지 못했다. 설교록에는 목사님의 생애가 많이 나오나 오류가 너무 많다. 가족과 부산연구소가 일체 지적을 하지 못하는 원고의 완성도를 확인한 후 책으로 출간했다. 원고를 드릴 때부터 가족 중 신앙이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부친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자기가 백영희의 직계로 적히지 않았다며 서운한 표시를 유독 심하게 한 분들이 있었다. 그렇다고 7남매 가족 전부와 꼭 같은 인연을 가진 사람으로서 한 사람을 위주로 편애할 수도 없지만 백영희의 생애를 두고는 기본적으로 그런 생각 자체를 가져 본 적이 없다. 이런 사정들이 개입 되어 이 책 때문에 나는 전과자가 되었다. 내용의 사실 문제 때문이 아니라 설교록의 일부 내용이 들어 갔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전기를 작성할 때 설교록 내용을 하나도 믿지 않고, 전부 외부의 자료와 당시를 객관적으로 말해 줄 인물들을 면담해서 작성했다. 설교록을 1차 자료로 삼으면 회고록이 된다. 면담자도 최대한 공회 탈퇴자나 백영희 비판자를 우선으로 삼았다. 경찰 검찰의 초기 판단은 전부 무죄였다. 어느 날 재조사가 시작 되고 유죄가 되었다. 다만 출간 도서의 단 한 글자도 구체적으로 설교록에서 배꼈다는 말은 없었다.  나의 최우선 3가지 연구의 1가지 과제는 달성했고 그 덕에 전과 1범을 기록할 때 이 책이 불법 도서라며 증거로 제출 되었다. 고소자는 전과자를 만들어서 성공했고 나는 의인이며 순교자를 알리다가 냉수 한 그릇이 아니라 전과자까지 되는 수고를 했으니 내가 백영희라는 의인은 아니고 순교자도 아니지만 의인과 순교자의 그 상에는 내 이름이 영원히 영계에서 빛날 것이니 감사할 뿐이다.

조직신학은

2004년에 출간했다. 첫 출간의 이름은 '요약'을 붙였으나 백영희 식의 출간에 하나의 표시 유형이다. 오자나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아직까지 오류 때문에 지적 받아 본 적은 없다. 이 책이 나간 다음에 많은 종류의 공회 교리나 조직신학서들이 출간 되었다. 이 책과 다른 부분은 모두가 철회했고 이 책을 인용하면서 대부분은 굳이 출처를 빗겨 표시했다. 그 저자들의 양심이 그들을 찌르고 있으니 그들은 영원토록 바늘 방석일 것이고 나는 내용만 정확하면 복이고 그 이름에 백영희가 들어 갔으니 할 일을 다했다. 이 책도 저작권 위법으로 전과 1범이 되는 데 포함 되었다. 이 조직신학을 고소한 이들은 이 책에 단 한 글자도 반론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냥 설교록을 배꼈기 때문에 불법이라 한다. 부친 설교록을 왜곡 없이 잘 배껴 정리했으면 상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 책의 서문에 잘못이 있으면 내 책임이라고 했고 그 책에 옳은 것이 있으면 백영희 것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충신이며 효자며 의리가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세계와 역사의 교회를 향해 출간했다. 이 책의 출간을 위해 백영희는 1983년부터 내게 직접 유학을 지시했고, 미국의 자녀들에게 비용을 부담 시켰고 총공회적으로도 결의를 했으며 서부교회 십일조 회계도 동원이 되었다. 그런데 고소자는 이런 사실을 전면 부인을 했다. 사실을 알면서 거짓말을 했는지 서부교회와 공회와 부친의 세계를 잘 몰라서 그랬는지 내가 말하기는 좀 그렇다. 내 마음에 짐작은 있다. 나는 지금도 목사님의 자녀들이 내 유학기간의 비용을 책임 지겠다고 발송한 재정보증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유학 기간에 하루 8시간 씩 일을 하면서 초기 3개월의 비용 외에는 모두 벌어서 해결했다. 그래서 유학 기간에 배워 온 것은 사실 거의 없다. 그냥 비용 최소화에 최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유학 기간에 자녀들로부터 설교록에 나오지 않는 백영희 비사를 최대한 들었다. 어쨌든 나는 총공회 조직신학의 정립을 명 받았고 나는 일차 작업을 끝냈다. 지금 1차 발표의 내용을 더욱 세분화 하며 완성도가 훨씬 높은 2차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다.

계시록은

이 번 집회 때문에 뜻하지 않게 바로 해결이 되었다. 계시록은 좀 어려울 것으로 봤다. 전기와 조직신학은 자료를 모으고 정리를 해 나가다가 맞지 않거나 빈 부분은 다시 자료를 모아 보면 된다. 굳이 말하자면 퍼즐 모으기다. 이 노선에 목회자나 교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계시록은 자료화로 접근하기는 어렵다. 물론 박윤선 식으로 대표 되는 일반 신학의 접근이면 어렵지 않다. 또 따로 할 필요도 없다. 이미 많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노선의 계시록 접근이라면 40여년의 10만 쪽 자료 전체를 모두 확인하고 정비를 끝내야 대략이라도 적을 수 있다. 문제는 계시록만은 백 목사님의 해석이 너무 빈 곳이 많아서 퍼즐 맞추기가 되지 않는다. 또 65권의 결론이기 때문에 자료 접근식의 실무적 실력이나 성경 신학적인 방식으로는 가까이 갈 수가 없다. 해결하는 방법은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배운 것을 잘 정리하여 전하는 정도이지 그 이상은 되지 못한다. 나도 성령으로 깨닫고 판단하고 조처해 나온 일들이 있다. 세월 속에 열매로 봐서도 확실한 것이 있다. 그런데 계시록에 접근할 정도는 되지 못한다. 그래서 2001년에 백 목사님의 계시록 주해서를 출간할 때 사실상 그 것으로 전부가 되지 않을까, 그 이상을 넘어 갈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 내용은 분량이 너무 적다. 이후에 직원들이 함께 노력하며 계시록 3장 정도까지 진행을 한 적이 있는데 세월도 많이 걸렸고, 무엇보다 4장부터는 정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봤다.

그냥 과제로만 머리 속에 두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2015년에 저작권 때문에 고소를 당했고 2018년 1월에 유죄가 되어 원래 사이트까지 중단을 하였다. 그런데 바로 이 사건 때문에 엉뚱하게도 계시록 전체의 주해가 가능하게 되리라고 당시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쨌든 10년 가르친 집회 내용으로 30년을 복습만 했으니 그 정도면 역사 이래로 복습에 관한 한 칭찬을 받지 빈약하다고 비판을 받을 일은 아닐 듯하다. 2018년 5월부터 백영희 설교를 재독할 수 없게 되어 설교로 전환을 했고 이후 4회의 집회를 일단 진행했다. 전도사로 첫 목회하던 해에 목사님이 돌아 가시고 그 분의 생전 설교로 복습만 해 왔기 때문에 설교 집회가 가능할지는 누구도 자신할 수 없고 예상도 어려웠다.  우리 집회는 백영희 설교만 30년을 복습한 상황이기 때문에 어떤 목회자의 설교로도 집회 유지가 어려운 것이 공회의 내막이다. 대구공회가 목사님 사후 몇 번의 집회 후에 공회적 산집회 성격을 바로 잃은 것과 다른 공회들의 결과를 봐도 그렇다. 이런 점을 미리 알기 때문에 재독으로만 집회를 했고 이런 결과를 예상했기 때문에 설교 집회는 부공3이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백영희 목사님의 자녀들이 전부 고소를 해 버리는 상황이 벌어 졌고, 이런 외부의 강제력 때문에 우리는 밀려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은 향후 집회의 전개는 우리의 내부 실력이나 일반 예측과 전혀 다른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며 이 면  때문에 하나님의 추가 역사가 궁금했다. 우려 속에 시작 된 2018년 5월의 집회, 이어 지는 8월과 2019년의 5월과 8월의 집회들이 결과를 봐도 일단 재독 집회와 별 차이가 없이 진행이 되었다. 만일 재독 집회가 가능했는데 설교 집회로 우리가 전환 했다면 결과는 타 공회와 같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에게 설교 집회를 하라고 하나님께서 환경을 동원하여 밀었고 우리는 밀려 갔기 때문에 설교 집회가 어려운 우리에게 설교 집회가 가능하게 해 주셨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우리 외에는 모든 공회들이 백 목사님 생전부터 각종 집회를 인도해 본 훌륭한 공회 부흥사들이 다수 있다. 우리만 없다.

설교 집회가 이렇게 진행 되는 과정에 2019년에는 우리의 현실이 계시록을 살필 만한 수준이 되지 않는데도 계시록을 피할 수 없는 사회 환경이 너무 극심하게 닥쳤다. 말세지 말에 벌어 질, 계시록의 모든 사안들이 교회 안팎에서 사회와 국제 환경 안팎에서 너무 극심하게 휘몰아 쳤다. 그래서 계시록 공부는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몰아 가시는 상황 때문에 2019년 8월 이후에 2020년의 집회를 준비하면서 계시록을 피할 수 없지 않느냐는 문제로 교역자회에서 계속 대화가 있었다. 모든 면으로 봐도 계시록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연말로 다가 가면서 집회의 주제를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고, 그리고 현실은 너무나 명확하게 계시록이 필요하기 때문에 환경을 이렇게 조성하시는 하나님께서 계시록을 공부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은혜는 주시리라 믿고 계시록을 확정했다. 확정을 하자 바로 중국 폐렴 문제가 시작 되었고 처음에 우습게 시작 된 뉴스가 급기야 한국과 세계의 모든 문을 유사 이래 처음으로 닫게 하면서 계시록 주제는 더욱 급박하게 필요했다. 교재를 준비하며 아무리 노력해도 내용을 전혀 열어 주지 않기 때문에 22장까지의 성경 내용만을 교재로 인쇄하고 그 속에 내용은 거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따로 구성하지 않았다. 집회는 성찬을 준비하듯이 사전에 특별한 긴장으로 만사를 조심하는데 계시록의 내용이 대부분 가려 있기 때문에 집회 전까지 다른 집회 때와 달리 편한 마음으로 휴식을 했다. 전체 방향을 볼 때 당신이 알아서 이 번에는 특별히 진행을 하리라는 경험 때문이다.

그리고 이 번 집회가 시작 되면서 계시록 전체를 공회의 기능구원과 현실 구원으로 깊이 살필 수 있도록 열어 주셨다. 이 번 집회의 계시록 강해의 중요한 부분은 대부분 강단에서 바로 받았다. 집회를 마친 뒤 지금 바로 계시록 전체를 기록해 보고 있다. 현재 13장까지를 마쳤다. 집회 때 받은 말씀을 가지고 집회 준비를 역으로 하고 있다. 다음 주간쯤이면 계시록 전체의 정리가 가능할 듯하고 모든 내용을 먼저 다 적고 나면 주변 모든 분들이 다 함께 이 내용을 가지고 백영희 10만 쪽의 자료와 비교를 해 보면 교정이나 편집 차원으로 1-2개월 정도 진행이 될 듯하다. 1990년 9월 첫 주간에 기독지혜사에서 출간할 주일학교 책의 원고를 무박 2일만에 적은 적이 있다. 이후 2개월 이상 걸려 자료 확인을 했고 1991년에 출간이 되어 졌다. 당시 책을 적을 때 지금 생각해도 능력에 붙들려 적었다.  이 번 계시록도 그런 분위기다. 현재 우리 주변에서 급박하게 돌아 가는 모든 현상은 계시록의 일곱 인들과 일곱 나팔 재앙들과 일곱 대접 재앙들을 중심으로 살피면 아주 명확해 진다. 그리고 공회의 교리와 교훈 체계로만 그 분석과 주해가 가능하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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