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전염병으로 교회를 한 번 흔들어 봤다. - 마귀의 궤계를 중심으로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20.03.08
(신앙 전투, 그 성격과 모습)

세상과 구약의 교회는 보이는 전쟁을 했다. 땅을 많이 차지 하고 원수를 많이 죽이는 것이 성공이었다. 신약 우리는 엡6:12에서 볼 수 없는 악령과 신령한 전쟁을 해야 하니 '하늘에 있는 영'이라고 표시했다. 그런데 전쟁의 본질은 하늘의 영생과 영멸을 결정하는 신령한 전쟁이지만 그 신령한 전쟁을 하는 전투 현장은 오늘 이 세상 현실에서 진행 된다. 구약 교회나 오늘의 세상의 전쟁은 영토의 넓이와 적을 죽인 숫자로 승패를 쉽게 가릴 수가 있다. 그런데 신령한 우리의 전쟁은 보이는 집과 목숨을 내 주고도 이길 수 있고 예배당과 교인들을 대거 확보를 해 놓고도 패전할 수 있다.

초대교회는 로마제국에게 모두가 죽고 예배당조차 하나 없었다. 그런데 승전의 연속이었다. 주후 313년에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승인한 뒤 로마제국에는 예배당과 십자가와 교인이 온 제국을 다 휩쓸었지만 기독교는 패전만 했고 결국 6세기부터 16세기까지 약 1천년간 기독교는 악령에게 완패를 했다. 이 시기를 천주교는 기독교의 전성기라 한다. 우리는 반대로 본다. 그래서 서로 종교가 다르다.

 

(전투의 방법, 악령의 전법)

엡6:11에서 우리의 대적 악령을 '마귀'로 표시하면서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라 했다. 세상 것을 뺏아 가든 세상 것을 더해 주든 악령은 우리가 죄만 짓게 하면 이긴다. '악령'은 자기 중심으로 만들어 죄를 짓게 한다는 원인을 중심에 둔 표현이고, '마귀'는 죄를 짓게 한다는 결과를 강조한 표현이다. 악령과 마귀는 죄를 짓게 하는 귀신의 이름이다. 우리를 죄 짓게 할 때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가? '마귀의 궤계'란 우리를 죄 짓도록 악령이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가? 악령의 수단과 방법을 궤계라고 했다. 단순하여 확인이 쉬운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궤계'라고 했다. 겉과 속이 다르면 궤계다.

보험 모집원은 전도를 할 때 유리하다. 공자의 제자들은 5계명을 지킬 때 유리하다. 우선 그렇다. 운전 잘 하는 사람이 교회의 차량을 맡아 수고할 때 확실히 낫다. 이런 것은 부정할 것이 없다. '궤계'로 귀신이 치고 들어 올 때, 불신 시절에 궤계로 세상을 살아 본 사람들은 귀신을 꿰뚫어 보며 속지 않을 수 있다. 세상을 순진하게만 살아 온 사람은 귀신이 덪을 놓으면 대책 없이 무너 진다. 신학자들과 훌륭한 목회자들이 정말 어처구니 없이 무너 질 때 교리에 부족해서가 아니라 의외로 부동산 소개업자의 말에 속거나 3류 정치가에도 들지 못하는 교회 정치꾼들에게 농락을 당하면서 교회를 난도질하는 것을 본다.

반대로, 세상을 험하게 살아 왔거나 험한 세상을 거쳐 본 이들은 비록 신령한 면은 부족해도 악령의 궤계에는 쉽게 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로부터 신앙과 지혜를 함께 가진 지도자는 흔치 않다. 김현봉 목사님은 신앙과 지혜를 함께 가진 거의 유일한 분이다. 공회가 거의 모든 면에서 김현봉 신앙 노선과 같다고 알려 지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마10:16에서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말씀은 귀신의 궤계에 당하지 말고 성령에 전적 붙들려 나가라는 것이다.

 

(전염병 사태)
고대 사회로 살던 때는 통계도 모든 면에서 비교하기 곤란한 점이 많다. 현대화가 된 이후 2020년 이 번 3월은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이 초비상이다. 전국의 교회 문을 일제히 닫으라는 지시는 6.25 전쟁 때도 일제 말기에도 없었다. 그 때는 교인이 피난을 갔거나 스스로 닫았다. 이 번에는 국가가 직접 나서서 난리다.

롬13:1~7에 따라 국가는 그렇게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다. 교회는 기독교 적대 세력이 정권을 잡고 교회를 폐쇄할 때는 교회 별로 실력껏 맞서야 한다. 이 번처럼 전염병 때문에 교회 문을 닫게 하는 것은 국가가 하나님께 받은 정당한 권세다. 문제는 악령의 궤계다. 교회는 성령이고 정권은 악령인가? 잘 믿는 교회들은 대개 그렇게 보지만 정통 기독교의 원리는 그렇지 않다. 교회도 악령이 악용할 수 있고 정권도 악용할 수 있다. 예배와 목회자도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고 세상 정권도 결과적으로 교회를 지키고 신앙의 자유를 위해 피를 흘릴 수 있다. WCC는 교회가 스스로 교회를 자폭하게 만드는 운동이니 WCC에 속한 교회는 그들의 예배와 지도자들이 그런 일에 혈안이 되어 있다. 반면에 6.25 전쟁은 미국과 소련의 패권 전쟁이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이라는 이 땅 위에 불신자들의 사상 전쟁이었다. 그런데도 미국과 이승만 정권의 국군은 결과적으로 남한의 교회를 지키고 오늘 세계 기독교의 중심에 세도록 도왔다. 교회가 누구에게 고마워 해야 할까? 당연히 미군과 국군이다. 교회가 누구를 미워해야 할까? WCC에 속한 교회와 목회자가 아니라 WCC 운동을 했던 교회의 활동과 목회자들의 사상이다.

 

(전염병 사태)

전염병 사태에 WCC에 선 교회들은 신이 났다. 사회 속으로 들어 가서 세상이 되자며 세상보다 더 설치고 있다. 감기에 걸려 죽는 사람들이 몇 명 생겨 나니 이 참에 예배당 문을 폐쇄하자고 선동을 한다. 천주교와 불교야 원래 죽은 종교니 공원묘지야 전염병에 영향을 받을 것도 없다. 전염병은 살아 있는 생체에 병균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니 살아 있는 교회, 생명의 교회들만 생사 전쟁을 하는 것이다. 한 교회 교인 전부가 다 전염병에 죽어 나가도 그 것은 국가의 보건과 개인의 인체적 사망이지 신앙의 사망은 아니다. 그러나 한 교회 모든 교인이 100% 감염을 막아 냈다 해도 전염병 소동에 속아 신앙으로 해서 안 될 일을 하면, 그 결정 그 행동 그 기간의 그들 신앙은 모두 죽었다. 완패가 된다.

마트는 아직도 사람이 예전처럼 북적인다. 시청과 청와대도 모두 출근을 한다. 모두가 조심을 하지만 직장이 좋거나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모두들 지장 없이 다닌다. 국가도 아직 강제 조처는 내리지  않고 있다. '조심'하라 > '심각하니 더 조심'하라... 이렇게까지만 나오고 있다. 그러니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곳은 확실하게 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데 꼭 가고 싶고 꼭 가야 좋은 곳은 어디든지 별로 줄지 않았다. 만일 죽어도 가야 한다면? 국가의 강제 명령이라도 죽기를 각오한 사람들이야 처음부터 상관도 없을 것이다. 교회의 예배론에 따르면 전염병 때문에 예배 출입이 일반 사회를 위협하게 한다면 교회 별로 교인 별로 예배의 시간과 공간은 조절할 수 있다. 그런데 전염병과 싸울 의무가 있는 군인과 경찰과 보건 인력은 죽을 줄 알고도 국가가 가라면 피할 수 없다. 크게 3가지로 나눠 보았다.

평소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1단계, 모두가 이 점은 조심하는 것 같다.

평소 꼭 가고 싶은 곳만 가는 2단계, 모두가 그런 장소는 알아서 별 지장 없이 오고 간다.

평소 죽어도 가야 하는 3단계, 대구 지방의 출입 금지가 된 구역을 들어 가는 공무원들에게 해당 된다.

 

(교회의 대처)

교회란, 이 3 단계 중에 평소 몇 단계에 해당이 될까?

평소 교회가 1단계 대상인 분이라면 전염병 소식이 이 정도면 알아서 교회를 나오지 않는다. 교회가 데려 오고 싶어도 전도라는 것이 그렇게 어렵듯이 어려운 법이다. 평소 교회에 따라 바쁘면 나오지 않아도 되는 것이 교회요 예배라는 사상을 가지고 그렇게 운영한 교회들이 있다. 좌파, 진보측 자유주의 신학의 성 명 서



(예장통합정체성과 교회수호연대, 예정연)



교회는 주일 공적 예배를 중단해서는 안됩니다.

존경하는 기독교 지도자 여러분에게 호소성의 글을 올려 봅니다. 작금의 코로나 19‘ 전염병으로 인해 삼일절 101주년이요 거룩한 3월 첫째 주일에 전국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주일 공적 예배가 거의 중단된 상태입니다.

일제 식민지하에도, 6.25 전쟁 중에도 교회는 거룩한 안식일 개념의 주일 중심으로 예배를 중지한 일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주일에는 농사 일을 멈추고 음식점을 비롯한 가게에는 문을 닫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오늘의 주일 개념인 안식일에 노동은 물론이요 음식도 안식일 전에 준비하여 안식일에는 일해서 음식물을 취한다는 의미가 없고 심지어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엘레베이터 버턴 조차도 노동이라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고용하여 대신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유대인들은 노벨상을 휩쓸고 전 세계 여러 분야에서 쥐락펴락하는 것을 봅니다.



존경하는 기독교 지도자 여러분 !

작금의 불행하게도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인한 가슴 아픈 일들이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 기독교 입장에서 가슴 아픈 일은 세상과 언론과 정부 측으로부터 주일 공적 집회로 모이는 예배에 대해 중단이나 취소하도록 권고 형식의 요청에 대형교회 대부분의 교회들이 거룩한 주일에 공적 예배를 한 곳에 모여 드리지 못하고 온란인이나 유튜브 형식을 빌려서 대체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교회의 정체성과 교회를 수호하는 본 단체는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성경적으로 주일 공적 예배는 그 어떤 위협 가운데도 반드시 드려져야 한다는 것을 호소하고자 합니다.



정부와 언론측에 묻고자 합니다.

지금 코로나19‘ 는 대구신천지 교회를 중심으로 전국으로 확산되는 분위기입니다. (3.1자로 대구 확진자의 76%가 신천지 교인) 이로 인해 전국의 교회에게 다중이 모이는 교회 예배에 대해 중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어쩜 권고라기 보다는 강제성 요청을 하는 것으로 느낄 정도입니다. 마치 교회가 주일 예배를 강행할시에 뭔가 대단한 압력 행사를 할 것 같은 위화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전국 건전한 6만여 교회 중에 어느 특정 교회 한 두군데에서 확진자가 다수 발생했다 하여 다른 모든 교회 예배를 중단 요청한다는 것이 정상적인 행정 행위인가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대다수 교회 예배에 성도들이 머무는 시간은 겨우 1시간 30분 정도에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후나 저녁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관공서에서 확진자가 한두명 발생하면 대한민국 다른 모든 관공서를 폐쇄 행정 중지하는지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그들 다수 공무원들은 한 사무실에서 종일 하루 8시간 근무를 합니다. 관공서야말로 여러 사람들이 업무차 오가는 곳입니다. 일반 기업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이런 곳에 출근을 중지하고 문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전철에서도 버스에서도 길거리에서도 다중이 이용하는 식당과 클럽의 영업을 중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교회에 대해서는 간단한 짧은 시간을 머무면서 (1시간 30분 정도) 드려지는 예배에 대해 중지를 요구합니까 ? 지금 정부와 각 지방 자치단체에서 교회에 대해 예배 중지할 것을 반 강제 형식으로 권고하고 있는 것으로 교회의 입장에서는 충분한 오해의 소지가 다분합니다. .

교회 예배는 해당 교회 목회자가 (교회 기관에서 판단 결정) 여러 상황을 보아서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예배를 강행하면 마치 정부에 반기를 드는 것처럼 또는 정부에 대해 적폐 단체 취급으로 여론 몰이를 하고 있는것은 무엇인가 오해받을 소지가 충분합니다.



교회와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금번 정부 방침에 따라 근래 역사적으로 전혀 없는 주일 공적 예배를 그리도 쉽게 포기한다는 것이 옳은 일인지요 ? 교회 예배는 하나님이 택한 장소인 (신 16:11) 교회당에 모여서 드려지는 것이 정상이며 성경적이다.

(행 2: 46, 히 10:25) 지난번 사스나 메르스 전염병이 돌 때도 교회는 아무런 제재 없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로 교회의 문을 닫다니요 ?

교회 지도자들이여 앞으로 관청과 언론들이 여론을 만들어서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교회 예배에 관여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 또한 선조들이 목숨처럼 지킨 주일 공적 예배 (주일성수) 에 대해 앞으로 성도들이 주일 성수에 대해 뭐라고 강력하게 성경적으로 믿음의 주장을 할 것인지 ?

우리는 주일 공적 예배를 너무 쉽게 중지 포기했습니다. 이제 코로나 19’ 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데 그렇다면 계속해서 정부측에 요구에 묵묵히 순응할 것인지 ?

혹여, 교회에 대해 정부나 언론기관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감추어진 숨은 의도와 목적은 있는 것은 아닌지 ?

교회여 당당히 일어나야 합니다. 그 어떤 자연의 위협에서도 사회적인 강압에서도 천사처럼 명목을 갖고 요구한다 해도 예배는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공동체 모임의 주일성수 예배를 포기하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입니다.

코로나19‘ 관련하여 안전하게 전염 예방적인 예배 드리는 방법은 얼마든지 연구하면 됩니다.

교회 입구 손소독제 비치와 손씻기 철저, 전교인 마스크 착용, 식사할 때 엇갈려 앉아 식사하기, 전교인 예배시 듬성 듬성 앉기, 부수 늘려서 교대로 널찍하게 앉아 드리기, 남선교회/여선교회/구역장 교회 중직자분들과 의논하여 남성/여성/구역별 예배시간 나누기 지정 등 다양한 방법 아이디어 제안, 마스크 미착용 교인 및 해당 교회 교인 여부 미식별 분은 정중히 돌려보내기, 식사 방법, 예배 방법 등 다양하게 아이디어 가능, 어제 어느 대형교회는 열감지기 설치, 자신들 교회 교인들인지 여부 표식 갖기 등 다양한 방법 아이디어 동원하면 됩니다.



교회 예배를 사수해야 합니다.

교회 예배는 그 어떤 구실에도 양보할 수 없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지난 과거 사스와 메르스가 전염될 때에도 교회 예배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리도 주일 성수를 쉽게 포기하십니까 ? 코로나 19' 예방을 위한 다양한 대안과 아이디어는 많습니다.

세상에 자랑스럽니까 ? 세상 여론따라 교회를 운영하시렵니까 ? 하나님께 주일 성수 포기를 자랑하시렵니까 ? 세상 여론, 언론, 방송, 세상사람들이 두렵고 무섭습니까 ? 세상사람들이 그 어떤 핍박과 조롱 압력을 가해도 우리는 오직 성경과 복음 보시며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이 언제 교회를 위한 적이 있습니까 ? 세상 여론대로 교회를 운영해야 합니까 ? 미디어가 기독교 방송이 생기기 전보다 교회가 교인들이 부흥이 되었습니까 ?

세상이 조롱하고 핍박해도 모두가 아니라고 해도 광야에서 저희는 외쳐야 합니다. 아닌건 아닌 것입니다. 성경과 복음을,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세상 사람과 여론 방송은 유한하지만 주님은 영원하십니다. 성경의 역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목숨 걸고 믿음을 지킨 성경 속 인물과 우리네 선조들을 보십시오.

당장 조롱과 핍박으로 기독교가 교회가 무너졌습니까 ? 당장은 무너진 것 같이 보였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고 전세계 복음의 역사는 과거도 지금도 미래도 주님 오시는 날까지 역사는 계속 됩니다.



교회 예배가 죽으면 나도 가정도 국가도 다 죽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요 4:2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 4:24)



2020.03.01. 삼일절 101주년 주일 오후



예장통합정체성과 교회수호연대 (예정연)

대표회장 최경구 목사, 서기 조도연 목사
성 명 서



(예장통합정체성과 교회수호연대, 예정연)



교회는 주일 공적 예배를 중단해서는 안됩니다.

존경하는 기독교 지도자 여러분에게 호소성의 글을 올려 봅니다. 작금의 코로나 19‘ 전염병으로 인해 삼일절 101주년이요 거룩한 3월 첫째 주일에 전국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주일 공적 예배가 거의 중단된 상태입니다.

일제 식민지하에도, 6.25 전쟁 중에도 교회는 거룩한 안식일 개념의 주일 중심으로 예배를 중지한 일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주일에는 농사 일을 멈추고 음식점을 비롯한 가게에는 문을 닫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오늘의 주일 개념인 안식일에 노동은 물론이요 음식도 안식일 전에 준비하여 안식일에는 일해서 음식물을 취한다는 의미가 없고 심지어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엘레베이터 버턴 조차도 노동이라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고용하여 대신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유대인들은 노벨상을 휩쓸고 전 세계 여러 분야에서 쥐락펴락하는 것을 봅니다.



존경하는 기독교 지도자 여러분 !

작금의 불행하게도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인한 가슴 아픈 일들이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 기독교 입장에서 가슴 아픈 일은 세상과 언론과 정부 측으로부터 주일 공적 집회로 모이는 예배에 대해 중단이나 취소하도록 권고 형식의 요청에 대형교회 대부분의 교회들이 거룩한 주일에 공적 예배를 한 곳에 모여 드리지 못하고 온란인이나 유튜브 형식을 빌려서 대체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교회의 정체성과 교회를 수호하는 본 단체는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성경적으로 주일 공적 예배는 그 어떤 위협 가운데도 반드시 드려져야 한다는 것을 호소하고자 합니다.



정부와 언론측에 묻고자 합니다.

지금 코로나19‘ 는 대구신천지 교회를 중심으로 전국으로 확산되는 분위기입니다. (3.1자로 대구 확진자의 76%가 신천지 교인) 이로 인해 전국의 교회에게 다중이 모이는 교회 예배에 대해 중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어쩜 권고라기 보다는 강제성 요청을 하는 것으로 느낄 정도입니다. 마치 교회가 주일 예배를 강행할시에 뭔가 대단한 압력 행사를 할 것 같은 위화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전국 건전한 6만여 교회 중에 어느 특정 교회 한 두군데에서 확진자가 다수 발생했다 하여 다른 모든 교회 예배를 중단 요청한다는 것이 정상적인 행정 행위인가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대다수 교회 예배에 성도들이 머무는 시간은 겨우 1시간 30분 정도에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후나 저녁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관공서에서 확진자가 한두명 발생하면 대한민국 다른 모든 관공서를 폐쇄 행정 중지하는지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그들 다수 공무원들은 한 사무실에서 종일 하루 8시간 근무를 합니다. 관공서야말로 여러 사람들이 업무차 오가는 곳입니다. 일반 기업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이런 곳에 출근을 중지하고 문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전철에서도 버스에서도 길거리에서도 다중이 이용하는 식당과 클럽의 영업을 중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교회에 대해서는 간단한 짧은 시간을 머무면서 (1시간 30분 정도) 드려지는 예배에 대해 중지를 요구합니까 ? 지금 정부와 각 지방 자치단체에서 교회에 대해 예배 중지할 것을 반 강제 형식으로 권고하고 있는 것으로 교회의 입장에서는 충분한 오해의 소지가 다분합니다. .

교회 예배는 해당 교회 목회자가 (교회 기관에서 판단 결정) 여러 상황을 보아서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예배를 강행하면 마치 정부에 반기를 드는 것처럼 또는 정부에 대해 적폐 단체 취급으로 여론 몰이를 하고 있는것은 무엇인가 오해받을 소지가 충분합니다.



교회와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금번 정부 방침에 따라 근래 역사적으로 전혀 없는 주일 공적 예배를 그리도 쉽게 포기한다는 것이 옳은 일인지요 ? 교회 예배는 하나님이 택한 장소인 (신 16:11) 교회당에 모여서 드려지는 것이 정상이며 성경적이다.

(행 2: 46, 히 10:25) 지난번 사스나 메르스 전염병이 돌 때도 교회는 아무런 제재 없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로 교회의 문을 닫다니요 ?

교회 지도자들이여 앞으로 관청과 언론들이 여론을 만들어서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교회 예배에 관여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 또한 선조들이 목숨처럼 지킨 주일 공적 예배 (주일성수) 에 대해 앞으로 성도들이 주일 성수에 대해 뭐라고 강력하게 성경적으로 믿음의 주장을 할 것인지 ?

우리는 주일 공적 예배를 너무 쉽게 중지 포기했습니다. 이제 코로나 19’ 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데 그렇다면 계속해서 정부측에 요구에 묵묵히 순응할 것인지 ?

혹여, 교회에 대해 정부나 언론기관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감추어진 숨은 의도와 목적은 있는 것은 아닌지 ?

교회여 당당히 일어나야 합니다. 그 어떤 자연의 위협에서도 사회적인 강압에서도 천사처럼 명목을 갖고 요구한다 해도 예배는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공동체 모임의 주일성수 예배를 포기하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입니다.

코로나19‘ 관련하여 안전하게 전염 예방적인 예배 드리는 방법은 얼마든지 연구하면 됩니다.

교회 입구 손소독제 비치와 손씻기 철저, 전교인 마스크 착용, 식사할 때 엇갈려 앉아 식사하기, 전교인 예배시 듬성 듬성 앉기, 부수 늘려서 교대로 널찍하게 앉아 드리기, 남선교회/여선교회/구역장 교회 중직자분들과 의논하여 남성/여성/구역별 예배시간 나누기 지정 등 다양한 방법 아이디어 제안, 마스크 미착용 교인 및 해당 교회 교인 여부 미식별 분은 정중히 돌려보내기, 식사 방법, 예배 방법 등 다양하게 아이디어 가능, 어제 어느 대형교회는 열감지기 설치, 자신들 교회 교인들인지 여부 표식 갖기 등 다양한 방법 아이디어 동원하면 됩니다.



교회 예배를 사수해야 합니다.

교회 예배는 그 어떤 구실에도 양보할 수 없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지난 과거 사스와 메르스가 전염될 때에도 교회 예배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리도 주일 성수를 쉽게 포기하십니까 ? 코로나 19' 예방을 위한 다양한 대안과 아이디어는 많습니다.

세상에 자랑스럽니까 ? 세상 여론따라 교회를 운영하시렵니까 ? 하나님께 주일 성수 포기를 자랑하시렵니까 ? 세상 여론, 언론, 방송, 세상사람들이 두렵고 무섭습니까 ? 세상사람들이 그 어떤 핍박과 조롱 압력을 가해도 우리는 오직 성경과 복음 보시며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이 언제 교회를 위한 적이 있습니까 ? 세상 여론대로 교회를 운영해야 합니까 ? 미디어가 기독교 방송이 생기기 전보다 교회가 교인들이 부흥이 되었습니까 ?

세상이 조롱하고 핍박해도 모두가 아니라고 해도 광야에서 저희는 외쳐야 합니다. 아닌건 아닌 것입니다. 성경과 복음을,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세상 사람과 여론 방송은 유한하지만 주님은 영원하십니다. 성경의 역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목숨 걸고 믿음을 지킨 성경 속 인물과 우리네 선조들을 보십시오.

당장 조롱과 핍박으로 기독교가 교회가 무너졌습니까 ? 당장은 무너진 것 같이 보였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고 전세계 복음의 역사는 과거도 지금도 미래도 주님 오시는 날까지 역사는 계속 됩니다.



교회 예배가 죽으면 나도 가정도 국가도 다 죽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요 4:2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 4:24)



2020.03.01. 삼일절 101주년 주일 오후



예장통합정체성과 교회수호연대 (예정연)

대표회장 최경구 목사, 서기 조도연 목사
교회와 세상이 그렇다.

 

평소 꼭 교회를 다니자는 교회들이 있다. 그런 교회들은 대구지역의 경우 아마 모두 문을 닫았을 것으로 본다. 다른 지역은 아직 문을 열고 있을 것이다.

 

평소 교회는 목숨 걸고 다니는 곳이라고 배우고 가르친 교회는, 전염병의 성격 때문에 대구 지방은 예배의 시간과 공간을 변경했을 것이고 대구 지방이 아니라 해도 교회 내에 문제가 발생한 교회는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당연하다. 문제는 세상 마트나 청와대나 시청에는 마음대로 사람들이 가면서 교회만은 전국적으로 무조건 문을 닫으라고 설치는 이들이다. 이들 뒤에 보니 전부 진보, 좌파, 또는 교회를 없애고 싶었던 자유주의 신학의 인물이고 운동들이다. 전염병을 핑계대면서 감염을 막자는 명분으로 이 참에 전국의 알짜배기 교회들을 색출해서 아주 요절을 내려고 작정을 한 것 같다.

 

이 것을 읽으면서도 우리는 예배의 시간과 공간을 바꿀 교회 내의 필요가 있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

적어도 세상의 귀신들이 교회 내에 심어 두고 내응하는 이들의 궤계에는 당하지 않아야 한다.

 

좋은 교회는, 평소 시공을 초월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렸고 외형과 제도에 매이지 않았다.

어설픈 교회들은, 평소 시공 초월도 어려웠고 예배당과 회집에만 주력했다. 이런 교회는 지금 혼란스럽다.

곤란한 교회들은, 평소 시공 초월도 아니었고 예배당과 회집도 우습게 여기고 교회 흩기에 주력했다.

 

 

교회라 하기가 참 곤란한 교회 내 진보, 좌파, 그리고 자유주의 신학에 무리들은

평양에게만 아주 절대적으로 잘 따르며, 교회에게는 교회를 헤치지 못해서 발동을 해 왔다. 이 번 전염병에 국민의 안위와 교인의 위험을 걱정해서 아니라 이런 전염병에 대처하기 어렵게 내려온 어설픈 교회들을 아주 주저 앉히는데 혈안이다. 당해도 할 수 없지만, 교회를 그렇게 하는 것은 역사에 저주 받는 무리가 된다.

 

아무리 미워도 교회를 흩고 밟는 이들을 돕는 것은 곤란하다. 빌라도와 헤롯이 원래 원수였으나 예수님을 잡을 때는 금방 친구가 되듯 그렇게 되면 안 된다. 귀신은 염병으로 천하를 미리 한 번 흔들어 보고 있다. 귀신의 본 전투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전염병으로 한 번 흔들어 봤으니 다음에 새로 손을 대면 어느 곳에 주력해서 끝이 날지를 계산하고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교회의 지혜는 뱀의 궤계가 어디를 주력하는지를 살피고 대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밤중에 한 번 실패한 경험으로 다음 날은 아침부터 종일 준비함으로 다음의 밤중은 불을 켤 수 있다. 한 번 실패하고 아주 주저 앉고 돌아 서는 경우도 있다.

 

6.25 때 남한의 교회를 초토화 시킨 공산당이 있고

남한 내에서 교회들의 지도자와 내막을 알려 해체에 앞장 선 세력도 있다.

준비하지 못해 피난 가고, 피난조차 하지 못해 죽은 경우도 있다.

실패를 거울 삼고 다음을 준비하여 잘 성공한 경우도 있다. 변판원 박기천 배추달과 같은 6.25 순교자들은 일제 때 친일파가 되어 신사참배를 했던 인물들이다. 해방 후 그 때를 깨닫고 돌아 서서 베드로가 오순절 이후에 새로 출발하듯 성공한 이들이다.

 

모든 현실은 사건마다 심판으로 지나 가고 있다. 이 번 현실은 이전의 모든 신앙의 준비를 표시한다. 이 번에 성공은 지난 날의 성공이다. 그러나 이 번 성공이 앞 날의 성공이 될지는 오늘 이후의 문제다.

 
전체 1

  • 2020-03-30 09:06
    집에서 예배하세요

전체 205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
이용 안내문
담당 | 2018.04.11 | 추천 0 | 조회 1059
담당 2018.04.11 0 1059
3378
New 홍콩을 통해 본 남한 교회의 내일
담당 | 2020.05.30 | 추천 0 | 조회 82
담당 2020.05.30 0 82
3352
실패한 도둑이 성공한 도둑을 비판한다? - 신천지와 교계 관계
담당 | 2020.05.24 | 추천 0 | 조회 132
담당 2020.05.24 0 132
3366
친일파가 친일파를 욕하고? - 선전선동의 악습
담당 | 2020.05.27 | 추천 0 | 조회 78
담당 2020.05.27 0 78
3350
한국 선교 역사의 양면 (1) : 선교는 좁게, 복음을 널찍하게.
담당 | 2020.05.23 | 추천 0 | 조회 101
담당 2020.05.23 0 101
3371
한국 선교 역사의 양면 (2) : 분열된 선교사들과 선교지 분할
담당 | 2020.05.28 | 추천 0 | 조회 50
담당 2020.05.28 0 50
3377
New 한국 선교 역사의 양면 (3) : 왜 흑인 선교사는 단 1명도 없었는가?
담당 | 2020.05.30 | 추천 0 | 조회 58
담당 2020.05.30 0 58
3325
집회의 계시록 공부를 거치며
담당 | 2020.05.16 | 추천 0 | 조회 143
담당 2020.05.16 0 143
3317
재난구호금, 공회의 지혜 (2)
회원 | 2020.05.15 | 추천 0 | 조회 217
회원 2020.05.15 0 217
3300
그림과 글자 - 성경 기록의 방향에 대하여
담당 | 2020.05.09 | 추천 0 | 조회 131
담당 2020.05.09 0 131
3299
공회를 인도하는 30년 주기의 의미
담당 | 2020.05.09 | 추천 0 | 조회 153
담당 2020.05.09 0 153
3283
쓴 웃음.. 그 말과 표정은 그 속을 드러 낸다.
담당 | 2020.05.02 | 추천 0 | 조회 236
담당 2020.05.02 0 236
3282
어떤 시험도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 - 양면으로 기르시는 감사
담당 | 2020.05.01 | 추천 0 | 조회 156
담당 2020.05.01 0 156
3277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 건설이 없는 본질적 진노의 자식들
담당 | 2020.04.29 | 추천 0 | 조회 168
담당 2020.04.29 0 168
3267
조혜연 바둑 9단, 주일 한 번을 위해 국제대회를 가볍게 던진 그가 부럽다. (1)
담당 | 2020.04.24 | 추천 0 | 조회 250
담당 2020.04.24 0 250
3239
어느 회개의 글 - 공회 목회자
회원 | 2020.04.19 | 추천 0 | 조회 248
회원 2020.04.19 0 248
3224
세상의 선거와 공회의 입장
담당 | 2020.04.15 | 추천 0 | 조회 217
담당 2020.04.15 0 217
3208
전염병 비상 시국에서 놓치는, 교회의 이 한 가지 (1)
담당 | 2020.04.13 | 추천 0 | 조회 233
담당 2020.04.13 0 233
3207
백영희 시집의 '세상 옛 시'와 오늘
담당 | 2020.04.12 | 추천 0 | 조회 141
담당 2020.04.12 0 141